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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교회는 찬양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김만옥  |  potentia-dei@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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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17  08: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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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찬양을 정말 좋아하는데 민족성이 가무(노래와 춤)를 좋아하는 문화적 배경으로 인하여 찬양사역자들이 많고 찬양 집회에 수많은 신자들이 참여하고 교역자 청빙에도 악기 사용과 찬양인도를 요구한다. 이러한 한국교회는 성가대를 조직해서 세우거나 찬양단을 조직하여 주일예배 시작 전에 찬양을 하여 분위기를 만들고 예배에서 성가대가 찬양을 하고 대형교회는 급여를 받고 악기를 연주하는 관현악단이 있다.

그리고 찬양 집회로 성장한 교회가 많아서 교회성장의 방법으로 찬양을 중요시하고 찬양사역자들은 예배자학교를 만들어 운영할 정도로 찬양을 좋아하는데, 문제는 개혁주의 교회들이 하는 찬양이 정말로 성경적이고 교회의 정통적인 방법으로 행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할 시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지금의 교회 안에서 들리는 찬양들이 너무나도 세상적인 음악 장르와 비복음적인 내용들이 넘쳐나는 비참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문제들이 있는가를 간단하게 보면, 대중가요적 음악을 사용하고 합합과 트로트(뽕짝)에 가사 내용만 기독교적 메시지로 사용하여 부르는 일을 행하는 자들을 초청하여 집회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한국교회의 종교적 현상에 대해 생각해야 할 질문은 “찬양으로 은혜를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답으로 “은혜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신자들이 너무나도 많은 이유는 ‘은혜의 수단’을 잘못 이해한 것으로 결국은 잘못된 신앙으로 나아갈 위험성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다르게 생각해 보면 찬양의 가사를 통해서 은혜를 받는다고 할 수 있지만 솔직히 가사로 은혜를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 음악의 리듬이나 선율에 의해서 심취되기에 요즘 찬양들은 세속적인 음악 장르에 대해서 수용성이 매우 강하여 신자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그래서 몇 년 전에 찬양에서 악기로 드럼 사용에 비판적인 글을 작성해 올렸다가 비난을 받은 목사도 있었는데, 사실상 그 배경에는 현대교회들이 얼마나 교회음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지를 보여준 안타까운 사건이다. 즉 교회의 찬양에서 사용되는 악기는 인간의 감성을 지나치게 자극하는 악기(북, 징, 드럼)가 반드시 아니어야 하고 리듬이나 선율(가락, 멜로디)이 단순하고 반복적인 내용으로 찬송가와 비슷한 찬양들로 반드시 ‘회중 찬송’에 유익한 악기로만 사용해야 하기에 “오르간과 피아노” 악기로만 사용하는 것에 대해 실천신학자 비셔 교수(캐나다, 개혁교회 신학대학)의 ‘칼빈 전통에서의 교회 음악’에서 주장한다.

그러므로 악기 사용에 제한이 필요하여 서구의 개혁주의 교회들이 사용하는 오르간(오르간 선율을 사용할 수 있는 악기) 반주나 피아노 반주가 좋고 전자 악기들(전자음악)과 노래방과 비슷한 반주기 그리고 드럼이나 북 등은 사용하지 말고 칼뱅의 제안대로 ‘(번안된) 시편찬송가’를 사용하는 것이 개혁주의 예배의 특징이기에 좋다.

이렇게 해야 할 이유는 찬양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상 리듬이나 선율보다 가사 내용이기에 반드시 찬양의 가사가 신학적으로 바람직한지를 검증해야 하는데 노래라는 것이 부르는 사람은 곡이 마음에 들면 심취를 해서 반복해서 부르고 자기도 모르게 흥얼거리기도 하는 것을 영적인 문제로 보면 부르는 가사 내용이 성경적이지 않고 정통적이지 않는 신학적 내용이라면 부르는 신자에게는 분명하게 영적으로 악영향을 주기에 반드시 가사 내용이 중요하다고 존 맥아더는 ‘분별’에서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찬양곡들은 반드시 신학적 검증을 받아야 하는데 문제는 지금의 찬송가에는 가사 내용이 하나님 찬양과 전혀 무관한 곡으로 ‘가슴마다 파도친다(574장)’, ‘어머니의 넓은 사랑(579장)’, ‘어둔밤 마음에 잠겨(582장)’ 등이 있다.

