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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철원 박사의 「교의신학전집」에 대한 정이철 목사의 소감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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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29  01:3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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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철원 박사님의 「교의신학전집」 전체 7권 가운데 4권(인간론, 그리스도론, 구원론, 교회론)을 정밀하게 독서했다. 필자는 좋은 책을 만나면, 저자의 지식과 사상을 완전히 소화하려고 노력한다. 저자의 특별한 주장과 사상을 짧은 '키워드'로 만들어 그 페이지 넘버와 함께 메모한다. 그러면 이후 다른 연구에서 그 저자의 지식과 사상이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어 진다. 서 박사님의 신학 지식과 사상이 앞으로 필자의 연구를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지금은 책을 읽지 않는 시대이다. 이승구 교수님이 오래전에 번역하여 보급한 책을 지난 한 해 동안 132명이 구입했다는 내용을 자신의 페북에 올리신 것을 보았다. 그 책은 필자도 즐겁게 읽었던 책이다. 그런 책을 지난 한 해 동안 불과 132명이 구입했다는 것은 한국의 목회자들이 그 정도로 책을 등한시한다는 증거이다. 한국 교회가 복음을 잃어 가고, 각종의 이단들의 밭으로 전락하고 있는 상황은 목회자들이 책을 읽지 않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한편으로 좋은 책을 읽지 못하는 대다수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에게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책을 마음대로 구입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한다. 서철원 박사님의 「교의신학전집」 같은 경우는 더욱 그렇다. 최근 미국에서 구입한 분의 말을 들으니 7권을 모두 구입하는데,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220.00가 소요되었다고 한다. 미국의 한인 목회자들에게는 쉽지 않은 투자이다.

그러나 투자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는 길은 없다. 미국에서는 자동차 기술자들이 정비 센타를 열기 위해 필요한 장비들을 장만하기 위해 최소 5만 달러 이상을 투자한다고 들었다. 그렇게 장만한 그 연장들이 일평생 그 기술자의 손에 들려서 고장난 자동차들을 정상으로 복구하는데 쓰여 지는 것이다.

좋은 목회자, 설교자가 되기 위해 무슨 투자를 해야 할까?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기독교의 원리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조직신학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한 투자가 빠져서는 안 된다. 조직신학은 기독교를 설명하고,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원리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설명하는 학문이다. 조직신학과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 참 복음을 잘 논하고, 올바른 설교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직신학의 그림자도 밟아보지 못한 설교자가 사람을 즐겁게 하는 설교를 잘 한다는 것은 이단성과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서철원 박사의 최근 작품 「교의신학전집」은 장로교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이 꼭 투자하여 소장해야 할 중요한 자료이다. 서 박사님의 이 작품의 절반 이상을 정밀하게 독서하고 요약한 사람으로서 느낀 소감 두 가지만 나누자면 다음과 같다.

 

1. 한국어로 표현된 세계적 수준의 신학의 칼날 

칼빈의 「기독교강요」, 벌코프의 「조직신학」, 바빙크의 「조직신학」, 안토니 후쿠마의 「조직신학」... 우리에게 익숙한 신학 작품들이 많다. 그런데 모두 번역된 책들이다. 아무리 영어 실력이 탁월한 사람이 번역했을지라도, 영어에서 한국어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이미 의미의 굴절이 발생한다. 독자가 아무리 집중하여 읽어도 저자와 직통으로 교감되는 느낌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작품의 저자는 우리의 일상 언어와 문화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았던 기독교 세계의 모든 신학자들의 사상과 이론을 논하고, 설명하고, 비판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신학적 식견과 안목을 갖춘 최고의 학자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지금까지 이런 대범한 신학적 진술을 주저하지 않고 자유로이 표현하는 한국인 신학자가 있었는지 독자들은 생각해 보라!

