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여러 번 종교개혁자 존 칼빈의 개혁신학과 ‘회중교-청교도’의 신학의 방향이 처음부터 달랐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웨민고백서(WCF, 1646) 속에도 “이것이 과연 종교개혁자 칼빈의 신학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내용들이 자리하고 있다고 몇 번 말했다.

필자는 칼빈의 사상을 비교적 그대로 계승한 ‘장로교-청교도’의 개혁신학과는 상당히 다른 회중교-청교도의 괴이한 사상들이 개혁신학으로 포장되어 버렸다고 외치고 있다. 존 칼빈의 종교개혁 정통신학과 상당히 다른 회중교-청교도의 특이한 사상은 다음과 같다:

1)특이하고 위험스럽게 율법을 강조하는 율법주의

2)영혼이 깨어나서 스스로 구원의 길을 모색하게 만드는 회심준비주의

3)하나님을 직접 체험하는 묵상 신비주의

4)원죄를 반역으로 해석하지 않고 율법준수 실패로 해석

5)메시야가 율법준수하여 의를 획득하고 전가한다는 교리

6)오순절-신사도 유형의 성령체험

7)성령의 직접적 성화 신비주의

8)개혁신학의 법정적 칭의와 다른 체험적 칭의

이 중의 어떤 것은 장로교-청교도의 특성이기도 하나, 회중교-청교도에 이 모든 요소가 더 많다. 영국의 청교도들의 신앙의 뿌리는 칼빈이거나 그의 제자들이다. 안타깝게도 칼빈과 그의 제자들 사이에도 신학의 불일치가 있었다. 칼빈의 신학과 이후 그의 후학들이 발전시킨 ‘칼빈주의’ 신학이 같은 내용의 신학인가? 다른 내용의 신학인가? 하는 것에 대한 논쟁은 이미 뜨거워진 주제이다.

 

이상규 교수(고신대 역사신학)

 

이상규 교수

이상규 교수(고신대학교 역사신학)는 자신의 소논문 “칼빈은 칼빈주의자인가?”에서 이미 많은 학자들이 칼빈의 신학이 후대의 학자들에 의해 바르게 계승되지 않고, 단절되었음을 지적한다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들 대부분의 학자들은 17세기 돌트신경(1619)과 웨스트민스트신앙고백서(1647) 속에 요약된 후대의 개혁주의 신학은 칼빈 자신의 사상과는 다른 다양한 측면들이 있다고 주장해 왔는데, 그 변화는 이미 베자(Theodore Beza)의 사상 속에 뚜렷이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 (이상규, "칼빈은 칼빈주의자인가?"(교회와 신앙, 2003년 2월 12일)

이상규 교수는 같은 논문에서 칼빈의 신학과 이후 그의 후학들이 발전시킨 칼빈주의 신학 사이에 많은 불일치하는 점들이 있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 켄달의 박사학위 청구논문 “윌리엄 퍼킨스에서 웨스트민스터대회까지의 구원받는 믿음의 본질”(옥스퍼드 대학, 1976)에 대해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의 논문은 약간의 첨삭과 수정을 거쳐 1981년 옥스퍼드대학교 출판부에서 <칼빈과 1649년까지 영국의 칼빈주의>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그는 이 책에서 돌트신경과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서 표명된 관점들은 많은 점에서 칼빈의 사상과는 다른 다양성이 나타남으로 그것을 ‘칼빈적’(Calvinist)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 윌리엄 에임스(William Ames) 같은 청교도운동의 중심인물들이 그들의 신학을 칼빈이 아닌 베자에게서 전수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칼빈과 베자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의 동일한 주장이 그의 논문 ‘칼빈신학의 청교도적 변형’ 속에 표명되었다. 그는 결국 ‘청교도신학은 칼빈주의적이라고 부를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앞의 글)

이상규 교수의 이러한 내용은 필자에게 마치 가뭄의 단비와 같은 반가운 내용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윌리엄 퍼킨슨과 윌리엄 에임스는 초기 회중교-청교도 운동의 중요한 인물들이다. 칼빈의 제자였던 베자에게서 배운 이 두 사람에 의해 회중교-청교도의 대표적인 신학 ‘회심준비론’이 탄생되었다. 퍼킨슨이 가장 먼저 창안하였고, 에임스가 이어 받아 발전시켰다.

칼빈과 그의 제자 베자 사이에 어떤 신학적 불일치가 있었던 것일까? 칼빈과 베자 사이에 신학적 불일치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았다. 그러나 정확하게는 모른다. 적어도 회중교-청교도 신학의 기초를 닦은 그 두 사람이 칼빈에게서 배우지 않았다는 중요한 사실은 확인되었다.

