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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목사와 청교도 개혁신학자 프롱크의 능동순종의 공통점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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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10  01:5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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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여 저주받은 백성을 되살리기 위해 성자 하나님께서 죄 없는 인성을 입으셨다. 성육신은 버려진 자기 백성들을 위해 대신 언약파기의 형벌을 받으시기 위한 하나님의 선택이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어 대신 피 흘리고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속죄와 의를 선물하여 주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자와 피의 속죄를 약화시키는 모든 이론은 사탄적이다. 그 어떤 개혁신학자의 책에 그런 내용이 있다면, 그런 이론은 비성경적이다. 예수께서 율법준수(능동순종)를 통해 하나님 백성의 의를, 그리고 속죄는 십자가의 죽으심(수동순종)으로 이루어주셨다는 사상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인으로서 세계 개혁신학의 발전에 크게 공헌한 서철원 박사도 그 점을 다음과 같이 심각하게 경고하였다.

   

"전통적 신학에서 예수의 율법준수를 능동적 순종(obedientia activa), 십자가의 죽음을 피동적 순종(obedientia passiva)이라고 한 구분과 가르침은 전적으로 잘못되었다. 그리스도가 율법준수로 의를 획득하여 우리에게 전가한 것이 아니고, 피 흘려 죄 값을 다 치르므로 죄용서를 이루신 것이 의이다. 이 의를 받아 우리가 영생하게 되었다."(서철원 박사)1)

예수께서 율법준수로 하나님 백성의 의(자격)를, 그리고 십자가의 피로 형벌의 면제를 선물하여 주셨다는 사상은 일핏 보기에 문제가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속죄와 칭의를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심각한 위험성이 있다. 기독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 구원을 선물하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십자가 무너뜨리거나 약화시키면 이단이다. 이단은 예수를 성경과 다르게 믿게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의 의와 다른 별도의 능동적 순종의 의의 전가 개념은 예수로 예수를 약화시키는 일종의 이단사상이다. 율법으로 십자가를 괴롭히는 비성경적인 이론이다. 율법의 예수가 십자가의 예수를 공격하는 의도하지 않은 고도의 이단술책이다.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 5:9)

성경은 의와 속죄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에서 나온다고 가르친다. 예수의 율법준수(능동순종)에서 의가 나왔다고 매우 주장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예수의 십자가의 피(수동순종)에 대해서는 별로 강조하지 않는 성향이 보인다. 십자가를 약화시키면서 능동순종을 강조하는 방식은 이것을 주장했던  선배 개혁주의자들의 의도에서 벗어난다.

다음의 성경 말씀을 보라! 칭의와 속죄 등 하나님 백성되게 만드는 하나님의 은혜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즉 십자가의 속죄이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2)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 5:9)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19)

능동순종이 십자가의 속죄를 허물면 그로써 이단 사상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능동순종을 강하게 주장하면 반드시 십자가를 약화시키는 특성이 나타난다. 그래서 서철원 박사는 능동순종과 수동순종으로 구분하는 것이 전적으로 잘못되었다고 경고하였다. 

 

능동순종과 행위언약

능동순종 개념은 아담의 선악과-행위언약의 해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능동순종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고 거기에다 자신의 궤변들을 덧붙여 주장하는 노 목사를 비롯한 능동순종을 특별히 강조하는 모든 사람들의 이론은 선악과-행위언약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리스도 자신 역시 구원되어야 하는 존재로서 그가 이루신 율법에 대한 온전한 순종, 곧 행위언약에 대한 성취인 것이죠.”(노 목사, 강남성도교회 싸이트, 2017.12.15)

미국 청교도 신학교(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의 교수이고, 현재 청교도 개혁주의 신학 분야에서 매우 인기 있는 저자이고 강사인 코르넬리스 프롱크도 아담과 하나님 사이에서 있었던 선악과-행위언약 때문에 능동적, 수동적 순종의 개념이 등장했다고 말했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수동적 순종을 본래 아담과 맺어진 언약의 조건을 이룬 일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코르넬리스 프롱크)2)

“그리스도는 둘째 아담으로서 행위언약의 요구를 짊어짐으로 이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능동적이고 수종적인 순종으로 우리의 구원을 얻으셨기 때문에 ...”(코르넬리스 프롱크)3)

