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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율법과 모든 하나님의 뜻에 완전하게 순종하셨다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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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06  07:3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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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단지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죽으셨다는 사실만 강조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에게 죄가 없으셨다는 것만 강조하면 충분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범죄에 대해 저주하시고 진노하신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켜 드리시기 위해 예수님은 완전히 흠이 없고 절대적으로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이어야만 했습니다.

특히 율법도 잘 지켜야만 했습니다. 율법의 사형선고 하에 있는 잃어버린 자기 백성들을 살리시기 위해 예수님 자신도 율법 아래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율법의 요구를 따르셔야만 했습니다. 태어나신지 8일 만에 할례(눅 2:21)를 받으시는 등 지상에서의 예수님의 귀하신 일생은 시작부터 율법을 준수하시는 삶이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율법을 무시하셨다면, 마치 구약시대의 제물로 드려지는 황소에게 피부병이 있으면 온전한 제물이 되지 못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율법에 대하여 흠결을 가진 예수님의 희생과 피 흘리심도 기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사함’과 ‘의’가 되시기 위한 완전한 희생제물로 드려졌으므로 율법과 모든 면에서 아무 하자가 없어야만 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거룩하셨고, 완전하고 흠이 없으셨습니다. 현미경으로 샅샅이 찾아보아도 율법과 모든 면에서 하나님께 불쾌감을 만들 작은 터럭만한 불순종이나 허물도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고난의 지상 생애와 마지막 십자가의 흘리심이 우리의 죄를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눅 23:47)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처형한 로마 군대의 책임자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모습을 지켜보고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아무 이해가 얽히지 않는 제 3자가 보기에도 예수님은 의롭고 완전하고 흠이 없었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피 흘렸다고만 말하면 안 됩니다. 율법과 모든 면에서 완전하시고 거룩하시고 흠이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자기의 몸을 희생제물로 드리셨다고 강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율법과 모든 하나님의 뜻에 마음과 정신으로 순종하셨습니다. 궁극적으로 율법이 죄인들에게 요구하는 대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 우리의 대표로서 예수님은 율법이 명령하는 대로 저주의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율법의 완성'입니다. 친히 예수님이 율법의 저주를 몸으로 받으셨으므로 고난 받으신 그 몸 안에서 율법은 완성되었고 동시에 율법은 폐하여졌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롬 10:4)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엡 2:15)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의’, ‘죄사함’입니다. 전 생애 동안 우리를 위해 대속의 고난을 당하시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습니다. 전가된 그리스도의 의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표로서 율법을 준수하시고 모든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순종하심의 공로까지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율법준수의 의(능동적 순종의 의)를 획득하고 전가했다고 구별하여 따로 말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의 의와 구별되는 또 하나의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의 의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이 우리의 의이고 구원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 5:9)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능동적, 수동적 순종이라는 용어가 무슨 대수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능동적 순종도 하셨고, 마지막에는 수동적 순종까지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문제는 이 둘을 나누어서 율법준수의 의,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의 의를 따로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의 의를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율법이 구원의 의를 준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율법은 죄인들이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려는 한 가지 목적으로만 왔습니다.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롬 7:7)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갈 3:24)

말로는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구분하지 않는다 하면서 꼭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의 의를 따로 말하는 것은 율법과 십자가, 그리스도의 의의 이중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결국 기독교의 절대적 진리인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허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의 의의 획득과 전가 교리는 창조주가 잃어버린 자기 백성들을 되살리기 위해 성육신하는 목적이 아닙니다. 창조주는 잃어버린 자기 백성들을 대신하여 피 흘리고 죽으심으로 대신 형벌을 받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이 되어 대신 형벌을 받으셨다는 소식이 우리에게 복음입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이 되시어 대신 아담을 대신하여 율법지키신 것이 복음이라는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능동적 친구들이여!

이제부터 말로만 능동적 수동적 순종을 구별하지 않는다고 하지 마십시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의 공로로 구원받았다”라고만 말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섭섭하여 율법에 대해서 한 마디하고 싶으시면 이렇게 만 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율법까지도 지키셨으므로 완전한 십자가의 희생제물이 되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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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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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천교회 2019-03-08 14:54:01

    바른믿음이 좋은 교회를 추천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신고 | 수정 | 삭제

    • 평신도 2019-03-08 14:06:03

      죄사함=의롭다 함이 어떤 방식으로 되느냐가 관건입니다.

