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서부 CRC 한인 목사님들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랜 만에 인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인지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요즘 갑자기 이런 생각이 자주 떠올랐습니다. 

“이전 CRC를 떠날 때 중서부의 CRC 한인 목사님들이 나에게 무슨 글을 보냈었는데, 그게 뭐였지?”

제가 CRC를 떠난다고 공표하였을 때, 중서부 CRC 한인 목사님들이 저에게 편지를 보냈었는데, 저는 당시 그 내용을 읽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미시간에서 필라델피아(뉴욕?)으로 운전하고 가는 동안 당시 CRC 한인 협의회 회장 김기웅 목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전화를 드렸을 수도 있습니다. 저에게 메일을 보내셨다고 했습니다. 운전 중에 메일을 읽을 수 없어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무슨 내용인지를 들어보았습니다. 아내는 별 특별한 내용이 없고, 목사님들의 말이라고 보기에는 부끄러운 내용도 많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피어 그룹 모임 등으로 자주 교제하였던 사이였으므로 마무리를 좋게 하려고 그대로 덮어 두었습니다.

“그때 중서부의 CRC 한인 목사님들이 나에게 무슨 메일을 보냈을까?”

그런데 요즘 자꾸 이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google 메일 함을 뒤져보았습니다. 2013년의 일이므로 어떻게 찾아야 할지를 몰라서 애 먹다가, 간신히 그 메일을 찾았습니다. 글을 쓴 분은 그랜드 래피드의 김문배 목사님이셨고, 그 글을 담은 메일을 보낸 사람은 그랜드 래피드의 김기웅 목사님(한인 협의회 회장)이셨습니다. 그 메일은 저뿐 아니라 미국의 전체 CRC 한인 목회자 120여명에게 보내어 진 메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글은 미시간 지역(중서부 지역)  한인 CRC 목회자들이 공동으로 발의하였습니다. 

김문배 목사(그랜드 래피드 은혜한인 CRC 담임)

그 문서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작년 10월 정이철 목사님이 안타깝게도 CRC를 떠나면서 그 이유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설명에는 CRC교단에 대한 오해가 있었고, 이에 대하여 중서부 지역 목사님들이 이에 대한 올바른 안내와 교정을 시도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그 결과 김문배 목사님의 수고로 1. 로마 천주교회와의 세례협정문 체결에 관한 오해와 진실, 2. 신사도 운동에 대한 오해와 진실, 3. 방언, 예언 들에 대한 그릇된 입장에 대한 오해와 진실, 4. 동성애에 대한 부적절한 자세에 관한 오해와 진실, 5. 범람하는 거짓 사상으로부터 위협 당하고 있는 한인교회들에 대한 무대책에 관한 오해와 진실 등 5가지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 전원 동의하에 받아들였습지다. 간결하고 명료한 해석이기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참고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KC 협의회 회장 김 기웅 목사

중서부 지역: 오용주 목사, 김문배 목사, 배헌석 목사, 박정언 목사, 김인환 목사, 나동원 목사

제가 신학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CRC 교단을 떠난다고 하니, 함께 가까이 교제했던 미시간(중서부) 지역 CRC 한인 목회자들이 저의 주장을 반박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이것이 제 혼자에게만 발송되었다면 간단한 문제이었겠으나, 미국의 전체 CRC 한인 목회자들에게 발송되었으므로 그릇된 내용을 이제라도 바로 잡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5년이 지난 지금 새삼스럽게 논쟁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우리가 하나님이 맡기신 양무리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먹여야 할 목회자들이므로 진리를 속이는 잘못된 내용에 대해서는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 싶습니다. 그 글의 중요한 부분만 발췌하여 보았습니다. 
 