유명한 청교도 개혁주의자 칼 쇼올스도 밸직신앙고백서 해설하는 작품에서 아담의 행위언약 때문에 예수께서 율법준수(능동순종)를 통해 아담이 실패한 행위언약의 조건을 성취하여 우리를 구원했다고 설명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지키셨고 값을 치르셨으며 우리가 절대 지킬 수 없었던 행위언약의 모든 조건을 성취하였습니다.”(칼 쇼올스)4)

 

행위언약 해석의 오류와 능동순종

노 목사 같은 궤변자가 비성경적인 능동순종에 힘쓰는 것은 그러려니 하겠으나, 프롱크와 칼 쇼울스 같은 존경스러운 청교도 개혁주의자들이 능동순종을 당연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담의 선악과-행위언약에 대한 그릇된 해석을 무비판적으로 따라가기 때문이다. 선악과에 대한  어떤 해석을 취하는가에 따라 비성경적인 능동순종 사상으로 들어가느냐? 마느냐?가 결정되어진다.

선악과에 대한 해석 A>
선악과는 하나님 백성으로서 영생을 받은 아담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기를 영원히 즐거워할 것인가? 말 것인가? 를 스스로 결정하여 표시하기 위한 아담과 하나님 사이의 '약정'이었다.

선악과에 대한 해석 B>
선악과는 하나님이 영생이 없는 불완전 존재 상태의 아담에게 완전과 영생을 주시기 위해 제시한 조건적 계명이었다. 아담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았어야 했다.

능동순종-수동순종 개념은 선악과에 대한 B 유형의 해석을 취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 신학이다. B 방식 안에서 선악과와 행위언약을 해석하면, 임시적 불완전 존재 상태의 첫 아담이 계명을 준수하지 못해 완전한 영생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다. 둘째 아담 예수가 첫 아담의 자리에 들어가 모든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하여 행위언약을 복구함으로 하나님 백성의 자격을 획득한다. 하나님 백성의 의를 얻는 것이다. 그리고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죄에 대해서는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해결하였다. 

B 방식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예수의 율법순종(능동순종)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그래서 그것을 환영하지 않는 사람들을 예수의 공로를 무시하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B 방식의 선악과 해석에는 다음과 같은 심각한 모순이 있다. 

첫째, 아담이 영생을 얻기 위해 선악과를 먹지 않고 참아야 하는 기간은 대체 어느 정도였는가? 1000년? 10,000년? 100,000년? 아담이 마귀의 시험을 당하여 선악과를 먹지 않고 이겼으면, 더욱 더 완전해지고 영화로워지게 되었던 것이라면, 하나님은 왜 애초에 아담을 그리도 초라하게 만들었을까? 그러고도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로서 만물을 다스리고 관리하는 하나님의 대리적 지상의 왕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 이런 내용은 개혁신학이 가르치는 내용이 아니다.   

둘째, 하나님이 아담에게 제시하신 것은 단순히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창 3:3)이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수 백 가지의 율법들을 자세하게 제시한 적이 없다. 죄인들이 지켜야 할 자세한 율법들은 나중에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주어졌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단순히 선악과를 먹으면 죽을 것이라고 말씀했다. 그런데 어째서 성육신하신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가 왜 나중에 모세를 통해 주어진 수 백 가지의 율법을 준수하여 영생의 자격을 대신 얻어야 했는지에 대한 설명할 수 없는 억지를 믿으라고 강요한다. 

셋째,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첫 아담의 자리에서 모든 율법을 지킴으로 행위언약을 회복하여 영생의 자격(의)를 획득하여 전가했다는 이론은 필연적으로 죄 없는 인성을 취하시고 오신, 처음부터 거룩하고 흠이 없는 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다음과 같은 위험한 사색을 초래한다.

"만일 예수께서 모든 율법준수에 실패했다면 첫 아담처럼 죽음에 처해졌을 것인가?"

"첫 아담의 자리에 서신 예수 그리스도는 능동순종으로 자신을 구원받게 했다!"(노 목사)

"그리스도의 속죄를 (능동순종으로) 그리스도가 이루셨다!"(노 목사)

능동순종의 이론에는 이 같은 모순들과 위험성이 있다. 왜 그럴까? 선악과-행위언약에 대한 그릇된 해석으로부터 능동순종 이론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선악과-행위언약에 대한 올바른 해석

선악과-행위언약에 대한 해석은 반드시 A 방식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아담은 처음부터 하나님 백성이었다. 아담은 처음부터 영생을 가진 인류의 대표였다. 하나님은 아담이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자로서 스스로 즐거이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원하셨다. 언제든지 아담이 자신의 인격적 결단으로서 하나님을 떠날 수 있는 길을 열어 두셨다. 그것이 바로 선악과였다. 하나님 백성으로 즐거이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면,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 백성이 아님을 스스로 선언할 수 있게 하셨다.