“칼빈은 그의 기독교강요에서 언약 사상을 자주 언급하였다 ... 그러나 칼빈은 언약 개념을 한 번도 정의한 적이 없으므로 후기의 혼란을 가져왔다.” (인간론, p.169)

“볼링거에 의해 언약사상이 영국의 개혁자들에게 전달되었다. 이 언약사상이 1647년 웨스트민스터 신경 제 7장에 도입되었다. 웨스트민스터 신경은 이 언약을 행위언약으로 표기하였다. 완전한 순종을 조건으로 아담에게 생명을 약속하셨다는 것이 행위언약이다.” (인간론, p.170)

->볼링거의 그릇된 언약사상이 영국의 개혁자들에게 전파되었고, 영국의 개혁자들이 볼링거의 그릇된 신학을 배웠으므로 웨민고백서 7장에 성경의 흐름을 왜곡하는 행위언약 개념이 기입되었고, 이후 기독교 신앙의 왜곡이 발생했다는 심각한 문제 제기.

“츠빙글리는 종교개혁 과정에서 처음으로 언약사상을 제출하였다. 후기에 작성된 행위언약처럼 인간 존재의 앙양과 영생을 목표하고 언약체결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이 되도록 언약을 체결하였다는 것을 제시하였다. 이로써 그는 교회역사에서 처음으로 바른 언약 개념과 언약관계를 설정하였다.” (인간론, p.172)

“헤르만 바빙크는 ... 행위언약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아무런 반성도 없이 개혁신학자들의 공식화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인간론, p.93)

“전통적 신학에서 예수의 율법준수를 능동적 순종,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피동적 순종이라고 한 구분과 가르침은 전적으로 잘못되었다.” (그리스도론, p.167)

“하나님에게로 돌이킴을 통상적으로 개종 혹은 회심이라고 이름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회심이라고 말할 것이 아니고 회개라고 해야 한다 ... 죄인이 회개하여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간 것이므로 회개라고 하는 것이 합당하다.” (구원론, p.71)
 

   


지금까지 우리에게 신학을 가르친 선생님들의 조직신학 저서들 대부분이 저명한 외국 신학자들의 작품의 노선에서 크게 벗어난 적이 없다. 어떤 면에서는 외국의 신학 거장들의 견해를 취합하는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서철원 박사는 다르다. 아무리 유명한 외국 신학 거장의 주장이라도 자신의 관점에서 인정할 수 없으면 가벼이 털어버린다. 바로 이것이 한국인으로서 세계적 수준의 신학의 칼날을 연마한 서철원 박사의 신학의 맛이다.

이제 한국 교회가 신학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장로교 목회자들에게 서철원 박사님의 이 작품은 더 없이 귀하게 여겨질 것이다.

 

2. 복음 이해를 쉽고 명확하게 만들어 설교를 돕는 작품

신학자의 저술이 아무리 뛰어날지라도 교회에서 설교하는 목회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문론 신학자는 설교자가 교인들로부터 인기와 박수를 받게 만드는 내용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 신학자는 오직 성경의 구원의 진리를 더 쉽게 명확하게 설명하여, 설교자로 하여금 성령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은혜를 베푸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풍성한 설교를 하도록 도와야 한다.

필자가 서철원 박사의 「교의신학전집」 귀하게 여기고 여러 장로교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이 필히 소장하고 천천히 읽기를 권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서 박사님의 작품은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복음의 기초를 신학적, 성경적 관점에서 쉽고 함축적으로 재구성하여 설명한다. 설교자들이 훗날 하나님 앞에서 칭찬받게 하는 성경적인 설교를 할 수 있도록 성경 이해의 토양과 신학적인 기초를 제공하는데 매우 강점이 있는 작품이다.

필자의 지난 주 설교의 한 부분을 예로 들어보겠다. 



 

“법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만 되고, 이미 받았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법적으로라는 말은 내 잘못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왜 법적으로 우리는 이미 죽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습니까? 우리의 대표인 처음의 인간 아담이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지어졌고,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하나님 백성으로 지어졌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뜻 안에서 지상의 모든 다른 피조물들을 다스리고 관리하는 왕으로 지어졌습니다.

