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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즈 더 숭배하지 말고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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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27  04: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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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즈의 성화론에 대해 살펴보았다. 에드워즈의 성화론은 전형적인 칼빈주의 사상이다. 에드워즈는 성화가 회심 때부터 시작되고, 한꺼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이고, 성화를 이루어가는 하나님의 역할도 100%이고 인간의 역할도 100%라고 강조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에드워즈는 어떤 사람을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성화의 본이 되는 사람이라고 보았을까? 에드워즈에게 그 사람은 바로 자기 부인 사라였다. 에드워즈는「성령의 역사 분별 방법」(The distinguishing marks of a work of the Spirit of God, 1741)의 후편으로 저술한「균형잡힌 부흥론」(Some Thoughts Concerning The Present Revival Of Religion In New England, 1742)의 내용에 사라의 이야기를 특별하게 첨가하였다.

이것은 에드워즈가 자기 책의 독자들에게 사라를 성경적 성령의 부흥의 사역을 경험한 대표적인 사람으로 소개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1) 이상웅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에드워즈는 사라를 이야기를 소개하는 부분의 제목을 '복음적 경건의 일례'라고 했다.2) 이것은 에드워즈가 사라를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성화의 본보기로 여겼다는 증거이다. 에드워즈는 사라가 성령의 균형잡힌 부흥의 은혜를 체험했다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시로, 상당한 시간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그리스도의 탁월하심의 영광을 보면서 묵상하는 동안 영혼이 완전히 압도되었으며, 빛과 사랑의 감미로운 위로에 사로잡혔다”3)

이 내용은 1742년 1월의 어느 수요일과 목요일, 에드워즈가 집을 비우고 있을 때 사라가 세 번이나 연속 입신했던 사건을 언급하는 말이다. 아니면 그 당시 사라에게 일어났던 또 다른 신비체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거짓 성령의 역사로 인해 사라는 자주 몸이 기운을 잃고 축 늘어졌고, 동시에 황홀경과 영적으로 신비한 감정들을 함께 체험했다.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그때 사라의 그 모습은 꼭 죽어가는 사람 같았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만일 에드워즈가 돌아오기 전에 사라가 죽으면 자신들이 죽인 것으로 오해받을까 걱정하였다. 그러자 사라는 주변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다음과 말했다.

“나는 하나님의 뜻에 가장 합당한 방식으로 죽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필요하다면, 나는 기꺼이 어둠과 공포 속에서 죽기를 바랍니다.”4)

   
 George M. Marsden

대표적인 에드워즈 전기 작가 인 조지 마스덴(George Marsden)은 이 무렵에 일어난 사라의 신비 체험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1742년 1월, 사라는 2주 이상 지속되는 영적인 무아지경에 빠졌다. 그녀는 반복적으로 영적 황홀경에 의해 압도되었고, 돌발적으로 갑자기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했다. 그녀는 기쁨과 황홀경에 의해 완전히 지배되어 신체적으로 자신을 전혀 통제하지 못했다”5)

“사라는 (어린 시절부터 자주하던 대로) 목상하기 위해 홀로 조용한 곳으로 갔다. 그녀의 대부분의 영적인 황홀경 체험은 홀로 조용한 곳에 있을 때에나 밤에 일어났다.”6)

사라에게 일어난 괴상한 성령의 역사에 대한 에드워즈의 말은 은유적이거나 문학적인 표현이 아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사라에게는 성경의 그 어떤 말씀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성령의 괴상한 일들, 즉 현대의 신사도운동가들의 집회에서 벌어지는 거짓 영의 신비한 일들이 분명히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무슨 말로도 변명할 수가 없다. 대각성이 진행되는 동안 에드워즈 자신이 집회를 인도할 때에도 사람들에게 비슷한 일들이 자주 일어났는데, 에드워즈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령에 의해 몸이 압도되어 움직이지 못하는 일이 흔했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집으로 가지 못하고 그곳에서 밤을 보내야만 하는 일들이 있었다."7)

그러므로 에드워즈가 사라의 몸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압도되고’, ‘빛과 사랑의 감미로운 위로’에 사로잡혔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문학적인 표현이 아니다. 실제로 사라는 자기 몸을 통제하지 못하는 괴이한 상황에서 그런 신비한 것들을 경험했다. 에드워즈가 인도하는 부흥집회에서도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