지금까지 칼빈의 정통 개혁신학과는 상당히 다른 회중교-청교도의 신학의 발전 과정에 대해 의심을 품고 연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현재로서는 여기저기를 뒤지면서 나오는 정보들로 최대한 ‘감’을 잡고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된다.
 

서요한 교수

서요한 교수

웨민고백서(WCF, 1646)에 존 칼빈의 신학과 매우 다른 내용이 삽입되었고, 초기 회중교-청교도 지도자 퍼킨슨과 에임스가 여기에도 상관되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자료를 발견했다. 서요한 박사의 작품 『청교도 유산』(그리심, 2016)이다. 서요한 박사는 웨민고백서의 일부 내용이 칼빈의 신학 사상으로부터 매우 심각하게 벗어났다는 지적이 외국의 전문가들에 의해 제시되었다고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최근 몇몇 현대 신학자들은 이 고백서(WCF, 1646)가 칼빈의 신학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중 대표적인 사람은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채플의 당회장 목사인 R. T. Kendall과 미국의 Charles Bell 박사, 그리고 전 에버딘 대학교 조직신학 교수였던 J. B. Torrance 목사이다.

이들은 최근 발표한 그들의 논문에서 칼빈의 신학이 베자에 의해 잘못 가르쳐진바, 이를 영국의 청교도들, 특히 윌리엄 퍼킨슨와 윌리엄 에임스가 영향을 받아 작성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논쟁점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칼빈과의 상호연계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즉 칼빈과 베자, 영국의 청교도들의 신학 전통의 단절에 있다.” (서요한, <청교도유산>(그리심, 2006), 100)

위 내용에 대한 서요한 교수의 각주를 보니, 세 사람이 한 논문을 공동으로 저술했다는 것이 아니고, 세 사람이 각각 자신의 논문에서 동일한 사실을 주장했다고 한다. 한 사람도 아니고, 세 사람의 전문 연구자들이 칼빈의 신학이 베자에 의해 왜곡되어 회중교-청교도들에게 전달되었다고 진단하였다. 과연 웨민고백서의 어떤 내용이 칼빈의 사상과는 무관한 신학일까? 웨민고백서 7장에서 기술되어진 행위언약 사상이다. 서요한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의 특징은 ...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을 포함하며, 전자는 신이 인간의 대표 아담에게 약속을 하였는데 그의 범죄로 그와 후손이 약속하신 모든 축복을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후자는 실패한 행위언약 대신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언약을 하나님이 다시 맺으셨다는 것이다. 그 후 이 언약 신학은 개혁주의자들에 의하여 계속 보완되어 오늘 날 폭 넓게 사용되고 있다.” (앞의 글)

서요한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이미 영국의 청교도 전문 연구자 세 사람이 칼빈의 신학이 그의 제자 베자에 의해 왜곡되었고, 웨민고백서까지 칼빈의 신학과는 무관한 그릇된 행위언약 사상이 도입되었다. 웨민고백서에 행위언약 개념이 진술되도록 앞장선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웨민고백서는 행위언약 사상(7장)을 명확하게 진술한다. 그러나 행위언약 사상에 반드시 수반되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의의 전가’ 사상은 명확하게 진술되지 않았다. 단지 “그리스도의 순종과 속량을 그들에게 돌림으로써”(11장 1항)라고 하였다.4)

회중교-청교도들은 자신들이 1646년에 공동으로 작성하여 서명한 웨민고백서를 버리고 자신들만의 신앙고백서 ‘사보이 선언’(Savoy Declaration, 1658)을 별도로 채택하였다. 그것은 장로교-청교도와는 신앙의 길을 함께 갈 수 없다는 결단이었다. 사보이 선언에는 “율법 전체를 향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그의 죽음을 통한 수동적 순종을 그들의 모든 행위와 유일한 의로서 그들에게 전가하심으로써 그렇게 하신다”라고 정확하게 능동적 순종의 의의 전가 교리를 표현하되었다 (사보이선언 11장).5)

칼빈의 제자 베자의 영향을 받아 웨민고백서에 행위언약 개념을 주입한 사람들이 회중교-청교도 인물들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초기 회중교-청교도 운동 핵심적 지도자 윌리엄 퍼킨슨과 윌리엄 에임스가 칼빈의 제자였던 베자에게 배웠다는 사실은 이 점을 더욱 확신하게 한다.

서요한 교수는 청교도 운동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 대해 매우 깊이 연구하신 분이다. 필자는 서 교수의 책을 통해 청교도 운동의 발전 과정에 대해 많은 정보들을 얻었다. 서 교수도 칼빈의 신학이 그의 제자 베자에게 바르게 계승되지 않았고, 베자의 신학이 초기 회중교-청교도 운동의 핵심적인 인물들이고, 특별히 청교도의 ‘회심준비론’을 발전시킨 퍼킨슨과 에임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하였다.