1. CRC와 천주교의 세례협정문 체결에 관해

제가 CRC를 탈퇴하게 만든 첫 번째 사유는 2012년에 CRC가 천주교와 세례협정문을 체결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후 CRC와 천주교가 세례의 신학적 의미를 공유하고 인정하겠다는 것이므로 저는 CRC를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 중서부의 CRC  한인 목회자들은 다음과 같이 반박하셨더군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주어진 세례는 하나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세례를 베풀 때에 성 삼위 하나님의 이름 외에 다른 이름(교황, 마리아)이 들어간다면 우리는 그 세례를 절대 인정하여서는 안 됩니다. 성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로마 천주교회에서 영세 받고 천주교회를 다닌다고 하여 세례의 효과가 거부되어야 할까요? 세례는 진정 하나입니까? 침례교회에서 장로교인(목회자)들이 침례교회로 옮겨 갈 경우에 침례 다시 받으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할까요? CRC 교단은 “세례도 하나”라는 성경 말씀에 대하여 고민하고 따르려 하고 있습니다.”(중서부 한인 CRC 목사들)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세례의 효력이 영원하다는 주장은 당연히 진리이고 성경적입니다. 기꺼이 동의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천주교와 CRC가 세례협정문을 맺은 것을 옹호하면서 할 말은 절대 아닙니다. 천주교가 교황이나 마리아의 이름이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행하고 있을지라도 그렇습니다.

먼저 지적해야 할 사실은 천주교의 세례는 기독교의 세례와 그 원리가 전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천주교의 영세는 죄인에게 원죄를 제거하고 의화되게 하는 은총을 주입하는 수단입니다. 혹시 미시간(중서부) 한인 CRC 목사님들께서도 죄인에게 원죄를 제거하고 칭의얻게하는 은총을 주입하는 수단으로서 세례를 행하고 있으신가요? 그리고 천주교의 영세는 천주교 신학 체계를 구성하는 7성례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의 영세를 수용한다는 것은 천주교의 신학 체계를 인정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CRC가 천주의 영세의 신학적 의미를 다 알고 서도 천주교와 세례협정문을 맺었고 그것이 문제없는 일이라고 옹호한다면, 이미 이단의 길로 들어선 것입니다. 기독교의 세례는 천주교의 영세처럼 사람을 의화시키는 수단이 아니고, 여전히 실질적 죄인이나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받아 의인이라 여겨졌음을 공표하는 의미일 뿐입니다.

혹시 한인 CRC 목사님들은 천주교 신부들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급히 좇아가서 영세를 주는 것처럼 세례를 주시나요? 그래서 천주교와 세례협정문을  체결한 것을 지지하시나요? 천주교의 세례는 이렇게 전혀 의미가 다른 세례인데, 그래도 앞으로 천주교와 CRC가 상호간의 세례의 의미를 공유한다는 세례협정문 체결을 변명하고 옹호할 것인가요? 

그 다음으로 생각해야 할 내용은 더 심각합니다. 천주교가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있으므로 그들의 세례가 기독교의 세례와 같다고 주장하셨는데, 그러면 동일하게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 안식교, 구원파와도 세례협정문을 체결을 추진해 보시겠습니까? 

제가 알아보니, 안식교와 구원파도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있습니다. CRC가 구원파, 안식교와도 세례협정문 체결을 고려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안 될까요? 좋다고는 말 못하시겠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안식교, 구원파는 이단이라고 알려졌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천주교는 기독교일까요? 최근 듣자하니 교황은 성경을 새로 고쳐 쓰자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교황은 이미 무신론자들도 착하게 살면 다 천국에 간다고 오래 전부터 가르치기를 시작했습니다. 60년대 바티칸 종교회의를 통해 이루어진 천주교의 교리적 변화에 대해 아시고 계신가요? 무슬림도 구원받은 형제라고 했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공표하였습니다. 이런 종교가 구원파, 안식교보다 더 좋은가요? 

천주교인들은 마리아가 구원중보자로 고백하고, 교황이 영혼의 거룩한 아버지라고 고백합니다. 그래도 기독교 맞습니까? 그들이 마리아, 교황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이 아니고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니 그들의 세례를 인정할 수 있다고 여전히 말씀하실 수 있으신가요?

그러면 안식교, 구원파와도 기꺼이 세례협정문을 체결하실 수 있으시겠군요. 그들도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시행하는 세례를 베풀고 있으니까요. 안식교, 구원파도 결코 자신의 대표적인 사람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지는 않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세례의 효력이 영원하다는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않는 보편교회 안에서 그렇다는 것 아닙니까? 