아담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창 3:5) 선악과를 범했다. 하나님 백성의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언약을 파기하기로 결정하고 선악과를 먹었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배반했으므로 하나님은 그에게 저주와 사형을 선고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아담을 죽이고 다시 흙으로 다른 아담을 만들어 자기 백성으로 삼을 수 있었으나, 이미 자기 백성으로 지으신 아담을 죽이기를 기뻐하지 않으셨다. 그가 범한 언약 파기의 죄를 없었던 것처럼 만드시는 방법 안에서 다시 아담과 그의 후손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다. 그것은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다. 

하나님 자신이 죄 없는 한 사람으로 오시어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대신 죽는 방식으로 아담과 그의 후손의 구원을 작정하셨다. 그 이전에 먼저 율법을 세워 언약을 파기한 아담의 죄와 죄에 오염된 상태를 명시하고 사형선고를 내리셨다. 하나님이 성육신으로 율법 아래 나시고, 율법의 명령대로 순종하시고, 율법의 흠이 없는 희생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달려 타락한 자들을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율범의 마침'이 되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4)

성령으로 잉태되시어 율법 아래 나신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에도 순종하여 율법의 흠이 없는 완전한 희생제물로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우리의 칭의와 구원이 이루어졌다. 오직 십자가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다. 첫 아담의 자리로 오신 둘째 아담 예수께서 율법준수와 십자가의 죽음, 이 두 가지 방식으로 우리를 구원한 것이 아니다. 이 같은 엄청난 오류를 내포하는 능동적, 수동적 순종 이론은 선악과 행위언약에 대한 그릇된 해석으로부터 나온다.
 

   

 

프롱크 등 개혁주의자들의 선악과-행위언약 해석의 오류

제 아무리 유명한 개혁주의자라고 해도 선악과-행위언약에 대한 이해가 비성경적이면, 반드시 그릇된 능동순종의 이론으로 빠지게 된다. 개혁주의자 프롱크도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프롱크는 도르트 신경을 강해하는 자신의 작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담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안 됩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아담은 자신과 후손을 위해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 아담이 불순종할 경우 아담은 자신과 후손에게 죽음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크르넬리스 프롱크)5)

프롱크도 아담이 처음부터 영생을 가졌다고 보지 않고 선악과를 범하지 말라는 계명을 준수하여 영생을 가지도록 계획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담은 얼마나 오래 동안 선악과를 먹지 않았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었을까?

"하나님께서는 그 이후에 아담이 범한 죄에 대하여 우리에게 죄책을 묻지 않으시며 오직 한 가지 죄,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불순종의 죄에 대해서만 우리에게 죄책을 물으십니다. 이 죄가 우리에게 모두 전가되었습니다."(크르넬리스 프롱크)6)

하나님의 백성이 오직 하나님을 영원히 경외하기를 싫어하고,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되어 자기의 욕망대로 살고자 결단하고 언약을 파기한 것을 원죄로 보지 않고, 단지 하나님의 먹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은 것을 원죄로 보고 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지 말라는 명령은 그 자체로서는 작은 것이지만, 그 명령이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에 대한 아담의 순종을 시험하는 한 큰 문제였습니다."(크르넬리스 프롱크)7)

그때 아담이 지켜야 할 거룩한 율법은 무엇이었을까? 아담은 무슨 율법을 지켜야 영생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일까? 프롱크는 이미 하나님 백성이었던 아담이 하나님 백성으로 영원히 즐거이 살기를 싫어하는 마음을 가진 것, 즉 언약을 파기하려는 마음 자체를 죄라고 정의하지 않았다. 대신에 언약을 파기하고자 하는 심각한 죄의 결정의 실행이었던 선악과를 먹는 행위를 죄라고 하였다. 이렇게 되면 원죄를 해결하는 하나님의 성육신자의 구원의 방식에 대한 성경적 신앙을 온전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 그래서 도달한 곳이 예수가 율법준수로 의를 얻어 전가하였다는 능동적 순종,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선악과 먹은 죄를 갚았다는 수동적 순종 이론이다. 프롱크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이전 선배들이 늘 말하는 것을 그냥 따랐던 것이다.  