스코틀랜드의 초기 장로교-청교도 운동의 지도자 존 낙스는 제네바에서 칼빈에게 배웠다. 잉글랜드의 초기 장로교-청교도 운동의 지도자 토마스 카트라이트도 칼빈에게서 배웠고, 칼빈과 깊은 교제를 나누었다. (카트라이트가 베자에게서 영향 받았다는 자료도 있다). 현재까지 파악된 것이 전부는 아니겠으나, 장로교-청교도의 직접적인 뿌리는 칼빈이고, 회중교-청교도의 뿌리는 칼빈의 제자였던 베자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장로교-청교도는 칼빈에게서, 회중교-청교도는 칼빈의 제자 베자에게서 영향 받았으니, 표면적으로 둘 다 종교개혁 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고, 또한 칼빈주의 신학을 계승하여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칼빈과 그의 제자 베자 사이에 신학의 불일치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 지금부터 자세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 외에도 또 다른 어떤 요소들이 장로교-청교도와 회중교-청교도 사이의 신학 DNA가 달라지게 만들었는지 더 찾아야 한다.
 

배현주 목사

회중교-청교도가 처음부터 종교개혁 정통교리에서 벗어났다고 지적하는 또 한 사람을 보았다. 배현주 목사이다. 배현주 목사의 글 “사보이 선언과 회중교회주의자”에서 다소 충격적인 내용을 발견했다.

“이 회중교회주의자들은 교회 제도에 대한 분리주의적 입장으로 인하여서 17세기에 이미 신대륙에 정착해서 퓨리턴 정신을 심었지만 18세기 초에 신대륙에 세워진 장로교회보다 더욱 빨리 급속도로 정통 교리로부터 이탈하였다.

무엇보다 회중교회가 신대륙에 자유주의 신학의 첫 유입지가 되었다. 왜냐하면 자유주의 신학이 19세기에 회중교회 구빛파(Old Light)를 통하여서 신대륙에 수입되었기 때문이다. 회중교회 구빛파는 신대륙에 자유주의 신학의 교두보였다. 이렇게 회중교회가 정통신학으로부터 이탈이 빠른 것은 회중교회 교리가 처음부터 정통 교리로부터 이탈하였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1967년 미합중국 주류 장로교회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폐기시켰을 때에 미합중국 안에 정통 신학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훨씬 이전에 회중교회주의자들은 정통 개혁 교리로부터 아주 쉽게 이탈하였다. ("사보이선언과 회중주의자", 배현주 목사, 예장 합신, 고양시 주개혁 장로교회 담임)

배현주 목사는 신대륙으로 이주하여 자리 잡은 회중교-청교도 교회들이 훗날 미국에 자유주의 신학을 유입시키는 통로가 되었는데, 그 원인이 처음부터 회중교-청교도의 신학이 종교개혁 정통교리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평가하였다. 처음부터 칼빈의 정통신학과 다른 내용의 신학을 품었으므로 훗날 미국 교회에 자유주의를 도입시키는 통로가 되었다고 하였다. 배현주 목사는 더 자세한 말을 하지 않았다.
 

▲ 12

이승구 교수

이승구 교수도 자신의 소논문 “조직신학에서 본 청교도 사상”에서 청교도 내부에는 다양한 분파가 존재하였고, 모든 청교도들이 칼빈주의 신학을 발전시겼던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결국 ‘비록 청교도주의와 칼빈주의가 일치하지는 않지만, 청교도적인 이상은 칼빈주의자들 내에서 볼 때 가장 잘 이해되었다’는 오웬 채드윅의 표현에 동의하면서, 청교도 사상 가운데서 가장 칼빈주의적인 사상과 실천을 이끌어 내어 그 함의를 찾아보고자 한다. 다시 말자면, 이 논문의 일차적인 목적은 청교도 사상 가운데서 가장 칼빈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측면을 잘 드러내어 그것의 의미를 밝히는 일을 하려는 것이다. 청교도가 모두 칼빈주의적이 아니었음을 다시 말한다. (이승구 교수, 조직신학에서 본 청교도 사상, 논문)
 

이상의 간략한 연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청교도 사상이라고 무조건 칭송하고 높이는 우리 나라의 분위기에 더 이상 속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회중교-청교도 사상은 이단적인 요소를 많이 내포하고 있다. 과연 한국에 들어와서 히트치고 있는 청교도 신학은 어느 계보에 속하는가? 불행하게도 회중교-청교도 사상이 지금 한국에서는 가장 탁월한 개혁신학으로 칭송받고 있다.   

 

--- 참고자료 ---

1)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okki77&logNo=220581036622&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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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