그런데 아담에게 마귀가 찾아가서 유혹했습니다. 뭐라고 유혹했습니까? ‘너도 본성상 하나님과 같아! 너의 본성과 하나님은 특성상 같아!’ 지금 뉴에이지하고 똑 같은 것이지요. '네 안에 신성이 있는데, 명상을 하고 수련을 하면, 하나님과 똑 같을 수가 있어!' 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너도 본성상 하나님과 같은데, 하나님이 네가 하나님처럼 되는 것을 싫어한 거야! 네가 선악과를 먹으면 너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어!’라고 유혹한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주신 모든 복에 만족하지 않고, 그것으로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 섬기는 신분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같아지고 싶은 마음으로 마귀의 말에 속아버린 것이지요. 하나님처럼 되기 위하여 결단하고 선악과를 먹은 것입니다. 완전히 자기 의지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선악과를 먹기로 작정하고 먹은 겁니다. 흔히 세상에서 사람들이 ‘인간의 죄가 무엇이냐? 먹지 말라고 한 것을 따 먹은 것이다!’ 이것은 유치원생들의 설명입니다. 그렇게 설명하면 기독교가 이해가 안 됩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어지고, 오직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도록 지어진 아담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싫어하게 된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기를 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반역하려고 결단하고, 그래서 ‘반역’이라는 말이 키워드입니다. 인간의 죄의 키워드는 반역입니다. 단순히 먹기 말라고 한 것을 먹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반역하고, 그 의지를 실행하여 옮기는 것이 선악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반역한 백성에게 저주하신 것입니다. 옛날에 우리 나라에서 임금에게 반역한 백성의 9족을 멸하였잖아요. 반역자를 살려주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사형을 명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첫 번째 죄이고, 우리 모든 사람들이 법적으로 책임져야 할 죄입니다. 실제로 범한 것이 아니고 ... 우리의 대표인 아담이 했으므로 내가 법적으로 책임져야 할 죄입니다.” (정이철 목사, 3월 24일 주일 설교)

필자의 아담의 원죄를 설명하는 이런 내용의 설교는 오래 전부터 서 박사님의 영향을 받았으므로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지금 주류 신학이 중시하는 웨민고백서 7장의 행위언약 신학을 따르는 설교자들은 이렇게 설교 할 수가 없다.

웨민고백 7장의 행위언약을 신앙 이해의 기본 골격으로 삼는 설교자들은 아담의 원죄를 단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계명을 깨뜨리고 선악과를 먹었다는 불순종에 초점을 맞춘다. 영생을 가지지 못한 아담이 영생을 목표로 주어진 계명 준수에 실패하니, 하나님이 진노하시어 완전히 죽여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아담 대신에 오셔서 율법을 준수하여 우리에게 하나님 백성의 살 권리(의)를 선물하여 주셨고,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심으로 선악과 먹은 것에 대한 형벌을 면제하여 주셨다고 한다.

그런 내용의 설교를 통하여서 기독교의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은혜가 드러나기 어렵다. 왜냐하면 아담을 저주하신 하나님의 이유가 설명되지 않고, 또한 그리스도가 왜 오셔서 피를 흘리셔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복음의 원리가 성경적으로 선명하게 제시되지 않으므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성령은 하나님께 반역한 백성들의 죄를 사하기 위해 죽고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설교를 통해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원죄를 다루는 설교는 반드시 인간의 하나님 섬김의 거부이고, 반역임을 말해야 한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살아나게 된다.

마침 필자가 이 설교를 하던 날 3명의 석사과정, 박사과정 유학생들이 교회를 방문했다. 그 중의 한 명은 이전에도 교회를 몇 번 다녀 보았다고 하면서, (묻지도 않았는데) “목사님, 오늘 기독교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였다. 기독교의 복음의 원리를 바르게 구성하고 설명하는 것이 설교자들의 사명이고, 훗날 하늘에서 상급을 받을 첫 번째 사유가 아닌가? 그러나 지금의 행위언약 사상으로는 복음을 바르게 설명할 수가 없다.

최근 능동적 순종의 의의 전가 교리에 대한 논쟁을 통하여 너무도 많은 목회자들이 아담의 원죄에 대해서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았다. 원죄에 대한 이해가 구부러지면, 이후의 성경의 모든 것들이 비틀어지게 된다. 결국 성경적 복음 제시가 불가능지고, 따라서 성령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수 없다.

