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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피니의 부흥 사상과 박용규 교수와 로이드 존스의 부흥사상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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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18  11: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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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규 교수(총신대 신대원, 교회사)의 저서


총신대 신학대학원의 박용규 교수가 자신의 대표적인 저서 <세계부흥운동사>에서 비성경적인 부흥 운동들을 신령한 성령의 부흥으로 보는 관점을 취하여 큰 문제가 되었다. 특히 기독교 신자였다고 확신할 수도 없는 찰스 피니(Charles G. Finney, 1792-1875)의 부흥운동에 대해서 지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심각한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찰스 피니에 관한 다음의 내용들은 이미 대부분의 교단들의 신학자들 사이에서 큰 이견이 없이 인정되고 있는 사실이다.

1)찰스 피니는 아담의 원죄가 우리에게 미치는 효력을 부정했다.
2)찰스 피니는 하나님의 복음에 대해 스스로 반응할 수 없는 인간의 타락상을 부정했다.
3)찰스 피니는 인간에게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완전한 자유의지가 있다고 했고, 스스로의 의지로 죄를 거부할 수 있다고 했다.
4)찰스 피니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 값으로 죽으셨다는 사실을 부정했다.
5)찰스 피니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의의 전가로 얻어지는 칭의를 부정하였다.

찰스 피니의 신앙과 신학이 이렇게 심각했으므로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거룩한 성령의 부흥을 일으키셨다고 평가한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욕있다. 그리고 보편교회의 신앙에 심각한 혼선을 일으키는 위험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찰스 피니의 부흥

오늘은 찰스 피니의 부흥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동시에 부흥에 대한 로이드 존스의 가르침을 살펴보고, 또한 찰스 피니에 대한 로이드존스의 평가를 박용규 교수의 찰스 피니 평가와 비교해 보려고 한다.

찰스 피니는 부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부흥은 기적도 아니고 기적에 의존하는 것도 아니다. 적절한 수단들을 적용함으로 발생하는 다른 어떤 효과들처럼, 부흥은 순수하게 합법적인 수단들을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서 얻어지는 철학적인 결과이다.”1)

“나는 부흥이 적절한 수단들을 바르게 사용함으로서 얻어지는 결과라고 믿는다. 부흥을 일으키기 위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수단들은 반드시 부흥을 일으키는 자연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2)

부흥을 일으키는 수단을 인간이 잘 사용함으로 부흥이 일어난다는 찰스 피니의 사상은 성경적인 신앙과 부흥을 추구하는 교회들이, 특히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를 믿는 개혁교회들이 결코 인정할 수 없는 내용이다. 성경은 오직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부흥이 가능하다고 말씀한다.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

과연 찰스 피니가 성령의 부흥을 이처럼 인간적이고, 철학적이고, 심리학적으로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성경적인 기독교 신앙이 찰스 피니에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찰스 피니가 예수 그리스도 복음과 성령의 사역으로 거듭난 사람이었다면, 절대로 부흥을 저렇게 이해하고 가르칠 수가 없다.

타락하여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있는 인간의 비참한 상태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정상적인 기독교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담의 죄로 인해 불행한 운명에 처해진 인간의 영원한 비참함에 대해 모르면서(인정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리에게 전가된 아담의 원죄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성령의 본질적인 사역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을까? 찰스 피니가 그런 사람이었다.

“누가 자기보고 나 대신 죽으라고 그랬나요?”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대신 죽으심을 설명하며 복음을 전하자 실제로 어떤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반응하였다. 아담의 원죄의 효력과 그로 말미암은 인간의 영혼의 비참한 상태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그 누구도 자신의 죄의 값으로 대신 피 흘리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찰스 피니가 그런 사람이었다.