      죄사함이 죄를 전혀 짓지 않는 의로운 사람의 의가 전가되어 되는 것인가?
      아니면 죄의 삯(죄책)인 사망을 의로운 사람이 대신 짐으로 죄책이 없어져서 되는 것인가?

      히9:18-22절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또한 이와 같이 피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모세의 율법인 첫언약도 그것을 지킴으로(아무도 100%지킬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고 피로써 죄책을 사함 받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짐승의 피는 완벽하게 우리를 의롭다 할 수 없기 때문에 모형으로 보여주신 것이고 실제 더 좋은 제물인 예수님이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히9:23-28절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한번 죽고 그 후에 심판이 있는 이 첫째 사망과 둘째 사망의 죄책을 담당하심으로 그리스도의 피의 죽음이 우리를 의롭다 함의 구원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우리를 의롭다 하실려는 하나님의 해결책은 인류의 대표이신 예수님이 율법을 지킴으로 우리에게 의를 전가하시는 방법이 아니라 우리의 죄책인 사망을 예수님이 담당하심으로 죄사하여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책인 사망은 단순히 죽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둘째 사망인 지옥의 고통까지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단순히 피만 흘리면 안됩니다. 지옥의 고통을 느끼고 피를 흘려 죽어야합니다. 그 지옥의 고통은 육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조롱당하고 하나님께 버림받는 엄청난 고통이었습니다. 흠없는 제물이어서 의로와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 죄 때문에 사망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의롭기만 해서도 안됩니다. 의로우시면서 모든 인류의 죄값을 담당할 정도로 모든 인류보다 더 가치있어야 합니다. 우리 죄를 위해 단번에 피흘려 고통당해 죽음으로 모든 인류의 죄값이 치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이신 예수님 밖에 되지 않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우리를 의롭다 할 수 있었다면 그 길을 가게 해달라고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모든 생애를 걸쳐서 순종한 율법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할 수 있어서 십자가를 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의롭게 할려면 죄책을 대신 져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리를 향한 사랑으로 그 길을 순종하셨습니다.

      죄사함은 죄책을 대신 짐으로 우리의 죄책이 없어져서 된다는 것입니다.

      그 죄사함이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어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의 영으로 연합하게 된 자에게만 적용됩니다. 그리스도와 연합으로 성령님을 통해 계속 이루어지는 성화의 구원 그리고 죽은 후 천국에 이루어지는 영화의 구원까지 한꺼번에 적용되고 양자됨, 하늘의 속한 모든 신령한 복도 동시에 계속 이루어집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바보들아 2019-03-08 13:54:25

        바보들아! 개혁신학의 최고 근본원리는 오직 성경이란다! 성경으로 돌아가기 위해 늘 연구하고 질문하는 것이 개혁주의의 최고의 정신이란다! 웨민고백서라고 하여 성경과 같은 것은 절대로 아니다. 성경에 예수님이 아담이 지키지 못한 율법을 지켜서 의를 얻는다는 사상이 어디가 있느냐? 시내산의 율법들이 아담에게 처음부터 주어졌었다는 말씀이 어디에 있고, 그것을 지키는 조건으로 영생이 제시되었다는 행위언약 사상이 어디에 있느냐? 천주교는 한번 만들어신 신앙 문서를 성경과 같이 여긴다. 우리가 천주교냐? 서철원처럼 하나님의 백성의 언약이라는 의미로 선악과 사건을 첫 언약이라고 바꾸어 명명하고, 망가진 첫 언약을 예수님이 자기의 피로 복구하여 체결한 신약의 새언약으로 연결시키면 개혁주의가 아닌 것이냐? 신앙문서에 써져 있는 것을 100% 앵무새처럼 따를 것이면, 왜 종교개혁을 했다더냐? 정이철 목사님도 교회 홈피를 보니까 매 주일 오후에 교인들에게 웨민을 가르친다고 한다. 전체 웨민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에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개혁주의를 거부하는 것이냐? 바보들아 ... 바보들아 ...신고 | 수정 | 삭제

        • 갑자기 왜?? 2019-03-08 10:03:01

          예수님은 율법과 모든 하나님의 뜻에 완전하게 순종하셨다 예수님이 단지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죽으셨다는 사실만 강조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에게 죄가 없으셨다는 것만 강조하면 충분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범죄에 대해 저주하시고 진노하신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켜 드리시기 위해 예수님은 완전히 흠이 없고 절대적으로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이어야만 했습니다.