에드워즈가 대각성 동안 일어난 괴이한 현상들과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쓴 논문 「균형잡힌 부흥론」에서 사라를 올바른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며 모범적인 성화의 길을 걸어간 신자의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내용이다. 이것은 이 논문을 쓸 때까지 에드워즈가 거짓 영의 신비현상에 대해 경각심이나 깨달음을 가지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사라가 체험한 괴이하고 신비적인 현상은 현대의 오순절 운동에서 ‘성령재세례’가 임할 때 주로 발생한다. 신사도운동가들의 집회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그들을 그것이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임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안타깝게도 에드워즈는 그런 체험이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사모해야 할 높은 경지의 성령의 사역이라고 가르쳤다. 그렇다면 우리는 올바른 교회를 떠나 신사도운동하는 곳으로 옮겨야 하는 것인가? 에드워즈는 자주 사라의 이야기를 하면서 사라가 다음과 같은 영적인 체험을 했다고 말했다.8)

“종종 맥이 풀리고 몸의 기력이 사라져 서 있거나 말할 힘도 없어질”

“은혜의 힘과 신적인 빛이 오랫동안 이러한 약점들을 정복함으로서 허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주는”

“위대한 신적인 빛을 보았고, 흘러넘치는 하나님의 사랑의 힘과 감미로움”

“세상을 전적으로 초월하는 자유의 달콤함을 맛보면서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무한히 충만하신 하나님 한 분만을 소유했고, 이러한 것들과 함께 달콤한 평안이 지속되었고 영혼은 고요하고 평온했는데 이것을 방해하는 구름은 전혀 없었다.”

이런 내용이 사라가 체험한 성경적인 은혜에 대한 에드워즈의 문학적인 표현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예수님과 성경의 편에 서기를 주저하고 끝까지 자신의 인간 우상으로 삼으려는 인간의 죄성의 모습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사라가 거짓 영의 실질적인 역사로 말미암는 비성경적인 ‘입신’ 현상에 자주 빠졌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고, 그때마다 설명할 수 없는 신비체험을 동시에 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로이드 존스도 사라에게서 일어는 특이한 신체적인 현상들을 에드워즈가 변호했었다고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에드워즈는 1740년의 부흥운동에서 일어난 비일상적인 특별한 현상들에 대해서도 변호해야 했습니다. 에드워즈는 성령의 특별한 역사하심으로 인하여 사람의 몸에도 특이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변호했습니다. 한번은 그의 부인 사라에게서 ‘공중부양’(levitation)이라고 불리우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사라 자신이 움직이려고 노력하지 않았음에도 말 그대로 저절로 방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동되었습니다. 집회 중에 사람들이 기절(swoon, 황홀경)하거나 무의식의 상태에 빠지는 일들이 자주(sometimes) 일어났습니다.” 9)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에드워즈를 숭배해서는 안 된다. 그 동안 우리가 세뇌된 것처럼, 에드워즈는 기독교 교회사 최고의 영적인 거장이 아니다. 초대교회의 훌륭한 교부들은 에드워즈보다 사도들 시대에 더 근접했던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환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직접 만나지 못했다. 그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처절하게 성경을 연구하며 씨름하였고, 피와 땀의 결실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학을 정립하였다. 그런데 에드워즈는 어떻게 단 한 순간에 삼위일체 하나님을 환상으로 보았을까? 그게 어떻게 가능하였을까?

그리고 훌륭한 교부들과 칼빈 등의 종교개혁자들의 복음 사역에서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는 일들, 즉 쓰러짐, 입신, 황홀경 신비체험, 몸의 마비, 몸의 진동 등의 현상들이 에드워즈의 부흥사역에서 많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에드워즈가 말씀의 사람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나, 이상한 성령의 역사를 동반하는 말씀의 사람, 즉 요즘의 신사도영성을 발휘하는 칼빈주의자와 같다고 생각해야 한다.

사람들은 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A Treatise Concerning Religious Affections, 1746)이 무척이나 대단하다고 한다. 비록 자신의 대각성 운동에서 현대의 신사도집회 현상들이 일어났을지라도 나중에「신앙감정론」으로 바로잡았으니 더 추궁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신앙감정론」을 자세하게 보기 바란다. 그 속에 에드워즈 자신이 사탄에게 미혹되어 예수님과 삼위일체 하나님을 만나는 환상 체험을 가진 것에 대한 회개나 반성, 현대의 이단연구가들이 이단 시비를 당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요구하는 ‘공개적인 회개’, ‘재발방지에 대한 약속’을 한 적이 없다. 모든 내용은 자기 독자들과 남들을 가르치고 바로잡는 내용뿐이다.