“첫째 칭의의 근거가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의 전가이며, 둘째 칭의의 근거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입니다. 이것은 행위언약의 교리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습니다 ...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으로서 그리스도 자신 역시 구원되어야 하는 존재로서 그가 이루신 율법에 대한 온전한 순종, 곧 행위언약에 대한 성취인 것이죠.”(노 목사의 페이스 북, 강남성도교회 싸이트, 2017.12.15)

“칭의란 바로 그리스도(의) 속죄를 그리스도가 이루신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노 목사, 2월 2일 페이스 북)

만일 프롱크에게 노 목사의 능동순종 관련된 이와 같은 말을 알려주면 어떤 의견을 보일까? 첫 아담이 계명준수에 실패하여 영생을 얻지 못했으므로 둘째 아담 예수가 모든 하나님의 계명들을 준수하여 영생의 자격을 얻어 전가하여 주었다는 능동순종 사상을 가진 사람은 노 목사의 위험한 사색이 전적으로 틀렸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능동순종 이론은 첫 아담이 실패한 계명준수를 두번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가 첫 아담처럼 운명을 걸고 성공하고 회복시켜야만 자신과 우리에게 영생의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 미주 ---

1) 서철원, 「서철원 박사의 교의신학(5): 그리스도론」(쿰란출판사, 2018), 167.
2) 코르넬리스 프롱크,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터는 없네」(임정민 역) (그 책의 사람들, 2015), 324.
3) Ibid, 344.
4) 칼 쇼올스, 「우리는 믿고 고백한다」(마르투스 역) (마르투스, 2017), 413.
5) 코르넬리스 프롱크, 「도르트신조 강해」, 156-57.
6) Ibid., 156.
7) Ibid.,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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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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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nn 2019-02-13 18:45:22

    부족하지만 제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저는 타락전선택설이 맞다고 생각하고 TULIP교리도 다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전제로 이해한 것을 설명해 보자면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을 때 죄에 빠지는 유혹에서 자유로운 완벽한 상태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선악과를 먹는 그 결과로 그 범죄가 드러난 것이지만 그들 마음은 이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버릴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 존재로 만드신 것은 하나님께서 오류를 범하신 것이 아니고 그분의 작정에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충격에 빠지셔서 구원의 방법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다시말해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 값을 누군가 대신 지게 하시려고만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 아니고, 그 분을 통해 성도들을 하나님께 죄를 절대로 짓지 않을, 영생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존재들을 만드시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창세 전에 이미 정하신 것이었습니다 (엡 1:4). 예수님의 존재는 아담과 그 자손들의 죄값를 대신 내야되는 명을 받은 신하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모든 일에 같은 결정을 하심으로 예수님의 사역은 수동이나 능동이라고 나누는 것 자체가 맞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 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성찬을 베푸셨는데 이것은 제자들에게만 하신 것이 아니고 보편적 교회에 하신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례를 베푸신 이유는 하나님의 선택으로 인해 구원될 자는 정해졌기 때문에 예수님 전에 있었고, 그 후에도 있을 성도들의 모임인 보편적 교회가 예수님 안에 속함으로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 죽지 않고 살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7:21-26에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와 성도의 모임인 교회가 하나로 속했다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리스도가 죽으심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같이 죽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부활로 같이 부활합니다 (롬 6:3-11). 그래서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과 십자가로서만 우리에게 칭의가 입혀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예정으로 선택된 우리(교회)가 원죄 아래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안에 있기 때문에 칭의가 입혀지는 것입니다.

