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프레임의 개혁신앙이란 무엇인가?(3)


어떤 까닭인지 “개혁”라는 용어는 초창기에 종교개혁(츠빙글리, 부처, 불링거, 칼빈)의 스위스 개혁자들과 연계성을 가졌고, 마침내 “칼빈주의”와 동의어가 되었다. 이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예정교리였는데, 이 교리는 종종 다른 복음주의 운동 형태들을 거슬러 가장 뚜렷이 구분되는 개혁신앙의 가르침으로 비추어진다.

1618-1619년, 네덜란드 도르트에서 모인 국제개혁주의대회는 제이콥 아르미니우스(Arminianism)의 가르침을 요약한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대회는 이 다섯 가지에 반대하여 예정교리를 요약하여 “칼빈주의 5대 교리”를 채택했다. 이 칼빈주의 5대 교리는 각 교리의 첫 글자를 따서 네덜란드 꽃 튤립(TULIP)으로 요약된다. TULIP: 전적부패(Total Depravity),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제한속죄(Limited Atonement),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이다.

칼빈주의 5대 교리는 개혁신학 교리체계의 요약이 아니다. 도르트에서 5대 논제들은 사실상 칼빈주의자들이 아니라 알미니안주의자들 때문에 채택되었다. 5대 교리는 칼빈주의 자체의 요약이기보다는 사실상 “아르미니언주의자들이 칼빈주의에 대해 좋아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요약한 것이다. 그것들은 칼빈주의를 있는 그대로 요약하지 않고, 칼빈주의에서 논란이 되는 면들을 요약하고 있다. 그 대회가 만일 개혁주의 신앙의 실질적인 요약을 요구받았다면, 벨직 신앙고백이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처럼 전혀 다른 체계를 세웠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논란이 되는 논점들이라고 하여 반드시 한 교리 체계의 가장 근본적인 관심사는 아니다. 개혁주의 신앙의 교리 체계는 5대 교리를 훨씬 넘어선다. 더 그 이상이다. 즉, 개혁주의 신앙은 성경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이며, 따라서 포괄적인 세계관이자 인생관이다. 나는 다음 단원에서 그것을 요약하려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나는 “칼빈주의 5대 교리”를 간단히 살펴보려고 한다. 비록 칼빈주의 5대 교리의 중심점이 과장될 수는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리들은 확실히 중요하다. 그리고 종종 오해되기도 한다. 내가 여기에서 5대 교리를 다루는 것이 여러분이 훗날 배우게 될 조직신학 과정을 구체적으로 예견할 수 있게 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논의가 적어도 여러분이 올바른 방향으로 시작할 수 있게 인도해 주리라고 믿는다. 5대 교리를 차례로 살펴보자.


1) 전적부패

비록 타락한 사람들이 외형적으로 선한 행위(사회를 위해 유용한 행위)를 할 수 있을 지라도, 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롬 8:8) 하는 것과 같은 정말로 선한 것을 행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그리고 타락한 사람은, 그의 궁극적인 상태에서 볼 때, 생각, 말, 그리고 행동에 있어서 선함(goodness)이 없다. 그러므로 타락한 사람은 자기의 구원에 아무 것도 기여할 수 없다.


2) 무조건적 선택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선택하실 때, 그들 속에 있는 어떤 것 때문에 선택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들 자신의 선함 때문에 혹은 심지어 그들이 장차 믿을 것을 예견하시기 때문에 그들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단지 아무 공로 없는 전적인 호의로, 즉 은혜로 선택하신다(엡 2:8, 9).


3) 제한속죄

이것은 5대 교리 가운데 가장 논쟁적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모든 개인들을 위해 죽으셨다고 명백하게 가르치는 성경 본문들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후 5장 15절, 딤전 4장 10절, 요일 2장 2절을 보라. 다음과 같이 속죄의 “보편적” 차원이 있다: (a) 속죄는 모든 민족을 위한 것이다. (b) 속죄는 전 인류의 새창조(recreation)다. (c) 속죄는 보편적으로 주어진다. (d) 속죄는 누구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므로 모든 사람을 위한 유일한 구원이다. (e) 속죄의 가치는 모두 사람을 위해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신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속죄는 능력 있고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속죄는 단순히 구원을 가능하게 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속죄가 실제로 사람을 구원한다. 그리스도가 누군가를 “위해 죽으실” 때, 그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 명백한 “보편적 속죄 본문” 중 하나인 고후 5:15이 그 점을 아주 분명히 밝힌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실제로 구원을 받는 사람들만을 위해 죽으셨다.

여기에서 성경의 관심은 속죄의 “제한”보다는 오히려 속죄의 유효성에 있다. 그러므로 아마도 우리는 그것을 “제한속죄”라고 부르기보다 “유효한 속죄”라고 불러야 할 것이며, 또한 만일 TULIP이라는 용어를 잃게 된다면, 유전공학을 통해 TULIP 꽃을 발전시켜 TUEIP이라 부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물론 유효성은 제한을 함축하며, 따라서 제한은 이 교리의 중요한 측면이다.


4) 불가항력적 은혜

은혜는, 원치 않을 때 언제든지 돌려보낼 수 있는 캔디 상자 같은 것이 아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호의로서, 하나님의 마음의 태도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로 선택하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멈출 수 없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중생, 칭의, 양자, 성화, 영화 등 구원의 축복을 베푸시는 것을 멈출 수 없다. 빌립보서 1장 6절, 에베소서 1장 11절의 약속대로 우리 안에 두신 하나님의 목적이 분명히 성취될 것이다.
 

5) 성도의 견인

만약 여러분이 성령에 의해 거듭나서 의롭다 함을 받고 하나님의 권속으로 양자가 되었다면, 결코 여러분의 구원을 상실할 수 없다. 요한복음 10장 27-30절과 로마서 8장 28-29절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키실 것이다. 견인은, 여러분이 한번 그리스도를 고백하기만 하면 자기가 즐기는 모든 죄를 범하고도 여전히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위선적으로 고백하고는 나중에 그리스도인의 삶을 부인하고 말았다. 배도하는 자들, 그리고 진심으로 돌이켜 그리스도를 받지 않는 자들은 그들이 범한 죄 가운데서 죽는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고백한다면 여러분은 확실히 견인할 것이다. 왜냐하면, 로마서 6장 14절의 말씀대로 여러분이 죄의 지배를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덕성 교수의 리포르만다에서(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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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성 교수는 고신대학교, 리폼드신학교(M.Div, M.C.ED), 예일대학교(STM), 에모리대학교(Ph.D)에서 연구하였고, 고려신학대학원의 교수였고 하버드대학교의 객원교수였으며, 현재는 브니엘신학교의 총장이다. ‘신학자대상작’으로 선정된「한국교회 친일파 전통」과 「개혁주의 신학의 활력」,「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을 비롯한 약 20여권의 귀중한 신학 작품들을 저술하였다. 신학-복음전문방송 <빵티비>(BREADTV)의 대표이며, 온라인 신학저널 <리포르만다>(REFORMANDA)를 운영하며 한국 교회에 개혁신학을 공급하기 위해 정열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학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