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철 목사, 회중교-청교도 연구 1

필자는 영국에서 발생한 회중교의 신학이 우리에게 청교도라고 알려진 분파의 중심 사상이라고 본다. 회중교가 중심이 되어 발전된 청교도 신학과 존 칼빈의 종교개혁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 개혁 신학의 내용이 상당히 다르다고 보고 있다.

청교도 신학과 개혁 신학이 다르다는 '필자의 주장'이 앞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이해되고 증명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구를 시작한다. 현재로서는 무엇이 얼마나 다른지 정확하게 그리고 있지 못하고 있다. 시작이 반이라고, 일단 시작을 해 보는 것이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이라고 믿는다.

현재까지 발견한 회중교-청교도 신학과 개혁 신학의 다른 점은 대략 다음과 같다.

1)회심준비론

회중교-청교도 신학은 성령의 구원의 은혜가 임하기 전에 먼저 영적 각성이 시작되어 인간이 스스로 구원의 여정을 추구하게 된다는 알미니안 사상과 매우 유사한 구원론을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사상을 바울과 칼빈에서는 전혀 찾을 수 없다.

2)칭의 신학

칼빈은 오직 예수를 구주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법정적인 칭의를 가르쳤다. 그러나 회중교-청교도는 법정적 칭의에 만족하지 않고, 신자가 내면으로 느껴지는 체험적인 칭의를 추구하였다.

3)복음과 율법

칼빈은 율법이 이미 인류에게 유입된 죄를 지적하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만드는 기능을 수행하였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구원받은 신자에게는 율법의 3용도를 가르쳤다. 그러나 회중교와 청교도는 지금도 율법을 선포해야 함을 강조한다. 먼저 율법을 선포하여 인간을 저주 아래 가두어 떨게 해야만 그리스도가 속죄의 은혜를 성령이 적용하여 구원에 이르게 한다고 가르친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준수하여 하나님 백성의 권리(의)를 획득하여 전가하였다는 교리도 회중교-청교도의 '사보이 선언'(1658년)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였고, 존 오웬에게서 발전되었다.

4)성화 신학

에드워즈를 통하여 볼 때, 회중교-청교도의 성화론은 훗날 오순절 운동에서 강조하는 성령체험과 깊은 연관을 가진다. 오순절-신사도 파들이 주장하는 성령의 임재로 말미암는 쓰러진, 환상, 황홀경 등의 거짓 체험을 에드워즈는 '신적인 빛'이라고 명명하면서 최고의 성화 체험으로 간주하고 가르쳤다.

5)하나님을 체험하는 신비적인 묵상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성경의 내용만을 가르는 것으로 성령이 성령으로 인정받게 된다고 했다.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 성경에 없는 것을 주는 성령은 성령이 아니고 악령이라고 했다. 그러나 에드워즈의 묵상을 통하여 볼 때, 회중교-청교도의 묵상은 성경의 범위를 넘어서는 현상이 빈번했다. 성령이 계시한 성경의 말씀이 아니라 성령 그 분을 체험허거나, 삼위일체를 직접 체험하는 등의 신비적인 현상이 일어났다. 이것은 칼빈의 개혁 신학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고. 성령의 역사라고 보기도 어려운 내용이다. 이미 중세의 관상기도의 대가 버나드의 영향이 회중교-청교도들에게 많이 미쳤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앞으로 여러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이런 것들에 대해 연구하여 청교도 신학과 역사적 개혁 신학이 어떻게 다른 지에 대해 많은 논의가 진전되기를 바란다. 그 동안 무 비판적으로 수용하였던 청교도 신학의 거장들, 존 오웬, 리차드 백스터, 조나단 에드워즈 등의 신학이 칼빈의 신학과 어떤 면에서 다른지 여러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면 좋겠다.

현재 필자가 가지고 있는 책 중에서 청교도신앙의 역사적 배경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는 양낙홍 교수의 작품 「조나단 에드워즈의 생애와 사상」(부흥과개혁사, 2017), 그리고 로이드 존스의 책 The Puritans: Their Origins and Successors (청교도 신앙의 기원과 계승자들, 생명의말씀사)이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찾은 라은성 교수의 강의 영상 "영국 종교개혁사"를 참고하려고 한다.
 

천주교 교황이 발도파의 대표에게 과거의 천주교의 박해를 사과하고 있는 모습(2015.6.23)


"청교도의 기원은 12세기 알프스 골짜기에 살고 있던 발도파(Waldeness)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양낙홍)1) 

양낙홍 교수는 발도파를 청교도 신앙의 뿌리로 보았다. 12세기에 등장한 발도파는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에 중세의 천주교의 교리와 사상에 반대하며 알프스 계속에 은거하여 신앙공동체를 이루어 살았다.2) 발도파는 '신앙과 도덕', '청빈'을 강조했고, 천주교의 연옥 등의 교리를 반대하였으므로 천주교와 교황의 박해로 많은 순교자들이 발생했다. 발도파의 신앙은 훗날의 종교개혁 신앙과 유사하였으므로 '12세기의 개신교도들'이라고 불리워졌다. 특히 목사를 상위 기관에서 파송하지 않고 그 교회의 회중이 직접 선출해야 함을 강조하였으므로 훗날 영국에서 발생한 회중교와 매우 유사성을 보였다. 3)

13세기에 들어 발도파는 독일과 영국으로 전파되었다. 영국으로 건너간 발도파 중에 롤라드라는 뛰어난 인물이 나타났으므로 영국에서는 발도파가 '롤라드 파'(Lollards)라고 불리우게 되었다.

