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긴데 다 읽을 수 있을까요? 저는 오늘도 맥돌이, 맥도날드에서 죽치고 책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즘 하나님께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을 시키지 않으십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 교회들에게 해를 미치는, 그래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어떤 이단 문제를 다루게 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이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일을 맡기시고 계십니다. 

초기에는 누구나 공감하는 일을 많이 하였으므로 칭찬도 많았고 박수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서서히 방향을 바꾸시게 하시더니 이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칭찬 듣고 박수 받게 하는 일을 시키시지 않습니다. 일마다 이 시대의 정통이고 주류이신 유명한 분들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연구하도록 매일 맥돌이가 되게 하십니다. 

제가 하나님으로부터 직통의 영감을 받는다고 오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한 번도 저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가 기도를 특별히 많이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늘 제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해야 한다고 느껴지는 대로, 그리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상하게 관심가는 일, 예기치 않게 알게 되는 일을 가벼이 다루었는데, 나중에 그것이 하나님의 큰 역사하심으로 이어지는 것을 지난 10여 년 동안 많이 보았습니다. 

아주 오래전의 일입니다. 우리 동네, 미국 미시간 주의 Ann Arbor의 다른 교회의 교인들이 좀 떨어진 미시간의 또 다른 동네의 한인 교회 교인들과 함께 소형 버스를 대절해서 먼 곳의 어떤 미국 기도원에 다녀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미조리 주의 아이합(IHOP)이라는 곳이었습니다. 대체 그곳에서 뭘 하고 오는 지 궁금했습니다. 단지 기도하기 위해 그 먼 곳까지 버스를 대절해서 다녀오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알아보니 그곳에는 선지자들이 많고, 그들이 원하는 사람들에게 즉석 예언을 전해 준다고 했습니다. 세계 정상급의 탁월한 예언자들이 늘 상주하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요청하면 즉각 예언을 준다고 했습니다. 

지금처럼 그런 일들에 대한 저의 신학이 정밀하게 세워지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러나 찾아오는 사람이 원한다고 즉각적으로 예언을 주는 선지자가 있다는 것이 비정상임을 모른다면 정상적인 목사가 아닐 것입니다. 그 정도는 목사들에게 기본적인 상식이어야 합니다. 그런 일은 예수를 빙자하여 벌이는 현대판 '교회 굿' 입니다. 문제는 우리 동네의 그 교인들이 다니는 교회 지도자들, 그리고 함께 소형 버스를 대절해서 갔다오는 좀 떨어진 다른 동네의 한인 교회의 지도자들이 그것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교인들의 행태를 알면서도 바르게 가르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조리 주에 있다는 아이합(IHOP)이라는 기도원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방법은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자료들을 구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의외로 많은 자료들이 있었습니다. 루터란 은사주의 교회에서 신앙이 성장한 마이클 비클(Mike Vickle)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기도원이었습니다. 그는 전혀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었고, 일반 대학도 불과 1년인가 다니다 그만 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목사 안수를 받았는지 이해되지 않았으나, 버젓하게 목사 안수를 받고 목회(?)를 잘하고 있었습니다. 

마이크 비클은 기존 교회에서 꽤나 성공을 거두었는데, 80년대 초부터 그의 하나님(?)이 다른 방향으로 사역을 인도하였습니다. 이집트에 여행가서 묵었던 호텔에서 그의 하나님으로부터 “다윗의 장막의 영으로 기도하라”라는 직통의 음성 계시를 받았습니다. '전설의 예언자' 밥 존스(Bob Johns)가 그를 찾아와서 함께 하였고, '예언자들의 아버지'로 불리웠던 폴 케인(Paul Cane)도 그에게 합류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크고 작은 잔챙이 예언자들이 그를 중심으로 모여들었습니다.