그리고 가사 내용이 신학적으로 문제가 되는 ‘마귀들과 싸울지라(348장)’는 사탄의 여러 명칭 중 하나가 마귀이고 단수인데 복수로 마귀들은 잘못된 것이고 ‘하나님의 나팔 소리(180장)’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입장의 휴거 내용으로 잘못되었지만 무천년설의 입장인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516장)’라는 곡은 매우 성경적인 찬양으로 개혁주의 교회들이 자주 불어야 하는 찬송가이다.

그리고 작사자가 문제는 되는 ‘그 맑고 환한 밤중에(112장)’를 작사한 에드먼드 시어즈는 이단인 유니테리언 목사로 삼위일체, 그리스도의 신성, 동정녀 탄생 등을 믿지 않는 이단자이고 ‘고요한 밤 거룩한 밤(109장)’을 작사한 천주교회 신부인 조셉 모르는 마을 풍경을 보고 자신의 섰던 시를 다시 작성해서 만든 가사인데 신학적 문제는 ‘자장가 형태의 가사’로 되어 있는 것(한글 가사로 “아기 잘도 잔다.”이지만 독어 원문은 “하늘 평화 속에 잘 자거라”로 전형적인 자장가 형태의 가사)으로 사실상 아기 예수님을 자게 하는 어머니를 중시하는 ‘성모 마리아 사상’으로 우리의 입장에서는 부르면 안 되는 곡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러한 곡들은 찬송가에서 삭제가 되어야 하고 심각한 문제는 복음성가들도 신학적으로 가사 내용이 검증이 되지 않는 곡들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불신자들에게도 사랑받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철저하게 인본적 가사 내용으로 문제가 단순히 인간은 사랑받기 위해서 피조된 존재가 아닌 사실상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S.D.G.)을 드리기 위해서 피조된 존재로 삼위일체 하나님만을 찬양해야 한다는 핵심적인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사 43:21).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에서 개혁주의 교회들은 찬양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져야 한다. 즉 예배에서 ‘은혜의 수단’인 설교와 성례전(세례와 성찬)으로 은혜를 주신 것에 대한 경배와 감사의 행위 중 하나가 찬양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잘못된 번안으로 ‘2인칭 관점(너, 네, 너희)’이 아니라 신앙고백적인 자세(사도신조처럼 “나는 믿는다.”)로 불러야 하므로 반드시 ‘1인칭 관점(나, 내, 우리)’으로 다시 바꿔 불러야 하는데 예를 들어 ‘너 시험을 당해(342장)’을 부를 때에 “너 시험을 당 해 죄 짓지말고”가 아니라 “나 시험을 당해”로 불러야 하고 더불어 번안을 할 때에 영어 ‘you’의 번역을 ‘당신’으로 하면 우리 문화에서는 부정적 의미가 강하기에 ‘주님’이라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교회의 음악에서 성가대와 찬양단이 아니라 ‘회중 찬송’이 핵심이기에 사실상 수준과 자질이 안되는 신자들을 찬양자들로 세우는 것이 덕이 되지 못하므로 하지 말고 우선적으로 찬송가와 복음성가에서 바른 신학적 가사 내용을 가진 곡들을 선별해 사용하여 회중들이 삼위일체 하나님께 찬양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혁주의 교회들은 목회에서 찬양 사역이나 집회가 아니라 ‘은혜의 수단’인 설교와 성례전의 중요성을 바르게 가르쳐 알게 하며 행하고 장로교회에 음악목사라는 비개혁주의적 제도를 없애야 한다. 즉 목사는 음악 수준도 필요하지만 설교와 성례전을 집례하는 ‘말씀의 사역자(V.D.M.)’가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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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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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nda 2019-02-10 05:49:13

