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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참된 교제를 위한 성경적 토대
이흥수  |  solafide1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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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26  14: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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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1장 3절을 보면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성도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귐이어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깊은 사귐을 가지며 생명의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라야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 성도 안에서의 진정한 영적인 교제를 나눔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성도와 성도간의 생명적 연합과 교제의 관계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 라고 하는 포도나무에 접 붙여짐이 전제 되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3절에서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으로 마시게 하셨느니라’라는 말씀처럼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어야 한 몸일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와 신비한 연합을 이루지 못한 자는 원론적으로 성도 간의 진정한 아름다운 교제와 나눔에 참여할 수 없음이 마땅합니다. 그 이유는 서로의 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지 않은 자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듭난 자는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한 곳에 머물러 함께 생활하며 살아갈 수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한 가정에서 함께 기거하고 같은 교회를 오랜 세월 함께 다니며 친분을 쌓을 수는 있겠지만 영적인 신령한 연합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영적인 가치관이 전혀 다르고 생각과 사고방식이 결코 같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함께 여러 세속적인 주제로 담화를 나눌 수는 있지만 진리에 입각해서 영적인 대화를 시작하면 결국 모든 것이 중단되어 버리고 맙니다. 정확하게 각기 다른 양극의 생각으로 갈라져 버릴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중생하지 않은 자는 여전히 세속적인 생각과 가치관을 따라 말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며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은 교회 안에는 있어도 그리스도 밖에 있으며 항상 진리를 들어도 진리 가운데 거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그는 여전히 세상의 방식으로 자신을 주장하거나 고집하게 될 뿐입니다.

그렇게 될 경우 회심한 성도와 회심하지 않은 교인 간에서 끊임없는 충돌과 갈등을 빚게 되는 것은 불가피한 것이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생명의 교제와 연합은 결코 함께 도모할 수 없는 한계를 드러낼 수 밖에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조차도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받고 상처를 입히는 일들이 오래토록 지속되며 그로 인해서 신앙이 성장 하는데 상당한 진통과 지장을 초래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이 다반사가 될 것입니다.

공동체에 균열이 빈번하다는 것은 그 공동체의 소속된 자들이 그리스도와 깊이 연결되어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방증입니다. 고난과 핍박이 올 때 교회가 분열되고 와해되는 것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라는 좋은 토양에 교회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의 영혼이 깊이 뿌리 내리고 있지 않음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이전에 나를 지배하고 있던 모든 세속적인 삶의 방식과 가치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삶의 내용과 방식이 재편되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하나씩 깨달아 가면서 나의 삶과 영혼에 총체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포함합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전의 사람이 아닌 새 사람을 입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고 예수께서 내 안으로 들어 오셔서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내 주인이 되심으로 나의 주장과 고집이 아닌 내 안에 역사 하시는 그 분의 뜻대로 살고자 평생을 노력하며 경주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영혼의 깊은 내면의 변화가 일어난 사람이라야 이제 그는 비로서 거룩한 공 교회와 공동체 속으로 깊이 들어와 지체가 되며 가족이 되고 함께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세워가기 위해 연합을 이루는 교회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체가 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갈등을 겪을 수도 있고 죄인이 함께 모인 지상 교회인지라 다소 어려움이 생기기도 하겠지만, 예수 그리스도라는 거대한 공통분모 아래서 모두 자기 자신을 깊이 살피고 돌아 봄으로 속히 다시 연합과 화합을 이루게 되는 곳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이신 교회 입니다.

어떤 위기가 닥치더라도 그리스도의 피로 동맹을 맺은 자들이기에 능히 모든 갈등을 넘어 갈 수 있음을 세상 앞에 당당히 보여 줄 수 있는 자들이라야 그들이 바로 참된 성도이며 진정한 교회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교회의 교회됨은 신자 개개인이 그리스도안에 속하지 않고는 불가능 한 일이며 이 조건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교회 안에서 성도간의 참된 교통과 사귐은 요원할 수 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일 신자 개개인이 그리스도와 먼저 깊이 연합되고 결합하지 않아도 성도의 교통이 가능 하다면 그 교회와 공동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결코 그리스도의 영이 아닐 것입니다. 그 모임은 사람의 필요에 의해서 조직되고 모이는 친교의 모임과 다르지 않을 뿐일 것입니다. 교회는 친목 단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사교 클럽이 아닙니다. 교회는 동호인들의 회합이 아닙니다. 교회는 학연이나 지연이나 혈연으로, 어떤 이익 관계 때문에 맺어진 집단이 결코 아닙니다.