피터 와그너에 의해 신사도 운동 신학이 완성되어 출범하기 전, 80년대 초부터 미국의 두 곳에서 신사도 운동의 큰 줄기가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는 켈리포니아에서 존 윔버(John Wimber)가 일으킨 빈야드 운동(Vineyard Movement)이었고, 또 하는 미조리 주 캔자스(Kansas)에서 일어난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운동이었습니다. 마이크 비클은 바로 캔자스시티에서 일어난 예언운동의 중심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일찍 건강이 상하여 많은 병원들을 다녔으나 고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는 하나님의 신비적인 도움을 받기 위해 전국의 유명한 기도원을 1년 이상 찾아다녔습니다. 예언, 예언기도, 방언, 방언 통변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고 경험하였으므로 저에게 예언이라는 것은 하나도 신기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돌아보면 그런 일들이 눈에 선합니다. 그 사람들의 영적인 세계가 얼마나 그럴싸한지, 그러나 결국에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허무함을 일찍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무속신앙이 편만했던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무당에게 신이 올라 대나무가 흔들리고, 저 세상의 죽은 조상(?)이 이 세상의 가족에게 찾아와 불만을 쏟아내고, 요구하고, 꾸중하고, 성질내고 ... 그런 일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한번은 초신자 시절에 당골래를 불러 굿하는 집에 갔습니다. 굿하는 집에 쌀이나 소주 등을 가지고 찾아가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당시 시골 사람들의 관례였습니다. 남들처럼 뭔가(식혜?)를 들고 가신 어머니를 따라 저도 함께 갔습니다. 제 또래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모두 나이가 지긋한 시골의 아주머니들과 할머니들만 있었습니다. 

무당을 불러 굿하였던 그 집은 괴로운 사연이 많고 불행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집의 할아버지는 술꾼이었는데, 가장인 아들을 매일 미워하고 저주하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이 놈아! 내가 죽어도 너 편하라고 그냥 곱게 죽을 것 같으냐? 꼬박 3일장을 다 치르도록 때를 잘 골라서 죽을 것이다!”

치매에 걸리지도 않았던 그 할아버지는 가장인 아들을 미워하면서 이런 말을 자주 했습니다. 임종하는 시간에 따라 실질적으로 장례 기간이 이틀이 될 수도 있는데, 반드시 고생하면서 3일을 다 채우는 온전한 3일 초상 치르게 만들겠다는 악담이었습니다. 자식을 왜 그리 미워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말년을 그렇게 살면서 집안을 망치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수년 후에는 그 아들, 그 집의 가장에게 불치의 병이 생겼습니다. 낚시를 좋아하여 자주 큰 대나무 낚시대를 어깨에 메고 바다를 향해 너머가는 고갯 길로 향하던 그 분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 분은 불치의 병으로 몇 년 고생하시다가 떠났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는 그 분의 아내도 불행하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시골에서 가족을 부양할 수입을 얻지 못하여 도시의 식당에서 일하였는데, 그만 가스가 폭팔하였다고 전해들었습니다. 순식간에 허리가 구부러진 불쌍한 할머니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손주 3명만 남았습니다. 집안이 기울어지고 망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제가 똑똑히 본 것입니다. 그런데 건너 마을에 사는 그 가정의 친척 집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집에서 저의 초딩 친구가 있었는데, 그가 어이없이 객사하는 등의 불행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마을의 그 가정의 가장은 외지의 어떤 가문의 선산을 관리해주는 묘기지 일을 해주고 약간의 사례를 받았습니다. 묘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 적당히 비탈진 잔디밭이어서 제가 친구들과 잔디 썰매를 타고 놀았던 곳입니다. 잔디 썰매를 타고 놀기 시작하면, 그 분이 멀리서 보고 묘지에서 나가라고 고함치던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 그 가정이 그렇게 된 것은 남의 집 조상 신들이 거하는 선산을 돌보는 묘지기를 하였으므로 그리되었다고 교회 다니는 분들이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괴로운 사연이 많은 그 집의 할머니가 어린 손주들 3명이라도 잘 살게 하려는 소원을 가지고 큰 무당을 불러서 굿을 하였습니다. 그날 저는 그 집의 마루 가장 자리에 말없이 앉아서 무당을 쏘아보았습니다. 