    어떻게 하다가 바른믿음 사이트에 있는 글들이 페이스 북에 올라와 가끔씩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 하기가 좀 그렇지만 거의 대부분의 글들이 자해석에 의해 판단하고 정죄하는 글들로 보여집니다. 물론 그 자해석을 정당화하기 위해 참고문헌을 인용하는 것도 많이 있지만 참고 문헌은 그저 자신이 말하고자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는 수단이라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해석이란 것 자체가 참으로 힘든 것이 해석자가 원저자가 아닌 이상 그 원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뜻을 정확히 밝힌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라 봅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신책 2019-02-02 00:41:11

      시편 찬송이 개혁주의에 가장 적절하다는 깔뱅의 이론을 제시하셨는데, 깔뱅이 악기는 오르간만 사용하라고 하던가요? 그럼 좀 이상한데... 소고치고 춤추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하라는 명령을 담고 있는 시편 150편 등의 찬양을 북 안 치고 나팔 안 불고 찬양하라고 그렇게 가르쳤단 말인가요? 그렇다면 깔뱅이 성경을 잘못 가르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군요.신고 | 수정 | 삭제

      • Danisl 2019-01-29 02:03:11

        이 시대 교회 음악의 중요성을일깨워 주는 귀한
        글에 감사합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이 사이트의 문제 2019-01-27 16:06:49

          이 사이트에는 성경을 근본주의적으로 엄격하게 해석하는 사람들의 독선주의적인 시각이 많이 소개되는데, 자신들의 최초 순전했던 의도와는 달리 결국은 도리어 편의주의적인이거나 편협하거나 또는 임의성의 정도가 도를 넘은 고유한 해석이 너무 많다. 자신들만 좁은 길을 가는 신앙의 수호자라는 오만이 엿보인다. 신학을 자주 인용하지만 상식에도 못 미치는 주장도 많다. 자주 등장하는 성경구절과 이어지는 뜻풀이는 이것 아니면 다 잘못되었다는 식이다. 감정을 거세하는 숨막히는 분위기다. 사두개와 바리새를 혼합하면 이런 조합이 나올 수도 있다.신고 | 수정 | 삭제

          • 이귀형 2019-01-20 22:12:06

            좋은 글, 좋은 지적입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지나가다 2019-01-19 06:08:54

              고요한 밤/거룩한 밤에 대한 설명에서 수정하신 내용 읽어봤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실관계에 문제가 있습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109장)’을 작사한 천주교회 신부인 조셉 모르는 마을 풍경을 보고 자신의 섰던 시를 다시 작성해서 만든 가사인데 신학적 문제는 ‘자장가 형태의 가사’로 되어 있는 것(한글 가사로 “아기 잘도 잔다.”이지만 독어 원문은 “하늘 평화 속에 잘 자거라”로 전형적인 자장가 형태의 가사)으로 사실상 아기 예수님을 자게 하는 어머니를 중시하는 ‘성모 마리아 사상’으로 우리의 입장에서는 부르면 안 되는 곡이다."

              라고 쓰셨는데,

              언급하신 원 독일어 가사의 1-6절에는 "성모 마리아 사상" 같은 것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매우 경건한 부부 (hoch heilige Paar)"라고만 1절에 언급되어 있을 뿐입니다.

              1절 마지막 줄인 "Schlafe in himmlischer Ruh!"의 한국어 번역 "아기 잘도 잔다"가 좋은 번역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표현이 마리아가 아기 예수더러 "자라"고 명령하는 것이거나, 그래서 이 1절이 그의 "어머니를 중시"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건 "천상의 (깊은) 평화 속에 주무소서!!" 정도의 염원을 담은 표현이라 보시면 되지, "Schlafe in himmlischer Ruh!" (마리아가) 예수를 "자게하는" 명령으로 이해하시면 곤란합니다. 일상 독일어로 Schlaf gut! Schlaf schon! 하면 "푹 쉬어" 인데, 이걸 "명령"이라 이해하는 것과 흡시합니다.

