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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파이퍼, 능동순종 개념없고 예수의 죽으심과 생애의 순종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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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10  00:2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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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존 파이퍼의 글 "The Sufficiency of Christ's Obedience in His Life and Death"를 정이철 목사가 번약한 내용이다. 존 파이퍼도 그리스도가 율법을 준수하여 의를 얻고 전가했다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 충분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그 이전의 예수의 생애의 모든 순종과 분리할 수 없다고 한다. 존 파이퍼에게서 십자가의 피 흘리심과 구분되는 별도의 예수의 율법준수의 의의 획득과 전가 교리를 믿는 흔적이 조금도 나타나지 않는다. 존 파이퍼의 원글이 아래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하심이 우리에게 전가되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롬 5:19; 고후 5:21; 롬 4:6, 11; 10:3)가 만들어졌다고 가르치는 것은 곧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사역, 즉 예수님의 생애의 마지막의 고난과 죽으심이 우리의 칭의를 위하여 충분하지 못했다는 것은 의미할까?

이 질문이 일어나는 이유는 우리의 의롭다하심의 원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이라고 특별하게 말씀하는 다음의 성경 본문들 때문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롬 3:2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 4:25)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롬 5:9)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갈 2:21)

위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죄 용서에 대한 비슷한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다시 말하여 예수님의 무죄하신 생애에 대한 우리의 확신은 십자가상의 하나님의 흠 없는 어린 양으로서의 예수님의 사역이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기 위해 불충분하였다는 것인가? 다음의 성경 말씀들은 우리의 죄의 무효화와 용서하심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직접 연관되었다고 말씀한다: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골 2:1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고전 15:3)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 52:5)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 2:24)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계 1:5)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7)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우리를 모든 죄악으로부터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충분한가? 그리스도의 죄 없으신 생애의 정점(the climax)이므로 충분하였다. 히브리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단번에 제거하기 위한 하나님의 아들의 죄 없으심과 완전하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말씀한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 4:15)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히 7:27,28)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히 2:10)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 5:9)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은 죄 없으신 생애의 정정로서 우리의 모든 죄들을 감당하시기에 충분하였다. 십자가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 십자가에 무엇을 더하면 안 된다. 신약 성경의 저자들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예수의 생애의 정점으로 보았다. 예수님의 전 생애는 자신을 십자가에 제물로 드리기 위해 계획되었다 (막 10:45; 요 12:27; 히 2:14). 태어나셨고, 사셨던 이유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함이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예수의 죽으심의 효력을 말하기 위해 우리는 그의 죽으심이 죄 없으신 생애의 정점(the climax)이며 총화(the sum)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야 한다.

죽음까지 마다하시지 않으신 그리스도의 마지막 순종은 죄 없으신 삶의 정점으로서 자기 백성들을 의롭다하시기에 충분하였다. 십자가로 향하는 과정의 순종과 분리되는 차원에서의 십자가상의 순종에 대한 이야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과연 어떻게 예수님의 순종의 마지막 행동과 죄 없으신 순종의 삶의 경계선을 가를 수 있을까? 그 모든 시도는 인위적이다. 그의 손에 못이 박히도록 허용하신 시점 위에 선을 그을 것인가? 동산에서 체포되시도록 허용하신 시점 위에? 배반자 유다가 만찬장을 떠나도록 허용하시는 시점?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려고 계획하신 때?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려고 마음을 정하신 때 (눅 9:51)? 아니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면서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합당하다” (마 3:15) 라고 말씀하신 때인가?

바울이 우리의 의롭다하심의 원인으로서 예수님의 순종을 말하였을 때, 그것은 십자가상에서의 마지막 순종만을 의미한 것이 아니고 순종하는 삶의 정점으로서의 십자가 사건을 의미한 것이다. 바울은 빌립보서 2장 7,8절에서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 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라고 말했다.

다음을 주의 깊이 생각해 보라: 그는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한 사람의 형체로 나타나셨다 -> 그는 자신을 낮추셨다 -> 그가 자신을 낮추시는 방법은 순종하심이었다 -> 그의 순종은 너무나 완전하여 죽음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이셨다 -> 십자가상에서 가장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당하셨다.