교회의 구심점이 이런 인본주의적인 것이 될 때 그 교회는 반드시 영적으로 와해 되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표면적으로는 대의 명분은 거룩으로 위장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모임에서 추구하는 방법이나 내용이 세속의 방식과 가치관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곳은 결코 그리스도의 보혈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교회일 수는 없습니다.

모든 신자 안에서의 갈등, 교회 안에서의 분열은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주의 몸이 병들어 있음을 보여주는 고통의 싸인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건강한 교제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성도 개개인 안에 신령한 영적인 정서가 그들을 지배하고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교제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으로 지체들이 하나가 되어 있을 때 거룩한 연합과 아름다운 화합이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회심을 경험하지 않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깊이 접붙여져서 그를 통해 생명의 수액을 그 영혼 가운데 공급받지 못하는 자들이 그러한 성도의 아름다운 합일을 반길 수 있을까요? 그들은 그러한 가치를 알지도 못하고 그것을 원치도 않을 것입니다.

올바른 성도의 연합에 대해서 무지하게 될 때 무늬는 성도의 교제와 교통 이라고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 보면 온갖 세상과 방불한 저속한 대화들과 천박한 행동들이 판을 치는 모습들이 교회 안에 버젓이 자행 됩니다. 그러므로 한 교회의 성도들의 교제의 모습은, 그들의 대화의 주제와 교제의 내용과 그 영적인 진지함 깊이는 곧 그 성도들이 진실로 구원을 받아 그리스도와 깊이 유착되고 결합 되어 있는 진정한 성도인지 아닌지를 가늠케 해주는 시금석일 수 밖에 없습니다.

성도 개개인이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와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그들의 모임의 거룩한 주제가 예수 그리스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된 거룩한 도모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사랑하고 섬기며 그를 경외할 때 그러한 자들이 모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야기 하고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은총을 이야기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성도 개개인이 그리스도와 깊이 연합되어 있지 않다면 예배가 끝난 이후 그들의 모든 교제의 내용은 세상에서의 성공과 번영에 대한 기복적인 주제로 일관 할 수 밖에 없고 언제나 다른 사람을 향한 비난과 정죄가 난무하며 세상의 쾌락과 일락에 관한 것들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거룩하며 영적인 것에 대한 관심은 언제나 저 멀리 밀려나 버리고 세상의 화려함과 즐거움, 시대의 유행과 말초적인 유희가 그들의 주제가 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교회 안에서도 지속적으로 연출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결단코 성도의 교제라 말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이 아니라면,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모두의 가슴을 울리는 거룩한 공감대가 없는 가운데서 어떻게 영적인 성도간의 교제가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려는 거룩한 뜻이 세워지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며 그 깊은 하늘의 만나를 맛보는 즐거움을 함께 체험한 적이 없는 자들에게서 무엇으로 신령한 결단과 선한 계획들이 세워 질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회의 세속화의 근원적 원인은, 교회가 분열되고 양극으로 대치하며 치열한 싸움을 일삼고 일면 도덕적으로 붕괴된 교회가 스스로 자멸의 길을 가고 있는 심각한 이유는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개인들이 그리스도와 결합되어 있지 않음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회심과 중생을 경험하지 않은 다수의 교인들이 교회 안에는 있을지언정 그리스도안에서, 생명의 말씀 안에서, 성령 안에서 열렬히 교제하고 교통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비롯되는 일들 입니다.

성도는 먼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역사의 결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말씀 안에서 성령과 연합된 관계를 이루는 것이 급선무이며, 그렇게 그리스도와 신비한 결합을 이룬 이후에 그리스도의 몸 되신 교회에 깊이 소속되어 세속의 죄악이 침투 해 들어오는 것을 막아내며 성령께서 그에게 주신 거룩한 사명들을 통해서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며 봉사 할 기회와 특권을 부여 받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진정한 교회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으니 진정한 성도의 교제도 점점 교회 안에서 소멸되고 있는 안타까움들을 봅니다. 올바른 교제의 영적인 토대가 세워지지 않는 한 교회 안에서의 진실된 성도의 교제를 통한 참된 기쁨은 갈수록 요원한 일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진실로 시급한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교회가 진정으로 회복해야 할 가치가 무엇일지 너무 늦기 전에 깊이 숙고함이 우리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 할 것입니다.

이흥수 목사 / 서교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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