영국의 종교개혁은 1509년에 즉위한 왕 헨리 8세가 자신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교황을 대적함으로 시작되었다. 헨리 8세는 자신이 영국 교회의 대표임을 공표하는 수장령(the act of supremacy, 1534)를 발표하였고, 성경의 영역을 허용하였으므로 영국에서 개신교도들의 신앙이 성장하였다.

1547년 헨리의 아들 에드워드 6세가 왕으로 즉위하자 개신교도들은 종교개혁을 더 활발하게 추진하기 좋은 여건을 만나게 되었다. 어린 에드워드 6세의 섭정 크랜머(T. Cranmer, 1489-1556)가 중심이 되어 개신교와 카톨릭이 함께 사용할 수 있고, 개신교인들이 수용할 수 없는 표현들이 제거된 '공동기도서'(Book of Common Prayer)가 작성되었고, 그것을 영국의 모든 교회들이 사용하도록 명령하는 '통일령'(1549년)이 제정되었다.

또한 천주교 요소와 개신교 요소가 30:70이라도 평가되는 '42개 조항'(the 42 Articles, 1553)를 작성하여 영국국교회의 신앙 입장으로 공표하였다. 에드워드 6세 재위 기간 동안 영국 국교회의 성직자들의 의복 등 로마교회 요소들이 많이 제거되었다.4) 42개조의 성찬 조항은 칼빈의 영적임재설을 수용하였고, 루터의 공재설, 카톨릭의 화체설, 쯔빙글리의 상징설을 거부하였다.  에드워즈 6세 때에 이와 같이 칼빈의 신학 사상에 기초한 종교개혁이 추진될 수 있었던 이유는 에드워즈의 섭중 대신 가운데 호국경(Lord Protector)의 자리에 오른 서머셋 공작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활동하고 있던 칼빈과 편지를 주고 받는 등의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이다. 칼빈은 1548년에는 〈디모데전서 주석〉을 써서 서머셋 공작에게 헌정했고, 설교, 예배, 권징에서의 철저한 개혁을 촉구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1553년 에드워드 6세의 이복 동생 메리 1세 여왕이 즉위하자 영국은 다시 로마 교회의 나라로 바뀌었다. 메리는 에드워드 6세 시절에 작성된 '42개 조항'을 폐지하였고, 종교개혁을 추진했던 크랜머와 많은 개신교도들이 죽였다. 메리 여왕 재위 5년 동안 380명의 개신교 지도자들을 살해되었으므로 이후 역사는 메리에게 '피의 메리'라는 흉한 별명을 붙여주었다. 메리의 개신교 핍박 정책으로 약 800명의 개신교도들이 독일, 스위스로 도피하였는데, 그 중 230명이 스위스에서 칼빈의 신학 사상을 배우게 되었다. 이들이 훗날 영국으로 돌아가서 청교도 신앙을 일으키는 선구자들이 되었다.

1558년 메리의 이복 동생이며 헨리 8세와 그의 둘째 부인 앤 블린에게서 태어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즉위하였다. 개신교도였던 엘리자베스 1세가 즉위하자 해외로 도피하였던 개신교도들이 종교개혁을 이루기 좋은 여건이 형성되었다고 판단하고 영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엘리자베스 여왕은 로마교회와 개신교 사이의 중도적 노선을 취하였고, 개신교도들이 원하는 것을 수용하지 않았다. 

신앙의 중노노선을 표방하였던 엘리자베스 1세는 천주교 요소와 개신교 요소가 50:50이라고 평가되는 '39개 조항'(the 39 Articles, 1563)을 발표하였는데, 이것이 약간의 수정을 거쳐서 현재까지 영국국교회의 신앙 입장을 대변하는 신앙문서가 되고 있다(라은성 교수 강의영상). '39개 조항' 속에는 개신교인들이 인정할 수 없는 사제복장 등에 관한 로마 교회의 요소들이 그대로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개신교도들은 서명하지 않았다. 결국 서명하지 않은 300명의 개신교 지도자들이 교구에서 추방되고 목회지를 잃었다.5)

엘리자베스 여왕 초상화(재위기간 1558-1603년)


바로 이 무렵부터 철저한 종교개혁을 추구하는 개신교도들의 집요하고 끈질긴 요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들의 요구를 지속적으로 거부하고 묵살하였다. '퓨리탄'(puritan, 청교도)이라는 말이 바로 이때 생겼다. 영국 정부와 영국국교회 주류에 속한 사람들이 개혁을 요구하는 개신교도들을 비하하는 뜻으로 만든 말이었다. 언제 청교도 운동이 시작되었는가? 라는 질문을 받으면, 우리는 바로 이때부터였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청교도들이 영국국교회로부터 분리하여 독자적 종파를 형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장로교-청교도, 침례교-청교도, 회중교-청교도들이 출현하게 된다. 

 

--- 미주 --- 

1) 양낙홍, <조나단 에드워즈의 생애와 사상> (부흥과 개혁사, 2017), p. 21.

2) 다음을 참고하였다. 윌리험 커닝함, <역사신학 2> (서창원 역) (진리의 깃발, 2018), 229-240.

3) 양낙홍, 21.

4) 양낙홍, 21-22.

5) 양낙홍,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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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