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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웨슬리안(장기영교수)이 능동순종 의미 더 정확히 알아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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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09  00: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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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영 교수(서울신대)

이전의 웨슬리의 칭의, 구원론에 대한 토론 때, 서로간의 넘어설 수 없는 근본적인 신학의 차이로 인해 여러 사람들이 <바른믿음>과 불편한 관계가 되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성결교 장기영 교수이다. 장기영 교수의 주장은 개혁신학 전파, 수호를 목적으로하는 <바른믿음>과 너무 거리가 멀었다. 부득이 더 사이가 악화되지 않게 하려고 <바른믿음>은 장기영 교수가 댓글을 쓰지 못하게 차단해야만 했다. 그런데 무슨 방법을 썼는지 장기영 교수가 실명으로 <바른믿음>에 정이철 목사에게 보내는 글을 남겼다.

장기영 교수의 글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전에는 도저히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웨슬리안 장기영 교수가 지금 논의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율법준수(능동순종) 문제에 대해서는 개혁주의자들보다 더 정확하게 그 의미를 진단하고 있었다. 장기영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즉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온전한 순종은 신자에게 전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람들의 죄를 씻기 위한 흠 없는 제물로 준비하는 일에 필요했다는 것이 웨슬리안의 관점입니다. 목사님이 가진 입장이나 개혁주의에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를 반대하는 측에서의 주장은 웨슬리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장기영 교수)

“인간에게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의 모범을 보이신 것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 그것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흠 없는 제물로 준비하는 데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입니다.”(장기영 교수)

웨슬리안 장기영 교수가 말하는 내용이 예수님의 율법 준수에 대한 가장 정확한 이해이다. 예수님이 율법을 준수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획득하였다는 기존의 개혁신학의 가르침은 옳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완전히 의로우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남자의 개입 없이 오직 성령으로 잉태되시었다.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죄 없는 인성을 마리아의 살과 피를 취하여 만드셨고, 성자의 위격을 죄없이 조성된 인성에 연합시키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출생할 때부터 완전한 의인이셨고, 복음과 성령의 역사를 통한 거듭남이나 성화가 필요한 분이 아니었다. 

능동적 순종이란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원죄를 범한 첫째 아담의 자리에서 자신의 영혼의 운명을 걸고 율법을 다 지켜(능동순종) 하나님 백성의 의를 획득하여 먼저 자신을 구원하고, 그리고 자신을 믿는 우리에게 전가하여 그 의를 전가하여 하나님 백성의 자격을 갖추게했다는 잘못된 이론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의 첫 언약을 파기하여 영원히 죽게된 자기의 자녀들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의 피와 몸과 생명을 하나님께 배상으로 드렸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만족하게 받으시고, 첫 언악을 파기하여 영원히 죽게된 타락한 백성들에게 쏟으신 사명의 형벌과 진노를 거두셨다.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모두 해소되었음을 선언하시고자,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타락한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가 해소되었다고 선언하심이었다. 

이것을 예수 그리스가 능동순종으로 먼저 자신를 구원받게 했다고 하면 안 된다. 그리스도가 자기의 속죄를 스스로 이루신 것이라고 해서도 안 된다.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게된 자기의 백성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기 위해 성육신하신 하나님이 타락한 자기의 백성들을 대신하여 피 흘리신 것이다. 죄로 인해 버려진 자들을 하나님 백성으로 복귀시키는 은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보혈의 공로이다. 기독교의 핵심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이다. 

예수님의 능동순종(율법준수)는 예수님이 완전한 희생제물이 되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 율법의 정죄 아래 저주받은 상태의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께서는 스스로 율법 아래 나셨고, 율법의 명령들과 절차를 따르셨다. 처음부터 의롭고 거룩하셨으나,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흠없는 희생제물이 되기 위해 율법준수(능동순종)를 마다하지 않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율법준수(능동순종)로부터 직접 의와 속죄가 나온 것은 절대로 아니다. 바빙크가 염려했던 것처럼, 그 어떤 것으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와 죽으심을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 노 목사 등 어리석은 개혁주의자들이 '율법을 높이는 속임수'로 '십자가를 약화시키는 죄악'을 저지르고 있다. '율법을 지키신 예수'로 '십자가에서 피 흘신 예수'를 치는 고도의 이단술책이 치밀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웨슬리안 장기영 교수가 그런 바보 개혁주의자들보다 예수님의 율법준수(능동순종)와 십자가의 피 흘리심(수동순종)에 대해 더욱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으니, 심히 놀랍고 기이하다. 노 목사 등 '율법의 예수'로 '십자가의 예수'를 괴롭히는 모리꾼들은 속히 장기영 교수를 강사로 초청하여 제대로 공부하기 바란다. 