이 내용이 보여주는 것은 그의 삶의 한쪽 끝에서 사람의 형체로 태어나심과 그의 삶의 또 다른 한쪽 끝에서의 십자가상의 죽으심 사이의 과정은 자기를 낮추시는 순종의 삶이었다는 것이다. 가장 고통스럽고도 영광스러운 방법으로 십자가상의 정점에 도달했다는 사실이 바울로 하여금 십자가를 예수님의 모든 순종의 정점과 총화로 설명하게 만들었다. 바울이 예수님의 마지막 시간의 십자가상의 순종을 그 마지막 시간의 순종을 고안하고 계획하고 추구하고 수용하는 순종과 분리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므로 바울이 로마서 5:18절에서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라고 말하고, 로마서 5:19절에서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라고 말했을 때, 바울이 예수의 마지막 순간의 십자가의 순종을 그의 전 생애의 순종과 분리했다고 볼 수는 없다. 아담은 한 가지 죄를 범하여 완전히 타락하였다. 그러나 예수는 전 생애 동안 성공적으로 순종하셨다. 두 사람의 불순종과 순종은 서로 대조된다.

그래서 바울이 로마서 5장 18에서 아담의 ‘한 범죄’를 그리스도의 ‘한 의로운 행동’과 비교할 때,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것과 대조되는 그리스도의 생애 속에서의 어떤 한 행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타락하는 두 번째 아담이 되지 않기 위해 그리스도의 전 생애의 순종하는 삶이 필요하였다. 예수께서 단 하나의 죄라도 범했다면 그는 타락한 아담과 같아졌을 것이다. 성공하는 둘째 아담이 되기 위해 예수님의 전 생애의 순종이 필요하였다. 완전한 순종의 삶이 죽음까지도 기꺼이 수용하심을 통하여 정점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그의 제자들이 십자가와 죽으심을 예수의 십자가를 향하는 순종의 삶과 분리하지 않고 그의 순종하는 삶의 정점과 최고봉으로 바라보게하였다.

우리의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 교리가 하나님과 우리의 바른 관계를 위해 십자가가 불충분하다는 것은 의미하는가?” 대답은 NO이다. 그리스도의 완전히 순종하는 삶이 우리의 죄를 속하시기 위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위해 필수적이었던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하심을 얻기 위한 순종의 최고의 행위로서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위해서도 필수적이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죄 없으신 삶의 정점으로서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충분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죄 없으신 삶의 정점으로서 우리의 칭의를 위해 충분하였다.

 

   

 

The Sufficiency of Christ's Obedience in His Life and Death
- John Piper, May 15, 2007 -

When we teach that our right standing with God is attained through the imputation of Christ’s obedience to our account (Romans 5:19; 2 Corinthians 5:21; Romans 4:6, 11; 10:3), does this imply that the work of Christ on the cross—his final suffering and death—is insufficient for our justification?

This question arises in part because of texts that connect the cause of justification specifically to the cross of Christ. For example:

Romans 3:24-25: “[They] are justified by his grace as a gift, through the redemption that is in Christ Jesus, whom God put forward as a propitiation by his blood.”

Romans 4:25: “[He] was delivered up for our trespasses and raised for our justification.”

Romans 5:9: “Since, therefore, we have now been justified by his blood, much more shall we be saved by him from the wrath of God.”

Galatians 2:21: “I do not nullify the grace of God, for if righteousness were through the law, then Christ died for no purpose.”

To see the answer, we might ask a similar question concerning the forgiveness of sins. In other words, let us ask: Does the insistence upon Jesus’ sinless life imply that the work of Christ as the spotless Lamb of God on the cross is insufficient for the canceling of the debt of our sins? Our sins being cancelled and forgiven is connected most directly to the death of Christ. For example:

Colossians 2:13: “[He forgave] by canceling the record of debt that stood against us with its legal demands. This he set aside, nailing it to the cross.”

1 Corinthians 15:3: “I delivered to you as of first importance what I also received: that Christ died for our sins in accordance with the Scriptures.”

Isaiah 53:5: “He was wounded for our transgressions; he was crushed for our iniquities.”

1 Peter 2:24: “He himself bore our sins in his body on the tree.”

Revelation 1:5: “To him who loves us and has freed us from our sins by his blood.”

1 John 1:7: “The blood of Jesus his Son cleanses us from all sin.”

Is the death of Jesus sufficient to cleanse us from all our sins? Yes, but only as the climax of a sinless life. The book of Hebrews is most explicit about the necessity of the Son of God being perfect and without sin so that he can bear our sins once for all.

Hebrews 4:15: “We do not have a high priest who is unable to sympathize with our weaknesses, but one who in every respect has been tempted as we are, yet without sin.”

