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율법을 준수하여 하나님 백성의 자격(의)을 얻으시고, 피 흘리시어 죄 용서(구속)를 이루셨다는 초기 청교도신학에서 유래한 구원론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는 그릇된 사상이다. 성경에서 예수께서 율법을 지켜 하나님 백성의 권리와 자격(의)를 얻었다는 말씀을 하나도 찾을 수 없다. 단 한 구절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인간의 무익한 사변의 산물임을 의미한다.

존 칼빈은 예수의 성육신부터 죽으심까지의 하나님의 뜻에 대한 복종과 피 흘리심이 우리의 의가 되었다고 했다. 다음은 기독교강요 2권 16장 5절의 전문이다 (한국출판사). '칼빈주의'라는 말로 자기의 신앙을 표현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구원론에 관해서 칼빈과 달리 예수께서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 백성의 권리와 자격(의)를 전가하여 주었다는 성경에 없고 칼빈에게도 없는 말을 결코 하지 않아야 한다. 예수의 '전 생애의 복종'은 성육신부터 죽으심까지의 순종을 의미하고, '율법준수'는 십계명과 다른 모세의 계명들에 대한 순종이다.
 


"어떤 사람은 묻기를 그리스도는 어떻게 죄를 없애 버리며 ... 의를 얻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하여 은혜와 친절을 품으시게 만드셨느냐고 한다. 이에 대해 우리는 일반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데 곧 그의 복종 생활 전체에 의하여 우리를 위해 이 일을 성취하셨다는 것이다.이 점을 증명하는 바울의 증언이 있다.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느니라" (롬 5:19).

참으로 바울은 다른 구절에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하는 용서의 근거를 그리스도의 생애 전체에 확대한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갈 4:4-5).

그래서 주님은 세례를 받으실 때에도 아버지의 명령을 준행함으로써 의의 일부를 완성한다고 주장하셨다(마 3:15). 요약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종의 형태를 취하신 때부터 우리를 속량하시려고 자유의 대가를 치르기 시작하신 것이다. 그러나 구원의 길을 더욱 정확하게 밝히기 위해서, 성경은 그것을 그리스도의 죽음의 고유한 특색이라고 한다. 그리스도 자신이 "인자가 온 것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셨다"고 언명하신다(마 20:28).

바울은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었다"고 가르친다(롬 4:25).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세상 죄를 지고 가려고" 오신 분이라고 선언했다(요 1:29). 바울은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화해자로 세우셨느니라" (롬 3:24-25).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죽으심으로 말미암아‥‥‥화목 되었느니라" (롬 5:9-10).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 5:21)

모든 증언을 열거하려면 한정이 없을 것이므로 나는 그 전부를 인용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그 중의 여러 구절을 적당한 곳에서 언급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이른바 "사도신경"은 적절하게 그리스도의 탄생으로부터 즉시 그의 죽음과 부활로 간다. 여기에 완전한 구원의 전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일생 동안 보이신 복종의 다른 부분도 제외되지 않는다. 바울은 자초지종을 전부 포함시켜서 "그는 ...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한다(빌 2:7-8).

그리고 참으로 죽음 자체에서도 그가 기꺼이 하신 복종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기꺼이 바치는 희생이 아니면 의를 더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자기는 "자기의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하셨을 때에(요 10:15), "이를(목숨을)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적절한 말씀을 첨가하셨다(요 10:18). 이런 뜻으로 이사야는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라고 말한다(사 53:7. 참조 행 8:32).

복음서에 있는 이야기에서도 예수께서 나아가 군대를 만나셨다고 하며(요 18:4), 빌라도 앞에서 자기를 변호하지 않고 순순히 재판을 받으셨다고 한다(마 27:12, 14). 물론,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우리의 약점들을 맡으셨고, 이렇게 하심으로써 아버지에게 대한 복종이 시험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여기 우리에게 대한 그의 무쌍한 사랑에 대한 비범한 증거가 있는 것이다. 즉, 무서운 공포심과 싸우며 저 잔인한 고통 중에서도 자신에 대한 생각을 일체 버리고, 우리를 도우려고 하셨다.

그리고 우리가 견지해야 할 점은 이것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감정을 무시하고 아버지의 뜻에 전직으로 자기를 바쳐 복종하시지 않았다면, 하나님에게 합당한 희생을 드릴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 사도가 시편에서 인용한 증언은 적절하다.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히 10:7)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시 40:8)

그러나 괴로운 양심들은 오직 죄를 대속하는 제사와 성결에서만 안식을 얻는 것이므로, 우리를 그리로 인도하는 것은 옳다. 그리고 우리를 위한 생명의 근거가 그리스도의 죽음에 있다." (존 칼빈, 기독교강요, 2.16.5.)

 

이상으로 살펴본 것처럼,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자기의 전 생애와 목숨을 우리의 죗값으로 희생하심으로 우리에게 의가 주어졌다고 가르쳤다. 그러니 안토니 후쿠마, 코르닐리스 프롱크는 예수께서 율법(십계명 다른 계명들)을 지켜서 의를 얻었다고 가르친다. 직접 비교해 보고, 여전히 후쿠마와 프롱크의 구원론을 진리로 믿고 따를 것이면, 더 이상 칼빈주의라는 말과 자신을 연관시키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고난 받는 순종을 통해 우리의 죄들에 대한 형벌을 받으셨으며,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으셨다고 말할 수 있다 (갈 3:13; 롬 3:24-26; 5:8-10과 비교해 보라). 그렇게 해서 그는 우리를 위하여 죄들을 용서받을 수 있는 공로를 이루셨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율법준수의 순종을 통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심으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입적되는 권리와 영생을 누릴 권리를 획득하셨다.” (안트니 후쿠마, 개혁주의 구원론, 298.) 
->후쿠마는 예수의 전생애의 복종이라고 말하지 않고 분명하게 예수의 율법준수가 하나님 백성의 권리를 주었다고 했다. 성경에도 없고 칼빈에게도 없는 사상이다.  

“앞에서 내가 지적했듯이 우리가 칭의되었을 때 우리에게 전가된 혹은 우리의 것이 된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심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심으로 우리를 위해 획득하신 공로이다.” (후쿠마, 299)
->후쿠마는 예수께서 십자가의 피로 형벌을 면제했고, 율법준수로 하나님 백성의 의(자격)을 획득했다고 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을 이루셨고, 사람의 죄에 대한 값을 하나님께 지불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공로로 얻으셨습니다.” ( 프롱크, 도르트신조 강해, p.73,74)
->예수께서 율법순종을 통해 하나님 백성의 권리(의)를 얻었고, 십자가의 피로 죄의 형벌의 면제를 얻었다는 의미. 

“죄인은 자신의 대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히 순종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그 죄인에게 전가됩니다.” (프롱크, p.236)
->예수의 율법순종의 의(하나님 백성의 자격, 권리)가 우리에게 전가되었다는 의미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백성을 위해 주님의 모든 계명에 완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자신의 죄의 짐을 느끼는 죄인들에게 기쁜 소식입니다.” (프롱크, p.268)
->예수께서 율법순종하신 것이 우리의 구원의 복음이라는 의미

“복음은 죄인에게 회개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어떻게 회개가 일어납니까? 그때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율법을 다시금 우리 마음에 새겨 주시고, 우리는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것이 당신이 구원받았는지 아닌지를 아는 방법입니다.” (프롱크, p.264)
->구원받은 성도의 신앙의 핵심이 성경 66권이라고 말하지 않고 구약의 율법이라 가르치는 것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저주한 이단사상이다.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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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