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단지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죽으셨다는 사실만 강조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에게 죄가 없으셨다는 것만 강조하면 충분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범죄에 대해 저주하시고 진노하신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켜 드리시기 위해 예수님은 완전히 흠이 없고 절대적으로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이어야만 했습니다.

특히 율법도 잘 지켜야만 했습니다. 율법의 사형선고 하에 있는 잃어버린 자기 백성들을 살리시기 위해 예수님 자신도 율법 아래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율법의 요구를 따르셔야만 했습니다. 태어나신지 8일 만에 할례(눅 2:21)를 받으시는 등 지상에서의 예수님의 귀하신 일생은 시작부터 율법을 준수하시는 삶이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율법을 무시하셨다면, 마치 구약시대의 제물로 드려지는 황소에게 피부병이 있으면 온전한 제물이 되지 못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율법에 대하여 흠결을 가진 예수님의 희생과 피 흘리심도 기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사함’과 ‘의’가 되시기 위한 완전한 희생제물로 드려졌으므로 율법과 모든 면에서 아무 하자가 없어야만 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거룩하셨고, 완전하고 흠이 없으셨습니다. 현미경으로 샅샅이 찾아보아도 율법과 모든 면에서 하나님께 불쾌감을 만들 작은 터럭만한 불순종이나 허물도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고난의 지상 생애와 마지막 십자가의 흘리심이 우리의 죄를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눅 23:47)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처형한 로마 군대의 책임자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모습을 지켜보고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아무 이해가 얽히지 않는 제 3자가 보기에도 예수님은 의롭고 완전하고 흠이 없었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피 흘렸다고만 말하면 안 됩니다. 율법과 모든 면에서 완전하시고 거룩하시고 흠이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자기의 몸을 희생제물로 드리셨다고 강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율법과 모든 하나님의 뜻에 마음과 정신으로 순종하셨습니다. 궁극적으로 율법이 죄인들에게 요구하는 대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 우리의 대표로서 예수님은 율법이 명령하는 대로 저주의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율법의 완성'입니다. 친히 예수님이 율법의 저주를 몸으로 받으셨으므로 고난 받으신 그 몸 안에서 율법은 완성되었고 동시에 율법은 폐하여졌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롬 10:4)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엡 2:15)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의’, ‘죄사함’입니다. 전 생애 동안 우리를 위해 대속의 고난을 당하시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습니다. 전가된 그리스도의 의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표로서 율법을 준수하시고 모든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순종하심의 공로까지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율법준수의 의(능동적 순종의 의)를 획득하고 전가했다고 구별하여 따로 말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의 의와 구별되는 또 하나의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의 의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이 우리의 의이고 구원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 5:9)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능동적, 수동적 순종이라는 용어가 무슨 대수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능동적 순종도 하셨고, 마지막에는 수동적 순종까지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문제는 이 둘을 나누어서 율법준수의 의,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의 의를 따로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의 의를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율법이 구원의 의를 준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율법은 죄인들이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려는 한 가지 목적으로만 왔습니다.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롬 7:7)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갈 3:24)

말로는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구분하지 않는다 하면서 꼭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의 의를 따로 말하는 것은 율법과 십자가, 그리스도의 의의 이중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결국 기독교의 절대적 진리인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허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의 의의 획득과 전가 교리는 창조주가 잃어버린 자기 백성들을 되살리기 위해 성육신하는 목적이 아닙니다. 창조주는 잃어버린 자기 백성들을 대신하여 피 흘리고 죽으심으로 대신 형벌을 받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이 되어 대신 형벌을 받으셨다는 소식이 우리에게 복음입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이 되시어 대신 아담을 대신하여 율법지키신 것이 복음이라는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능동적 친구들이여!

이제부터 말로만 능동적 수동적 순종을 구별하지 않는다고 하지 마십시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의 공로로 구원받았다”라고만 말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섭섭하여 율법에 대해서 한 마디하고 싶으시면 이렇게 만 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율법까지도 지키셨으므로 완전한 십자가의 희생제물이 되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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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