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래도 에드워즈는 칭의-구원론에 있어서 종교개혁 핵심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너져가던 칼빈주의의 기치를 다시 세운 사람이었다. 1703년, 그는 당시 영국의 코넥티컷 식민지의 Winsor에서 출생했다. 그가 태어나기 2년 전 코넥티컷의 세 개의 도시에서 수업이 진행되는 한 대학이 생겼다. 1718년, 그 세 개의 캠퍼스는 코넥티컷의 New Heaven으로 이전되어 통합되었다. 이 학교가 지금의 세계적인 명문 예일대학이다.

1636년에 메사츄세츠 식민지에서 시작된 Harvard 대학이 있었음에도 왜 청교도들은 인근 코넥티컷 식민지에 또 새로운 대학을 세웠을까? 영국 성공회의 알미니안주의가 대서양을 건너서 신대륙으로 들어왔고, 하바드 대학의 교수들까지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에드워즈의 아버지 디모데 목사도 하바드 대학과 대학원을 나왔고, 에드워즈를 담임목사로 만들어 준 외할아버지 스토다드 목사도 하바드 대학을 나왔다. 그러나 에드워즈는 하바드에 가지 않고 시설이 변변치 않은 새로 설립된 예일대학으로 갔다. 그 이유는 종교개혁 ‘Orthodoxy’를 강하게 추구하였던 아버지 디모데 목사의 영향으로 보인다.


Orthodoxy, Reformed, Reformed Scholasticism

종교개혁 후 17-18세기 동안 종교개혁의 핵심을 교회에 정착시키려는 구체적인 신학 작업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종교개혁 당시처럼 피 흘리는 물리적 싸움이 전개되지는 않았으나 치열한 신학 논쟁 싸움이 이어졌다. 바로 이 기간 동안에 형성되어 교회에 자리잡은 신학의 내용을 Orthodoxy라고 한다.1) 쉽게 ‘기독교 정통신앙’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Reformed’라는 말도 거의 같은 내용이다. 칼빈과 그의 동료들, 제자들, 후학들이 완성해 낸 신학을 Reformed라고 한다. Reformed와 Orthodoxy는 거의 같은 의미이고, 웨민 고백서, 돌트신경, 벨직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등으로 표현되었다.

참고로 ‘Reformed Scholasticism’이라는 말도 종종 보는데, 이 말은 Orthodoxy와 Reformed 신학을 세우는데 공헌한 신학자들이 중세의 Scholasticism을 자신들의 신학 방법으로 도입했으므로 생겨난 말이다.2)  또 하나 생각해 볼 것은 한국적 상황에서 흔히 ‘정통교회’, ‘정통교단’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순복음교회(단) 등의 주류에 속해 있으면 정통교회(교단)라고 믿는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역사적으로 ‘Protestant Orthodoxy’(개신교 정통신앙)의 핵심 요건은 바로 다음의 교리들을 믿는 것이었다.

전적 타락 (Total Depravity)
무조건적 선택 (Unconditional Election)
제한적 속죄 (Limited Atonement)
불가항력적 은혜 (Irresistible Grace)
성도의 견인 (Perseverance of Saints)

Orthodoxy, 즉 ‘정통신학’(신앙)은 종교개혁 이후 시대의 교회들이 종교개혁으로부터 시작된 올바른 신학과 교리를 교회에 정착시키기 위해 몸부림쳤던 시대의 고통, 그리고 이 교리들을 파괴하려는 다른 신학에 대한 강한 반대의 의지가 고스란히 베여있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에서 Orthodoxy(정통신앙)는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가? 신천지, 동방번개 ... 등의 이단종파에 속하지 않은 나머지 모두를 가르키는 말이 되었다.

Orthodoxy에 관한한 에드워즈는 우리의 영원한 우상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우상으로 섬기지 말하고 하셨으므로 안 될 일이지만, 만일 가능하다면 그 당시 다시 무너져가는 종교개혁 Orthodoxy를 다시 회복시키는데 혁혁한 공헌을 남겼으므로 에드워즈는 우리의 영웅과 우상이 되기에 충분한 인물이다.

에드워즈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Orthodoxy를 배웠다. 그래서 알미니안주의의 침투로 변질되어가는 하바드 대학에 가지 않고 예일대학으로 갔다고 짐작된다. 에드워즈는 예일대학의 학부에서 웨민 고백서를 믿는다고 서약하고 임용된 교수들에게서 더욱 철저하게 Orthodoxy를 배웠다. 예일 대학원 시절에 종교개혁 Orthodoxy의 핵심에 대한 확신에 이르는 회심을 경험했다.

