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태, 능동순종 의 등 한국교회의 '의'에 대해 담론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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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태, 능동순종 의 등 한국교회의 '의'에 대해 담론에 대해
  • 고경태
  • 승인 2019.02.05 12:36
  •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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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2016년에 김세윤 교수의 신학에 대해서 많은 탐구를 했다. 그 결과를 2017년에 <현대 칭의론 논쟁>(CLC)을 출판했다. 이 신학담론의 장을 위해 <바른믿음>(대표 정이철 목사)을 활용했다. 김세윤 교수의 칭의 이해를 “유보적 칭의”라고 최덕성 박사께서 정립하면서, 한국 교회는 유보적 칭의와 구원의 탈락 가능성에 대한 담론으로 뜨거웠다. 이제 우리는 김세윤의 칭의를 “유보적 칭의”라고 자연스럽게 인지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칭의’에서 ‘의’라는 개념 이해로 논의가 확장되면서 혼란이 증폭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의인이라는 개념이 있고, 루터의 개념인 의인임과 동시에 죄인(simul iustus et peccator) 개념을 갖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남은 죄’ 개념으로 정리하고 있다. 신자이지만 여전히 옛사람을 가진 존재이다.

김 교수는 이러한 개념에서 성화를 강조한다는 명분으로 종말에 구원이 최종적으로 확인된다는 주장을 했다. 그래서 구원의 탈락 가능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구원의 탈락 가능성이 아닌 성도의 견인을 믿는 진영에서 다시 분화된 이해가 발생했다. 그리스도인이 가는 길이 ‘좁은 길’이라하는 이유는 이전의 믿음의 동료가 후에는 갈등하는 동료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대교회의 역사를 보면, 삼위일체 논쟁에서는 정통에 섰었으나 기독론 논쟁에서는 이단의 자리에 선 위인들이 있었다. 고대교회의 신학 이해는 너무나 세밀해서 지금 우리가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 시대는 예수만 믿고 구주로 인정하면 바른 믿음으로 판정한다. 그러나 고대교회에서는 정통과 이단 모두가 예수를 구주로, 믿음의 대상으로, 하나님으로 인정했다.

그런데 유보적 칭의 이해 뒤에 다시 다른 논의가 전개되는 모습을 보니 우리의 신학 이해가 더 깊어지겠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있다. 그러나 신학논쟁은 교회분열을 초래하고 복음전도 열기를 소진시키기는 위험이 있다. 그래서 필자는 논쟁이 격화되면 그리스도인은 논쟁을 중지하고 복음전도, 즉 예수의 이름을 증언할 것을 서약하고 중지할 것을 제언했었다. 예수 믿음이라는 매우 초보적인 수준에서 교회를 세워야 한다. 이 수준이 선진 기독교 지역인 유럽과 미국에서도 긴밀하게 필요한 수준이라고 판단되는 비참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의’에 대한 담론에 대해서 간략한 이해를 제시하려고 한다. 의에 대해서 담론을 제시하려면, 먼저 의에 대한 자기 개념을 제시해야 한다. 서철원 박사는 의를 ‘생존권’이라고 했다. “죄인인 인간이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는 생존권을 획득한 것”이 구원이다.

서 박사는 ‘의’는 성경대로 믿음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믿음을 강조하며 어떤 행위도 개입되지 않도록 주의시킨다. 주 예수께서 속죄제사로 아버지의 공의를 만족시키고(satisfactio) 자기 백성을 획득하시고(구속하시고, redemptus) 승천하여 성령을 보내셔 복음을 선포하여 교회를 설립하셨다고 제시한다. 현세에 하나님 앞에서 생존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복음과 성령’뿐이다.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이거나 복음을 듣는 사람이 의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이라는 개념으로 논의가 확대되면서 미로(迷路)에 갇힌 것 같다. 메이천 박사가 “능동적 순종”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도 큰 영향력이 있다. 필자는 그리스도께서 ‘흠 없는 속죄제물’의 가치와 ‘신자를 체휼하시는 긍휼’로 이해해 보았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율법 조항을 준수한 ‘능동적 순종으로 획득한 의’를 전가시킨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필자는 우리에게 수여된 의는 오직 보혈의 공로로 ‘내주하는 성령’이라고 말하고 싶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에 순종하신 목적은 무엇일까?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율법의 완성자이시다(롬 10:4). 율법에 순종하신 것은 율법의 완성자이심을 계시하시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성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구약 성경처럼 율법에 부착된 제사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으로 율법을 지키며 산다. 십자가의 은혜로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도록 사는 인생이 복됨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율법 아래서 흠 없는 속죄제물이 되시기 위함이다. 율법 아래서 흠 없는 속죄제물이 되었기 때문에 원수도 전혀 반박하지 못하도록 한 하나님의 공의이다.

예수께서 십자가까지 가시는 길에 겪으신 고초의 생이 복된 것은 우리의 죄사함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인 “나의 죄과가 복되다”(o felix culpa mea)는 고백으로만 말할 수 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그 은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주의 말씀을 따라서 주의 이름을 땅 끝까지 전파하는 것뿐이다. 그 이름을 전파할 때 그 ‘의’가 주의 백성에게 전달된다. 주께서 자기 복음을 들어 순종하는 자에게 자기 의를 전가시키신다. 이것은 소명이고 중생이고 회개이고, 믿음이고, 칭의이다.

