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중파 청교도 > 능동적 순종의 의
서철원-존 칼빈, 의의 전가가 율법준수의 의를 뜻하지 않는다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04.06  05:03:38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그 동안 우리는 의로워지는 방식에 대해 사변적이고 이분화된 이해를 여러 모양으로 강요받았다.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마치 기독교의 정감록을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취급하며 잘난체하는 거짓 선생들이 많이 나타났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가 죄를 사하였고, 그리스도의 모범적인 행위, 즉 완전한 율법준수, 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완전한 마음으로 이루어진 낸 완전한 삶과 순종이 우리에게 의를 선물했다는 가르친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혹시라도 필자가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와 죄에 대한 형벌을 해결하지 못했다거나, 예수님이 율법을 못 지킬 정도로 부족하고 무능한 분이었다거나, 예수님의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함으로 가득차서 완전하게 실행하지 못하였다고 주장한다고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신학과 신앙과 교리의 근거는 오직 성경이어야만 한다. 모든 신학, 교리, 신앙의 내용은 오직 기록된 계시의 말씀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우리의 죄사함과 의로워짐에 대한 가르침은 반드시 성경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의 피 흘림이 우리의 죄를 사하고, 그리스도의 완전한 행위(율법준수 또는 완전한 삶의 순종)가 우리에게 하나님 백성으로 살 권리(의)를 선물했다는 말씀이 없다. 

다시 말하지만, 결코 예수님이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결코 예수님이 완전한 삶의 행위와 순종을 보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강조하는 것은 성경은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과 그리스도의 완전한 행위를 구별하면서 죄사함과 칭의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이분화된 신학 구도가 매우 위험하고, 언제든지 복음의 변질을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세 로마교회의 신학 방법 스콜라주의가 종교개혁 교회의 신학자들에게 영향 미쳐서 나타난 개신교 스콜라주의 신학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서철원 박사, 죄사함과 연합됨에서 의 발생

서철원 박사는 그런 방식의 그리스도의 복음 이해를 강력하게 거부하고 비판한다. 서철원 박사의 말을 들어보자.

그리스도의 의를 백성에게 전가한다고 할 때 그것은 율법준수의 의를 말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피 흘리심으로 백성들의 죄를 속량하심의 의이다.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는 그가 피 흘려 이루신 죄 용서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의를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에게 전가하기로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롬 6:4-8)

이렇게 그리스도의 의를 죄인에게 전가하심으로 죄인을 의롭다 하기로 하셨다. 하나님이 죄인을 의롭다고 하실 대는 그리스도의 의 곧 구속사역을 죄인에게 전가하셔서 의롭다고 선언하신다. 죄인에게는 아무런 의가 없다. 있는 것은 오직 죄뿐이어서 멸망과 저주밖에는 없다. 그런 죄인은 의롭다고 선언 받을 수가 없다.

그리스도의 의는 죽어 피 흘리심으로 죄를 용서하심이다. 이 피로 모든 죄인들의 죄를 다 용서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의 곧 구속사역을 죄인에게 적용하신다. 이로써 하나님은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신다. 죄인을 의롭다고 하심은 죄용서로 의인이 되었다는 선언이다.

죄인을 의롭다고 하는 선언은 법정적인 행동이며 본성적인 행동이 아니다. 칭의는 하나님의 의를 사람 안으로 주입해 넣는 것이 결코 아니다.” (서철원,「교의신학전집 5: 구원론」, 116-117.)
 

   

 

서철원 박사의 구원과 칭의에 대한 핵심은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로 말미암는 죄사함,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에게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의 효력을 적용하여 주심으로 죄 사함이 일어나고,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됨으로 의인으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내용도 이와 동일하다.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의 피가 죄를 사하고, 그리스도의 율법순종이나 지상에서의 행위에서 우리의 의가 기원되었다고 이분화하여 가르치는 내용이 없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우리의 의이고 구원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사상과 우리의 언어 그 어느 하나도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가 허락하는 한계를 넘어서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강요, 1.13.21)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 이외의 그 어떤 모호한 문제에 대하여는 말하지도 생각하지도, 심지어는 알려고도 하지 않도록 겸손과 진실에 관한 규범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다.” (기독교강요, 1.14.4)
 

   


칼빈도 죄사함과 믿음의 연합으로만 칭의를 설명했다. 특히 칼빈은 성경이 말하지 않는 내용을 신학자들이 말하고 사색하고 이론화하는 것을 매우 경계했다.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했던 다음의 말들을 보면, 칼빈도 당연히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됨을 가르쳤다. 그러나 결코 그리스도의 율법준수, 또는 완전한 삶의 순종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된다고 설명하지 않았다. 칼빈도 오직 그리스도의 피의 죄 사함,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전가되는 의를 말하였다.

“그러나 당면한 문제에 관련해서, 바울이 성경은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이방인들을 의롭다 하실 것을 미리 알았다고 말할 때에(갈 3:8), 이것은 하나님께서 믿음에 의해서 의를 전가하신다는 뜻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지 않은가?” (기독교강요, 3.11.3)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중재로 의롭다고 하시므로 하나님의 이 사면은 우리 자신의 무죄가 확증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셨기 때문이며, 그 결과로 우리 자신은 의로운 사람이 아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기독교강요, 3.11.3)

“사도행전 13장에 있는 바울의 설교에 이런 말이 있다.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 13:38-39). 여기에 보면 죄의 용서를 말한 후에, 그에 대한 해석으로 의롭다고 인정한다는 말을 한다.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을 분명히 죄의 사면으로 해석하며, 의롭다함을 율법의 행위에서 분리시키고 있다.” (기독교강요, 3.11.3)

