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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은 목사가 서철원 박사의 성화론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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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25  22:4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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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정이철 목사님, 손성은 목사가 서철원 박사님의 성화에 관한 설명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포스팅하여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였습니다. 정이철 목사님은 서철원 박사님의 신학을 잘 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서철원 박사님의 말씀의 의미를 좀 자세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다음은 손성은 목사가 자기의 페이스 북에 포스팅 한 내용입니다.

   
 손성은 목사

“한국교회의 그 유명한 신학자, 그것도 칼빈주의, 개혁신학을 강조한다는 한 신학자의 말입니다. 자신이 깨달은 것을 한국교회만 아니라 2천년 세계교회가 깨닫지 못하였고, 칼빈의 신학도, 청교도의 신학도 자신의 깨닫는 바에 미흡하고 문제점이 있으며,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행위언약/은혜언약의 가르침도 전적인 은혜를 알지 못하고 행위로 구원얻음을 강조함으로 복음이 복음되지 못하고 변질시키게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 제 폐친분들, 특별히 개혁신학과 신앙을 소중히 생각하시는 분들,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 옛 사람을, 지난 죄를 용서받게 하셨을 뿐 아니라, 그가 십자가에 흘리신 피로 우리 안에 있는 저 욕망을 제어 받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죄의 욕망이 일어날 때 주 예수의 피가 나의 모든 죄에서 나를 깨끗하게 한다고 선언하면 그 말씀에 역사하는 성령이 역사하시기 때문에 죄의 욕망이 소산돼요! 흩어져요! 없어져요!

옛 사람의 죄를 뿌리채 뽑아내는 것이 아니예요. 그렇게 하고 났는데, 얼마 지나면 또 그 욕망이 올라와요. 그러면 또 그 말씀을 선언하는 것이예요. 주 예수의 피가 나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한다고 선언함으로 죄 욕망이 소산돼요. 그것이 옛 사람을 죽이는 것이예요. 전적인 은혜로 ...’”(손성은 목사의 페이스 북, 2018.6.11)
 

손성은 목사가 우려하는 것처럼, 서철원 박사님의 성화론은 혼자만의 교만에 불과한 내용입니까?

 

답변>
저의 성화에 대한 이해는 서철원 박사님의 오래전의 잠시 지나가는 말씀 한 마디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서 박사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개혁교회들이 구원은 오직 은혜로 받는다고 하면서 성화는 인간의 행동으로 이루어진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시 종교개혁 이전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은혜로 구원받고 행동으로 성화를 이루어간다면, 종교개혁을 할 필요가 없었지요.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에 대해서는 알면서 어떻게 성화를 이루어 가는지에 대해 개혁신학자들이 잘 몰랐어요. 심지어 칼빈도 성화를 이루어가는 방법을 말하지 못했어요!”(서철원 박사)

서철원 박사님의 이 말씀이 저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고, 이후 성화가 이루어지는 원리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였습니다. 제가 깨닫고 확신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의 죄악된 상태에 대한 율법의 저주와 죄에 대해 배상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복음, 그리고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었고, 동시에 구원 이후의 성화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복음선포와 성령의 역사하심에 구원과 성화 둘다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의 대한 배상으로 자기의 피를 아버지께 드리시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 성령을 청구하여 자기의 이름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그 아들의 영’(갈 4:6)이신 성령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오시어 그리스도의 피 묻은 십자가의 효력을 적용시키십니다. 그것이 성화의 시작이고 진행되는 원리입니다.   

구원받은 신자가 성화되어짐으로 나타나는 구체적인 선행을 그 사람의 행위와 결단의 열매로 설명하면 복음의 영광이 가려집니다. 인간의 선한 행위 이전에 먼저 성령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능력을 적용하여 우리의 속사람의 속성을 변화시키셨으므로 선행의 열매가 나오는 것입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후 사람이 자기의 의지와 힘으로 스스로의 기질과 행동을 고치는 것이 성화가 아닙니다. 성화를 그렇게 가르칠 것이라면 종교개혁을 할 필요가 없었고, 펠라기우스주의와 알미니안주의를 이단으로 정죄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죄에 오염된 인간의 실상을 드러내고 정죄하는 율법, 율법의 마침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제시하는 복음선포와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동시에 성화를 이루어갑니다. 구원뿐 아니라 성화를 위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을 저주하는 율법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선포, 그리고 더불어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상입니다.  