Hebrews 7:27-28: “He has no need, like those high priests, to offer sacrifices daily, first for his own sins and then for those of the people, since he did this once for all when he offered up himself. For the law appoints men in their weakness as high priests, but the word of the oath, which came later than the law, appoints a Son who has been made perfect forever.”

Hebrews 2:10: “It was fitting that he, for whom and by whom all things exist, in bringing many sons to glory, should make the founder of their salvation perfect through suffering.”

Hebrews 5:9: “And being made perfect, he became the source of eternal salvation to all who obey him.”

So the death of the Son of God is sufficient to cover all our sins as the climax of a sinless life. This is no disparagement to the cross. It is not adding to the cross. The New Testament writers saw the death of Christ as the climax of his life. His whole life was designed to bring him to the cross (Mark 10:45; John 12:27; Hebrews 2:14). That is why he was born, and why he lived. To speak of the saving effect of his death was therefore to speak of his death as the sum and climax of his sinless life.

Similarly, the final obedience of Christ in his death is sufficient to justify his people as the climax of a sinless life. It is not likely that the apostles thought of Jesus’ obedience on the cross as separate from his obedience leading to the cross. Where would one draw the line between his life of sinless obedience and the final acts of obedience? Any line would be artificial. Do we draw it at the point where he submitted to the piercing of his hands? Or at the point when he submitted to his arrest in the garden? Or at the point where he endured Judas’ departure from the supper? Or at the point where he planned his final entry to Jerusalem? Or at the point where he “set his face to go to Jerusalem” (Luke 9:51)? Or at the point of his baptism where he said, “It is fitting for us to fulfill all righteousness” (Matthew 3:15)?

It is more likely that when Paul spoke of Jesus’ obedience as the cause of our justification he meant not merely the final acts of obedience on the cross, but rather the cross as the climax of his obedient life. This seems to be the way Paul is thinking in Philippians 2:7-8: “He emptied himself . . . being born in the likeness of men. And being found in human form, he humbled himself by becoming obedient to the point of death, even death on a cross.” Notice the sequence of thought: He became a human. That is, he was found in human form. > He humbled himself. > The way he humbled himself was by becoming obedient. > This obedience was so complete that it willingly embraced death. > Even death in the most painful and shameful way—on a cross.

What this text shows is that between “being born in the likeness of men” at one end of his life and “even death on a cross” at the other end of his life was a life of self-humbling obedience. The fact that it came to its climax on the cross in the most terrible and glorious way is probably what causes Paul to speak of the cross as the sum and climax of all his obedience. But it is very unlikely that Paul would have separated the obedience of the final hours from the obedience that designed, planned, pursued, and embraced those final hours.

Thus when Paul says in Romans 5:18, “One act of righteousness (di’ henos dikaiōmatos) leads to justification and life,” and when he says in Romans 5:19, “By the one man’s obedience the many will be appointed righteous,” there is little reason to think he meant to separate the final obedience of Jesus from the total obedience of Jesus. In Adam’s case, it only took one sin to completely fail. In Christ’s case, it took an entire life to completely succeed. That is how their disobedience and obedience correspond to each other.

Thus when Paul compares the “one trespass” of Adam to Christ’s “one act of righteousness” (Romans 5:18), there is no single act in Christ’s life that corresponds to the eating of the forbidden fruit. Rather, his whole life of obedience was necessary so that he would not be a second failing Adam. One single sin would have put him in the category of a failing Adam. But it took one entire life of obedience to be a successful second Adam. That this complete life of obedience came to climax in the freely embraced death of Christ made such an overwhelming impression on his followers that they looked upon the “cross” or the “death” as the climax and sum of his obedience, but not separate from his cross-pursuing life.

So back to our initial question: “Does the doctrine of the imputation of Christ’s righteousness imply that the cross is insufficient for our right standing with God?" The answer is no. Just as the perfectly obedient life of Christ is essential to the death of Christ as a covering for our sin, so the perfectly obedient life of Christ is essential to the death of Christ as the supreme act of obedience by which we are appointed righteous in him. The death of Christ is sufficient for covering our sins as the climax of a sinless life. And the death of Christ is sufficient for our justification as the climax of a sinless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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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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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파이퍼는 2019-03-12 13:05:35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와 지위가 처음부터 끝까지 의의 전가로 구성되어 있는지 아니면 부분적인 의의 분배로 구성되어 있는지는 매우 중대하며 필연적인 질문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종교개혁이 지나갔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로마 카톨릭의 입장을 따른다면 칭의의 행위는 종교개혁자들이 믿었던 그리스도의 순종의 전가가 아니라 의의 주입이 되는 것이다' 존 파이퍼 '칭의논쟁' 중