천주교와의 세례협정문 체결은 CRC의 신앙과 신학이 배교로 기울어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CRC에 소속한 목회자들이 변명과 말장난으로 영혼들을 속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 듣고 싶지 않으시면,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 안식교와 구원파와도 세례협정문을 체결하자고 교단에 제안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탁드리고 싶은 것 하나 있습니다. 왜 수년 전 한국의 예장 합동이 그 동안 계속 유지하던 정책을 바꾸어서, 이제 더 이상 천주교의 영세를 세례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총회 차원에서 결정했는지 그 이유를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천주교가 기독교인지, 타종교인지, 아니면 기독교 이단종파인지 잘 몰라서 CRC 교단이 천주교와 세례협정문 체결의 심각성을 모르신다면, 다음의 영상을 보십시오. 이미 세상을 떠난 김수환 추기경은 한국 천주교뿐 아니라 전 세계의 천주교를 대표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전 국민 앞에서 천주교의 구원관에 관하여 뭐라 가르쳤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그의 말은 결코 그 개인의 주장이 아니고, 천주교 전체의 가르침입니다. 천주교와 세례협정문을 체결한 것이 과연 은혜스럽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인지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천주교에서는 적어도요, 우리 땅의 우리 선조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고, 또 우리 교회로서는 하나님 아니라도, 불교신자라고 해도 다른 종교에 속하니까 안 된다든지 ...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불교를 믿든지 다른 종교를 믿든지 인간으로서 참되게 사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다 구원해 주신다. 참되게 양심적으로 살면!”(김수환 추기경)


2. “제 3의 물결(신사도운동) 사상에 대한 모호한 자세”에 관하여

제가 CRC를 탈퇴하게 된 두 번째 이유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이단운동인 신사도 운동 등에 대해 CRC가 올바른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중서부 한인 CRC 목회자들은 다음과 같이 저에게 설명했습니다.

“Calvin 신학교에서 목회학 석사를 공부하면서 화란 개혁주의 전통을 따르는 우리 CRC 교단의 독특한 입장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The third party”(제3자) 입장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복음주의자의 범주에 넣지도 않고, 자유주의자의 범주에 넣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화란 개혁주의 전통에 철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주의자들의 범주에 들어감으로 그들의 노선에 무조건 따르지도 않고, 반대쪽에 서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불필요한 논쟁에 빠져들지 않으려고 합니다.“(중서부 한인 CRC 목회자들)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개혁주의라면 당연히 자유주의와는 대칭의 관계이고, 동시에 복음주의권에 자동으로 속하면서 그 안에서 종교개혁 신학자들의 가르침을 더욱 강하게 추구하는 노선으로서 개혁주의 아닌가요? 자유주의도 아니고 복음주의도 아니면서 화란 개혁주의라는 말은 "개도 아니고 고양이도 아니고 짐승이다"라는 말 장난처럼 들립니다.

그리고 신사도 운동은 복음주의 권에서 비교적 너그러운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신사도 운동을 강하게 비파하는 진영은 개혁주의입니다. CRC가 화란 개혁주의 전통을 고수한다면, 한국의 대부분의 교단들보다 더 심각하게 신사도 운동을 대적하고 비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복음주의 교단들은 대부분 신사도 운동을 대적하는 입장을 공표하였기 때문입니다. 화란의 개혁주의를 표방한다는 CRC는 전혀 그런 자세를 보이지 않는 것이 참 이상해 보입니다. 계속 연구 중이라서 그렇습니까?

“CRC는 어떤 노선을 따르거나 반대하는 것에 구체적 입장 표명을 하지 않습니다. 개혁주의의 전통이 있고, 깊고 넓은 성경과 개혁주의에 대한 이해가 있습니다. 다른 교단이나 운동에 대하여 강경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는 전통(문화)입니다. CRC는 교단 내부에서 제3의 물결을 옹호하지도 격려하지도 않습니다. CRC 교단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한인 CRC)

CRC가 다른 교단이나 현시대의 그릇된 운동들에 대해 입장을 표현하지 않는 전통(문화)를 가지고 있고 그것이 CRC의 문화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기독교 역사는 신학 논쟁의 역사입니다. 그 이유는 사단이 교회 안에 가라지를 뿌리기 때문이고, 또한 교회의 상황이 시대마다 다르기 때문에 시대적 상황 속에서 성경을 적용하기 위해 피 나는 논쟁, 연구, 비판이 없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참 교회는 언제든지 가라지를 분별하고, 타락한 시대의 풍조로부터 하나님의 양들을 보호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CRC 교회들에게는 마귀의 시험이나 가라지가 없다는 것인가요? CRC 교회들은 언제나 변함이 없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인가요? 그래서 현시대의 운동들에 대해 입장을 표현하지 않고, 그 무엇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인가요? 그래서 CRC는 이 시대의 참 복음을 허무는 적대적인 세력인 WCC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금기로 여기는 것인가요?
 