          십자가 외에 다른거 강조하면 예수로 예수를 친다.
          십자가의 피흘림만 강조하시던분이. . .신고 | 수정 | 삭제

          • 신장로 2019-03-07 09:08:41

            ㅇ.마12: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ㅇ.히4:15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ㅇ.히9:14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너희 양심으로 죽
            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셨다.
            ㅇ.요일3:5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ㅇ.고후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
            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신고 | 수정 | 삭제

            • 우동사리 2019-03-07 03:19:29

              예수님이 율법를 않지켰다는게 아니라 율법을 지켜서 우리에게 전가시켜주신 의라는게 성경 말씀 어디에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죽기위해 오셨기에 흠없는 어린양으로서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하신것이지 우리에게 율법를 전가시켜주려는 목적으로 율법을 지켜서 우리에게 의를 전가시켜 주셨다는 말씀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성경으로 대답했으면 좋겠다.신고 | 수정 | 삭제

              • 평신도 2019-03-07 00:00:06

                정독했는데 제가 쓴 글과 크게 다른 것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약간의 차이는 예수님이 율법을 지키신 것을 약간 더 강조한 것입니다.

                누군가 능동순종없이 십자가에 죽는 것도 우리를 의롭다 할 수 있느냐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셔서 능동순종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아마 이 질문을 하실려고 한 것 같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태어나자마자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셨어도 우리의 죄가 용서되느냐? 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람으로 낮아지신 것 자체가 엄청난 순종입니다. 제 판단은 비록 아기였을지라도 흠없는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으로 용서받기 때문에 충분히 우리 죄가 용서된다고 봅니다. 예수님이 아기여서 율법순종의 양이 적든지 노인이 되어서 율법순종의 양이 많든지 흠없는 화목제물인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히9:13-14절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역으로 질문해보겠습니다. 만약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는 없지만 만약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는 계획없이 이땅에 사람으로 예수님을 보내셔서 예수님이 충분한 순종의 의를 나타내시고 사시다가 십자가의 죽음없이 바로 승천하였다면 그리고 성령님이 임재하시어 우리에게 믿음을 주셔서 예수님과 연합하게 되었다면 예수님의 순종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우리는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습니까?

                누군가 이 질문에 대답해주었으면 합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개념에 대해 2019-03-06 22:09:31

                  능동적 순종 논란이 시작될 때부터, 올라오는 모든 글들과 댓글들을 읽어보았다.
                  모든 글들을 읽게 되는 과정에서 능동적 순종 주장과 그냥 순종 주장들의 차이들을 점점 더 확인하게 되었다.

                  우선 능동적 순종은 수동적 순종과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인데, 능동적으로 예수님께서 인간으로써 모든 율법을 준수하시며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의 절정인 율법을 완전하게 준수하시고 이 율법준수가 의를 획득하여 우리에게 전가되었다는 이론이고 따로 수동적 순종으로 속죄가 이루어졌다는 주장이다.
                  이것이 전자이고 후자인 ‘그냥 순종’은 하나님 뜻에 순종하심으로 성자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시기 위해 비하하셔 성육신하시고 고난의 삶을 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지옥에까지 낮아지셨는데, 한 의로운 행위로 인정받으신 하나님 뜻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심 자체가 의이며 율법의 요구 완성이며 속죄라는 이론이다.
                  그리고 모든 율법준수의 의의 전가가 아니고 피흘림이 있어야 사함이 있다는 율법의 요구가 십자가에서 완성되었기 때문에 성도가 의롭다 하심을(죄를 간과하심을) 받고 성령님께서 내주하심으로, 바로 하나님이시며 보호자이신 성령님을 따라 걷는 성도 안에서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졌다는 주장이다.