1741년 1월, 에드워즈가 외부에 설교하러 갔을 때 사라는 세 번이 입신하여 깊은 황홀경에 빠졌다. 에드워즈가 돌아왔을 때 사라는 아직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때 에드워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의 노력으로는 이런 은혜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10)

에드워즈는 나중에 사라의 입신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의심받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사라의 입신이 광신적(이단적)인 현상이라면, 또는 두뇌가 병들어서 나타난 현상이라면, 나는 나의 두뇌가 영원히 그 행복한 질병의 상태에 잡혀 있기를 바란다”11)

사탄의 역사로 괴상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을 도리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고 이렇게 두둔하고 옹호하였으니, 주변의 순진무구한 신자들에 미친 혼란이 얼마나 심했을까? 이 보다 더 심각한 영적인 이적행위는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에드워즈의「신앙감정론」을 아무리 읽어보아도 자신의 이런 실수와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바로잡는 내용은 없다. 그런데 왜 「신앙감정론」이 에드워즈를 더 위대한 영적인 거장으로 만들어 주는 또 하나의 훈장이 되는 것인가?
 

   


조지 마스덴은 에드워즈의「신앙감정론」이 출판될 무렵의 뉴잉글랜드 사회와 교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특별히 뉴잉글랜드의 교회의 상황은 완전히 바닥을 치고 있었다. 대각성 운동에 대한 격렬한 논쟁은 교회들을 분열시켰다. 사람들은 목회자들을 존경하지 않고 경멸했다. 신자들에 대한 교회의 신앙훈련은 무너졌다. 거짓된 신자들(광신자들)은 사탄이 만들어 낸 거짓된 속임수들에 열광하였다. 사람들은 참된 경건한 신앙을 멸시하였다. 모든 종류의 사악한 죄악들이 최고조에 이르렀다.”12)

이것이 1745-46년의 뉴잉글랜드의 영적인 실상이다. 에드워즈의 대각성이 1742년에 끝났으니, 이 모습이 대각성 운동의 적나라한 열매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성경은 열매를 보고 그 정체를 파악하라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에드워즈가 「신앙감정론」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에드워즈를 사탄과 광신자들로부터 최대의 피해를 당한 사람인 것으로 여기려고 한다.  뉴잉글랜드 사회와 교회들을 이 지경으로 만드는데 가장 큰 책임이 있는 한 사람을 굳이 지목한다면, 그 사람은 바로 에드워즈가 아닐까?

사라 이야기를 하고 마치도록 하자! 대체 사라에게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가장 과학적이고 현명한 대답은 사라가 정도가 미약한 정신병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라가 살았던 지역의 의사였던 새뮤엘 매더(Samuel Mather)가 1742년 12월 경에 작성한 처방전을 보면 그렇게 짐작할 수 있다. 그때는 종이가 귀했던 시절이었으므로 에드워즈가 그 처방전의 뒷면을 설교 원고로 사용하였으므로 그것이 나중에 발견되었다. 사라가 무슨 병을 앓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당시 의사들은 여성들의 우울증과 히스테리 증상이 자궁의 질병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그 처방전에는 젖은 수건을 머리에 올려 놓으라는 내용과 배꼽에 붙이는 일종의 고약에 대한 처방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 당시에는 그 약이 여성들의 우울증과 히스테리성 질환의 원인이 되는 자궁의 질병을 치료하는 약이었다.13)

요즘에도 감정기복이 심하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여성들에게 '성령 안에서 안식한다'는 괴이한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나도 이전에 옆에서 그러한 현상을 보이는 젊은 여성을 보고 깜짝 놀랐고,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고 얼른 들어서 안전한 곳으로 갔다 놓았던 적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분도 사라처럼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이었다.

 

--- 미주 ---

1) George M. Marsden, Jonathan Edwards: A Life (New Haven,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3), 240.
2) 이상웅,「조나단 에드워즈의 성령론」(부흥과개혁사, 2013), 302. 각주 435번.
3) Edwards, Some Thoughts, WY 4:333, 331-332. 이상웅, 300.
4) Marsden, 240.
5) Ibid.
6) Ibid.
7) 에드워즈가 Thomas Prince에게 1741년 6월 9일에 보낸 편지. Marsden, 218.
8) 이상웅, 300-301.
9) 
D. M. Lolyd-Jones, The Puritans: Their Origins and Successors (Carlis, PA: The Banner of The Truth Trust, 2016), 363-64.
10) Marsden, 247.
11) Edwards, Some Thoughts, WY 4:333, 332. 이상웅, 300.
12) Marsden, 336.
13) Ibid.,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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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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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왕 지사 2018-11-29 22:14:48