“그래도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고, 내 안에 성령이 거하시는데, 귀신 따위가 죽은 조상을 흉내 내면서 장난(미혹)하는 것을 용납할 수는 없다! 내가 여기에 있는데도 귀신이 설친다는 것은 나의 신앙의 수치이다!”

이와 같은 마음으로 작심하고 준비했습니다. 무당이 대나무를 치겨들면서 신을 부르면 나는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귀신은 물러가라!”라고 마음으로 더 강하게 명령하면서 무당을 쏘아보았습니다. 한 시간 이상 무당에게 죽은 조상 귀신들이 임하지 못했습니다. 대나무가 흔들리려고 하면 나는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귀신은 물러가라!”라며 마음 속으로 더 강하게 명령했습니다. 무당의 손에 들린 대나무가 흔들리기 시작하려다가 멈추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대로 시간이 가고 새벽이 오면 무당에게도, 그 할머니에게도 낭패였습니다. 조상 신들을 무당의 몸 속으로 불러 손을 비비며 달래주려고 굿을 벌였는데, 조상 신들이 찾아오지 못하고 있으니 낭패였던 것입니다. 

“예수 믿는 이철이와 이철이네가 가면 좋겠다!”

그 할머니가 아는 사람을 통해 이렇게 말하므로 조용히 그 집은 떠났습니다. 불과 20분도 지나지 않아 무당에게 신이 올라 굿판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습니다. 

태평양을 건너 미국이라도 오늘 날 예언을 하고, 방언하고, 스스로 방언을 통변하여 개인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을 전하고 ... 모두가 다 귀신의 장난입니다. 저는 이미 한국의 영발있는 기도원 원장들을 많이 보았고, 귀신의 부림을 받는 무당들의 모습도 많이 보았고, 그리고 이미 땅과 하늘의 절대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신앙을 가졌으므로, 아이합과 마이크 비클의 거짓됨을 설명하고 드러내는 것은 저에게 신기한 것도 아니고 두려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영어 쓰는 사람들의 거짓된 영적인 세계를 탐구하는 좀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아이합에 대해 그때 제가 알게 된 것들, 사람들이 신기하게 생각하여 속기 쉬운 것들을 정리하여 교회의 홈페이지에 올려두었습니다. 누가 하라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어서 그리했습니다. 그런데 약 1년 후에 뉴욕의 한 신문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뉴욕의 뉴욕장로교회라는 곳의 담임 목사가 오래 전부터 아이합을 출입했고, 뉴욕의 그 교회에 부임하기 전에도 그곳에 가서 예언자들을 만났고, 그 예언자들이 고층 빌딩이 가장 많은 도시로 하나님이 그 목사를 보낼 것이고, 그를 보통의 목회자가 아니라 도시를 변화시키는 사도적인 사역으로 인도하실 것이고, 예언을 받은 후 실제로 세계에서 고층 빌딩이 가장 많은 뉴욕에 있는 뉴욕장로교회에 부임하게 되었고 ... 이런 내용을 수요 예배 설교 중에 말하여 온 교회가 발칵 뒤집혔다는 것입니다.

그 목회자는 부임 후에도 아이합의 예언자를 교회로 초대하여 당회원들을 상대로 예언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당회원 절반이 그 사상에 물들었고, 교인들의 다수가 그런 사상을 절대적으로 추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교회는 성인이 2,000명이 넘는 아주 견실한 교회이고, 미주의 한인 교회를 대표하는 교회인데, 그런 신학적 분규가 벌어졌으므로 그 파장은 심히 컸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도 아이합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교회의 신학 분규를 다루는 노회의 임원들도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의 뉴욕과 동부 지역의 한인 교회들에게 매우 유명한 인터넷 신문사 운영자가 저의 글을 발견하고서 연락한 것입니다. 아이합에 대한 저의 글을 연재하겠다고 했습니다.

"여러 명이 보라고 쓴 글이니 더 많은 사람이 보면 좋지요. 맘대로 하세요!"

이렇게 대답하고 잊었습니다. 그 글이 실제로 올라갔는지 안 올라갔는지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정도 지나서 멀리서 말이 들려왔습니다. 