    율법에 순종하셨다는 말은 여러가지 잘못된 추측을 낳는 것 같은데요. 히브리서 4:15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짓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해석할 때 예수님의 인성을 너무 강조하게 되면, 예수님께서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우리같이 선과 악 사이에서 번민하다가, 우리를 위해서 열심을 내어 율법에 순종했다는 해석이 나오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님은 우선 원죄가 없으시고, 선와 악 사이에서 번민하시지도 않았습니다. 마5:21-26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말이나 상상만 해도 죄를 짓는 것이라고 하시는데,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말과 상상으로도 죄를 짓지 않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성을 갖고 계셨으나 우리같지는 않으셨고 하나님 앞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결점이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제 2위격의 하나님으로 인해서 (그의 안에 있기 때문에) 아버지 앞에 무결점으로 설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불복종할 수 있는 인간으로 생각하면 안 되는데, 만일 하나님의 명령과 계획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가정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있다면 인간의 구원은 예수님의 순종을 조건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성경의 곳곳에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율법준수와는 먼 일들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이라는 욕도 하셨고, 바리새인들에게 율법을 왜 안지키냐는 소리도 들으시고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창세 전에 계셨고 율법자체이시기 때문에 인간들이 하지 못하는 의와 인과 신을 행하실 수 있는 존재이셨습니다 (마 23:23). 그래도 교회를 위해서 악마에서 시험을 당하시기도 하시며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 16:33) 라고 하시며 핍박받을 교회에 용기와 힘을 주십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존 오웬도 이단성이 있음 2019-02-12 08:02:19

      #그리스도의_완전한_순종의_전가

      완전히 의로운 그리스도는 그의 적극적인 순종이 없어도 죄를 위한 희생 제물과 화목 제물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므로 그가 적극적인 순종의 삶을 산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 어떤 이들은 이 순종이 그의 피흘림과 몸을 드림의 준비였다고 믿는다. 그들은 그의 죽음[만]이 오로지 우리의 칭의, 우리에게 전가된 모든 의를 위해서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순종은 순수한 순종의 행위로서 우리의 칭의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순종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순종으로 간주된다.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그 [적극적] 순종이 우리에게 전가되지 않는다면,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모든 법에 순종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가 훨씬 일찍 죽었어도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데 충분했다

      John Owen, 『성도와 하나님과의 교제』, 황을호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4), 151신고 | 수정 | 삭제

      • 정이철 2019-02-11 21:51:42

        기존의 개혁신학의 능종적, 수동적 순종이라는 개념은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을 준수하여 의(하나님 백성의 자격)를 얻어 우리에게 전가하여 우리가 의롭게 되었고,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죄에 대한 형벌을 감당하시여 우리에게서 형벌을 면제시켰다"라는 사상입니다. 기독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만 의와 죄사함을 얻는 종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우리를 의롭게하신 종교가 아닙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능동순종(율법준수)까지 하신 완전한 희생제물로서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하면, 성경적입니다. 문제는 율법준수와 십자가, 이 둘이 우리의 구원의 방법이었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어차피 예수께서 이 둘을 하셨으니 문제가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율법으로 십자가를 치고, 예수로 예수를 무너뜨리는 이단사상입니다.

        우리를 구원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와 십자가의 피, 이 둘이 우리를 구원한 것이 아닙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언이네 2019-02-11 17:47:11

          능동적순종과 수동적순종의 구분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약화시키는지 의문이 있습니다. 능동적순종은 구원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어진 율법의 요구까지 이루셨음을 확인시켜주어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은혜를 더 풍성하게 누리게 해줍니다. 그리스도의 율법 준수를 통한 의의 전가가 십자가의 은혜를 감추지도 않으며, 완벽한 하나님의 구원의 성취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한 죄의 용서와, 천국에 들어갈만한 의 이 모든 것을 만족시키지요. 그런데 능동적순종을 받아드린다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퇴색시킨다고 하는 주장은 결코 받아들일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한쪽에만 치우쳐 편협된 사상을 갖는 바른 믿음의 신학사상이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예전에는 두날개나 부활신앙 같은 명백한 잘못을 지적하는 것에 찬성했으나 자꾸 산으로 가네요.
          부디 한국교회를 위해 일하고자 하신다면 겸손히 예와 덕을 갖추고 사도적신앙 계승에서 명백한 오류가 있을때 문제제기 해주시기 바랍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바울처럼 2019-02-11 01:43:13

            "하나님 백성으로 즐거이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면,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 백성이 아님을 스스로 선언할 수 있게 하셨다."

            선악과 불순종의 의도를 이렇게 표현하신 것은 너무 과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도 예배를 드렸습니다.
            비록 불순종의 죄를 지은 죄인이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제사를 지냈음을 그들의 자식들인 가인과 아벨의 제사 사건에서 알 수 있습니다.

            능동적, 수동적 순종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보니 이런 과격한 해석이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신고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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