믿음의 의는 하나님과의 화해이며, 이 화해는 곧 죄의 용서라고 정의한 말이 얼마나 옳은가를 이제 검토해야 하겠다 ... 그래서 주께서 받아들여 자신과 하나가 되게 하신 사람은 주께서 의롭다 하신다고 한다. 왜냐하면 주께서는 죄인을 의인으로 만드시지 않고는 자신의 은혜 가운데 받아들이거나 자신과 결합시키실 수 없기 때문이다 ... 따라서 의는 한 마디로 "죄의 용서"라고 부를 수 있다.” (기독교강요, 3.11.19)

정이철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기사 댓글 3
전체보기
  • 정이철 2019-04-10 03:27:27

    그리스도의 피 제사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일거에 사하시는 영원한 제사입니다. 그리스도의 피의 효력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과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적용되었으므로, 처음 믿음을 때 얻은 의로움을 영원히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이후에 죄를 범한다고 하여, 우리의 의가 사라지지 않스닙니다. 그러나 회개를 해야 합니다. 성도의 자범죄에 대한 회개를 칭의를 잃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고, 그리스도가 피 흘려서 주신 거룩과 성결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마땅한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역사하시를 기뻐하시지 않으므로, 성령의 감화와 인도하심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은 더욱 더 핍절해지고 강팍하여 집니다. 그러므로 자범죄에 대한 회개를 꼭 필요합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Minn 2019-04-08 06:26:17

      독자의 한 명으로써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능동/수동적 순종 이론을 반대하면 의의 전가 교리를 부정하는 줄 다들 생각하시는데 이 논쟁의 쟁점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하나님의 경륜 그리고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왜곡입니다.

      칭의는 (또 구원은) 하나님의 창세 전 선택한 자들에게 성령을 주심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양자가 되게하시는 것입니다 (엡 1:4-5). 이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문구는 신약에서만 수없이 나옵니다.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해 연합하여 양자가 되는 것입니다 (롬 8:15).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인한 칭의는 한번에 이루어지고 잃을 수 없습니다. (요즘 유보적 칭의론이 유행인 듯 한데 그것은 잘못된 이론입니다).

      우리는 칼케돈 회의와 개혁교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본성은 그 분의 신성에 인성이 더해진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께서는 율법 아래 인간으로 오셨으나 신성을 하나도 잃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는 모세 율법을 완벽히 지켜서 의로워야 하셨을까요 아니면 처음부터 율법 앞에 완벽하셨을까요? 만일 그리스도께서 이미 완벽하셨다면 왜 굳이 모세율법을 지키셔야 했을까요? 이 이론은 논리가 맞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분 만이)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롬 13:8-10). 율법의 완성이란 모세율법을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마 5:17-19는 마 22:37-40을 보고 이해해야 합니다. 결국 율법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시기에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셨고 (그러나 그 분은 아버지와 동질이십니다), 인간으로 낮아지셨고, 고통을 당하셨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기에 십자가는 율법과 순종의 완성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만이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 십자가 사역이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율법 아래서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사시지 않았고, 오히려 율법과 선지자의 글들이 현실화 되도록 그것들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율법 아래서 태어나셨으나, 율법과 예언을 이루시는 역할을 하셨기에, 율법에 종속되어 그것을 문자적으로 지킴으로 그 의를 전가했다는 말은 그리스도를 이해하지 못한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오신 이유는 인간을 대표해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또한 천국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죄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자신이 반드시 인간이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아주 갓난아이로부터 인생을 시작하셨고, 인간이 겪는 배고픔, 피곤함, 배설, 고통 등을 다른 인간들과 똑같이 겪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율법 앞에 처음부터 완벽하셨고, 안식일 주인이라고 하니까 신성만 강조한다며 그리스도의 인성을 무시했던 오시안더의 주장이라고 몰아부치는 무식한 인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본성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완벽한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입니다. 마 5:48에 아버지께서 완벽하시다는 것은 동질이신 그리스도께서 완벽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전제 (법을 죽을 때까지 완벽히 지켜야 함)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실 때부터 말을 하시거나, 천재였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 분께서 육체가 자라듯 지혜도 자랐습니다 (눅 2:52). 그리고 인간으로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고 고난을 겪으시며, 육체가 자라듯 순종함을 배워 죄사함을 이루셨습니다 (히 5:7-10). 그러나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죄의 정의 (상상만 해도 죄)를 볼 때 그리스도께서 원죄없이 태어나시고 단 한번도 마음 속으로 죄를 짓지 않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우연히 죄를 범한 것이 아니고, 이미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같이 되고 싶다는 불순종 할 마음이 있었습니다. 어거스틴도 칼빈도 같은 해석입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오직 믿음으로 2019-04-07 11:31:23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과거와 현재 미래의 죄까지 모두 사하셨다고 하는 말과 예수님께서 율법을 모두 준수하셨기 때문에 자범죄를 지어도 전가된 의로 의인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은 다른가요?

        바른믿음 독자들은 구원 받은 후 지은 자범죄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자범죄를 지은 후에도 로마서 8장 10절 말씀대로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있는 상태인가요?

        가장 기초적이고 단순한 질문이지만 능동적 순종에 의한 해석이 아닌 성경말씀에 근거한 해석은 자범죄을 지은 성도가 어떻게 의인됨을 잃지 않게 되나요.

        성경말씀에 근거한 해석은 어떻게 되나요?신고 | 수정 | 삭제

        바른믿음
        최근 3개월 동안의 중요 기사 10
        후원방법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118 Ann Arbor-Saline rd, Ann Arbor, MI 48108(USA)
        대표(발행,편집):정이철(734 678 7133, cantoncrc@gmail.com)  |  편집자문: 정태윤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이철
        Copyright © 2019 바른믿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