"미시간의 정이철 목사 때문에 뉴욕에서 난리가 났다!"

그 신문사가 저의 아이합에 대한 글들을 연재하면서 뉴욕장로교회의 신학적 분규는 거대한 화산처럼 더 크게 폭팔하였습니다. 그 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저의 글을 읽고 아이합이 심각한 이단운동하는 곳임을 알고 그 목회자가 교회를 떠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대로 그 목사의 추종자들은 "정.이.철" 석자로 저를 욕하고 저주하는 삼행시를 짖는 등의 패악을 일삼았습니다. 정이철이라는 이름 석자가 뉴욕 일대에서 갑자기 유명해졌습니다. 결국 그 일이 도화선이 되어 신사도 운동에 대한 관심이 한인 교회들에게서 일어났고, 많은 혼란과 진통 끝에 아이합과 신사도 운동이 비성경적이라는 결론을 내어 공표하게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서 저에게는 전혀 기대하지도 계획하지도 꿈꾸지도 않았던 새로운 사역의 길이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저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이단연구가’입니다. 저를 이단연구가로 부르는 사람들은 저는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절대로 이단연구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경의 진리를 추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래서 제가 추구하는 방향은 사람들이 이단이라고 말하는 부류에게 국한되지 않고, 유명하고 존경받으면서 성경과 기독교를 파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여기부터는 다들 알고 계시는 내용이므로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받은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서 하나님께 충성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저는 이전에는 전혀 몰랐습니다. 제가 받은 부르심 안에서 변절하지 않고 끝까지 충성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현재까지 제가 경험한 것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1. 진리를 위한 영원한 사람 친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영원한 친구입니다.

모든 사람은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하였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입었어도 이미 몸과 영혼에 깊이 베인 타락과 부패의 흔적은 죽을 때까지 완전히 치유되지 않습니다. 단지 구원받는 신앙을 하나님께서 주심으로 구원을 받기는 했으나, 모두가 온전하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과 목회자들은 예수님을 위하지만, 자신의 이익 안에서만 예수님을 위합니다. 어제까지 저와 친구였을지라도, 제가 새로이 다루는 문제가 자신에게 곤란함을 주면 저와 거리를 둡니다. 제가 다루는 문제의 인물이 유명하고 존경받는 사람이면, 저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그 만큼 얇아집니다. 교인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저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면, 교인을 우상으로 섬기는 목회자는 저와 거리를 둡니다. 

2. 거짓 선생들에게 공격받고 역 이단시비를 당하면 마음 아프게 여기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세상에는 이단(거짓 선생)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옹호하고 돕는 전문가들도 항상 있습니다. 그들은 “온누리한인이단대책협회”, “목회와말씀수호 연구협회”, “무엇이거나 물어보십시오” 등의 이름으로 전문적 이단연구 기관을 만들고, 그런 이름으로 웹싸이트를 만들어서 운영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이전에 실제로 이단들과 대립하여 소기의 성과를 얻기도 하였고, 그래서 그 분야에서 관록과 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훼손하는 이단자들을 옹호하는 거짓 선생들은 반드시 그 사람들 중에서 나타납니다. 그들은 이단을 잡을 때 사용하는 신학적인 기술과 관련된 인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눈에 거슬리는 사람을 비슷한 방식으로 공격합니다. 

저에게는 그런 일이 김성로 씨의 "부활복음"의 정체를 드러낼 때 다가왔습니다. 이전에 다른 문제들을 위해 서로 협력하기도 했던 사람들인데, 춘천의 김성로의 부활복음 때문에 적이 되었습니다. 저를 비방하고 이단이라고 공격하는 싸이트들이 지금도 몇 개 있는데, 전부 김성로 부활복음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연관된 곳들입니다. 그들은 이단 논쟁에 관한 기술을 가지고 있고, 글 쓰는 일에도 익숙하므로 아주 그럴싸하게 일을 만듭니다. 

그런 글들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와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진실을 알려고 하고, 마음 아파하는 자세를 가진 사람은 적습니다. 특히 조금이라도 저를 고깝게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저를 멀리하게 만드는 좋은 핑계거리가 됩니다. 