찰스 피니는 거짓 선지자

그런데 박용규 교수는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거룩한 부흥의 수단이 되어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일으켰다고 평가한다. 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다. 설명할 수 있는 대안은 오직 하나이다. 찰스 피니는 자신도 속았고, 남들도 속게만든 거짓 선지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벧후 2: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요일 4:1)

찰스 피니가 마귀에게 크게 사용된 거짓 선지자가 아니라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성경적 신앙이 갖추어지지도 않았던 그 사람을 통하여 일어난 엄청난 부흥을 설명할 길이 없다. 찰스 피니는 단순한 불신자가 아니었다. 성경의 핵심을 부정하고 파괴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위대한 기독교 신앙의 지도자로 추앙받은 무서운 사람, 즉 적그리스도였던 것이다. 성경은 이미 찰스 피니와 같은 적그리스도들이 수 없이 많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 2:9-12)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요일 2:18)
 


로이드존스의 부흥에 대한 정의

성경적인 부흥에 대해 깊이 연구하여 탁월한 신학적인 업적들을 남긴 저명한 신학자들의 부흥에 대한 가르침과 비교해 보면, 찰스 피니의 부흥 사상이 얼마나 엉터리이고 위험한지 선명하게 드러난다. 부흥에 대해 성경적으로 가르친 탁월한 신학자들 가운데 찰스 피니처럼 부흥을 일으키는 적합한 수단들을 사람이 적절하게 사용하여 부흥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찰스 피니가 부흥에 대해 가르친 내용과 로이드존스(Martyn Lloyd-Jones,1899–1 March 1981)가 부흥에 대해 가르친 내용을 비교해 보자. 로이드존스는 부흥을 이렇게 가르쳤다.

“부흥은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주심입니다. 부흥은 우리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임하는 것이고, 또한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흥을 일으키는 주도자들이 아니고 그저 부흥이 임했다는 것을 느낄 뿐입니다. 그래서 조나단 에드워드가 우리에게 부흥이 무엇인지를 계속 알려주고 있습니다.”3)

“갑자가 성령의 권능이 사람들에게 임하십니다. 그들은 이전에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를 단지 지성적으로 이해했던 사람이었는데, 성령의 임하심으로 이전과 달리 더욱 심원하고 새롭게 복음의 진리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고,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고, 그리고 자신들의 비참함을 알고 두려워하며 놀라게 됩니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그 이전에는 자신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결국 사람들은 놀라운 구원의 감격과 영광을 느끼게 됩니다."4)

“부흥은 기적이다. 부흥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의 역사하심이다. 부흥은 하나님의 직접적 개입하심과 역사하심으로 말미암는다.”5)

“부흥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는 수단이다”6)
 

   


로이드존스는 자신의 고향 웨일즈에서 일어난 1904년의 웨일즈 부흥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 때문이었는지 부흥의 때에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에 대해 평소 자신이 가르친 내용과 다른 말들을 많이 하였다. 안타깝게도 그것이 로이드존스의 신학의 흠으로 남게되었다. 그것을 제외하면 로이드존스의 다른 신앙의 가르침들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 로이드존스의 부흥에 대한 정의와 찰스 피니의 부흥의 정의가 왜 이렇게 극과극일까? 찰스 피니가 부흥에 대해 가르친 내용을 하나 더 보고 생각해 보자.

“이전에는 부흥이 단순한 기적으로 간주되었다. 우리 시대의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게 믿고 있다 ... 오랫동안 교회는 부흥을 위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신적인 개입으로만 부흥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 뉴 일글랜드(New England)의 교회들과 목회자들도 부흥은 사람이 관여하지 못하는 소낙비 같이, 어느 때에는 이 도시에 어느 때에는 저 도시에서 일어나므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7)

로이드존스는 성령의 거룩한 부흥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고 하고, 찰스 피니는 인간의 지혜와 노력과 정성의 산물이라고 한다. 왜 이렇게 다를까? 그 원인은 무엇일까? 한사람은 철저한 성경적인 기독교 신앙의 사람이었고, 한 사람은 기독교 신앙의 옷을 갖추어 입고 있기는 했어도, 사실은 성경의 핵심을 거부하고 파괴하는 적그리스도였다.

바로 이 차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부흥에 대한 사상이 이렇게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로이드 존스를 통해 일어난 신앙의 일들은 부흥이었고, 그가 전파한 종교는 기독교 신앙이었다. 그러나 찰스 피니를 통해 일어난 일들은 거짓 부흥이었고, 그가 전파한 종교는 거짓 기독교였던 것이다.
 

   

 

찰스 피니와 박용규 교수

그러면 박용규 교수는 찰스 피니를 통하여 일어난 일들과 그가 전한 종교에 대해 어떻게 평가했을까? 박용규 교수는 다음과 같이 찰스 피니의 부흥을 평가하였다.