                  이 두 이론은 외형적으로도 차이가 있다. 성경에(빌2:6~11) 의하면 능동적 순종 이론은 이론상 순종의 범위가 인간으로써의 순종으로 그 범위가 축소된다. 그냥 순종이론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한 성자하나님의 모든 순종하심으로 제한이 없다.
                  성도가 유혹으로 실족했을 때에, 능동적 순종 이론은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여 회개하고 일어서는지 율법준수의 의를 의지하고 일어서는지 난감하나 그냥 순종 이론은 이 부분에 있어 쉽고 명확하다. 구원파적인 주장에 대해서도 난감하지 않고 쉽다. 세부적인 설명은 비슷할지라도 말이다.

                  새로 올라오는 글들을 읽으면서 이 같은 차이들이 행위언약을 보는 시각 차이에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연 해석이 성경말씀 위에 바로 세워져 있는지 데살로니가에 있던 사람들보다 더 고귀한 베뢰아 사람들처럼 성경을 상고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한 것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확실하게 성경말씀으로 상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행위언약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먼저 이미 밝혀주신 분들이 계셨다.


                  행위언약은 큰 두 가지 결함을 가지고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의 인간 창조를 영광의 자리 또는 나락의 길로 떨어질 수 있는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불완전한 상태로 전제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만드신 것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라 보기 어렵고 하나님의 창조경륜에 전적으로 어긋날 뿐만 아니라,
                  이것은 인간의 앙양 곧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을 위해서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하는 칼 바르트의 이론에 기초를 제공했고 칼 바르트의 이론 한 단계 너머에는 신사도운동이나 뉴에이지의 신인합일 사상이 있다.

                  둘째는 행위언약의 출전 본문으로 그 언약 체결 시의 말씀이 아닌 한참 후대의 율법을 든다는 것이다.
                  롬2:14 말씀과 같이 모세의 율법과 법은 분명 원리에 있어 통할 수는 있으나 모세의 율법과 하나님의 계명(명령)은 성경이 구분하고(고전 7:19) 있다.
                  율법 안에 계명의 원래 뜻이 들어 있는 것은 분명하나 모세의 율법과 계명이 동일한 것인가 하는 것은 확인이 필요하다.

                  순종이 불가능한 상태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모세의 율법으로 하나님의 백성 된 삶의 길을 제시해주셨으나, 선악과 계명은 아담에게 하나님의 백성 된 삶의 길을 제시해주신 것인가.
                  모세의 율법은 성경에서 선포한 첫 상속 언약인데 선악과 계명은 무엇을 상속받는가.
                  우리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씨요 약속에 따른 상속자가 되어 새 상속 언약의 적용을 누리고 있다. 선악과 계명은 죄가 세상에 들어온 시작일 뿐이고 상속개념은 없는데 모세의 율법과 동일시 하는 것이 성경에 부합하는 것인가.
                  이미 죄 때문에 상속 언약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예수님께서 새 상속 언약을 이루셨고,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 안에서 누구나 상속자인 양자가 되어 이신고 | 수정 | 삭제

                  • Minn 2019-03-06 18:41:52

                    누구의 사주를 받고 오는 건지 참 궁금하다. 아이디에 '태극기', '남로당 잔당처럼', '조선인민공화국광주지부장'... 내용도 '반동분자', '인민재판'. 같은 사람인지 비슷한 사람인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눈쌀 찌뿌리게 하고 나라를 어지럽히는 그 무리같다. 기독교가 개독교로 불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실은 이런 자들 때문인데... 나는 확신한다. 이런 자들은 그리스도를 모른다. 이런 자들이 싫어하는 사람이 정목사님이라고 생각하니 이것만 봐도 누가 옳은지 알 것 같다. 댓글 달 가치도 없는 자들... 나는 당신들같은 사람들에게 비난받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어짜피 성도는 핍박을 받을 운명이다. 여기서 내가 공감하는 분들은 거의 없다. 천국문은 좁다고 했다.

