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신학을 말하는 목사들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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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신학을 말하는 목사들의 두 얼굴
  • 임진남
  • 승인 2019.02.12 10:31
  •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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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는 개혁신학에 대한 상반된 논의를 대하고 있다. 그런데 자신의 신학의 정당성을 해명하고, 바른 신학이라고 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당사자 간의 토론과 대화의 모습은 사라지고 개인의 페이스북에서 상대방의 인격을 모독하는 아주 저질스러운 모습들을 본다.

사실 필자는 정이철 목사와 노승수 목사의 신학적 견해의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중간에서 서로 화해권면을 시도하였다. 우선 정이철 목사에게 노승수 목사에 대한 기사를 내려줄 것을 부탁하였고, 정이철 목사는 좋은 의도로 받아주었다.

그런데 노승수 목사에 대한 기사가 내려가자마자 노 목사는 개인 페이스 북에서 정이철 목사가 기사를 내린 것에 대하여 조롱과 조소를 하면서 법적조치를 계속한다고 자신의 팔로워들에게 말한 것을 어떤 분이 캡쳐하여 보내주었다. 그 후로 필자는 서로 간의 화해를 위해 노력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런데 어리석은 목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자신의 명예와 인격이 무시를 당하였다고 하면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하려고 하는 자들은 상대방의 인격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최근 한국에서 자생한 개혁신학을 말하는 목사들의 행태를 보면 아주 예의가 없다. 자신이 알고 있는 개혁신학만이 전부인줄 알고 상대방을 모독하는 것은 진정한 개혁주의 신학을 추구하는 자들이 아니다.

개혁신학의 프레임은 상당히 넓다. 예를 들어 개혁신학이 17세기에 최종적으로 다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 엄밀한 개혁주의를 추구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신학만이 가장 우월한 개혁신학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와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 속에서 성경적 바른 신학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피를 흘렸다는 것을 안다면 쉽게 함부로 자신의 신학만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타인을 조롱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교부들도 오류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교부들의 신학을 통해 더 발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개혁신학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오직 성경만이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성경을 통해 교리와 교의가 세워졌으므로 개혁주의 목사들은 자신들의 교리와 교의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렇게 넓은 개혁주의 신학을 어리석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으로만 한정하는 것은 미련한 것이다. 또한 진정 자신이 개혁주의 신학과 목회를 사랑한다면, 자신의 신학적 입장에 대하여 타인이 오류가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고 곧장 세상 법에 고소를 한다하는 것은 개혁주의를 떠나 성경의 가르침에 불순종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개혁주의는 가장 성경적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억울함을 당하였다면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하라, 그리고 전능하신 분께 모든 것을 맡겨라.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세상 사람들이 해결하려고 하는 세상적 방법을 버리고 오직 성경말씀에 순종하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개혁신학을 말하는 것은 두 얼굴을 가진 자이다.

개혁신학에서 가르치는 성화는 완전한 성화가 아니다. 또한 성화 자체는 불완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자신의 신학은 완전한 것처럼 인식하고 타인은 불완전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이런 어리석고 어린아이처럼 징징대는 것이다. 이제는 서로 그만 하길 바란다. 피차 물고 물으면 멸망당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임진남 목사는 임진남 목사는 총신신대원(M.Div)에서 공부한 합동교단 소속 목회자이다. 2012년에 김제예본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칼빈주의 개혁교회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와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인 신앙고백서들 가지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혁신학 연구에 특별한 관심과 소명이 있어 서철원 박사와 함께 신학연구 모임을 진행하는 ‘한국개혁신학연구원’의 총무로 섬기고 있고, 저서로는 설교집 <다니엘이 증거한 복음>, <엘리야가 증거한 복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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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2019-02-12 23:54:03
루터는 공재설이고 칼뱅은 영적임재설이었죠. 예수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짧은 한 문장 안에도 무수히 많은 의미가 담겨 있고 기독교 이천년 역사는 사도행전 15장에 등장하는 예루살렘 공의회 이후 그 의미들과 해석들을 놓고 논쟁한 논쟁의 역사였습니다. 이를 사탄이고 분쟁이고 시기니 분노니 살인으로 이해하시면 기독교의 역사 자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박재웅 2019-02-12 23:46:39
예컨데 말틴 루터의 화채설과 죤 칼빈의 기념설 주장으로 함께 개혁하던 사제들이 서로 등을 돌린 일을 기억해야 합니다 도대체 설이 무엇입니까? 설이 진리 입니까? 설이 구원입니까? 진리도 구원도 아닌 설로 설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존심이 상하고 체면이 깎여서 갈라진다면 그것을 누가 조자 했을까요? 사탄은 분쟁 시기 분노 살인 등을 저지르도록 역사하는 영 입니다 사탄의 하수인 되지 않도록 기도하고 주님을 높이는 신학자가 되기를 염원 합니다 감사합니다

바울처럼 2019-02-12 23:39:43
그렇다면 종교개혁은 일어나지 않았겠지요?

박재웅 2019-02-12 23:36:46
신학은 신학일 뿐 신학이 진리 자체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어떤 신학이든지 다소 오류가 있다고 보는 견해는타당 합니다.이점을 솔직히 인정한다면 함께 연구하는 입장에서 다툴 이유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전혀 없습니다.다툼의 원인은 신학에 있는것이 아니라 자신의 탐욕에 기인한 것입니다.이같은 점을 개선하려면 발표는 발표로 끝나야 합니다 결코 상대의 논리와 주장에 공격적인 토를 달지 말고 특히 자신의 신학적 견해가 옳다는 논쟁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냥 차이를 발견할 뿐이고 그 차이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나가는 행인 2019-02-12 21:44:13
꽉막힌 논리 타인의 말을 수용하지 않는태도... 목이곧은 사람들...이 글의 필자 덕에 총신에 가지 않은 것을 하나님의 은혜임을 다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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