“분명 하나님께서 피니를 도구로 사용하셔서 그를 통해 가는 곳마다 부흥이 놀랍게 일어났다. 게다가 피니는 부흥운동을 사회개혁과 연관시켜 노예제도를 반대하고 여성의 지위를 고양하고 기독교의 대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했다.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8)

박용규 교수는 찰스 피니가 하나님의 거룩한 부흥을 위한 성경적인 수단이었다고 확신을 가지고 평가했다. 또한 그의 부흥의 영향이 노예제도와 여성의 지위 향상 등과 관련하여 미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1730년부터 1830년경까지 지배하던 부흥운동의 견해 곧 부흥운동이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일어날 수 있다는 견해는 찰스 피니가 등장하면서 일대 수정을 맞았다. 그는 부흥 운동이 성령의 역사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인간의 노력에 의해 그것이 발흥할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9)

무슨 말인가? 박용규 교수는 찰스 피니 이전까지는 성령의 부흥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절대적인 은혜에 속하였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찰스 피니의 부흥 때문에 여전히 부흥이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는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으나, 동시에 인간의 노력과 기법으로 인해 부흥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기독교가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의 거짓 부흥운동이 이렇게 기독교의 정통 신앙과 신학의 대열 속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감리교나 성결교에서도 만일 어떤 교수가 이렇게 가르친다면 당장 파면당할 것이다. 감신대학교에서 쫓겨난 홍 교수가 바로 그 사례이다. 한국교회의 마지막 개혁신학의 보루인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의 교수가 이렇게 가르치면 쳐도 되는 것일까?
 

로이드존스의 찰스 피니 평가

찰스 피니의 부흥 신학에 대해 로이드존스가 뭐라고 평가했는지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살펴보자.

“여기에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논쟁이나 도덕적인 설득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은 구원이 임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은 부흥입니다. 부흥은 갑자기 임합니다. 만일 부흥이 논쟁이나 도덕적 설득의 산물이라면, 여러분들은 그런 일을 하기 위해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찰스 피니 유형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틀려먹은 사고방식입니다. 찰스 피니는 입으로는 성령에 대해 들먹였을지라도 실제로는 성령을 모욕하고 추방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찰스 피니는 합리적인 논증에 의해 회심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 사상은 근본적으로 알미니안주의의 관점입니다.”10)

“언제 부흥이 임합니까? 찰스 피니가 가르친 것처럼, 부흥을 위한 적절한 상황과 조건을 준비하여 진행하면 부흥이 임한다고 대답하면 안 됩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때에 부흥을 일으키십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부흥을 일으시키는 때를 전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성경적 부흥은 에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이런 일을 진행하면 부흥이 일어난다 ...’라는 발상과 주장은 알미니안주의의 사고방식입니다. 전혀 아닙니다. 성경적인 부흥의 역사는 부흥의 시작과 끝은 오히려 그 반대의 방식으로 일어났음을 보여줍니다.”11)

--- 각주 ---

1) Charles G. Finney, Lectures On Revival(Dickinson, ND: RevivalPress.net, 2016), 9.
2) 앞의 글.
3) D. M, Lioyd-Johns, The Puritans: Their Origins and Successors (Carlisle, PA: The Banner Of The Truth Trust, 2016), p. 368.
4) 앞의 글, p. 2.
5) Christ Ministries, Revival Defined(by Tom Palmer), http://www.christlifemin.org/home/blog/articles/revival-defined/.
6) 앞의 글.
7) Charles G. Finney, Lectures On Revival (Dickinson,ND: RevivalPress.net, 2016), 14
8) 박용규, <세계부흥운동가>(생명의 말씀사, 2014), p. 451.
9) 앞의 글, p. 455.
10) D. M, Lioyd-Johns, The Puritans: Their Origins and Successors (Carlisle, PA: The Banner Of The Truth Trust, 2016), p. 18.
11) 앞의 글, p.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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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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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리의검 2018-05-18 13:27:06

    일목요연한 비교평가를 통해서 누가 적그리스도인지
    누가 하나님의 성려의 사람인지 분별케 하여 주시니
    고맙고 감사합니다 목사님!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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