                    정목사님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모든 댓글은 회원가입 한 자들만 올릴 수 있게 해 주시고, 비난, 비방, 정치성 있는 글들은 삭제 및 회원 강제탈퇴를 해 주십시오. 제 글을 싫으시면 저를 탈퇴시키시더라도, 바르게 주님을 알리려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Minn 2019-03-06 16:15:47

                      댓글들을 보면 참 답답... 능동/수동적 순종 이론을 반대하면 예수님께서 택자들을 위해 낮아지시고 하나님께 순종하신 것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여기 댓글다시는 분들이 아직도 논쟁의 쟁점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난데없이 개혁교리의 수호자들께서 논리는 없이 비아냥과 협박을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같은 경우는 두번 수정되었는데, 최신 수정본을 따르냐고 묻고 싶다. 제대로 된 개혁교회는 웨민의 수정본을 따르지 않는다. 개혁교리라고 무작정 믿는 것은 성경과 교리를 같은 선상에서 보는 것이다. 교리는 성경과 가장 가까운 해석을 따라야 하고, 교리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도 있고 논쟁할 수도 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제대로 알리고 이해하기 위해서다.

                      내 생각에 능동/수동적 순종 이론은
                      1. 예수님의 사역을 둘로 나눈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둘이라고 분석하게 한다. 하나님의 계획은 단 한가지다. 예수님 안에서 교회가 흠없이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 것. 이것은 요한계시록 끝을 보면 안다. 성경의 맨 처음에 아담과 하와를 지으신 것과 대비가 되는 것이다.
                      2. 예수님을 아담과 같은 선상에서 본다. 아담은 결코 예수님과 동등한 존재가 아니다. 좀 더 현실적으로 말하면 인간은 피조물이다. 롬 5:12-21에서 바울이 아담과 예수님을 인류를 대표하는 두 존재로 설명한 것은 죄가 어떻게 인류에 들어왔고 구속이 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3.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개혁교리라고 말하기 힘들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행위언약을 말하면서 아담에게 '생명'이 약속되었다고 하지, 양자로서의 영생을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능동/수동적 순종이론을 말하지 않는다.
                      4. 율법에의 순종이 영생을 얻는다는 언약이 아담 때부터 세상 끝까지 간다고 믿는다. 렘 31:31은 출애굽 이후의 언약을 처음 언약이라고 본다. 그리고 새 언약은 성령의 인치심이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 (율법으로 인한 칭의)과 제자들 (은혜로 인한 칭의)을 비교하시며 절대로 묵은 것과 새것을 같이 쓸 수 없다고 하셨다 (눅 5:27-39).
                      5. 행위언약에 기초하는 이론인데 이 행위언약에 대한 정의가 추론에 의한 것이다. 언약의 진짜 내용은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는 것이다. 아담이 순종하는 동안에는 에덴에서의 삶을 누리게 하셨다. 성경을 보라. 성경의 다른 구절들을 통해 추론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아담에게 영생을 주시기로 하셨다는 내용은 타당한 추론이라고 보기 힘들다.
                      6. 아담의 자손은 예수님을 통해 율법에 순종한 것이 되고, 십자가로 죄사함을 얻었다고 하지만,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의 아담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 이론은 예수님 안에서 받는 모든 은혜를 설명하기에 많이 부족하다.
                      7. 노승수 목사처럼 예수님께서 법을 지키러 오신 것이 자신도 구하기 위해서였다라는 주장이 나오게 한다.
                      8. 예수님께서 율법에 매인 자로 보이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율법 자체이시지 율법에 매인 자가 아니셨다. 율법의 잣대가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지만, 그분은 율법을 뛰어 넘으시므로 잣대가 필요없다. 그래서 완벽한 희생제물이 되실 수 있으셨다. 또 성자이시기에 그의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칭의를 포함한 모든 하늘에서 내려오는 선물을 받게 하신다 (엡 1:3).

                      예수님 안에서 양자로 또 신부로 영생하라고 하시는데 왜 아담으로 영생하길 원하는지 모르겠다.신고 | 수정 | 삭제

                      1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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