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선 교수의 개혁주의 전가교리 1

필자는 신호섭 교수(고려신학교)가 회중-청교도 신학 노선에 서 있는 국내의 대표적인 소장파 학자라고 여긴다. '능동적 순종의 의의 전가 교리'를 강력하게 전파하고, 코르넬리스 프롱크, 조엘 비키 등의 회중-청교도 노선의 학자들과 신학 코드가 맞다는 점에서 그렇게 생각한다.

필자는 회중-청교도의 신학이 칼빈에게 기초를 두어야 하는 정통 개혁신학에서 벗어나는 점들이 많다고 여기고 있다. 그러므로 신호섭 교수가 불편하게 여길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학문은 토론과 비판의 과정을 통해 더욱 정교하게 발전하는 법이고, 회중-청교도 노선의 신학자들이 장로교회에 안에 더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이렇게 말하는 필자에게 손해가 있을지라도 신 교수에게는 손해가 없을 것이다.

신호섭 교수의 작품「개혁주의 전가교리」가 도착하였다.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서 신 교수의 “능동적 순종의 의의 전가교리”에 관한 주요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신호섭 교수의 '능동적 순종의 의의전가’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자. 신 교수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란 그리스도께서 자기 삶을 통해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완전하게 지키고 준행하신 것을 말한다.” (p.38)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단지 수동적 순종, 즉 죄의 사면만이 아니라 능동적 순종으로 말미암는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은 그 분의 죽음 및 십자가와 관련된 순종인 한편,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은 삶과 행위의 규칙이 되는 율법에 대한 그 분의 완전한 순종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는 자원하여 율법 전체에 순종하셨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죄인을 위해 영원한 생명을 획득하는 율법의 성취자가 되신다.” (pp.40-41)

신 교수의 주장을 볼 때,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칭의를 얻는 과정은 다음과 같이 이분화되어 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이다.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우리는 죄 용서를 받고, 형벌로부터 면제받는다. 또 하나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율법준수이다. 그리스도의 율법준수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갈 권리(의)를 얻는다. 

그러나 이미 필자가 수 없이 지적한 것처럼, 성경에는 그리스도의 율법준수가 우리에게 하나님 백성되게 하는 의를 전가하여 준다는 내용이 단 한줄도 발견되지 않는다. 이 문제는 우리의 구원과 관련된 중요한 신앙 내용이므로 성경에 한 나오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신 교수가 말하는 칭의 이해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시기 원하시는 신앙의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된다.

더욱이 필자가 여러 번 제시한 것처럼, 개혁신학에서 최고의 권위자인 존 칼빈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 용서를 받고, 믿음으로 예수와 연합됨으로 말미암아 의의 전가를 받는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당면한 문제에 관련해서, 바울이 성경은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이방인들을 의롭다 하실 것을 미리 알았다고 말할 때에(갈 3:8), 이것은 하나님께서 믿음에 의해서 의를 전가하신다는 뜻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지 않은가?” (기독교강요, 3.11.3)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중재로 의롭다고 하시므로 하나님의 이 사면은 우리 자신의 무죄가 확증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셨기 때문이며, 그 결과로 우리 자신은 의로운 사람이 아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기독교강요, 3.11.3)

“사도행전 13장에 있는 바울의 설교에 이런 말이 있다.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 13:38-39). 여기에 보면 죄의 용서를 말한 후에, 그에 대한 해석으로 의롭다고 인정한다는 말을 한다.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을 분명히 죄의 사면으로 해석하며, 의롭다함을 율법의 행위에서 분리시키고 있다.” (기독교강요, 3.11.3)
 

한국의 대표적인 개혁신학자 서철원 박사도 칼빈과 동일한 관점에서 칭의를 가르친다. 결코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에서 우리의 의가 기원되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의를 백성에게 전가한다고 할 때 그것은 율법준수의 의를 말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피 흘리심으로 백성들의 죄를 속량하심의 의이다.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는 그가 피 흘려 이루신 죄 용서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의를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에게 전가하기로 하셨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의를 죄인에게 전가하심으로 죄인을 의롭다 하기로 하셨다. 하나님이 죄인을 의롭다고 하실 대는 그리스도의 의 곧 구속사역을 죄인에게 전가하셔서 의롭다고 선언하신다. 죄인에게는 아무런 의가 없다. 있는 것은 오직 죄뿐이어서 멸망과 저주밖에는 없다. 그런 죄인은 의롭다고 선언 받을 수가 없다 (롬 6:4-8).