우리는 많은 논쟁이 구원을 낳지 못함을 알고 있다. 그러나 논쟁이 발생하면 분명한 자기 이해를 밝혀야 한다. 자기 개념, 그리고 자기 개념의 근거를 밝히는 것이 토론장에 들어온 학도의 기본자세이다. 그 기본이 없는 자는 토론장에 입장할 자격이 없다. 김세윤 교수의 사상에 동조하는 연구자와 거부하는 연구자의 토론은 평행선으로 결론되어 있다. 자기 선생을 밝히면 결과를 바로 알 수 있는데, 이런 복잡한 토론이 발생한 것은 자기 선생을 알지 못하거나 밝히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논쟁을 피하고 힘써 주 예수의 이름전함에 전력하자. 어찌되었든지 주 예수의 이름이 전파되기를 기도하며 기대한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사탄이 세운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는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아세아연합대학 대학원(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을 졸업했다.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도 수학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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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겠네! 2019-02-12 13:37:14
언이네 님, 제가 나설 일은 아니지만, 답잡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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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로 인해 버려진 자들을 하나님 백성으로 복귀시키는 은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보혈의 공로이다. 기독교의 핵심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이다.

예수님의 능동순종(율법준수)는 예수님이 완전한 희생제물이 되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 율법의 정죄 아래 저주받은 상태의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께서는 스스로 율법 아래 나셨고, 율법의 명령들과 절차를 따르셨다. 처음부터 의롭고 거룩하셨으나,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흠없는 희생제물이 되기 위해 율법준수(능동순종)를 마다하지 않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율법준수(능동순종)로부터 직접 의와 속죄가 나온 것은 절대로 아니다."
->정이철 목사/오히려 웨슬리안(장기영교수)이 능동순종 의미 더 정확히 알아

언이네 2019-02-12 12:55:41
정이철 목사님 자신의 입장부터 명확히 정리하시고 글쓰시는게 좋겠습니다.
이제야 보게 되서 여기에 댓글다네요. 2월8일 이 기사에 올리신 댓글(아래)에
"저나 서철원 박사님은 예수님의 율법준수(능동순종)을 부정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고 ... 예수님의 죽으심과 피가 그런 효력을 가지는 원인 중에는 예수님이 율법까지도 다 준수하시면서 사신 능동순종이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뭘 원하시는지 모르겠네요.
능동적 순종은 이단이라고 안하셨어요?

장기영 2019-02-08 18:28:33
아울러 그 일 이후로도 여전히 웨슬리에 대한 편견과 왜곡이 있는 말씀을 여러 글과 댓글에서 해오긴 것으로 압니다. 웨슬리를 충분히 공부하셔서 더 이상 불필요한 왜곡과 적의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장기영 2019-02-08 16:40:48
의견이 다르면 서로를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서로를 적처럼 대한다면 주님의 마음이 아프실 듯합니다. 저 역시 지나친 반응을 보여 기분을 상하게 해드린 일에 관해 사과 드립니다.

노승수 박사님과의 문제도 제가 볼 때는 오해에서 비롯된 면이 많습니다. 저는 웨슬리의 입장을 따라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가 구원에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을 뒤섞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따라서 결과적인 면에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 교리는 신자의 삶에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능동적 순종의 전가를 주장하는 분들의 의도마저 그렇지는 않다는 사실 만큼은 잘 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문제를 잘 해결해 가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정이철 2019-02-08 09:04:00
언제, 어떻게 쓴 저의 글이 그렇게 읽혀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예수님의 율법준수(능동순종)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저와 서 박사님이 반대하는 것은 율법의 의를 취득하여 자신과 우리를 의롭게하여 하나님 백성의 자격을 만들기 위해 예수님의 율법준수(능동순종)가 필요했다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율법을 준수하셨습니다. 범죄하여 율법의 정죄를 받은 우리들을 구속하는 구세주가 되시기 위해 예수께서도 스스로 율법 아래에서 태어나셨고, 하나님이 정하신 모든 율법의 내용과 과정을 순종하시면서 거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완전히 흠없는 속제물이 되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공의와 진노를 완전히 만족시키는 제사를 드리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담의 죄와 무관하게 태어나셨으므로 처음부터 거룩하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에도 흠이 없는 삶을 사셨으므로 율법의 요구대로 십자가에 피 흘리고 죽으시니, 우리의 범죄에 대한 완전한 배상이 되었습니다. 롬 10:4절의 말씀처럼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의로우시고 흠이 없는 예수님과 영적으로 성령안에서 연합되니, 예수님의 의와 거룩이 우리의 것으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게 여기신다고 선언(칭의)하셨습니다.
다시 요약하자면, 우리의 죄 사함과 의롭다힘은 우리 대신 피 흘리고 죽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죄사함과 의로움을 주실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잉태되시어 원죄의 전가와 죄의 오염과 무관하였고, 처음부터 거룩하고 흠없으셨고, 공생애 동안 하나님의 모든 뜻에 완전히 순종하셨고, 율법의 정죄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 스스로 율법 아래에서 태어나서 율벌의 명령과 모든 과정과 절차들 무흠하게 통과하시고다 지키셨기 때문입니다.

저나 서철원 박사님은 예수님의 율법준수(능동순종)을 부정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고, 능동순종으로부터 우리를 하나님되게하는 의가 직접 오는 것이 아니고, 능동순종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와 죽으심으로부터 하나님의 용서와 칭의가 나온다는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피 중심의 신앙을 가지자는 것입니다. 우리를 영원히 살게하는 모든 은혜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피로부터 나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피가 그런 효력을 가지는 원인 중에는 예수님이 율법까지도 다 준수하시면서 사신 능동순종이 있는 것입니다.

이후로도 오해되는 내용이 있으면 이렇게 남겨주십시오. 교수님을 차단한 것은 서로 너무도 신학의 배경과 바탕이 다르므로 말을 하면 할 수록 평행선을 긋고, 계속 일방적으로 주장하니 듣기도, 반응하기도 곤란해서였습니다. 이 참에 정중하게 사과를 드리니 넓은 마음으로 양해를 바랍니다.

정이철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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