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바울의 <흑암중의 보화 1> 분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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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답변>
오늘은 박바울의 책 <흑암 중에 보화1: 복음의 영적사실>을 읽고 느낌 점 하나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박바울에게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핵심이 없습니다. 성경적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다음의 세 가지입니다. 다음의 
세 가지가 분명하게 전파되지 않으면, 그 사람이 아무리 유명한 목사, 교수, 선교사라도 기독교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1)하나님의 선하신 창조
2)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배반과 타락
3)하나님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

하나님은 자기의 영광을 위해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온전히 영광 받으시기 위해 인간에게 완전한 인격과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완전한 인격과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기의 영광을 위한 반역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창세기 3장의 선악과 사건으로 하나님께 반역하는 인간의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그의 모든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저주와 죽음의 형벌이 임했습니다.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 3:17-19)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의 시작

그때 하나님은 즉시 아담을 죽이고, 다시 흙으로 새 아담을 지어 자기 백성으로 삼으실 수 있었습니다. 새 아담에게 이전 아담의 이야기를 해 주면서 “너는 나를 배반하여 죽임당한 이전의 아담의 전철을 밟지 마라!”고 경고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첫 아담을 죽이지 않고 그와 그의 후손들을 살리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들의 죄를 사하시어 다시 자기 백성으로 삼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이때부터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가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하나님은 아담을 타락하게 한 뱀에게 저주를 선언하시며, 유일한 여자의 후손이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담의 죄를 없었던 것처럼 회복하시려는 구원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이후의 인류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시는 일들이 차근차근 진행되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렘 31:31)』

구약시대는 하나님이 처음 아담과 맺었으나 아담의 죄로 파기된 옛언약을 회복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시대였습니다.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20)』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히 9:15)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어 십자가에 달려 흘리신 피로 아담의 죄 값을 완전하게 지불하셨습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중보자가 되시어 자기의 피를 증거삼아 영원한 구원의 새 언약을 수립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무 공로 없으나, 그의 피로 맺어진 새 언약으로 영원하고 완전한 구원을 얻었습니다.

1)하나님의 창조, 2)인간의 타락, 3)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에 대해 이야기를 길게 한 이유는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벗어나거나, 이 중의 어떤 것이 빠지면 기독교 신앙이 되지 못합니다.

 

박바울 종교의 ‘흑암과 빛’ 프레임

그런데 박바울의 책 <흑암 중에 보화 1: 복음의 영적사실>을 보니, 이와 같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없습니다. 특히 인간의 타락에 대한 성경적인 내용은 단 한 줄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에 대한 성경적 이해가 없으면 기독교 신앙이 서지 못합니다. 그래서 박바울의 사상을 기독교 신앙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기독교는 인간의 죽음에 대해 명확한 처방을 제시합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들도 인간의 죽음 등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러면 박바울의 종교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까요? 여기에 대한 박바울의 대답은 창세기 1장 2,3절에 근거한 ‘흑암과 빛’ 프레임입니다(24페이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창 1:2,3)

박바울은 창세기 1장 2,3절을 통해 자신이 종교의 핵심인 ‘흑암’과 ‘빛’ 프레임을 만들었습니다. 인간과 역사와 우주의 모든 불행의 원인이 창세기 1:2,3절의 ‘흑암’과 ‘빛’의 혼돈과 대립구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박바울은 인간에게 죽음과 불행이 시작된 원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흑암은 혼돈이고 공허입니다. 이 영적원인 속에서 사망과 저주가 나옵니다. 사망과 저주는 보이는 결과입니다. 보이지 않는 이 영적원인 때문에 흑암의 영적 배경이 만들어지며 인생과 세상에 필연적으로 사망과 저주가 찾아옵니다. 이 영적인 원인이 지금도 인생과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데, 사단은 이것을 모르도록 속입니다. 사단은 영적사실을 모르고 살도록, 그래서 흑암 속에서 살도록 속이는 겁니다.”(24, 25페이지)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죽음과 모든 불행의 원인이 아담이 선악과를 범한 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범했다는 것은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작심한 것을 보여준 행동입니다. 선악과를 범함으로 아담은 하나님을 배반할 의도를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저주하시면서 바로 그 점을 명확하게 지적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창 3:11)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7-19)

 

죄를 대체하는 박바울의 ‘영적원인’

사실 창세기 1장 2,3절의 흑암과 빛은 하나님의 창조 과정의 단순한 물리적 현상일 뿐입니다. 거기에 무슨 심오한 숨은 진리나 영적인 비밀이 있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그런데 박바울은 창세기 1장 2,3절의 단순한 흑암과 빛을 인생의 모든 불행과 문제의 원인으로 둔갑시켰습니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영적원인’, ‘영적사실’이라는 말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고 마귀가 이 사실을 모르고 살도록 우리를 속이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범죄가 인생의 불행의 원인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은 사라지고, 대신 뜬금없는 ‘흑암’이 인생의 모든 문제의 ‘영적원인’이라고 주장하는 박바울의 말을 직접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영적사실로 깨달아 간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영적세계의 두 원인’을 사실적으로 깨달아 가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절과 3절은 인생과 세상의 모든 일들이 보이지 않는 두 영적원인 속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24페이지)

