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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롱크는 이 시대의 교회와 신앙을 빛내는 귀한 보석 같은 인물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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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13  01: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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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유한하고 부족하여 한 가지 일을 하면 그 때문에 또 한 가지 예기치 않은 사태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단지 기존의 개혁신학의 그리스도의 능동적, 수동적 순종 이론을 거의 모든 유명한 학자들이 따르고 있고, 그 근본원인이 선악과 해석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최근 청교도 개혁주의권에서 크게 관심받는 프롱크의 책을 선택했다.

신호섭 교수의 작품 「전가교리」를 자료로 이용하고 싶었다. 언젠가 <바른믿음>에 소개하는 기사를 올릴 때, 대략 그 내용을 간접적으로 보았으므로 그 속에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교리에 관한 많은 자료들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그러나 이 책을 구할 수 없었고, 누군가 대략 구술하여 주는 요점정리로는 심각한 논쟁의 자료로 삼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최근에 매우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프롱크의 책이었다. 만일 신호섭 교수의 책을 구하여 자료로 이용했다면, 신 교수와 일평생 원수가 되었을 것이니 오히려 잘 되었다고 본다. 프롱크는 현재 적을 두고 있는 학교의 교수이기도 하다. 프롱크는 한국 사람도 아니고 <바른믿음>을 보지도 못하니, 누가 일부러 “당신 학교의 학생이 당신을 비판하는 글을 썼다”라고 영어로 메일을 보내기 전에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 하나가 염려된다. 프롱크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이다. 사실 그것까지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단지 저명한 개혁주의 학자 90% 이상이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동을 분리하고, 능동적 순종의 의가 전가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 손을 뻗히면 바로 잡을 수 있는 자료를 택하였을 뿐인데, 프롱크를 특별하게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오해가 컸을 것 같다. 어제 밤에 벌코프의 능동적 순종의 부분을 보니, 더 많은 자료들이 많았다. 벌코프의 책을 자료로 이용했으면 좋았을 것인데, 왜 프롱크의 책을 나에게 선물해 줘 가지고 ...

최근 나를 책의 세계로 빠지게 만드는 대표적인 외국인 저자 두 사람과 한국인 저자 한 사람이 있다. 외국인들은 프롱크, 칼 쇼울즈이고, 한국인은 서철원 박사이다. 서철원 박사의 최근 작품을 손에 잡을 때에는 “이미 다 배워서 아는 내용이니, 정리하는 마음으로 가벼이 보지!”였다. 그런데 다시 막상 열어보니 아니었다. 서 박사님의 문장은 함축적이다. 짧은 한 문장 한 문장이 일반 책에서는 한 페이지, 두 페이지로 설명할 내용들이다. 그냥 한번 읽어서는 다 소화되지 않는 깊고 또한 어려운 작품이 서철원 박사의 최근의 저서이다.
 

   


그 이전에 프롱크의 책과 칼 쇼울즈의 작품을 통해 먼저 독서의 맛에 빠지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의 작품을 번역한 사람들의 실력도 매우 탁월하였다. 번역서들을 읽을 때, “이 부분은 원저와 다른 내용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부분이 많으나, 프롱크와 칼 쇼올스의 작품의 번역에서는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늘은 능동순종에 대한 논쟁의 와중에서 내가 무심코 프롱크의 작품을 이용함으로서 상처를 받은 많은 분들에게 사과하는 의미가 담긴 글을 쓰려고 한다. 내가 얼마나 프롱크를 귀하게 여기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다. 현재 프롱크의 도르트 신조를 강해하는 천천히 읽고 있는 중이므로 마치면 서평할 것이다. 오늘은 이미 읽은 프로크의 작품「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터는 없네」를 통해 배운 점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다음의 내용에 관심이 가는 사람들은 필이 이 책을 구입하여 독서하기 바란다.

1. 프롱크는 내가 경험한 많은 저자들 가운데 가장 단순하고도 선명하게 성경의 ‘지식의 말씀’과 ‘지혜의 말씀’에 대하여 바른 이해를 가지게 만들었다.

2. 프롱크는 종교개혁을 시작한 루터와 천주교에 끝까지 충성하면서 천주교의 문제점을 지적한 에라스뮈스 두 사람의 관계, 두 사람의 사상의 차이, 그리고 특히 두 사람 사이에 오고간 논쟁, 즉 루터의 ‘의지의 속박’과 에라스뮈스의 ‘자유의지’를 잘 설명했다.

3. 프롱크는 구원에 대하여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펠라기우스주의로부터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을 확립하기 위한 루터의 열정을 잘 보여준다. 프롱크는 요즘 우리에게 예민한 주제를 종종 언급하였다. 프롱크는 루터가 구원이 오직 그리스도의 순종만으로 이루어졌다고 강조했는데, 후대의 사람들이 그리스의 순종을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으로 더 세밀하게 구분하였다고 설명했다. 후대의 사람들이 그리한 것은 펠라기우스주의로부터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더욱 더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리스도의 율법준수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약화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정이철의 말).

