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이 행위언약 안에서 창조되었다는 신학적 주장의 뜻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1)아담은 영생이 없는 상태로 창조되었다.

2)아담은 영생의 상태로 진입가기 위해 선악과로 대표되는 율법들을 준수해야 했다.

3)(성경에 명확하게 나오지 않으나) 영생으로 진입하기 위해 아담이 지켜야 했던 율법은 훗날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십계명과 율법들이다.

4)아담이 율법준수에 실패하여 영원한 죽음에 처해졌다.

5)구원자 예수(제2의 아담)는 아담의 자리에 들어가 모든 율법들을 지켜서 자신과 죄인들을 위한 의를 획득하였다.

6)예수께서 율법을 지켜 얻은 의(능동적 순종의 의)를 전가하여 죄인들에게 칭의가 주어졌다.

7)또한 예수께서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심(수동적 순종의 의)으로 죄인들이 받아야 할 형벌이 제거되었다.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의 의의 전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말로는 두 개가 분리되지 않는다고 하나, 실질적으로 신자에게 전가되는 두 종류의 의를 이야기함으로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우리의 의이고 구원이라는 성경의 구원론을 파괴한다.

근자에 우리의 관심을 끄는 작품을 통하여 아담이 행위언약 안에서 창조되었고, 하나님은 반드시 행위언약의 회복을 통하여 인간을 구원한다고 주장하는 가장 대표적인 청교교 개혁신학자는 코르넬리우스 프롱크이다.
 


“하나님께서는 행위언약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아담이 행위언약을 깨뜨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흠, 이 방법을 시도해 보았지만 실패했노라. 이건 잊어버릴 것이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행위언약을 결코 폐지되거나 취소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담에게서 이어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언약의 요구들을 짊어지셨고 둘째 아담으로서 이 언약의 모든 조건을 지키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택함 받은 자의 대표로서 행위언약의 요구와 조건들을 행하셨습니다.” (프롱크, 도르트신조강해, 236)

“우리의 행위로 구원받지 않으며 다른 분, 즉 예수 그리스도의 행위로 구원받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주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의 순종을 마치 자신들이 공로로 얻어낸 것처럼 받습니다 ... 죄인은 자신의 대표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히 순종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그 죄인에게 전가됩니다.” (프롱크, 236)

위에서 프롱크가 말하는 우리에게 전가된 그리스도의 의는 그리스도의 율법준수를 통하여 얻은 의이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에게 전가된 의가 오직 죄 없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심의 의만 말한다. 프롱크와 같이 아담이 영생을 얻기 위해 율법을 지켜야 했다는 행위언약 안에서 창조되었음을 주장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의 의와는 다른 별개의 ‘율법의 의’를 가르친다. 이런 내용은 사도 바울의 성경 어디에도 없는 내용이다.

프롱크가 예수님이 율법을 지키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였다는 교리를 어떻게 가르치는지 더 살펴보자.

“율법은 조건적인 구원을 약속합니다. 오직 율법에 완전히 순종할 때만 구원을 얻습니다. 이것은 아담이 행위언약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면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 그러나 아무도 하나님의 율법을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타락한 상태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프롱크, 259)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백성을 위해 주님의 모든 계명에 완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자신의 죄의 짐을 느끼는 죄인들에게 기쁜 소식입니다.” (프롱크, 268)

율법과 복음의 해설자 사도 바울의 말은 프롱크의 말과는 아주 다르다. 바울은 율법이 오직 인간을 죄인으로 규정하여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왔다고 했다.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 함이니라” (롬 7: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롬 5:13)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롬 7:7)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갈 3:24)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의 해설자 사도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로서 구원을 말했지, 프롱크처럼 그리스도가 죄인들을 대신하여 율법을 모두 지켰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전 2:2)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갈 3:1)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갈 6:14)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의와 수동적 순종의 의가 우리를 구원했다는 사변적인 신학은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허문다. 성경적 기독교는 하나님이 율법과 십자가 두개로 잃어버린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오직 창조주가 잃어버린 피조물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죽은 피조물들을 살려내는 종교이다. 죄가 들어 온 이후에 주어진 율법은 타락한 피조물들이 살리기 위해 오직 그리스도를 보게 만들었고,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께서도 온전한 십자가의 희생제물이 되시기 위해 율법과 모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을 뿐이다. 율법준수의 의의 획득, 전가 교리는 성경적으로 불가능하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아담이 영생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서 여러 종류의 율법들과 함께 창조되었다는 행위언약 사상이다. 성경에 명확한 근거가 없음에도 학자들이 이런 이론을 발전시켰다. 오히려 성경에는 모세 이전에는 율법이 없었다는 명확한 말씀들만 나온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요 1: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갈 3:17)