서철원 박사님이 죄를 이기기 위해, 즉 성화를 위해 그리스도의 피를 선포하고 성령을 의존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성화되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모든 성화의 행동의 근본이 되는 이러한 복음의 원리를 항상 붙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이와 같은 성화의 원리를 모르면서 복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화를 많이 강조하지만, 가장 중요한 성화의 원리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대신 구원받은 인간이 구원에 대한 답례로서 힘써 합당한 삶과 선행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 내용은 영광스러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고, 결국 알미니안주의의 성화구원론으로 기울어지는 것입니다. 은혜로 시작하여 행위로 마치는 갈라디아 이단의 가르침과 비슷한 것을 개혁주의로 포장하여 주장하는 유명한 선생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저는 교수도 아니고, 박사도 아니고, 대형교회의 유명한 목사도 아닙니다. 아무 힘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는 제가 저명한 미국의 김세윤 교수, 한국 백석의 총장 최갑종 교수, 고신의 원로 박영돈 교수의 칭의와 성화에 관한 가르침에 대해 돌격하였던 이유는 그 분들의 성화에 대한 가르침 속에 복음의 영광을 드러내는 이런 가르침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은혜로 구원이 시작된 후 인간이 힘써서 선행을 만들어 내어야 한다는 식이었고, 그렇지 못하면 영원한 구원에 대해 장담하지 말라는 식으로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 성도의 견인 등의 개혁주의 교리가 가능한 이유는 우리의 구원과 성화의 원리가 근본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구원받고 성령받은 신자에게는 '제발 성화되지 말라고 떼를 쓰고 빌어도' 성화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하여 피 흘리시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켰고, 성령이 우리 속에 오시어 그리스도의 속죄의 공로를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적용시키시는데, 어떻게 죄인의 속성이 변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을 적용시키는 성령이 우리의 마음에 임재하셨고, 지속적으로 십자가를 적용하여 주시는데, 어떻게 성령받은 인간의 행실이 변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서철원 박사님의 가르침이나 주장은 성화를 보여주는 선행에 힘쓰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신자의 모든 아름다운 선행은 복음을 통하여 역하시는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입니다. 구원 이후의 선행의 근본적인 원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성령 때문임을 기억하고, 행위로 성화를 만드는데 주력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과 복음을 적용시키는 성령을 의존하라는 것입니다.  성화를 위해 우리는 근본적으로 복음에 우리 자신을 맡기고, 복음을 적용시키는 성령의 역사를 위해 기도에 더욱 힘써야 한다는 것이지, 선행을 하지 않도록 작심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이와 같은 성화의 원리를 지속적으로 주장하면서 박영돈 교수님의 칭의와 성화 사상을 강하게 반박하니까 일부에서 저를 ‘자동성화론자’라고 비방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음의 이 글을 썼습니다. 

“정이철 목사, 자동성화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입니다”(바른믿음, 정이철 목사)

복음선포와 성령의 사역이 구원뿐 아니라 성화의 근본적인 원리라고 설명하는 내용을 자동성화론이라고 조롱하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손성은 목사님이 문제 삼은 서철원 박사님의 말씀을 다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 옛 사람을, 지난 죄를 용서받게 하셨을 뿐 아니라, 그가 십자가에 흘리신 피로 우리 안에 있는 저 욕망을 제어 받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죄의 욕망이 일어날 때 주 예수의 피가 나의 모든 죄에서 나를 깨끗하게 한다고 선언하면 그 말씀에 역사하는 성령이 역사하시기 때문에 죄의 욕망이 소산돼요! 흩어져요! 없어져요!

옛 사람의 죄를 뿌리채 뽑아내는 것이 아니예요. 그렇게 하고 났는데, 얼마 지나면 또 그 욕망이 올라와요. 그러면 또 그 말씀을 선언하는 것이예요. 주 예수의 피가 나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한다고 선언함으로 죄 욕망이 소산돼요. 그것이 옛 사람을 죽이는 것이예요. 전적인 은혜로 ...’(서철원 박사)
 

   


서 박사님이 강의하면서 하신 말씀이라 조금 짜여지지 않는 내용이기는 합니다만, 위의 서철원 박사님의 말씀은 영원무궁히 한국교회와 전 세계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표어로 삼고 가슴에 새겨야 할 주옥같은 말씀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런 가르침을 부정하면 결국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합니까? 구원은 은혜와 믿음으로 얻고, 그 이후의 성화는 신자 자신의 결단과 노력으로 만들어 간다는 알미니안 - 행위구원론입니다. 그 외의 다른 길이 또 있습니까?

