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철원 박사님의 성화신학에 당혹감을 표시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 처음 들어보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서철원 박사의「교의신학 5: 구원론」의 서문을 읽어보자.
 


“지금껏 성화작업은 그리스도인이 스스로의 노력해서 하는 것으로 오해되어 왔다. 거룩하게 되는 길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표명한 말씀들을 선언함으로 이루어진다. 성화작업이란 사람이 노력해서 결코 이룰 수 없다. 오직 그리스도의 피와 십자가의 권세를 적용하므로 죄의 욕망을 이기어 거룩으로 나아가는 길만 성립한다.” (서철원,「교의신학 5: 구원론」, 서문)

“이 진리가 2천년 교회사에 감추어 있어서 교회생활에 괴로움이 많았다. 성화작업이 복음선포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표명하는 말씀을 선언함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이 책에서 전개하고 있다. 이 진리를 명심하면 성화작업이 즐거운 찬송이 된다. 성경적 성화법을 적용하였더라면 2천 년의 교회의 삶이 고행이 아니고 찬송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성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 은혜가 이루기 때문이다.” (앞의 글.)

기존의 성화론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말이다. 그러나 그 의미를 이해하는 필자와 같은 사람에게는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들린다. 서철원 박사님의 핵심적인 주장은 다음의 한 문장에 들어있다고 보여 진다.

“내가 성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 은혜가 이루기 때문이다.” (서철원 박사)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구원은 은혜로 말미암고, 성화는 사람의 노력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배웠다. 성화에 대해 다음과 같은 가르침 속에서 우리는 신앙을 배웠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얻고, 성화는 우리 자신이 노력하여 이루어간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얻고, 성화는 우리 자신이 노력하여 만들어 간다는 이해가 칼빈에게서도 나타난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따라서 이 육신의 감옥에서 살고 있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부패한 본성의 결점과 아니 우리의 타고난 영혼 그 자체와 싸워야 한다. 플라톤은 죽음을 명상하는 것이 철학자의 생활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더욱 진실한 말을 할 수 있다. 즉, 육을 죽이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며 훈련하여, 드디어 육을 완전히 죽이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주관하시게 되도록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일생이라는 것이다.” (존 칼빈, 기독교강요, 3.3.20.)

대부분의 학자들의 성화에 대한 가르침이 큰 틀에서 칼빈의 가르침과 같다. 종교개혁으로 구원이 믿음과 은혜로 얻어진다는 성경적 신앙이 회복하였으나, 성화에 관해서는 여전히 로마교회와 세미 펠라기우스 신학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서철원 박사의 진단이다. 다른 점은 종교개혁 교회들이 성화가 구원에 영향 미친다고 가르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성화를 이루어가는 방법에 대해서는 여전히 로마교회, 세미 펠라기우스, 알미니안 신학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서 박사님의 성화신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서 박사님이 ‘저절로 성화론’을 주장한다고 한다. 남아 있는 죄와의 투쟁을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서 박사님의 강조점이 무엇인지 몰라서 하는 말이다. 결코 남은 죄와 투쟁하려는 노력과 의지를 가지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남아 있는 죄와 싸우며 성화를 이루어가는 힘의 근원이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하는 것이 서 박사님의 성화 신학의 핵심이다.

“그리스도인이 죄의 욕망을 버리고 거룩하게 되는 일은 복음의 말씀을 적용하므로 된다. 행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시 119)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요 15:3)

성화 과정에서 선행을 하는 것은 의롭다 함을 받은 결과이다. 의롭다 함을 받았으므로 성령이 역사하셔서 선행을 행하게 하신다. 세미 펠라기안주의와 알미니우스의 가르침처럼 선행으로 거룩하게 되고 깨끗하게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서철원,「교의신학 5: 구원론」, 181)

서철원 박사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말씀을 적용하는 성령의 사역으로 인간의 존재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성화라고 본다. 성령이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과 말씀으로 ‘옛사람’(롬 6:6; 엡 4:22; 골 3:9)을 고쳐 ‘새 사람’(엡 4:24; 골 3:10)을 지으심이 곧 성화인 것이다. 기존의 성화신학이 강조한 선한 행위의 나타남은 믿음과 칭의로 성령 받음으로 시작된 성화됨의 열매이다.

기존의 성화신학에서 이 점을 강조하지 않고, 단지 신자가 의지와 결단으로 선행에 힘써야 성화되는 것으로 가르쳤다는 것이 서철원 박사의 진단이다. 성령과 성령에게 협력하는 사람의 의지가 동역하여 성화를 이루어간다는 기존의 이해는 성경을 바르게 구성하는 신학이 아니다.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처럼, 성화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진행된다. 성령의 역사하심의 충만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이 회복되면 자연스럽게 죄를 이기는 삶이 따라오게 된다.