칼빈주의 수호천사 Edwards

이후 에드워즈는 Orthodoxy를 수호하는 최전선의 전사로 살았다. 에드워즈가 예일 대학원을 졸업하기 한 해전 졸업식에서는 큰 소란이 일어났다. 예일대학 컬터 학장이 자신의 기도 순서를 통해 이미 자신이 청교도 신앙을 버리고 영국 성공회 신앙노선으로 복귀하였음을 드러냈다. 그것은 하바드 대학의 전철을 따라 드디어 예일대학에도 알미니안 신학이 침투했음을 보여주는 징조였다. 그래서 큰 소동이 일어났고 결국 학장은 예일대학을 떠났다.

에드워즈는 바로 그 다음 해에 대학원을 졸업했다. 졸업식장에서 에드워즈가 라틴어로 알미니안 사상을 반박하며 Orthodoxy를 수호하는 내용의 자신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때부터 에드워즈의 Orthodoxy의 수호천사로서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1731년, 하바드 대학 졸업식과 관련하여 하바드 출신 유명목회자들의 모임이 보스톤에서 열렸다. 그때 강사로 초빙된 사람이 젊은 에드워즈였고, 에드워즈는 그 모임에서 알미니안 신앙을 경계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설교했다. 예일대학 출신 젊은 목사가 저명한 하바드 출신 목회자들의 모임에 설교자로 초청되었다는 것은 보통의 일이 아니었다.

1743년, 알미니안 사상을 가진 하바드 출신 젊은 목사 브랙(Breck)이 인근 스프링필드의 한 교회에 부임하게 되자, 에드워즈는 지역의 신앙 환경을 지키기 위해 그가 부임하지 못하도록 앞장서서 막았다. 바로 그때부터 에드워즈는 자기 교회에서 알미니안 신학의 부당성에 대해 설교하기 시작했다. 1734-35년에 일어난 에드워즈의 1차 부흥은 바로 이 무렵에 일어났다.

1750년, 에드워즈는 두 차례의 부흥으로 세계교회사에 자신의 이름을 진하게 올리게 만든 노스햄프턴 교회의 신자들에게서 배신당하고 해임되었다. 그런데 에드워즈는 마지막 고별 설교에서도 알미니안 사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드워즈는 노스햄프턴 교회에서 목회하는 동안 알미니안 신학의 근본인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그릇된 사상을 반박하는 책을 쓰려고 여러 번 시도했다. 그러나 복잡한 교회 사정과 인디언 선교에 헌신하다 결핵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의 신앙과 일생을 기술하는 책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생애>를 준비하느라 시작하지 못했다. 분주한 목회 현장을 떠난 후 인디언 선교지에서 조금 여유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된 에드워즈는 드디어 알미니안 신학의 자유의지론을 반박하는 저술 작업을 완성했다. 1754년, <Freedom of The Will>(의지의 자유)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이 책은 알미니안 사상의 자유의지 개념을 반박하여 종교개혁 Orthodoxy를 다시 세우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바로 그 해부터 에드워즈는 또 다시 중요한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그것도 알미니안 신학을 반박하는 내용이었다. 원죄에 대한 성경적 사상을 파괴하는 영국의 테일러(Taylor)의 책 <원죄의 교리에 대한 자유롭고 솔직한 조사>가 크게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그 책으로 인해 많은 목회자들과 교회들에게 알미니안 신학의 원죄 사상이 유입되었다. 에드워즈는 알미니안주의가 크게 기승하도록 나쁜 촉매제로 쓰여 지는 그 책의 악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또 다시 펜을 들어 원고를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1758년, 에드워즈가 죽던 해에 그 원고는 <Orginal Sin>(원죄론)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또 다시 종교개혁 Orthodoxy를 수호하고 알미니안 신학을 막는 큰 무기로 쓰여 졌다.

