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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7년 에드워즈는 성자의 신적 아름다움을 환상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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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7년 에드워즈는 성자의 신적 아름다움을 환상으로 보았다
  • 정이철
  • 승인 2018.11.14 11:19
  • 댓글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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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게 가자 2018-11-20 16:45:09
제 개인적 희망사항을 적어본다면
많은 기록들과 사상의 검증들과 치열한 논쟁들을 통해서 환상논란은 오역으로 결론이 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번역들에 의존한 "현대은사주의와 개혁주의 신학의 타협 시도"는 철회함으로 신사도운동들과 함께 세트로 신학적 무력화되고
또한, 반대로 육체의 눈으로 무엇을 보는 것보다 이해력(지성)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는 것을 말한 에드워즈에게 문제제기된 "이 부분에서는 이단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지점까지 나아간" 것도 철회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검증과 논쟁을 통한 오역 여부 확인과는 상관없이 연쇄자살 현상 같은 이상현상들의 출처를 정확하게 파헤쳐서
에드워즈 당시에 퀘이커교도들은 결국 발을 붙이지 못한 1~ 2차 부흥에서 성령의 역사와 악령의 역사가 동시에 나타난 것인지 어떻게 된 것인지 여부 등을 정밀하게 밝혀냈으면 좋겠습니다.

바울처럼 2018-11-20 12:23:24
저도 바르게 가자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환상’에 대한 문제는 단순히 번역에 있어서 오역이냐 아니냐의 차원을 넘어서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이철 목사님께서 에드워즈의 환상을 단순하게 볼 수 없는 여러가지 근거들을 이미 칼럼에서 제시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단순히 ‘환상’이라는 한 단어의 사용만 가지고 시비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에드워즈의 주변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들의 결과를 토대로 유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에드워즈를 옹호하고자 하시는 분들께선 ‘환상’의 의미에 집중하기보다는 먼저 에드워즈의 주변에서 일어났던 여러가지 사건들에 대한 신학적인 분석작업이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바르게 가자 2018-11-20 10:40:49
Mr. Fair님.
에드워즈의 숲 속 체험이 환상으로 잘못 번역되었다는 가정 아래서 기존의 번역자들이 형성시켜서 가고 있는 종착역이 정이철 목사님이 제기 중에 있는 "현대은사주의와 개혁주의 신학의 타협점을 에드워즈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하는 분위기"라면 기존 분들에 의해 시작된 결론이 별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게 됩니다.
이시점에서 정이철 목사님의 환상이냐에 대한 문제제기는 돌이키기 어렵게 되기 전에 논의할 수 있는 적절한 시점의 제기라 할 수가 있습니다.

Mr. Fair 2018-11-20 08:24:04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논의된 것을 보면 번역의 정확성이나 에드워즈의 전체적인 신학사상의 측면에서 볼 때, 에드워즈가 한 말이 ‘환상을 보았다.’는 뜻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여기에서 확정 짓지 말고 (왜냐하면 동의를 안 하실 분들도 있을 것이니까요) 가정해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에드워즈의 1737년 숲 속 체험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환상으로 본 것이 아니라면 다음과 같은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1) 에드워즈의 숲 속 체험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환상으로 본 것’이 아니라면, 에드워즈는 신학적으로 잘못된 것이 없다 하겠습니다. 청교도들도 이야기를 많이 했고 존 플라벨 같은 사람도 체험한 기록이 남아 있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믿음의 눈으로 보는 체험을 도를 닦는 사람들처럼 억지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주어져서 경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체험 이후에 에드워즈가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영광을 환상으로 보는 일을 추구하라고 선동한 기록도 없기 때문입니다.

2) 그런데 한국에 에드워즈를 소개한 분들도 에드워즈의 숲 속 체험을 ‘환상을 보았다’라고 해석을 했다면(이것에 관해서는 인용된 자료가 없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위의 원 글을 쓰신 분도 에드워즈의 숲 속 체험을 ‘환상을 보았다”라고 해석을 했다면, 양측 모두 번역상 심각한 오역을 한 것이니 양측 모두 똑같이 잘못한 것입니다.

3) 그런데 잘못된 번역을 기초로 논리를 펼쳐서 양측이 결국 도달한 종착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한국에 에드워즈를 소개했다고 거론된 분들은 교인들에게 에드워즈의 영적체험을 인용하면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일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설마 거론된 분들이 교인들에게 환상을 보라고 독려하거나 하나님께서 지금도 성경 외에 특별계시를 주시니까 그것을 받으라고 하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신학적으로 약한 분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종착점만 생각해 본다면 이 쪽은 크게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4) 그런데 원 글을 쓰신 분께서는 에드워즈가 환상을 보았다는 잘못된 번역을 근거로 에드워즈가 특별계시를 인정했고 직접 체험했다고 주장하고 그래서 이단성이 있다고 주장까지 하고 있습니다. 에드워즈를 연구한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왜 지금까지 한 사람도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이단성 주장을 하고 계십니다. 잘못된 번역에서 출발하여 결국에는 에드워즈가 (모든 면에서 잘못된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부분에서는 이단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지점까지 나아갔습니다. 만일 에드워즈가 환상을 본 것이 아니라면, 이 주장은 형제에 대한 거짓 증거에 해당하는 심각한 일입니다.

5) 에드워즈가 환상을 본 것이 아니라는 게 맞다면, 양측 다 번역을 잘못했다는 데서는 동일한 책임이 있지만, 잘못된 번역을 기초로 해서 나아간 종착점은 어느 쪽이 더 심각한 오류를 범하는 것일까요? 팩트를 체크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과정과 결과를 놓고 이런 생각도 차분하게 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올바르게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도 올바르고 세상 정신과는 다른 과정이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인정할 것이니 말입니다.

바울처럼 2018-11-20 03:16:54
나그네님의 댓글을 기대하고 있는데 답변이 없으시네요...ㅠ

구상화는 어떠한 목적을 이루고자하는 도구로써 뉴에이저들의 한 기법인데 반해, 에드워즈의 경우는 자신이 기록한대로라면 목적을 가지고 노력한 것이 아닌 '아주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라고 생각되기에 구상화까지 가는 것은 무리가 있지않나 생각합니다...^^

정이철 목사님의 말씀에 100% 동감합니다.
한국에서 에드워즈 연구에 대해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서울 인근 경기도의 모 교회 김00 목사 역시 방언을 한다는 말을 지인을 통해 들었습니다.
코메디도 이런 코메디가 없습니다.
스스로 개혁주의라 일컫는 사람들의 자신을 냉엄하게 돌아보는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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