그리스도의 의는 죽어 피 흘리심으로 죄를 용서하심이다. 이 피로 모든 죄인들의 죄를 다 용서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의 곧 구속사역을 죄인에게 적용하신다. 이로써 하나님은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신다. 죄인을 의롭다고 하심은 죄용서로 의인이 되었다는 선언이다.

죄인을 의롭다고 하는 선언은 법정적인 행동이며 본성적인 행동이 아니다. 칭의는 하나님의 의를 사람 안으로 주입해 넣는 것이 결코 아니다.” (서철원,「교의신학전집 5: 구원론」, 116-117)
 

신호섭 교수는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의 의를 강조했다.

“그리스도는 자원하여 율법 전체에 순종하셨다.” (p.41)

이렇게 말하려면 최소한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표하여 율법을 준수하여 의를 얻기 위해 지켜야 할 율법의 조항들이 몇 개나 되었는지를 먼저 말해야 하고,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언제, 어떻게 그 율법 조항들을 준수하셨는지 시기적으로 단계적으로 조사 통계를 내어 설명해야 한다고 본다. 이렇게 무작정 그리스도가 자원하여 율법을 모두 순종했다는 것은 타당성을 가지지 못한다.

또한 신호섭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리스도는 죄인을 위해 영원한 생명을 획득하는 율법의 성취자가 되신다.” (p.41)

성경은 그리스도와 율법의 관계를 ‘율법의 요구’(롬 8:4), ‘율법의 마침’(롬 10:4)라고 설명한다. 과연 그리스는 율법 조항들을 모두 준수함으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시고 율법의 마침이 되었을까? 칼빈과 서철원 박는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율법의 요구대로 그리스도께서 자기 목숨을 십자가에 내어 놓으신 것이 그리스도가 ‘율법의 요구’를 따르고 ‘율법의 마침’이 되신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죽음까지 순종하여 (빌 2:8) 속죄를 이루셨다. 하나님의 법이 정한대로 죗값을 갚기 위해 죽기까지 순종하셨다 (롬 6:23; 창 2:17). 그리스도가 그의 피로 죗갚을 다 지불하므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다. 주 예수는 율법성취의 요구를 이루시기 위하여 저주 아래 죽으셔서 (갈 3:13) 우리를 구원하셨다.” (서철원,「교의신학전집 4: 그리스도론」, 167)

칼빈도 「기독교강요」에서 율법의 목적은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화목을 이루기 위한 것이고, 그리스도가 그 일을 이루신 것이 율법의 마침이라고 가르쳤다.

“율법은 앞으로 이 주제에 대해 논하게 될 때 더 명백하게 볼 수 있겠지만 그 유용성이 다양할지라도 특별히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화목의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모세와 모든 선지자에게 맡겨진 것이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율법의 마침"(롬 10:4)이라고 부른 것은 여기서 기인된 것이다.” (기독교강요, 1.6.2)

사도 바울도 율법의 저주와 요구대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으로 그리스도가 율법을 성취하고 율법의 마침이 되신 것으로 설명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 3:13)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엡 2:14)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롬 3:25)
 

이상으로 살펴본 것처럼, 신호섭 교수가 주장하고 가르치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의의 전가 교리는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그리스도의 사건에 대한 해설자 바울의 설명과 맞지 않고, 칼빈이나 서철원 같은 정통 개혁신학자의 설명과도 맞지 않는다. 단지 과거의 사변적인 신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교리를 절대적 진리로 여기고, 그 틀 안에서 똑 같은 무익한 주장을 답습하고 반복하는 형태라고 진단하지 않을 수 없다.

신호섭 교수에게서 논지의 근거가 되는 성경 구절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다. 모든 신학과 교리가 반드시 성경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개혁신학의 절대원칙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단지 근거로 제시되는 것은 필자가 그 동안 몇 차례 말한 회중-청교도주의자들이 만든 <사보이 선언>(Savoy Declaration, 1658)과 <침례교 신앙고백서>가 근거로 제시되었고, 1646년에 작성된 웨민고백서의 ‘그리스도의 순종과 속량을 그들에게 돌림으로써’라는 표현이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추정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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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