에드워즈의 시대적인 한계

이상의 내용은 모두 사실이다. 종교개혁 Orthodoxy 수호하였던 에드워즈의 활동은 아무리 칭찬했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도 그 시대의 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때까지 종교개혁 정통교회의 신학은 성령-부흥론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을 그리스도의 구속을 적용하는 역사 속의 단회적이고 구속사적 사건으로 보는 확고한 신학이 서지 못한 상태였다. 신자 개인에게 성령이 오심에 대해서도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된 하나님 백성에게 하나님이 친히 거하시는 신약의 거룩한 성전을 세운다는 관점에서 보지 못하였다. 그냥 “성령을 부어주신다”라고 단순하게 보았다. 그리고 다들 성령이 더 부어지면 좋을 것으로 생각했다.

에드워즈의 글을 보면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을 그리스도의 구속을 적용하는 단회적 사건으로 보는 이해가 나타나지 않는다. 훗날 등장하는 오순절 성령신학이 에드워즈에게서 미리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에드워즈만 그랬던 것이 아니고 그 시대의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다. 에드워즈는 늘 성령을 더 부어주시기를 위해 소원하였다. 이미 성령을 받은 신자들로 구성된 교회에 성령을 더 부어주시기를 위해 기도하자고 말했다. 성령을 이미 받은 신자 개인들에게도 성령이 더 부어져야 한다고 가르쳤다.

에드워즈에게 부흥은 이미 오신 성령의 인격적 지배하심의 충만이 아니었다. 에드워즈는 언제나 성령이 하늘에서 더 부어지는 것으로 부흥을 이해하였다. 에드워즈에게는 사도행전 2장의 성령강림은 늘 반복되는 일이었다. 성령이 더 부어지는 것이 부흥이었고, 신자들은 이미 성령을 받았으나 더 많이 받기를 사모하여야 한다고 했다.

그 내용이 후에 등장한 오순절 성령사상이고, 오순절 사상의 새로운 형태인 신사도운동의 기름부음 사상이다. 1700년대의 사람이었던 에드워즈가 성령에 대해 그 이상의 이해를 가질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문제는 에드워즈의 책들을 신앙 멘토로 삼았던 로이드존스가 에드워즈의 오류를 그대로 따라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흥을 심도 있게 다룬 많은 학자들이 에드워즈와 로이드존스처럼 “부흥은 성령을 더 부어주심이다”라고 가르쳤다. 아무도 그것이 비성경적인 오순절 신학의 성령-부흥론이고, 그리고 더 후에 등장한 신사도운동의 성령론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간파하지 못하였다.

성령은 같은 사람에게 두 번, 세 번 임하시는 분이 아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진 신자의 몸과 마음속으로 단 한 번으로 완전하게 임하신다. 그것을 성경은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막 1:8),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1:16)라고 표현한다. 또한 우리는 그것을 “성령 받았다”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받는 일, 즉 성령세례는 구약에서 이렇게 예언되었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겔 11:19,20)

성령의 지상강림, 신자에게 성령의 오심에 대하여 에드워즈 시대의 정통 교회들은 아직 고민하지 못했다. 종교개혁 Orthodoxy를 추구하는 개혁주의 교회의 성령론은 1900년대 초 오순절 운동의 발흥에 대한 응전으로 발전되었다. 그래서 위대한 에드워즈는 지금 우리와 같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Orthodoxy와 이단성을 동시에 가지는 현상

오늘 날 성령-부흥론에서 오순절-신사도주의를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 모두가 종교개혁의 정통 신앙의 칭의-구원론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칼빈주의 칭의-구원론을 가지고 있으면서 오순절 성령사상을 가진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이 너무도 많다. 구원론과 성화론에서는 Reformed Theology를 따르면서 성령-부흥론에서는 오순절-신사도주의를 따르는 수많은 목회자들과 신학자이 있다.

그들은 교회에 성령이 하늘로부터 더 부어지고, 구원받은 신자에게도 성령이 더 부어지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금식하고, 안수받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 성령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불건전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쓰러지거나, 입신하거나, 거짓 방언을 하거나, 몸의 힘이 풀리거나, 환상을 보거나, 성령춤을 추거나 ...등의 현상이 그런 사상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어김없이 나타난다.

최근 발견한 사례로는 얼마전 세상을 떠나신 (전) 총신대 총장 차영배 박사님의 사례이다. 차 박사님은 총신에 오순절주의를 도입한 사람이라고 널리 알려져있다. 차영배 박사님은 ‘성령세례’, ‘성령의 부어짐’이라는 말보다는 ‘성령체험’이라는 말을 더 선호하셨다. 사실 성령체험이라는 말은 오순절-신사도 성령론을 동일하게 가지고 있으나 그쪽 유형으로 여겨지고 싶지 않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비교적 완곡한 표현이다. 결국 그 뜻은 성령 받은 사람이 기도하고 금식하여 성령을 더 받았다는 의미이다. 김영한 교수가 (고)차영배 박사님을 추모하며 남긴 글을 보니 차 박사님은 생전에 다음과 같이 목회자들에게 성령체험을 강조했다고 한다.