구원받은 사람이 자기의 힘으로 행실을 고쳐서 성화를 이루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적용하시는 성령의 사역으로 아담으로부터 유래한 죄의 오염을 다스리고, 우리의 속 사람의 속성을 변화시키시므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선한 생각과 선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화입니다. 결코 서철원 박사님의 강조는 성화를 위한 선행에 힘쓰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는 자가 선행하여 성화를 만들어 간다고 하면 복음의 영광을 허무는 것이고, 종교개혁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성화를 이루는 근본적인 힘은 복음선포와 성령의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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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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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nn 2019-02-19 09:24:07

    최근에 올라온 기사에 연속적 중생론에 관한 얘기가 있어서 찾아보니, 손성은 목사가 쓴 글에 연속적 중생론은 개혁신학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는 것을 어떤 블로그에서 읽었습니다. 동명이인이 아니고 이 글에 나온 손성은 목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agraphe&logNo=221464138992&parentCategoryNo=&categoryNo=&viewDate=&isShowPopularPosts=false&from=postView

    저는 성령이 계셔야만 진정한 믿음을 고백할 수 있고, 칭의, 성화도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포괄적으로 말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만, 다시말해 그리스도와의 성령을 통한 연합을 통해서만 거듭날 수 있습니다. 구원의 서정을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맨 앞에 두지 않고 설명하는 것은 많은 위험이 있습니다. 그것으로도 무엇을 믿고 있는가가 확연히 들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사람을 때가 되매 성령을 통해 자신을 알리셔서, 그 사람이 성령의 힘으로 신앙고백을 하여 칭의를 얻고, 성화의 길을 가는 것이 구원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칼빈도 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해 강조한 것으로 압니다.

    서철원 목사의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고 개혁신학에서 계속하여 믿어온 것입니다. 김세윤과 그 무리들은 인간적으로 노력해서 나온 선행이 동반되어야 점진적 칭의가 된다고 주장하는 것 같은데, 그것은 옳지 않고, 선행은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행을 말할 때 도덕적, 사회적 선행으로 이해하고 김세윤 교수도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성도의 입장에서의 선행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행동입니다. 그래서 슈바이처가 도덕적 선행을 누구보다 많이 하였다 하더라도, 천국에 갈 수 없는 이유는 그가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했기 때문입니다. 김세윤 교수의 말이 신빙성이 없는 이유는 슈바이처를 신학자로 인정하고 그의 말을 인용하는 데에 있습니다. 저는 김세윤 교수가 거듭남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자동성화론'이란 말은 처음 듣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면 성화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은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기로 예정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잘못된 이론의 시작은 하나님에 대한 무지함과 TULIP교리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이태호 2019-01-28 10:30:35

      십자가 복음의 능력은 우리에게 순종의 능력을 주시지요. 우리가 때론 불순종에 빠진다해도 십자가를 의지 하는 능력이지요.
      십자가늘 아는 자는 말씀대로 살려고 당연히 주의 말씀에 바른 반응과 태도를 보이지요.

      서교수님 신학과 반드시 일치 하지 않고 그 분의 행위들을 존경치도 않지만 인요한 말씀은 문제가 없지요.신고 | 수정 | 삭제

      • 성도 2019-01-27 19:04:35

        예수님의 숭배에 빠져있는 베드로는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나는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로마에 간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베드로가 '주여,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시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주 께서 그에게 이르 셨다.네가 나의 어린양들을 버린다면 나는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될 것이다." 베드로는 그때서야 그가 로마로 다시가서 말씀을 선포하고 순교해야 한다는것을 알게 되었고 로마로 갔다.(quo vadis)

        초대교회의 로마의 박해는 우리의 상상보다 악랄하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석쇄에 굽혀지고 화형을 당해죽는 그리스도인들이 었지만 오히려 그리스도의 복음은 급속도로 로마로 퍼져갔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로마인에게서 볼수없는 도덕성의 기준이 확실햇기 때문입니다. 바로 예수님을 말씀에
        충실한 것입니다 .어떤 배고픔에도 도덕질하지 않으며 오히려 내가 가진것을 주려하였고 폭력에 항거 하기보다 폭력앞에 진실로 폭력자들을 불쌍히여겼다는 것입니다.신고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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