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빙크의 그리스도의 비하 사역(1)

서철원 박사는 바빙크 신학이 사변이 있다고 했다. 바빙크는 20세기 대표적인 칼빈파 신학자이다. 바빙크 이후에 진행된 칼빈파 신학은 바빙크보다 더 사변적으로 전개되었다. 한국의 석학은 사변으로 경도하는 개혁파 신학에 대해서 주의를 경고했다. 한국 개혁파는 세계 개혁파를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한국 개혁파가 바르게 선다면 세계 개혁파가 루터와 칼빈에 입각한 종교개혁 사상을 풍성하게 형성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서 박사의 견해를 따르면 바빙크의 신학보다 더 사색적이지 않고, 성경과 교리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훈련하면 된다.

그리스도론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이다. 필자는 그것을 복음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그런데 바빙크는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비하 사역과 승귀 사역으로 구분했다. 47장이 “그리스도의 비하 사역”이다(개혁교의학, 박태현 역, 395-515). 그리스도의 비하 사역에서 바빙크는 그리스도의 속죄 교리(속죄제물)를 강조한다.

바빙크는 기독교에서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사안에서 삼위일체와 그리스도 양성 교리가 형성되었고, 그리스도의 사역은 다른 성격이 있다고 제시했다( Ibid, 412). 그리스도의 사역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생애이고, 그 정점에는 속죄제물의 십자가가 있다. 바빙크는 속사도, 교부들은 속죄제물(박태현은 희생제물로 번역함)로 말하는 것에서 그쳤다고 제시한다(Ibid, 412). 바빙크는 속죄제물로 오는 효과에 대해서 다양한 이해가 있음을 제시했다.

그런데 스콜라 시대에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다른 생각이 들어왔다(Ibid, 415). 안셀무스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우리의 죄를 위한 속죄제사로 여기는 중심에서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고 구원하기를 원한다는 것으로 전환한 것이다(Ibid, 416). 둔스 스코투스에 와서는 죄책의 무한성, 그리스도 공로의 무한성을 부정했고, 그리스도의 제사는 그 자체로 충분했다는 것을 부인했고, 성육신과 배상을 순전히 자의적인 것,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으로 바꾸었다(Ibid, 416).

더 나아가 아벨라는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고난이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계시가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계시였을 뿐이며, 그리스도는 자신의 인생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말과 모범을 통해 가르쳤으며, 이를 통해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사랑을 깨달으며, 이것 가운데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의 구원하고 화목하게 하는 능력이 담겨 있다고 일방적으로 강조했다(Ibid, 417).

토마스는 안셀무스처럼 배상의 죽음이 아닌, 그리스도의 고난과 전반적인 순종으로 확대했다. 토마스는 그리스도가 머리이며 교회는 그의 몸이라는 사실을 통해, 자기에게 속한 자들에게 전가되는 그리스도의 공로를 안셀무스보다 더 나은 방식으로 해설했다(Ibid, 418). 로마교회는 교회에서 은혜를 시여하는 것으로 주장하기 때문에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

바빙크는 속죄에 객관적 측면과 주관적 측면을 제시했다(Ibid, 418). 그러나 둘을 구별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리스도 사역 전체를 구속 혹은 보상 개념 아래에 포함시켰다. 종교개혁은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 로마교회 가르침과 다른 것이 아니었으며, 소시누스주의적 공격에 대항하여 그리스도의 배상을 필사적으로 변호했다(Ibid, 418).

바빙크는 그리스도의 사역이 전적인 순종, 능동적이고 수동적인 순종이고, 그리고 사역은 삼중직(선지자, 제사장, 왕)으로 수행한 것으로 제시한다(Ibid, 418-19). 그리스도는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 객관적 측면의 속죄를 완수했다. 이것은 칼빈이 1542년 제네바요리문답에서 최초로 체계화시킨 것인데, 루터파, 로마교회도 부정하지 못한다. 속죄의 객관적인 측면은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속죄제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변화시켰는데, 죄, 죽음, 사탄, 세상의 모든 것에 변화를 주었다. 첫째 유익은 죄의 용서이고, 그 결과 오염, 죽음, 율법, 사탄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이며, 충분한 구원자, 선지자, 제사장, 왕이시다(Ibid, 419).