3. 평신도이면서 신학과 신앙의 진리 문제에 특별한 열성을 보이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독불장군 괴물로 변합니다. 

신학교에 다닌 사람이라고 다 온전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신학교에 다녔고 목사 안수를 받으면, 이것저것 골고루 알게 되고, 하지 말아야 할 일들, 그리고 소위 '이 바닦의 규칙과 법'을 몸으로 체득합니다. 그러나 신학교에 가 보지도 않은 사람이 신학과 진리 문제에 열심을 내면, 그렇지 않습니다. 막무가네이고 독불장군이 됩니다. 반드시 목회자를 우습게 여기고, 머리 꼭대기에 올라타고서 막나가는 사람이 됩니다. 왜냐하면 이단 사상과 관련된 목회자 때문에 고민하다가 신학 이론으로 그를 압박하고 괴롭히는 입장에 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평신도들에게도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와 같은 사람에게 연락하여 교제하는 것도 순수하게 진리를 배우려는 목적이 아닙니다. 선생이 되어 있는 자신이 듣기 원하는 말이 저에게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저를 이용하여 자기 교회의 문제있는 목회자를 공격할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비판하고 싶은 어떤 대상이 있을 때, 스스로 힘으로는 못하나 저 같은 사람이 나서면 자기의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배우려는 자세나 참 성도로서의 예절은 없습니다. 때가 이르러 자신이 주장하는 것과 다른 주장이 저에게서 나오면 감추어 두었던 본성이 여지없이 나타납니다. 저는 지금까지 신학과 진리의 문제에 대해 유별나게 특별한 열성을 보였던 평신도들에게서 진실로 배우려는 자세와 수준 높은 예절은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모두 영적인 괴물들이었습니다. 한 명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평신도이면서 그렇게 높은 수준의 신학적 관심이 있는 분들은 전문적인 사역자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모두를 위해 좋습니다. 그것이 자신이 괴물로 변하지 않고, 교만해지지 않고,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좋은 길입니다.

4. 다른 영을 받은 사람은 상당히 함께 할지라도 결국에는 결별합니다. 그러나 같은 영을 받은 사람은 오래 함께 합니다. 

지금까지 꾸준하게 교제가 이루어지면서 협력하고 있는 귀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특징은 신학의 길이 같다는 것입니다. 성격도 다르고 관심도 다르지만, 이상하게 오래 협력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생각해 보니 그 이유는 같은 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거짓 복음이라고 열을 내다가, 다른 문제 앞에서는 전혀 엉뚱한 이야기를 합니다. 명백하게 이단사상인데, 이해할 수 있는 문제라고 하고, 두둔합니다. 

신학의 구도가 다르고, 신앙의 짜임새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같은 영을 받지 않았으므로 부분적으로는 같아서 협력했을지라도, 다른 중요한 문제를 앞에 두었을 때에는 힘이 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힘 빠지게 하는 내부의 적군으로 역할이 변해버립니다. 처음에는 가르치고 설명하는 시간이 잠시 지속되나, 반드시 한계에 이르게 되어 결별의 순간이 다가옵니다. 성격과 마음으로 넘어설 수 없는 영의 문제입니다. 


이런 저런 말들을 길게 하였습니다. 핵심은 부족하고 실수도 하지만, 참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연하게 보게 되는 책 한 권이 몇 개월 후의 중요한 문제의 단초가 되기도 하고, 누가 보내는 간단한 질문 하나가 나중의 한국 교회의 신학 이슈가 되기도 하고, 갑자기 떠오르는 어떤 사람의 글 하나를 보고 쓴 글이 상상하지 못한 신학 이슈가 되는 일들을 자주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실 자들을 미리 훈련시키시고 준비하게 하셨다가 때가 이르면 뜻하시는 일을 이루어 내시는 것을 저는 압니다. 지금 <바른믿음>에서 다루어지는 내용들 대부분이 그런 과정을 거쳐서 올라왔습니다. 그것들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낳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을 혼란스럽고 어려우나, 살아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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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