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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구 교수, 오늘 날의 영성 사상과 성경적 경건의 길
이승구  |  wminb@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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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27  07: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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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구 교수

오늘날은 그야 말로 영성의 혼동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우리가 계속 영성이라는 용어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 “영성”이라는 용어가 아니라면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는 것을 무엇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일단 어떤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가 하는 것에 대한 대답은 뒤로 한 채 우리가 성경적으로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묘사해 보기로 하자.

2. 우리가 드러내려고 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

그렇다면 이런 문제점들에서 벗어나 우리가 '영성'이라는 용어를 가장 좋은 의미로 말할 때 우리가 의도하는 바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기로 하자. 모든 토대에 대한 정지(整地) 작업이 이루어진다면 과연 어떤 것이 '진정한 기독교적인 영성'이며, 그런 의미의 영성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은 과연 어떤 사람을 의미하는 것인가? 모든 교회들이 영성 문제로 관심이 높은 이 시점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과연 어떻게 묘사되어야 할 것인가?

바울 서신에 의하면, 성령님에 대해서 바르게 가르침을 받고 우리가 성령님 안에, 그리고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영원히 내주하신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 교회의 지체인 성도들에게 남은 한 가지 과제는 이제 계속해서 '성령님으로 행하는 것'이다. 그것은 '성령을 좇아 행하는 일'이며(갈 5:16),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는 것'이다(갈 5:18). 그것은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엡 5:18)과도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성령님께 민감해서 그가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는 대로, 또한 성령님의 힘에 의존해서 따라가는 인격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진정한 기독교적 의미의 영성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에 대해 말할 때 궁극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이 될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성경 구절을 다 알고 있다. 문제는 우리들이 대부분 그것이 과연 어떤 실재인지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구절들이 인용되기는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말하고 생각하는 의미들은 사람마다 다 다른 경우가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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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먼저 성령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 우리에게 있을 수 없는 것들을 언급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 성령님은 결코 우리를 비성경적인 방향으로 인도하지 아니하신다. 이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는 가장 문제를 많이 일으키는 요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영성 운동가들은 실질적으로 성경의 가르침 밖으로 나아가거나 성경의 가르침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성령의 가르침을 받는 이들은 성경의 가르침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주변에 있는 분들이 결국 성경의 가르침을 무시하게 하는, 성경에 가르침에 무엇이 더 해 져야 온전한 성령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식으로 인도할 때에 우리는 항상 주의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적인 계시는 더 이상 계속 되지 않지만 사적인 계시는 계속된다는 식의 논의를 하는 것의 문제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과 생황에 대한 성경의 온전한 충족성(the sufficiency of the Scriptures)을 가르치시는 성령님의 사역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둘째, 성령님에 의해 인도되는 이들은 결코 비도덕적인 방향으로 나아 갈 수 없다. 이 세상 사람들도 이상하게 여길 정도로 비도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들은 결코 성령님의 의해 가르침 받거나 성령님의 의해 인도되지 않는 것이다.

셋째, 성령님에 의해 인도되는 이들은 비인격적인 방향으로 나갈 수 없다. 성령님은 결코 우리의 인격을 배제하고 우리를 황홀경 가운데서 인도하시고 가르치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이 가장 잘 반영되도록 우리를 인격적으로 인도하시고 가르치시기 때문이다. 소위 영적 지도라는 것이 비인격적 관계가 된다면 그것은 진정 성령님에 의해 인도되지 않는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오늘 날에는 천주교의 영적 지도도 평등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서 영적 지도보다는 영적인 우정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공동체 안에서의 상호 사역을 강조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이런 입장에서 틸더른 에드워즈는 이렇게 까지 말한다:

“영적 지도란 여러 가지 말과 도움과 격려로 그 사람 곁에 기꺼이 앉으려는 심정을 의미하지만, 우리는 성령이 생각과 마음을 열어 주시도록 그의 자각의 방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이런 변화는 좋은 것이다. 그것이 개혁파에서 예로부터 강조해 온 성경과 성령님을 중심으로 한 상호 사역(mutual ministry)으로 나타나도록 우리는 지속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 성령님 안에서 모든 관계는 참으로 인격적인 관계이기 때문이다.

넷째로, 성령님에 의해 인도되는 이들은 하나님 나라에 반하는 방향으로 나아 갈 수 없다.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지 않거나 성경이 하나나 나라에 대해 가르치는 바를 무시하는 방향으로 갈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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