3. “방언, 예언 등에 대한 그릇된 입장”에 관하여

제가 CRC를 떠나게 된 세 번째 이유는 현대의 은사주의에 대해 CRC가 완전히 손을 놓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은사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문제는 방언, 예언입니다. 여기에 대해 중서부 한인 CRC는 다음과 같이 교단의 입장을 저에게 설명하셨습니다.

“방언이 오늘날에도 있느냐 없느냐에 대하여서는 오늘날 보수 진영안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정이철 목사님께서 탈퇴의 변에 “물론 성경의 참된 방언이 지금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단정해서도 안 됩니다”라고 표현하였는데 참으로 적절하면서도 모호한 표현입니다. 대부분의 보수진영이 이러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참된 방언’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확정할 수 있습니까? 우리 모두의 겸손을 요구하는 주제입니다.”(한인 CRC 목회자들)

저는 성경의 방언은 오직 하나님이 이방인의 실제 언어로 교회에 말씀하신 방언이었다고확신합니다. 이것은 저 혼자의 주장이 아니고 화란 개혁주의를 비롯한 많은 개혁주의자들의 신학입니다. 방언으로 기도한다는 은사를 성경에서 찾을 수 없고, 기독교 역사에서 공인된 적이 없습니다. 저는 바로 이 말을 하는 것입니다. 왜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엉뚱한 말을 하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제가 방언이 절대로 없다고 단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성경이 없는 선교지에서 사도행전 시대처럼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일이 혹 있을 수는 있을까? 하는 거의 없을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사례를 보고하는 믿을 수 있는 경우는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인 CRC를 비롯한 대부분의 복음주의 교회들은 기독교의 방언을 ‘방언기도’로 이해하고 있고, 지금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방언기도가 성령의 은사라는 은사주의의 주장에 이미 동조하고 있습니다. 저는 칼빈의 신학을 따른다는 CRC 안에도 그한 경향이 심하다는 것을 지적하였고, 그것은 종교개혁자 칼빈의 신학을 따르는 것이 아님을 지적한 것입니다. 저의 방언에 대한 신학을 피력한 글들을 소개합니다. 

"정이철 핵심, 기독교의 방언은 오직 이방인의 실제 언어"(바른믿음, 2018.5.1)

"방언기도 옹호자들이 총신 교수 아니면 좋겠다"(바른믿음, 2018.6.20)

"방언기도에 대한 낭설을 주장하지 마십시오"(바른믿음, 2018.6.29)

 

4. “동성애에 대한 부적절한 자세”에 관하여

CRC의 동성애에 대한 태도도 저에게는 매우 비성경적으로 보였습니다. 미시간의 한인 CRC 목회자들은 제가 말하는 본질을 다음과 같이 오도하였습니다.

“‘동성애는 하나님이 가장 가증하게 여기시는 죄악이고, 인간의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부패한 모습입니다’라는 표현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동성애와 살인 혹은 동성애와 거짓말 중 어느 것이 더 하나님이 가증하게 여기시는 죄악이고,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부패한 모습입니까? 성경은 구체적으로 어느 것이 더 하나님 앞에서 가증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용서받지 못할 죄는 ‘성령을 훼방하는 죄’뿐입니다. 어느 것이 성령을 훼방하는 죄입니까? 용서받지 못할 죄입니까?”(미시간 한인 CRC 목회자들)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언제 어느 죄가 가장 심각한 죄인가? 에 대해서 논하자고 했습니까? 제가 언제 동성애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죄라고 했습니까? 정말 성경이 어떤 죄가 더 하나님 앞에서 가증하다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성경을 보면 반드시 죽이라고 처방되는 죄들이 있습니다. 모든 죄들을 범한 사람들을 반드시 죽이라고 하시지는 않았으나, 동성애자들을 죽이라는 말씀은 분명히 있습니다. 신약에 와서는 동성애자들이 더욱 저주를 받은 상태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런 말씀을 성경에서 못 보았습니까? 동성애가 다른 많은 죄들 중에서 하나님 앞에서 더 가증한 죄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인가요? 교묘하게 동성애의 심각성을 완화시키려는 듯한 태도가 참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동성애가 죄라는 사실을 단호하게 말하지 않는 CRC의 자세를 지적하였던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PCUSA에서 동성애 안이 통과되었을 때, 제가 주도하여 그것을 질타하는 성명서를 내려고 했습니다. 그때까지 좋은 교제를 유지하고 있던 디트로이트의 연로한 고참 CRC 목사 오용주는 저에게 “마음 아픈 사람들이 많으니 그런 성명서는 내지 않아야지 ...”라고 하였습니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아프다는 것일까요? 동성애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아프다는 것일까요? 저는 그런 자세가 문제라고 보았고, 그래서 저는 CRC를 떠난 것입니다.
 

