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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율법과 모든 하나님의 뜻에 완전하게 순종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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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율법과 모든 하나님의 뜻에 완전하게 순종하셨다
  • 정이철
  • 승인 2019.03.06 07:33
  • 댓글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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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단지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죽으셨다는 사실만 강조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에게 죄가 없으셨다는 것만 강조하면 충분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범죄에 대해 저주하시고 진노하신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켜 드리시기 위해 예수님은 완전히 흠이 없고 절대적으로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이어야만 했습니다.

특히 율법도 잘 지켜야만 했습니다. 율법의 사형선고 하에 있는 잃어버린 자기 백성들을 살리시기 위해 예수님 자신도 율법 아래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율법의 요구를 따르셔야만 했습니다. 태어나신지 8일 만에 할례(눅 2:21)를 받으시는 등 지상에서의 예수님의 귀하신 일생은 시작부터 율법을 준수하시는 삶이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율법을 무시하셨다면, 마치 구약시대의 제물로 드려지는 황소에게 피부병이 있으면 온전한 제물이 되지 못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율법에 대하여 흠결을 가진 예수님의 희생과 피 흘리심도 기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사함’과 ‘의’가 되시기 위한 완전한 희생제물로 드려졌으므로 율법과 모든 면에서 아무 하자가 없어야만 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거룩하셨고, 완전하고 흠이 없으셨습니다. 현미경으로 샅샅이 찾아보아도 율법과 모든 면에서 하나님께 불쾌감을 만들 작은 터럭만한 불순종이나 허물도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고난의 지상 생애와 마지막 십자가의 흘리심이 우리의 죄를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눅 23:47)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처형한 로마 군대의 책임자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모습을 지켜보고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아무 이해가 얽히지 않는 제 3자가 보기에도 예수님은 의롭고 완전하고 흠이 없었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피 흘렸다고만 말하면 안 됩니다. 율법과 모든 면에서 완전하시고 거룩하시고 흠이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자기의 몸을 희생제물로 드리셨다고 강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율법과 모든 하나님의 뜻에 마음과 정신으로 순종하셨습니다. 궁극적으로 율법이 죄인들에게 요구하는 대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 우리의 대표로서 예수님은 율법이 명령하는 대로 저주의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율법의 완성'입니다. 친히 예수님이 율법의 저주를 몸으로 받으셨으므로 고난 받으신 그 몸 안에서 율법은 완성되었고 동시에 율법은 폐하여졌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롬 10:4)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엡 2:15)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의’, ‘죄사함’입니다. 전 생애 동안 우리를 위해 대속의 고난을 당하시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습니다. 전가된 그리스도의 의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표로서 율법을 준수하시고 모든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순종하심의 공로까지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율법준수의 의(능동적 순종의 의)를 획득하고 전가했다고 구별하여 따로 말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의 의와 구별되는 또 하나의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의 의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이 우리의 의이고 구원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 5:9)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능동적, 수동적 순종이라는 용어가 무슨 대수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능동적 순종도 하셨고, 마지막에는 수동적 순종까지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문제는 이 둘을 나누어서 율법준수의 의,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의 의를 따로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의 의를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율법이 구원의 의를 준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율법은 죄인들이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려는 한 가지 목적으로만 왔습니다.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롬 7:7)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갈 3:24)

말로는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구분하지 않는다 하면서 꼭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의 의를 따로 말하는 것은 율법과 십자가, 그리스도의 의의 이중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결국 기독교의 절대적 진리인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허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의 의의 획득과 전가 교리는 창조주가 잃어버린 자기 백성들을 되살리기 위해 성육신하는 목적이 아닙니다. 창조주는 잃어버린 자기 백성들을 대신하여 피 흘리고 죽으심으로 대신 형벌을 받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이 되어 대신 형벌을 받으셨다는 소식이 우리에게 복음입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이 되시어 대신 아담을 대신하여 율법지키신 것이 복음이라는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능동적 친구들이여!