이 얼마나 무서운 재앙인가? 서철원 박사님은 자신의 작품 여러 곳에서 아담의 원죄를 다음과 같이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반역으로 설명한다.

“창조 시에 하나님은 큰 호의를 베풀어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다 ... 언약을 체결하시어 사람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창조주 하나님만을 섬기게 정하셨다 ... 언약 백성이 된 사람을 창조 세계에 왕으로 세우셨다 ... 이런 큰 호의를 입어 하나님의 백성 된 자가 하나님처럼 되겠다고 손을 들어 하나님을 대적하였다 ... 사람이 반역하여 하나님을 섬기지 않기로 결행하므로 그의 인격과 엄위를 무시하였다 ... 이렇게 아담은 반역을 일으켰다.” (그리스도론, p.195)

이상은 서철원 박사님의 최근 작품 「교의신학전집」 통해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유익들 가운데 하나의 예이다.

신학자의 사명은 아담의 원죄를 비롯하여 성경의 모든 중요한 사건들을 바르게 설명하고,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바르게 밝히는 것이다. 설교자의 사명도 성경을 통해 드러난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바르게 설명하고 선포하여 성령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에 방해되지 않게 설교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때 서철원 박사의 최근 작품 「교의신학전집」은 특히 장로교회의 설교자들을 크게 이롭게 하는 책이다. 설교자가 성경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돕는 내용들이 풍성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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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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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성일목사 2019-04-25 14:17:19

    정목사님!
    항상 바른 믿음을 통해서 뵙고 있습니다.
    덕분에 서철원 교수님 교의신학 전집을 구입해서 열독하고 있습니다.
    늘 죄송한 마음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시는 일에 주님의 은혜가 더욱 충만하시길 기도합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Minn 2019-03-29 15:08:26

      칼빈과 서박사님처럼 훌륭한 신학자의 글들을 통해 참 많이 배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목사님을 통해 책 내용이 잘 풀이되니 저같은 사람은 많은 도움이 됩니다.
      혹시라도 Heinrich Bullinger를 이상한 신학자로 보실 분들도 있을 텐데, 그의 언약사상이 어떻게 잘못됐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삼위일체 하나님, 그리스도의 본성, 인간, 그리고 교회에 대한 이해가 있는 신학자라고 들었습니다. 누구는 그리스도의 본성과 교회에 대한 설명이 제2스위스 신앙고백에 가장 잘 설명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가 예정에서 유기를 말하기 꺼려했다고는 합니다. 나중에는 인정했다는 말도 있고요.
      그의 신학이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과소평가되거나 오해되어져 왔다고 보기도 합니다. 한국에는 그의 신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신학자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언약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자비, 사랑, 그리고 신실하심을 보여줍니다. 창조주께서 낮아지셔서 피조물과 약속을 맺으시고, 자신을 맹세하시면서까지 하시고 (히 6:13), 그것을 이루시는 것은 언약이 쌍방이 아닌 일방의 성격을 띄고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이해 안에 언약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언약을 계약을 맺은 쌍방의 법적인 관계로서만 이해할 때 잘못된 해석이 나옵니다. 그런 의미에서 Bullinger는 언약이 단 하나의 목적으로 쏠려있다고 했고, 그것은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칼빈도 그리스도를 언약 그 자체로 봤다고 하는데, 그도 그런 의미에서 많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그리스도라는 영원한 언약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 그가 아담의 행위언약 아래 그리스도가 있다는 주장을 유도했다고 보기 힘든 것 같습니다. 그가 잘못된 언약사상이 있었다기보다, 그 후대에 나온 신학자들이 이론을 잘못 발전시켰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의 책을 제대로 공부해 볼 필요가 있는 듯 합니다. 다음은 어떤 목회자의 Bullinger에 대한 논문의 부분입니다.

      http://www.cprf.co.uk/articles/covenant6.htm#.XJ2laaBS-Uk신고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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