오용주 목사(디트로이트 한빛 교회, CRC)


동성애가 교회를 점령해 오는 시대에 과연 그런 태도가 옳습니까? CRC는 '동성애 성향'과 '동성애 실행'을 구분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동성애 성향'을 가진 성령충만한 CRC 목사들과 성도들이 있으면 소개하여 주십시오. 마치 동성애 성향을 가졌으나 동성애를 즐기지 않는 사람을 대단히 경건하고 신앙을 위해 애쓰는 사람인 것처럼 말하는 분들이 CRC와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은 일단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을 위해 특별관리 대상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언젠가 디트로이트 한빛 교회의 목사 오용주 목사는 피어 그룹 모임에서 자신이 졸업한 칼빈신학교의 어떤 교수가 자신이 오래 동안 동성애 성향으로 괴로워하고 있다고 눈물을 흘리면서 공개적으로 고백하였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오용주 목사의 분위기는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들 앞에서 동성애가 죄라고 말하여 마음을 괴롭게해서는 안되는 것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동성애의 심각성보다는 동성애 성향으로 고민하는 그 사람의 괴로움을 이해하고 동정하는데 더 많은 관심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러면 이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이 간음의 욕구를 이기지 못하며 힘들어 할 때, 그 사람의 마음이 괴롭지 않도록 간음이 죄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아야 하는 것인가요? 

동성애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에 대해 이해하고 감싸주는 자세를 그런식으로 더 우선시하면, 동성애자들이 치료되고 고쳐지는데 더 도움이 되는 것입니까? 동성애 성향을 가지고 있는 그 교수를 일단 정직시키고, 완전히 개선될 때까지 신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못하게 막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CRC에서는 그렇게 했습니까? 동성애 성향을 간직한채 교수 사역을 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동성애를 범하지 않고 살면 성령충만한 것인가요? 동성애 성향이 간직하면서 신실한 목사, 성령충만한 신학 교수 사역자는 가능한 일일까요? 

언젠가 미시간 목회자들 모임을 위해 그랜드 래피트 김문배 목사님의 교회를 방문했었습니다. 사석에서 김문배 목사님이 칼빈신학대학 한인학생(들)이 동성애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고백하며 힘들어 하는 것을 보았다면서, "요즘 애들은 분유를 먹고 자라서 성적 정체성 문제가 심각하다. 이전 세대와는 다르다" ...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분유를 먹고 자란 사람들은 동성애 성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지금까지 밝혀진 과학적 사실들에 의하면 동성애자들과 이성애자들 사이에 유전적 또는 신체적 차이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일부 CRC 목회자들에게 보이는 이런 면들의 원인은 대체 무엇일까요? 왜 CRC 목사들은 동성애에 대하여 그렇게 너그럽게 말하는 경향을 보일까요? 제가 CRC를 떠나기도 결정한 이유 중 하나는 이것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여성안수를 허용하는 CRC의 제도의 성경적 근거는 무엇일까요? 종교다원주의 운동의 핵심인 WCC에 대한 CRC의 입장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WCC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CRC의 신학 노선에 여전히 Calvin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합당할까요? 저는 이런 점들을 고민하다가 떠났습니다.

앞으로 공개적인 토론이 이어진다면 환영합니다. 몇 사람 뭉쳐서 두루뭉실한 글을 보내지 말고, 한 개인이 자신의 인격과 신학과 목회를 걸고 글을 작성하여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바른믿음>은 글을 쓴 사람, 또는 기사의 내용에 등장하는 사람의 실명, 사진, 섬기는 교회를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니, 이 점을 기억하여 주기기 바랍니다.

정이철 목사 / 앤아버 반석교회 담임 / 바른믿음 대표 / 바른믿음 아카데미 대표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