그러므로 서철원 박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가 성화의 핵심 요건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구속의 복음을 선포할 때, 성령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말씀을 적용하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말씀이 성령에 의해 마음에 부어지면 속사람의 변화가 일어나고, 동시에 선한 삶과 행위가 나타난다. 서철원 박사는 이것이 성화의 원리라고 가르친다.

죄의 욕망과 싸울 때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말씀을 적용하므로 죄의 욕망이 흩어져서 거룩하게 되는 길로 나아간다. 이때에 성령이 그 말씀의 내용을 따라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서철원,「교의신학 5: 구원론」, 182)

성령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말씀을 적용할 때만 역사하신다. 그리하여 죄의 욕망을 버리고 거룩으로 나아가게 하신다.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나타내는 말씀을 적용하여 성화가 이루어지므로 성화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이다. 성화작업에 사람이 동사하는 것이 아니다.” (앞의 글)

필자기 보기에 만일 서철원 박사님께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적용시키시는 성령의 사역으로 인해 죄인의 생각, 마음, 의지가 변하여 남아 있는 죄와 투쟁하는 자세가 시작된다고 언급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랬다면 서철원 박사의 성화신학을 ‘저절로 성화론’, 서 박사님의 성화신학을 적극 수용하는 정이철 목사의 사상을 ‘자동성화론’이라고 감히 떠드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을 것 같다.
 


크르넬리스 프롱크 선생은 도로트신조를 12항을 강해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구원의 확신에 대한 정도와 그 방법은 다양할 수 있긴 하지만 구원받은 사람들이 영원불변한 택정함의 확신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비밀스런 오묘한 일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성령의 기쁨과 거룩한 즐거움을 가지면서 하나님의 말씀 안에 나타난바 구원받는 자의 확실한 열매를 잘 지켜 나감으로 이루어진다. 즉 이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과 충성스런 경외심, 죄에 대한 거룩한 탄식, 그리고 의를 추구하고자 하는 열망과 갈증 등이다.” (도르트신조 12항)

“죄인이 회심하거나 중생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전 존재가 총명(생각), 마음(정서), 의지에 있어서 새로워집니다. 이것은 항상 성령님의 구원하시는 사역의 결과입니다 ... 신조는 로마서 6장 17절이 말하는 바와 같이 참된 회심은 생각과 마음과 의지의 변화를 포함한다고 설명합니다. 성령님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죄인의 생각을 밝히시는 것입니다.” (코르닐리스 프롱크, 도르트신조 강해, 315-16)

서철원 박사가 프롱크 선생처럼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고, 즉 성령의 사역으로 성화됨이 사람의 생각과 , 의지, 마음에 변화를 일으켜 구체적으로 죄와 투쟁하는 행위로 나타난다고 설명하지 않았다고 ‘저절로 성화론’, ‘자동성화론’ 운운하는 사람들은 독서의 힘이 부족한 사람들이거나, ‘진리의 영의 조명’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나에게는 쉬운데 왜 남들에게는 어려운지 의문스럽다.

신학에서도 한 끝 차이가 중요한 것 같다. 사실 칼빈도 성화를 이루는 분이 성령이라고 가르쳤다. 성령이 성화를 위하여 오신 분이라고 가르쳤으나, 성령이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말씀을 적용하심으로 죄의 욕망이 와해시켜 성화를 이루어간다는 사실, 즉 성령의 복음사역으로 새사람을 지으심이 성화라는 사실을 더 강조했어야 하는데, 성령과 함께 인간이 남은 죄와 투쟁하는 자세를 강조하는데서 그쳤다.
 


“첫째로, 성령은 우리를 성화시키기 위해서 우리에게 파견되셨다. 그래서 그는 우리의 부정과 불결을 씻어버리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의에 복종시키신다. 이와 같은 순종이 성립되려면, 저 사람들이 고비를 늦추려고 하는 그 육욕을 먼저 누르고 굴복시켜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성령에 의하여 정화되지만, 육신을 쓰고 있는 동안은 많은 죄와 무기력에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 완전과는 아주 먼 우리는 꾸준히 계속해서 전진해야 하며, 죄 속에 얽혀 있으나 매일 그 죄와 싸워야한다.” (존 칼빈, 기독교강요, 3,3,14)

필자는 성화의 원리에 대해 서철원 박사님이 정확하게 성경적으로 구성했다고 본다. 칼빈은 성화의 원리를 설명하는데 치중하지 않았으나 (설명하지 못했으나) 성화가 이루어지는 신자의 실존을 정확하게 이야기했다. 두 사람의 성화론이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은 서철원 박사님이 프롱크가 말한 내용을 굳이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철원 박사님이 구성한 대로, 성령의 복음 적용사역은 우리의 죄의 욕망을 약화시키어 이기게 한다. 동시에 생각, 마음, 의지에도 변화가 일어나, 칼빈이 강조한 대로 죄와  싸우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행동이 나타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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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