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들의 신앙고백서가 후손들의 신앙을 훼손시킨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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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들의 신앙고백서가 후손들의 신앙을 훼손시킨 적이 없다
  • 임진남
  • 승인 2019.02.18 23: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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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교회 신앙과 현대교회 신앙의 차이(111)
벨직신앙고백서의 작성자 귀도 드 브레(Guido de Bres[Guido de Bray, Guy de Bray], 1522–1567)

복음서에서 나오는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독특한 것들이 많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중에 부모들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데리고 나올 때 제자들은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께 나오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이 주님 당신에게 나오는 것을 허락하시고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이 갈 수 있다고 말씀하여 주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하는 주님의 이 가르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한다.

현대 신학 가운데 실용주의 신학은 어린 아이들이 갖고 있는 믿음은 지식적이지 않고 단지 상대방에 대한 신뢰에 그 바탕을 둔다고 가르친다. 물론 너무 어린 아이는 여전히 부모의 손길에 모든 것을 의지해야 한다. 하지만 어린 아이가 자신의 지각을 가지고 어느 정도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나이에 도달하면 어린 아이는 자신의 믿음이 지식으로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부모를 알아보는 가장 어린 나이의 아이는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를 안다.

이것은 어린 아이에게 있어 가장 기본적인 지식이다. 젓을 먹이고 배설물을 치워주며 자신을 보고 웃는 부모가 누구인지를 어린 아이는 알아보고 부모를 향해 웃는다. 어떻게 자신의 부모라고 하는 것을 알고 웃는가? 그것은 그 어린 아이가 가지고 있는 의지할 대상이 부모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성도에게 있어 믿음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어린 아이는 자신의 부모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비록 완전히 성장한 사람들이 가진 지적인 능력이 없을 뿐이지 어린 아이가 가진 믿음은 여전히 자신의 부모를 신뢰하는 지식에 기초해 세워진 믿음인 것이다.

지금 예수님께서 너희가 어린 아이와 같아야 한다고 하는 이 말씀은 정말 어린 아이들이 자신의 의사표시를 온전히 할 수 없고 의식적이고 인격적인 삶이 아직 시작되지 않는 그런 모습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 말씀이 아니다. 성도의 믿음이 돌아가야 할 시기가 그런 시기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현대 신앙은 마치 어린 아이들이 가진 맹목적인 믿음, 또는 무조건적으로 믿으면 된다고 하는 믿음주의를 말씀하시고 있다고 하는 것으로 방향을 돌리고 있다. 이런 가르침은 결국 기독교가 이성적이고 지적이며 합리적인 종교가 아니어도 충분히 말할 수 없는 종교적 경험을 가지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살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결국 하나님의 깊은 곳까지 들어가 이제는 말씀을 배워서 믿음을 가지지 않아도 언제나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런 현대 신학과 신앙은 성도 개인의 인격을 통해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온전한 뜻을 알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모든 지, 정, 의에 대한 인격을 완전히 상실하게 하는 해로운 사상이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미 현대교회는 이렇게 한 개인의 의식과 상관없는 신앙을 마치 기독교의 신앙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지성에 대한 무시와 경시는 결국 기독교를 신비주의로 몰아가고 있다.

지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어린 아이와 같이 되어야 하나님 나라를 소유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말씀하는 이 의미는 어린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무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들 수 있는 자세, 즉 인간의 무력함과 혼합하여 가지고 있는 자기 지식의 확신을 부인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들을 칭찬하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들처럼 받아들인다는 것, 그것을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얻기 위해 어떠한 인간적인 방법을 찾지 않고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선물을 자신의 방법과 시도들을 통해 얻으려고 하는 것을 꾸짖으신 것이다. 어린 아이들이 가진 믿음은 그들의 연약성, 결국 단순한 무지에 의해 훼손을 당한다. 하지만 배움을 통한 지식에 의해 결코 오염되지 않는다. 이 말은 현대교회가 추구하는 신앙의 모습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현대교회는 가르치고 배우지 않고 있다. 성경뿐만 아니라 성경을 통해 만들어진 교리들도 무시하고 있다. 오직 체험과 새로운 경험만을 강조하고 그것이 마치 기독교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칼빈은 모든 인간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을 알기 위해 존재한다고 그렇게 정의하여 준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배워야 한다. 기독교는 감독의 가르침의 터 위에서 배우는 종교라고 하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목사와 장로는 성경의 모든 부분에 있어 아주 충만하고 분명하며 확실한 지식으로 가득차 있어야 한다. 가르치는 교사들이 성경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결국 기독교는 신비주의로 계속 흘러가고 말 것이다.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물려준 신앙의 위대한 산물인 신앙고백들의 가르침은 결코 후손들의 삶과 신앙을 훼손시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단지 그것을 추구하지 않는 자들에 의해 기독교의 진리와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임진남 목사는 임진남 목사는 총신신대원(M.Div)에서 공부한 합동교단 소속 목회자이다. 2012년에 김제예본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칼빈주의 개혁교회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와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인 신앙고백서들 가지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혁신학 연구에 특별한 관심과 소명이 있어 서철원 박사와 함께 신학연구 모임을 진행하는 ‘한국개혁신학연구원’의 총무로 섬기고 있고, 저서로는 설교집 <다니엘이 증거한 복음>, <엘리야가 증거한 복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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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훈 2019-02-19 04:31:44
This is an excellent article. “믿음은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인격적인 피조물의 반응”이라고 말한 Jonathan Edwards의 말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복음을 지식적으로 알아야 하고 복음을 가슴속 깊이 체험할 때 우리는 복음을 행할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 칼빈도 복음이 머릿속에 머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까지 내려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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