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개혁신학자들이 그리스도의 능동적, 수동적 순종의 교리를 믿는다. 이 사실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조선 중기에 송시열 중심의 주류 성리학에 동조하지 않고 다른 학문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사문난적'으로 몰려 참화를 당한 사람들이 많았다. 사문난적이라는 말은 원래 중국에서 사이비 학문을 주장하는 사람을 비판하는데 사용된 용어였다. 조선 중기의 우리 조상들은 그 말을 성리학(유교)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죽이는데 사용했다.

'능동순종의 의의 전가' 교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조선 중기의 사문난적 논쟁을 주도했던 사람들과 같이 유구한 전통의 열차에 몸을 싣고 있다. 옳건 그르건 현재 능동순종의 의의 전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다수이다. 그럼에도 송시열 등이 반대파를 사문난적으로 몰아 귀양보냈던 것처럼, 한국교회의 농동순종의 의의 논쟁이 전개되지는 않을 것 같다. 

성리학의 주류는 주자의 해석을 따르는 사람들었고, 개혁신학의 진정한 주류는 칼빈의 해석과 웨민고백서와 다른 신앙문서들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의의 교리에 있어서는 루터의 해석도 매우 신뢰받고 있다. 능동적 순종의 의의 전가 교리는 루터와 맞지 않고, 칼빈과도 맞지 않는다. 개혁신학에서 중시하는 웨민고백서, 도르트 신조, 벨직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과도 맞지 않는다. 오직 그리스도의 순종이 우리를 구원했다고 하지,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의 의의 전가를 말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순종하여 얻은 의를 둘로 나누어서 가르치기 시작한 사람들은 1646년의 웨민고백서 작성에 참여했으나, 12년 후 1658년에 별도의 사보이 선언문을 작성했던 회중파 청교도들이다. 회중파 청교도들의 신앙노선은 정통 칼빈파와  조금 달랐다. 회중파 청교도들은 칼빈이 가장 중시한 법정적 칭의를 전적으로 따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신칭의를 넘어서는 개인의 체험,  즉 감각으로 느껴지는 성령의 성화체험을 추구했다. 그것은 훗날의 오순절 운동의 성령세례의 초기 형태였다. 

회중파 청교도들은 구원준비론이라는 특이한 신학을 발전시켰다. 성경이 강조하는 것은 단순하게 "주 예수를 구주로 믿음으면 구원을 얻는다"인데, 회중파 청교도는 전 국민을 교인으로 여기는 영국 성공회 신학에 대한 심각한 반발과 각성으로 말미암아 탄생했다고 할 정도로 개인의 분명한 회심을 강조하였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회심의 과정을 지나치게 세밀하게 설명하고 도식화시키는 또 다른 우를 범하고 말았다.

회중파 청교도는 인간의 회심 이전의 영적각성의 단계를 매우 중시하였고, 그 단계에서 인간이 해야 할 일을 강조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다수가 칼빈이 구원과 함께 시작되는 성화와 관련하여 가르쳤던 내용들이다. 회중파 청교도들이 발전키시 회심 준비론에서 가르치는 회심 전의 영적각성의 단계에서 인간이 해야 할 일들에 대한 내용을 보면, 상당 부분이 성화와 관련된 내용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에드워즈의 회심준비론을 다루었던 양낙홍 교수는 에드워즈의 구원론을 성화론으로 바꾸어서 적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중파 청교도들은 묵상을 매우 중시했다. 그러나 에드워즈 등의 사례로 볼 때, 그들은 묵상하면서 성령 안에서 ‘상상’하는 위험성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묵상하다가 내면에서 떠오르는 특별한 ‘인상’을 거부하지 않았다. 이것은 주관적 계시를 잉태하기 쉬운 위험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에드워즈의 자서전을 보면, 그는 삼위일체 교리와 성령에 대한 묵상을 자주했다. 에드워즈는 숲에서 묵상하다가 삼위일체의 영광을 감각으로 경험하고, 성령의 영광을 감각으로 달콤하게 체험했다는 등의 간증을 자서전에 자주 기록하였다. 그런 내용은 성경적인 말씀 묵상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특이한 현상인데, 이는 중세의 신비적인 관상기도 영성과 유사하다. 실제로 회중파 청교도들이 중세의 신비주의자 버나드의 책을 좋아하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리고 이후 회중파 청교도는 미국의 자유주의가 유입되는 통로가 되었다고 할 정도로 빨리 자유주의를 수용했다고 진단하는 학자들도 많다.

회중파 청교도들이 1646년 웨민고백서에 동참했으나, 12년 후에 웨민고백서의 정신에 만족하지 자신들만의 고유한 신앙 내용을 담은 ‘사보이 선언’에서 능동적, 수동적 순종의 개념이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종교개혁과 칼빈의 신앙을 계승했다는 점에서 같았으나, 세부적으로 회중파 청교도와 장로교 청교도의 신앙은 처음부터 조금 달랐다. 
 


장로교의 최고의 신앙문서는 웨민고백서이다. 영어권에서는 웨민고백서를 개혁신학의 표준문서라고 표현한다. 12,000 교회로 구성된 예장 합동의 교세는 전체 한국교회의 1/4 정도를 구성하고 있다. 예장 합동은 이전부터 지금까지 웨민고백서를 최고의 신앙문서로 여긴다. (고)박형룡 박사과 더불어 합동의 신학의 살아있는 나침반이라고 여겨지는 서철원 박사는 능동적, 수동적 순종을 ‘전적으로 잘못된 신학’, ‘쓸모없는 사색의 산물’로 규정한다. 그리고 서철원 박사의 가르침을 전적으로 배우려는 제자들과 후학들이 합동 안에 산재하고 있다.

무엇보다 능동적 순종의 의의 전가 교리는 성경적이지 않다. 그러므로 능동적 순종 교리논쟁이 현대판 사문난적 참화로 전개되지는 못한다. 오히려 성경과 역사를 근거로 더 첨예한 논쟁이 진행되면, 그 동안 ‘능동적 순종의 의의 전가’를 연구하여 학위를 취득하고 교수가 된 많은 분들의 신학이 허물어지는 고통을 당하게 될 수 있다. 그 상황에까지 가지 않고 조용하고 자연스러운 조정이 이루어지는 것이 좋다. 그 동안 능동적 순종의 의의 전가 교리를 절대적 진리로 여기며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사문난적 논쟁으로 곤욕을 치르게 했던 조선의 주류 성리학자들과 같은 교만한 자세를 가졌던 사람들의 태도가 조용히 전향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순종을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으로 나눈 예전의 사람들의 본래의 의도는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강조하고자 함이었다. 능동적, 수동적 순종의 의의 전가 교리를 믿는 프롱크도 루터의 신학사상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루터는 우리를 대신하신 그리스도의 순종을 하나만 가르치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분명하게 하려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신 것을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라고 하고,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을 ‘수동적 순종’이라고 합니다. 이런 말을 쓰는 목적은 그리스도의 구속이 완전함을 분명히 드러내서, 죄인이 더는 자기 구원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죄인은 그저 성령님께서 말씀을 통해 일으키신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아들이면 됩니다.”(프롱크,「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터는 없네」, 158)

구원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만으로 다 이루어졌음을 강조하기 원한 사람들이 만든 능동적 순종, 수동적 순종 교리가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핵심인 십자가를 슬그머니 뭉개면서 올라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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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