    신학연구 목적은 하나님과 인간의 기원과 그 운명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는 것.
    - 이 지식은 이성과 계시라는 두 가지 길에서 나온다.(토마스 아퀴나스)

    신앙체험이라는 것이 신학하고는 일치할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 에드워즈 연구가 나날이 깊어지는것인지 아닌지는 에드워즈에 대하여 초보인 저로선 가늠할수는 없을 것입니다.그러나 이왕 지사 에드워즈에 대하여 저또한 관심이 있고 많은 기독인들이 관심이 있다고 생각합니다.앞으로 이연구를 통하여 에드워즈의연구 Professional degree로 인정 받으시길 바람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바울처럼 2018-11-28 13:50:19

      2019년에도 개혁주의 컨퍼런스가 열리겠죠?
      개혁주의 컨퍼런스의 단골 메뉴는 당연 조나단 에드워즈였으며 찬미 일색이었습니다.
      내년에 개최될 컨퍼런스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어떡해요 2018-11-28 12:30:28

        에드워즈에게서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났는지 ... 왜 그렇게 분별을 못했는지, 마음이 무거워 지네요. 과연 믿고 나의 신앙의 길잡이로 삼을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구독자 2018-11-28 10:38:36

          존웨슬리의 일기를 읽어보면 웨슬리가 순회집회하면서 일어난 것들 중에 이와 비슷한 내용들이 많이 나옵니다. 쓰러짐, 유사방언, 울음소리 등등... 개혁주의 신앙을 배우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에 두려움과 아쉬움이 많이 생깁니다. 많은 개혁주의 신앙 선배들 중에서 말년에 신비주의에 빠지거나 배교나 배도의 길에 접어들어 후배들에게 많은 실망감을 주었는데... 에드워즈는 개혁주의 인물에서 제외되지 않길 기도합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바르게 가자 2018-11-27 17:26:13

            분명 에드워즈는 성경말씀에 기초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정이철목사님께 여쭈어보고 싶고 연구를 통해 확증해주시길 바라는 것은 이것입니다.

            본문에 붉은 글씨로 반복해서 나오는 "빛과 사랑"의 '빛'과
            에드워즈의 1~ 2차 부흥 영향속에서 끝내 낄 자리를 얻지 못했던 "내면의 빛"을 중시하는 퀘이커교도들이 말하는 '빛'은
            에드워즈에게 같은 것이었습니까? 다른 것이었습니까?


            이시대는 영적현상으로 가장한 쿤달리니 현상이나 파룬궁의 영적현상으로 가장한 이상현상 등과
            신사도운동의 영적현상으로 포장된 이상현상들을 이전보다 더 잘 구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영적인 접신일 뿐 접신을 빼면 영적인 현상들이 아닙니다.
            에드워즈 당시보다는 정보의 접근이 훨씬 좋은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성령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이를 방해하려고 시도하는 악령의 역사가 혼재되어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신 것은 훌륭하신 문제제기였다고 생각됩니다.
            지금과 달리 여러 이상현상들에 대해 정보와 분별의 한계가 있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들에 대하여 정이철목사님께서 연구를 통해 확증해주시길 바랍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바울처럼 2018-11-27 13:57:19

              예전에 한동안 뇌과학에 관한 책에 빠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책 이름은 기억하질 못하지만 사라부인의 입신의 원인에 대한 기술을 보니 생각나는 내용이 있습니다.

              현대 뇌과학은 인위적인 유체이탈이 가능한 때까지 왔다고 합니다.
              실험대상자 뇌의 어느 한 부분에 미세한 전기적 자극을 가하자 그 사람의 정신세계가 자신의 몸을 이탈하여 누워있는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았다는 기사가 생각납니다.

              또한 [나쁜 뇌를 써라]의 저자의 글에 의하면, 뇌의 정상적인 기능이 망가진 뇌일수록 특정한 분야에서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반 고흐와 도스토예프스키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두 사람 모두 '측두엽 뇌전증'을 앓았다고 합니다.
              '측두엽 뇌전증'을 앓게 되면 '하이퍼그라피아'라는 증상도 동반하는데 이때 정상인의 능력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방대한 양의 업적을 이룬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는 뇌의 어느 한 부분이 병이 들었을 때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가 기대하지 않은 좋은 결과를 나타낸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뇌의 어느 한 부분이 병들었을 때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인 유체이탈이나 입신은 좋은 결과라고 볼 수 있을까요?신고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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