바빙크는 이러한 객관적인 속죄 개념이 없는 부류로서 소시누스파, 오시안더, 칼슈타트, 프랑크, 슈벵크펠트, 바이겔, 뵈메, 퀘이커파, 진젠도르프, 스웨덴보르그 등을 지목했다(Ibid, 420-21). 스웨덴보르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이 구원이라는 믿음을 삼위일체와 더불어 교회를 파괴하는 근본적인 오류라고 주장했다(Ibid, 421). 소시누스파는 그리스도의 신성 교리와 함께 속죄 교리를 강력하게 반대했다(Ibid, 423). 소시누스파는 속죄 교리를 부정하면서, 수동적 순종이 불가능하다고 제시했다(Ibid, 423-24). 그래서 능동적 수동과 수동적 순종을 모순되게 만들었다. 그래서 결론을 속죄 교리를 해로운 것으로 규정했다(Ibid, 424). 소시누스파는 하나님보다 그리스도를 더 높인기 때문이라고 항변했다(Ibid, 424). 바빙크는 속죄 교리를 반대한 것의 완성판을 소시누스로 제시하고, 후대는 모두 소시누스를 반복할 뿐이라고 제시했다(Ibid, 425).

소시누스파가 그리스도의 속죄 교리를 부정하는 내용은 자유주의와 현대신학이 그대로 답습했다. 그들은 소시누스파를 따르지 않는다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주장하는 내용은 같았다. 현대신학은 법정적 칭의 개념을 대체하려고 노력했다(Ibid, 427). 자유주의에서 속죄 교리를 부정한 대표적인 위인은 리츌이다(Ibid, 431). 지상에 하나님 나라를 설립하는 것을 목표로 그리스도가 자기를 제물로 바쳤다고 제시했다(Ibid, 431). 리츌은 인간에게 있는 죄책감과 소외를 하나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제거하는 방법을 추구했다(Ibid, 432).

속죄 교리를 부정하는 것은 보편구원론과 연결된다. 그러한 속죄 교리는 네덜란드, 영미권에 호의적으로 대하는 주제였다(Ibid, 436). 아미랄두스의 가설적 보편구원론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 많이 수용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속죄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모범적 고난 가운데 용서를 적용하는 구조였다(Ibid, 437).

바빙크의 개혁교회의학 3권(박태현 역, 부흥과개혁사) 440쪽까지 요약에서 바빙크는 그리스도의 속죄 교리에 대해서 간략하게 제시한 뒤에(409-412쪽), 속죄 교리를 부정하는 유형을 시대별로 제시했다. 그리스도의 속죄 교리를 무력화시키거나 부정하는 것은 스콜라 신학에서 시작해서 중교개혁 후기, 자유주의, 현대신학 시대와 지역에서 항상 일어났고, 많은 사람에게 인기를 끌었다.

한국 교회는 고대 교회 수준의 간략한 속죄 이해를 갖고 있다. 스콜라신 이해와 자유주의와 현대신학의 이해를 혼합하여 주장한다면 순간 아찔할 것이다. 죄사함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죄를 씻음의 효력이 어디인지 분명하게 알기 때문에, 자기 죄사함의 근원을 밝히 말할 것이다. 나의 죄는 대제사장이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구속제물로 드렸고, 아버지께서 열납하심으로 사함되었다. 이 죄사함을 아는 지식은 승천하신 주께서 보내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는 것이다. 이 복음을 전해만 새생명이 살아나고, 이 복음이 그리스도인에게 유일한 양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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