“차영배는 초창기 신앙시절인 1950년대 중반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뜨거운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는 불과 같은 성령이 구체적으로 임하는 데 몇 시간 동안이나 지속되는 강력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고 난 후에 중생과 죄 사함의 체험이 아주 구체화 되었다고 증언하였다.”(김영한, 성령신학자 고 차영배를 추모하며(코람데오, 2018.9.7)

“그는 성령 체험이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성령 임재 날자와 영적 변화 내용까지 간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가 기도원에서 체험한 성령 체험은 아주 구체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기독교학술원 영성학 수사과정에 지원한 목사생도들에게도 성령 체험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까지 물었다.”(김영한, 성령신학자 고 차영배를 추모하며(코람데오, 2018.9.7)

놀라운 사실은 목회자들에게 그토록 성령체험을 강조했던 (고)차영배 박사님이 생전에 입신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김영한 박사가 (고)차영배 박사의 입신 체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필자가 20년 전 영월에 있는 기도원에 ‘학술원 초청 사경회로 차영배와 함께 간 적이 있었다. 차영배는 함께 기도하는 가운데 30년 전 그에게 임재 했던 성령의 체험을 다시 하게 되었다. 그는 잠간 입신상태에 들어갔다. 그가 다시 은혜를 체험하고 귀가 후 그 체험을 아들에게 간증했다.”(김영한, 성령신학자 고 차영배를 추모하며(코람데오, 2018.9.7)d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 Orthodoxy를 소유했으면서 동시에 오순절-신사도주의 성령론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이단성이다. 성경의 성령을 왜곡하기 때문에 다른 거짓 성령의 놀음에 놀아나는 것이다. 성경에서 벗어난 다른 성령을 사랑하고 추구하므로 필연적으로 거짓 성령의 이단적인 현상들이 나타난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다른 성령의 직통계시, 환상, 예언, 거짓 방언에 빠져 있으면서 동시에 오직 십자가의 은혜로만 구원받는다고 주저하지 않고 외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우리는 주지해야 한다. 구원론이 바르다고 성령론까지 꼭 성경적인 것이 아니다. 만일 성령론이 이단으로 기울어지면 반드시 이단적인 현상이 따른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에드워즈의 예수님 환상

왜 Orthodoxy 수호천사 에드워즈에게 그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에드워즈 자신과 그의 1차 부흥(1734-35)에서 일어난 현대 은사주의자들의 신비현상들과 유사한 것들에 대해 살펴보자. 성령을 더 부어달라고 가르치고 기도했던 에드워즈는 1737년에 환상 가운데 예수님을 보았다. 에드워즈는 그 일을 자신의 책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나는 너무나 놀랍게도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리스도가 사람의 모습으로(The person of Christ) 나에게 나타났는데, 그 모습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광경이었으며, 인간의 모든 사상과 사고를 무색하게 만드는 너무나 장엄한 광경이었습니다. 그 환상은 약 한 시간 동안 지속되었고, 나는 눈물이 강물을 이루는 가운데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3)

성경을 통해서는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알 수가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에드워즈에게 더 많이 알려주시려고 이러한 환상을 보여주셨을까?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게 하시는 확정된 신앙의 방법으로는 부족하니 에드워즈에게만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영광을 더 생생하게 경험하도록 이러한 환상을 보여주셨던 것일까? 이런 일이 우리 보통의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면 직통계시 이단현상이고, 에드워즈에게 나타나면 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이고 놀라운 성령의 임재의 경험인가? 변승우가 이런 일을 말하면 이단성이고 에드워즈가 이런 일을 말하면 비범한 성령의 부흥의 역사인가?