장기영 교수와 정이철 목사가 주고 받은 대화를 소개한다. 독자들은 이 내용을 통해 왜 정이철-서철원 박사 등 더욱 올바른 개혁신학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능동적, 수동적 순종 개념에 적극 동의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기를 바란다.

 

질문>
정이철 목사님, 한 가지 질문 드립니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즉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온전한 순종은 신자에게 전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람들의 죄를 씻기 위한 흠없는 제물로 준비하는 일에 필요했다는 것이 웨슬리안의 관점입니다. 목사님이 가진 입장이나 개혁주의에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를 반대하는 측에서의 주장은 웨슬리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부 의견에 의하면, 목사님께서는 신자에게 전가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부인한 것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율법 순종 자체를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한 분이 아니기에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로 들리지는 않습니다.

누군가의 주장을 진의를 확인하지 않고 몇 문장으로 단정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기에, 오해를 피하기 위해 목사님께 직접 여쭙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 신자에게 전가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삶으로 하나님의 율법에 온전히 순종하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구원 받아야 하는 죄인이 아니시기에 그 순종은 그리스도 자신의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주권에 상응하는 마땅한 태도이기에 주님 자신이 하나님께 드린 마땅한 태도이자, 인간에게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의 모범을 보이신 것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 그것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흠 없는 제물로 준비하는 데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혹시 목사님은 이 모든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진리로서 그리스도께서 율법에 온전히 순종하셨다는 사실을 부인하시는지요?

 

답변>
언제, 어떻게 쓴 저의 글이 그렇게 읽혀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참에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예수님의 율법준수(능동순종)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저와 서 박사님 등 개혁주의자들이 반대하는 것은 예수님이 율법의 의를 취득하여 자신과 우리를 의롭게하고, 하나님 백성의 자격을 만들기 위해 율법준수(능동순종)하셨다는 주장입니다. 물론 당연히  예수님은 율법을 준수하셨습니다. 범죄하여 율법의 정죄 아래 있는 죄인들을 구속하는 구세주가 되시기 위해, 예수님은 스스로 율법 아래 나셨고, 하나님이 정하신 모든 율법의 명령과 과정에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능동순종으로 율법의 요구에 부합하는 흠 없는 속제물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진노를 완전히 만족시키는 온전한 희생제사를 드리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담의 죄와 무관하게 태어나셨으므로 처음부터 거룩하셨습니다. 율법 앞에서도 흠이 없으셨으므로 율법의 요구대로 십자가에 피 흘리고 죽으시니, 우리의 범죄에 대한 완전한 배상이 되었습니다. 롬 10:4절의 말씀처럼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로우시고 흠이 없으신 예수님과 연합되니, 예수님의 의와 거룩이 우리의 것으로 인정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의롭게 여기신다고 선언(칭의)하셨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다시 요약해 보겠습니다. 우리의 죄 사함과 의롭다함은 우리 대신 피 흘리고 죽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구주로 믿는 자들에게 죄 사함과 의롭다하심을 주실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잉태되시어 원죄의 전가와 죄의 오염과 무관하였고, 처음부터 내내 거룩하고 흠 없으셨고, 하나님의 모든 뜻에 완전히 순종하셨고, 그리고 율법의 정죄 아래 있는 우리를 율법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스스로 율법 아래 태어나시어 율법의 모든 명령을 지키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강조한 것은 무슨 포인트를 적립하듯이 예수님이 수 백 가지의 율법조항들을 수첩에 기록하시어 하나씩 꺽쇠 표시를 하시면서 모두 지키려고 노력하신 것처럼 말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인성을 가지셨으므로 율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거나, 예수님이 노골적으로 율법을 무시하며 사셨다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표현의 오차나 부정확함이 있을 수는 있겠으나, 그것은 저의 신학사상이 아닙니다. 제가 남긴 댓글의 내용을 저의 신학적 주장의 근거로 삼는 것은 위험합니다. 

저나 서철원 박사님 등 분명한 개혁주의자들은 예수님의 율법준수(능동순종)을 부정하거나 무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능동순종으로부터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되게하는 의가 직접 오는 것이 아니고, 율법을 준수(능동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고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용서와 칭의가 주어졌음을 강조합니다. 

저의 신학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 중심의 신앙을 가지자는 것입니다. 우리를 영원히 살게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님의 율법준수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부터 옵니다. 예수님의 율법준수(능동순종)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보혈(수동순종)이 우리를 다시 하나님 백성되게 만드는 최고의 기적을 가능하게 한 중요한 요소임을 당연히 믿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율법준수(능동순종)가 우리를 구원한 것은 아닙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으심이 우리의 의이고 구원입니다. 능동순종을 과하게 주장하면 율법으로 십자가를 압살하는, 즉 예수로 예수를 무너뜨리게하는 이단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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