“인간과 세상의 문제가 창세기 1장 2절과 3절의 문제이고 흑암의 문제라는 말씀을 자주 합니다. 이건 단순한 메시지가 아닙니다. 선교현장 속에서 ‘영적인 두 원인’을 깨달아가면서 보니까 이 말씀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24 페이지)

“흑암은 혼돈이고 공허입니다. 이 ‘영적원인’ 속에서 사망과 저주가 나옵니다. 사망과 저주는 보이는 결과입니다.”(24, 25페이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세계에서 인생과 세상의 모든 일의 원인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놓치면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 가장 중요한 영적인 메시지를 놓치는 겁니다.”(25, 26페이지)

“사망과 저주의 ‘영적원인’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속됩니다. 사단이 이것을 모르게 속이면서 인생과 세상에 흑암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흑암을 통하여 사단이 인생과 세상을 움직이는 겁니다. 그래서 공중권세(엡2:2)를 잡은 자라고 하는 겁니다.”(26 페이지)
 

이처럼 박바울의 종교와 성경적 기독교 사이에는 ‘성령’, ‘예수’, ‘십자가’, ‘교회’, ‘계시’, ‘선악과’ ... 등의 같은 단어들이 공유되고 있기는 해도 그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죄가 가장 심각한 문제이고, 해결책은 오직 죄 값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이라고 가르칩니다.

“복음을 영적사실로 깨달아 간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영적세계의 두 원인을 사실적으로 깨달아 가는 것입니다.”(24 페이지)

그러나 박바울은 이처럼 ‘흑암과 빛’의 대립이라는 ‘영적원인’에서 모든 문제가 비롯되었다는 ‘영적사실’을 깨달아야만 복음이 진정으로 복음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죄 용서가 아닙니다. 흑암에 갇혀 있는 우리에게 빛이 임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도 흑암과 빛이라는 단어가 수 없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박바울이 쓰는 흑암과 빛이라는 말과 성경의 흑암과 빛은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박바울의 변형된 십자가, 선악과

이처럼 박바울의 사상은 겉보기에는 성경과 유사하지만 성경과는 완전히 다른 구조입니다. 그러므로 박바울이 입으로 십자가에 이야기할지라도 성경이 말하는 십자가는 전혀 아닙니다.

“영적원인 속에서 흑암의 속이는 비밀을 알면 십자가가 엄청난 하나님의 계획인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흑암에 묶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복음을 방해하는 겁니다.”(53페이지)

흑암의 속이는 비밀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심이 대체 무슨 연관이 있다는 것일까요? 성경이 말씀하는 십자가는 오직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기 백성들의 죄를 사하시는 방법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24)

박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서 이미 다르게 각색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는 십자가가 아닙니다. 사망과 저주의 ‘영적원인’이 되는 흑암(창 1:2)으로부터 우리를 건져내는 십자가인 것입니다. 박바울이 말하는 선악과도 성경의 선악과가 아닙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선악과를 모릅니다. 왜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힘들게 하냐고, 선악과를 못 먹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왜 그냥 두셨냐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신학자들은 선악과를 율법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26, 27페이지)

성경의 선악과는 단순합니다. 아담이 하나님을 배반하려는 의지와 결단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 성경의 선악과 사건입니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그런데 박바울은 다른 영적인 의미가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놓치고 있다고 합니다. 대체 선악과 속에 무슨 영적인 비밀이 있다는 것일까요?


박바울은 영지주의자가 아닐까?

혹시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선악과 사상을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박바울의 주장과 영지주의자들의 주장 사이에는 유사성이 상당히 많습니다. 선악과에 대한 영지주의자들의 이론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영지주의자들에게 성경의 창조주 하나님은 우주의 최고의 신이 아닙니다. 성경의 하나님 위에 더 높은 신이 또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창조주는 진정으로 인간을 사랑하는 신도 아니고 매우 괴팍한 신이라고 합니다. 또한 영지주의자들은 성경의 창조주에게서 지음 받은 인간에게도 이미 신성이 내재하는 상태라고 합니다. 선악과는 인간이 자신에게 내재하는 신성에 대해 깨달음의 지식을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먹으면 인간이 하나님과 같아지므로 시기심으로 충만한 성경의 창조주가 인간으로 하여금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명령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먼저 지혜를 얻은 뱀이 진리의 교사가 되어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인간도 창조주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현숙한 여자인 하와가 먼저 선악과를 먹어 깨달음을 얻었고, 그리고 남편 아담에게도 먹게 하여 창조주 하나님과 같은 본성을 가진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사상을 가진 고대의 영지주의와 영지주의로부터 발전된 후대의 뉴 에이지,불교, 힌두교 등은 공통적으로 내재하는 진리와 신성에 대한 깨달음을 구원의 방편으로 주장합니다. 인간에게 구원이 외부에서 임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내부에 존재하는 하나님과 같은 본성의 파편을 찾아서 일깨우므로 구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박바울의 글을 읽으면서 참으로 무서운 사실 하나를 더 발견했습니다. 그의 사상이 여러 면에서 영지주의, 뉴 에이지와 닮아 있는데, 더욱 결정적인 사실은 ‘깨달음으로 얻는 지식’을 구원의 길로 주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박바울의 소책자인 <흑암 중에 보화1: 복음의 영적사실>의 1장까지(68페이지까지) 읽는 과정에서 ‘깨달음’이라는 단어가 60회 이상 강조되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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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