에드워즈의 1차 부흥에서 나타난 괴현상들

에드워즈의 집회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이와 같은 에드워즈의 신비체험을 그냥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에드워즈의 부흥에서는 이상한 현상들이 너무도 많이 일어났다. 1734-35년의 1차 부흥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비교적 적었다. 그럼에도 이전에 에드워즈를 가르쳤던 티모시 커틀러(Thimothy Cutler)는 영국에 사는 자신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당시 진행되고 있던 에드워즈의 1차 부흥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부흥을 통한 회심이 지겨울 정도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60명이 동시에 회심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슬픔과 공포가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짓누르고, 며칠 동안 그 상태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내적인 기쁨을 경험한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집회 중에 웃는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슬퍼합니다. 이런 일이 현재 이 지역에서 큰 이야기 거리가 되었습니다. ‘당신도 경험했습니까?’라는 비꼬는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4)

여기서 말하는 슬픔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살아온 세월 동안의 죄에 대한 거룩한 애통이 아니다. 비정상적이고 통제되지 않는 감정에서 나오는 괴이한 울음과 눈물이 지속되는 것을 뜻한다. 1차 부흥에서 은혜(?)를 받은 한 청년에게서 일어난 일을 구체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아버지가 그에게 산에 가서 뗄 나무를 해 오라고 시켰으나, 그는 가지 않고 집에서 도끼를 붙잡고서 괴이한 소리를 내며 수 시간 동안 통제되지 않는 눈물과 울음을 보였다. 그 부모는 너무나도 괴이하여 에드워즈를 불러 상황을 보게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에드워즈는 다음과 같이 진단하면서 아들에게 일을 시키지 말라고 그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들은 성령의 비상한 은혜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입니다”5)

과연 그 현상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일이었을까? 에드워즈의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에게서 비정상적인 슬픔, 눈물, 공포에 짓눌리는 현상이 나타났고,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것이 이유를 알 수 없는 주관적인 감정변화를 따라 정체불명의 웃음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사실 이런 현상은 지금도 힌두교의 쿤달리니 수련현장에서 매우 흔하게 나타난다. 이미 지나간 빈야드 집회에서 이런 일은 일상사였다. 그들에게서 이 일이 일어나면 이단현상이고 에드워즈를 통하여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비상한 성령의 역사하심인가?

당시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의 수가 크게 증가했고, 젊은이들의 술 파티의 빈도가 낮아졌고, 사람들에게서 종교적인 일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였다. 에드워즈는 그런 내용들을 진정한 부흥의 증거라고 자주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것을 꼭 진정한 부흥의 증거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진정한 부흥으로 여길 수 없는 웨일즈 부흥, 아주사 부흥에서도 그런 일들은 많았고, 지금 많은 신사도 교회에서 그런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더욱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곧 이어 줄줄이 자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부흥 중에 은혜를 경험한 에드워즈의 교인들과 이웃 마을의 교회 교인들에게서 자살의 행렬이 일어났다. 그것으로 부흥은 종지부를 찍었다. 

역사학자 조지 막스덴의 에드워즈 평가

사실 1740-42년 동안의 부흥에서 일어난 일들에 비하면 이때의 일들은 맛보기에 불과했다. 2차 부흥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현대 은사주의 집회 현상들이 쏟아졌다. 에드워즈의 부인 사라의 황홀한 입신은 그 중에서도 백미였다. 사라는 불과 이틀 사이에 세 번이나 입신하면서 세상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천국의 황홀감을 맛보았다. 2차 부흥 중 일어난 많은 괴이한 현상들에 대해서는 다음에 살펴보자.
 

George M. Marsden. 에드워즈의 생애와 신앙의 전기를 저술하신 분


탁월한 역사학자이고, 에드워즈 신앙과 생애를 기록한 탁월한 책 <Jonathan Edwards: A Life>의 저자인 조지 막스덴(George M. Marsden)이 에드워즈의 1차 부흥에 대해 평가한 내용을 소개하고 오늘의 글을 마치고자 한다. 그는 에드워즈의 1차 부흥에 대해 성령의 참 부흥이라고 볼 수 있는 요소들과 사탄의 거짓 부흥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 같이 있었다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령의 임재로 인한 일이라고 볼 수 있는 참된 증거들도 있었으나, 또 다른 증거들은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사탄의 거짓 은혜를 받았음을 보여주었다.”6)

 

--- 미주 ---

1)Willem J. Van Asselt, Introduction to Reformed Scholasticism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1), 5.
2)Ibid, 5,7.
3)Jonathan Edwards, "Personal Narrative," Reader, 203. George M. Marsden, Jonathan Edwards: A Life (New Haven,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3), 185.
4)Ibid., 161.
5)Ibid., 158.
6)Ibid.,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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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