              게다가 1-6절 가사의 구조를 볼 때 1절 마지막 줄을 마리아가 하는 말로 보기도 힘듭니다. 각 절의 마지막 줄은
              각절을 요약하는 일종의 선언입니다. "예수, 태어나셨다!!, 예수, 인간세상에 오셨다!! 등등.

              제가 특별히 이 노래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Mohr가 천주교 사제란 이유 때문에 너무 과도한 신학적 해석을 내리신 것 같아서 적어봅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지나가다 2019-01-18 06:51:18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작사가이자 천주교 사제인 "조셉 모르" (Joseph Mohr)는 1792년에 태어났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200년 전인 1572년 바르톨로메오 축일 대학살 때 프랑스 위그노들을 학살할 수가 있나요? 차라리 그가 천주교 사제라서 그 노래를 수용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면야 몰라도요. 수정 바랍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바울처럼 2019-01-17 22:51:42

                  "즉 목사는 음악 수준도 필요하지만 설교와 성례전을 집례하는 ‘말씀의 사역자(V.D.M.)’가 정체성이다."

                  목사의 제 1자격은 두 말 할 필요없이 말씀의 사역자입니다.
                  그러나 제 1자격에 못지 않는 중요한 자격 또한 음악이라고 종교개혁자 루터는 강조하였습니다.
                  저는 루터의 그 말을 백번 이해하고 실감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음악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유는 목사가 교회음악에 대한 확고한 가치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교회음악에 대한 가치관이 없으니 음악전공자에게 교회음악에 대한 권한을 위임하게 되고, 위임받은 음악전문가는 신학을 모르니 당연히 자신의 음악적 소신에 의해 예배음악을 인도하게 됩니다.
                  그러니 그 이후의 상황은 누구나 눈감고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저는 루터가 "음악을 모르는 목사는 목사로서의 자격이 없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한 이유를 충분히 이해합니다.
                  루터의 말대로 많은 목사들이 교회음악에 대해 너무도 무지하기에 오늘날 교회음악이 세상음악과 구별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타 종교와 달리 기독교는 말씀의 비중 못지않게 음악의 비중이 매우 큽니다.
                  비중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인데,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비중만큼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기에 이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목사는 설교와 성례전을 집례하는 ‘말씀의 사역자(V.D.M.)’가 정체성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교회음악에 대한 확고한 정체성의 확립 또한 필수적이다"라고 주장하는 바입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평신도 2019-01-17 12:35:11

                    개혁주의를 믿는 저도 찬양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부분이 있고 지나친게 아닌가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찬양가사가 가장 중요하고 가사로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찬양의 주된 것임을 동의합니다. 하지만 드럼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꼭 맞는 것인지 바른믿음의 이전 글에서도 보았지만 아직은 의문이 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팔소리 찬송가가 왜 무(현)천년주의 성격이 아닌지요? 환난후 휴거라도 이 찬송과 어긋나는 내용은 없을 것 같은데요. 혹시 살전4:16-17절에 대해 개혁주의적 휴거관이 어떤지 알고 싶습니다. 살전 말씀의 휴거가 실제 일어나는 일이 아닌 상징으로 생각하시는지? 요한계시록 전문가이신 이필찬교수님은 상징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살전 말씀이 너무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다가와서요. 일단 예수님의 재림을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으로 나누는 이중재림은 잘못된 것으로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동네형 2019-01-17 11:03:26

                      저는 한 신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입니다. 정이철 목사님의 글은 잘봤습니다. 그러나 찬양에 대한 너무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워 이 글을 작성합니다. 물론 찬양이라는 것이 옳바르게 성경적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게되면 예수의재림에 대한 초점이 더 많습니다.(고후13.계18~20)그리고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존재에 앞서 저희는 하나님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신고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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