4. 프롱크는 믿음에 의해 칭의가 곧 바로 따르는 것처럼, 칭의에는 성화가 곧 바로 뒤 따른다는 루터의 신학을 잘 설명했다.

5. 프롱크는 청교도 운동의 시작, 발전, 특징, 그리고 영국의 청교도 운동이 끝나면서 등장한 웨슬리와 휫필드의 복음운동, 그리고 장로교, 회중교, 침례교의 출발을 잘 설명하였다.

6. 프롱크는 청교도의 칭의가 칼빈 등의 칭의 사상과는 달리 하나님의 ‘법정’의 행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청교도들은 칭의를 사람의 체험 속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이해했음다고 설명하였다.

이점은 정이철 목사가 뉴잉글랜드의 청교도 에드워즈의 신학을 비판한면서 강하게 지적한 ‘성령의 성화체험’과 관련된 것이다. 에드워즈는 부인 사라처럼 오래 믿는 자에게, 또는 ‘영적각성’(회심준비 단계)의 단계를 넘어 이제 막 회심에 이르는 사람에게 성령의 특별임재가 나타나서 환상, 입신, 황홍결 등을 경험하는 ‘신적인 빛’ 체험을 중시하였다. 이것은 훗날의 오순절 운동의 성령세례와 신사도 운동의 기름부음의 원형으로 간주되어야 할 위험한 것이었다.

7. 프롱크는 탁월한 청교도 신학자 존 오웬의 성경관과 바르트의 성경관을 잘 비교하였다.

8. 프롱크는 네널란드 개혁교회의 분열을 초래한 타락전 선택설과 타락후 선택설의 차이와 후대에 미친 영향을 잘 설명하였다.

9. 프롱크는 유아세례 문제가 대두된 배경과 핵심적 논점들을 설명하였다.

10. 프롱크는 단 번에 일어난 그리스도의 속죄를 현재 살아있는 믿음, 즉 매일 매일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고 붙드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으로 설명한 루터의 칭의 신학을 잘 설명했다.

11. 프롱크는 기존의 관점에 충실한 입장에서 행위언약을 설명했다. 아담이 계명에 불순종하여 영생을 얻지 못하고 죽었으므로, 아담을 대신하여 오신 예수는 율법에 순종함으로 행위언약을 복구하였고, 우리가 그 분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기존의 행위언약 해석을 취하였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이므로 부연설명하자면, 서철원 박사 등은 이미 영생을 소유한 아담이 계속 하나님 백성의 신분과 삶을 즐거이 준수하기를 기뻐하지 않고, 대신에 자기의 독자적인 길을 가려고 결단하여 선악과를 범함으로 영생을 잃고 죽게 되었다고 본다.

프롱크 등의 기존의 관점을 취하는 사람들은 1)예수께서는 율법에 순종하여 행위언약을 복구하고, 2)십자가에 달려 죄 값을 배상함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본다. 서철원 교수 등의 새관점(?)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심으로 언약을 배반한 우리가 받을 형벌을 대신 당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한다. 또한 십자가 이전에 율법의 정죄를 받아 사망선고를 받은 타락한 자들에게 ‘율법의 마침’이 되시기 위해 율법에도 흠이 없는 삶을 사셨다.

12. 프롱크는 이 책의 마지막 장 “성령의 기름부으시는 설교”에서 청교도 개혁주의자들에게서 발견되는 일반적인 약점을 노출하였다. 로이드 존스가 주장한 기름부으심과 부흥에 관한 사상을 그대로 따라갔다. 프롱크는 인간의 방법으로 인간의 의지를 움직이는 피니의 부흥 방법이 펠라기우스주의라고 바판했으나, 동시에 로이드존스가 주장한 오순절주의적 성령사상에 대해서는 명확한 구분이나 분별의 성향을 보이지 않았다.

이상으로 간략하게 열거한 것처럼, 프롱크의 신학 사상과 가르침은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그런 수준을 훨씬 능가한다. 프롱크는 이 시대의 기독교를 수호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중요한 학자이고 저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에게 그러하듯이, 프롱크게도 이 시대의 한 사람으로서 드러내야만 하는 필연적인 티가 있다. 그 중의 하나가 기존의 능동적 수종적 순종 사상을 그대로 따른다는 것, 그리고 로이드존수의 성령사상에 대한 경계선이 약하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프롱크 선생님의 작품「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터는 없네」를 꼭 구입하여 일독하기를 권한다. 한 가지 첨부하고 싶은 것은 보통의 책을 대하듯이 가벼이 빨리 읽으려고 하면, 그의 책 속에 담겨진 보화들이 숨겨진 채로 지나가게 될 것임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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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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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롱크는 괜찮은 신학자? 2019-02-13 22:44:15

    http://m.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1370
    며칠 전에 올라온 글에서는 프롱크의 해석에 오류가 있다고 하셨는데 그정도는 이해되는 수준인건가요?신고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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