이제부터 말로만 능동적 수동적 순종을 구별하지 않는다고 하지 마십시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의 공로로 구원받았다”라고만 말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섭섭하여 율법에 대해서 한 마디하고 싶으시면 이렇게 만 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율법까지도 지키셨으므로 완전한 십자가의 희생제물이 되시었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사탄이 세운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는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아세아연합대학 대학원(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을 졸업했다.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도 수학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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삯꾼 2019-03-10 21:25:44
사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싸움을 건다.

불필요하고 손해인 싸움은 안한다.

막말하다가도 최종적으로 이단성 없게 보이면 된다.

좀 조용해지면 또 다른 먹이를 찾는다.

로고스 2019-03-09 13:50:18
“동물의 피도 우리를 정결하게 하는데 하물며 “완벽히 순종하신” 의로우신 흠없는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어찌 의롭다하지 않겠느냐입니다. “완전하게 순종하신” 그리스도의 피값 자체만으로 충분히 우리를 의롭다한다는 것입니다. 현재는 이렇게 더 이해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을 계속 덧입히다보니 님께서 무엇을 주장하고자 하는지도 헷갈리는 것 같습니다.

지금 님의 글 안에 “완벽하게 순종하신” 그리스도의 핏값이라고 스스로 답을 쓰셨네요.
지금 님께선 순종교리를 자연스레 인정하는 글을 쓰시면서도 어찌하여 순간 순간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다중인격적 장애현상을 보이시나요?
설마 정목사님에게서 임파테이션 되신 건가요?

로고스 2019-03-09 13:03:33
십자가의 제물로서는 이미 흠이 없으신 분으로 이 땅에 오셨음을 성경 기자들이 선포했기에 결국 남은 이유는 하나 뿐이군요...^^

신대원생 2019-03-09 12:33:29
십자가의 피 안에 그리스도의 모든 순종이 내포되었음을 인정하는 것은 차이가 없는데요.

그 순종의 이유가 십자가의 흠없는 제물이 되기 위한 것이냐 우리의 불순종도 순종으로 여겨주게 하기 위해서이냐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구약제사들이 피흘림으로 죄사함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그 때 제물의 피흘림의 대속이 흠없음이 중요하지 제물이 행한 것들이 우리에게 전가되는 것은 아닙니다.

히9:13-14절을 보면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동물의 피도 우리를 정결하게 하는데 하물며 완벽히 순종하신 의로우신 흠없는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어찌 의롭다하지 않겠느냐입니다. 완전하게 순종하신 그리스도의 피값 자체만으로 충분히 우리를 의롭다한다는 것입니다. 현재는 이렇게 더 이해하고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표현한 말씀은 없지만 순종의 의도 십자가의 피에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또한 전가될 수 있다고 충분히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도 있지만 그 유추는 행위언약에 대한 오해에서 온다고 정목사님이 이전 아티클에 써주셨습니다.

당장은 행위언약과 은혜언약 등을 더 자세히 신학공부를 토대로 더 알아가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모든 것을 가르쳐주시고 깨우쳐주시기를 기도하며 공부하겠습니다.

로고스 2019-03-09 11:35:24
“제글이 정목사님 메인아티클과 다를게 없습니다.”

정목사님의 주장에 따르려 애 쓸 필요 없습니다.
그 분은 또 다른 칼럼에서 순종교리를 부정했습니다.
이제 정목사님을 생각하면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떠오르고 가수 조성모의 ‘가시나무’가 떠오릅니다.
굳이 따라봐야 님 에고에 혼란만 가중되며 급기야 뇌가 병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님께서 인정하건 말건 사도는 지속적으로 첫 사람 아담과 둘째 아담으로서 그리스도를 대비시켜 설명합니다.
모든 면에서 비교하면서 말이지요.
사도가 할 말이 없어서 시간 때우려 그랬을까요?

또 한 가지...
자꾸 물타기하시는데요, 두 개의 의가 아니라고 누차 설명드렸음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의로 표현하시는 저의가 불순해 보입니다.
아니면 아직도 순종교리가 이해되지 않아서 그러는 건가요?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다면 이쯤에서 빨리 신학을 접는 것이 님도 살고 미래의 양들도 사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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