성경은 이와 같이 모세를 통하여 주어지기 전에 율법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율법을 지켜서 의를 획득하고 전가하여 우리를 구원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아담 때부터 이미 율법이 주어졌고, 모세 시대에는 단지 기록되었을 뿐이라고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 그것은 율법이 마음에 새겨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프롱크, 도르트신조 강해, 257)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율법을 마음에 새겨주셨습니다.” (프롱크, 257)

“아담은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지킬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때 율법은 사람의 친구였습니다. 아담은 율법을 바라볼 때 자신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사랑했습니다.” (프롱크, 262)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시내산에서의 율법조차도 이스라엘에게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 율법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새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일한 차이는 돌판에 새기셨다는 것입니다.” (프롱크, 258)

그러나 성경은 다음과 같이 율법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가 분명히 있었다고 한다. 성경은 죄가 이미 있었으나 죄를 죄로 규정하지 않는 율법이 없었던 시대가 있었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롬 5:13)

모세 이전에는 율법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상식에 맞고 성경적이다. 아담이 훗날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과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 죽음에 처해졌다는 기존의 행위언약 사상은 성경의 가르침을 살려내지 못한다. 혹시 아담에게 영생을 얻기 위한 계명이 주어졌을지라도 훗날 죄의 종이 되어 죄를 짓기만하고 하나님과 영생을 위한 선을 행할 수 없는 전적으로 타락하고 무능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주어진 율법과 같은 것을 받았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아담은 하나님과 영생을 위해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과 완전한 자유의지를 가졌고, 영혼과 육체 사이에 갈등이 없는 순정상태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성경적 근거도 없는 아담이 지켰어야 할 율법을 상정하고, 그것을 십계명과 모세의 율법들과 동일시하고, 성육신하신 예수님이 아담을 대신하여 십계명과 모세의 율법들을 준수하여 의를 획득하고 전가하셨다는 교리는 성경적으로 불가하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서철원 박사는 기존의 행위언약-은혜언약 사상에 문제가 심각하다고 주장한다. 서철원 박사는 “A New Thought on Covenant Doctrine”, Studies Reformed Theology (Journal in Netherlands, 1996)을 발표하여 개혁신학의 언약 이해인 ‘행위언약과 은혜언약’ 구도에 대해서 ‘첫언약과 새언약’으로 구분하여 성경에 더 합당한 언약 개념을 제안했다. 

서 박사는 선악과를 영생 얻기 위한 조건적 율법으로 보는 것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이 약화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서 박사는 선악과를 아담이 하나님의 백성 될 것을 약정하는 ‘첫 언약’, 그리고 실패한 첫 언약을 회복하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서 맺어진 신약의 ‘새 언약’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백성은 창조주를 자기의 하나님으로 섬기는 책임을 갖는다. 이 책임이 언약체결로 주어졌다. 하나님은 언약을 체결하면 언제든지 백성들이 의존해서 살 생활의 규범을 주셨다. 이 규범에 의해서 하나님 만을 섬기도록 하기 위해서 선악과계명을 주셨다.

첫 언약에 상응해서 새 언약이 신약에 제시되었다 (눅 22:20; 고전 11:25; 고후 3:6; 히 8:8). 전통적 개혁파 신학자들은 행위언약과 은혜언약 도식으로 사고함으로 새 언약을 완전히 도외시하였다. 첫 언약은 행위언약이 아니고 하나님 백성 되기로 한 약정이다. 새 언약은 첫 언약의 성취이다. 두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을 가지시는 경륜을 온전하게 이루신다. 언약 체결로 하나님은 그의 백성 된 아담과 하와와 함께 하심으로 그들을 자기의 백성 삼으신 것을 명백히 하셨다. 이 성경적 언약 개념으로 행위언약과 은혜언약 체계를 바꾸어야 한다.” (서철원, 교의신학전집 3(인간론), 30)

서철원 박사 외에도 기존의 행위언약-은혜언약 사상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마이클 호튼은 메러디스 클라인의 언약 이해를 따라서 ‘창조언약과 은혜언약’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톰 라이트는 언약신학을 아브라함 언약을 계승하는 것으로 주장했고, 칼 바르트는 은혜언약 하나만으로 성경을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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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