    책소개를 빌려 말하지면 칭의에 있어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의 전가가 매우 중요한개념임을 드러낸다.신고 | 수정 | 삭제

    • 과연그러한가 2019-03-12 13:02:49

      “바울이 우리의 의롭다하심의 원인으로서 예수님의 순종을 말하였을 때, 그것은 십자가상에서의 마지막 순종만을 의미한 것이 아니고 순종하는 삶의 정점으로서의 십자가 사건을 의미한 것이다. 바울은 빌립보서 2장 7,8절에서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 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 교리가 하나님과 우리의 바른 관계를 위해 십자가가 불충분하다는 것은 의미하는가?” 대답은 NO이다. 그리스도의 완전히 순종하는 삶이 우리의 죄를 속하시기 위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위해 필수적이었던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하심을 얻기 위한 순종의 최고의 행위로서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위해서도 필수적이었다.“

      => 십자가상의 마지막 순종만이 우리를 의롭다 하신 근거가 되지 않는다.
      = 십자가를 무너뜨리는 이단적 사상



      “완전한 순종의 삶이 죽음까지도 기꺼이 수용하심을 통하여 정점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그의 제자들이 십자가와 죽으심을 예수의 십자가를 향하는 순종의 삶과 분리하지 않고 그의 순종하는 삶의 정점과 최고봉으로 바라보게하였다.”

      분리는 정이철 목사가 하지 누구도 의의 전가와 십자가를 별개의 것으로 이원화 시키지 않았음.
      오직 바른 믿음의 정이철 목사가 본인이 주장하는 십자가의 피흘림의 대속만 강조하려다가 여기저기서 글을 끌어오는데 위의 글도 충분히 읽었다면 의롭게 하는 원인으로서 십자가 상에서 마지막 순종만을 이야기 할수 없다라고 밝히고 본문 마지막에서도 ‘의롭다함을 위한 그리스도최고의 순종은 죽으심에서 나타난다’라고 얘기했지 다른 것은 없다라고 얘기한 것이 아닌데 본인만 그렇게 주장하고 싶을 뿐이다.

      존파이퍼의 복음과 하나님의 의 로마서 강해1권 中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이 말은 복음에는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그분이 몸소 성취하신 의가 있으며,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것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의를 우리에게 거저 주십니다. 우리의 행위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에 근거한 일입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그 자체로 기쁜 소식이 되는 이유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의, 즉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만큼 선한 행동을 해야 얻는 의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그냥 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자신을 의뢰하는 일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기 시작할 때 그 의를 하나님이 값없이 우리에게 주십니다.
      여기서도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에 대한 의의 전가 개념이 없다고 보고 싶겠지??신고 | 수정 | 삭제

      • 고집 2019-03-10 22:37:43

        이 녀석아! 정 목사님이 말하는데로 성경에 예수님이 율법을 지켜서 의를 얻는다는 말이 한 줄이라도 있으면 좀 찾아서 주세요! 바보 ...신고 | 수정 | 삭제

        • 고집 2019-03-10 21:36:28

          능동적 순종의 의의 전가는 예수님의 모든 사역에서 분리되지 못하나 본인만 이해못하고 주구장창 따로 보고
          모르니 자꾸 십자가에 뭘 더해야한다는 헛소리나 지껄여서 혼란스럽게하고

          모르면 배우라니까신고 | 수정 | 삭제

          • 울법구원? 2019-03-10 14:54:02

            예수님이 아담이 지키지 못한 율법을 대신 지켜서 의를 얻고 죄인들에게 전가하여 의롭게 해 주신다? .... 그러면 뭐하려 굳이 죽으시나?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어 율법을 지키는 것도 이미 충분한 희생이구만 .... 성경에 예수님이 율법을 지켜서 의를 얻어서 죄인들을 의롭게 하신다는 말씀이 단 한줄만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는데, 대체 왜 예수님이 율법을 지켜서 의를 얻어 전가하여 주신다고 하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인가? 그러면 십자가에서 죽으심이 우리의 의이고 구원이라는 성경의 말씀들을 왜 지우조 찢어버리지 않는 것인가?

            존 파이퍼가 제대로 복음을 이해하였네 ... 역쉬!신고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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