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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규 교수가 지지하는 1906 아주사의 야단법썩 성령세례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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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10  07:4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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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총신대 신대원 박용규 교수의 부흥 신학 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부상했다. 왜냐하면 박용규 교수가 자신의 책 <세계부흥운동사>에서 1904년에 이반 로버츠(Evan Roberts, 1878-1951)가 주도한 웨일즈 부흥(Welsh Revival), 1906년에 윌리엄 세이모어(William Joseph Seymour, 1870-1922)가 주도한 아주사 부흥(Azusa Street Revival)을 위대한 성령의 부흥으로 기술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이철 목사는 좀 더 자세하게 연구하기 위해 거금 $60.00을 투자하여 박용규 교수의 책을 주문해 놓은 상태이다.  

   
 총신대 신대원 박용규 교수의 대표적인 저서

웨일즈 부흥을 일으킨 이반 로버츠와 아주사 부흥을 일으킨 윌리엄 세이모어는 합동의 개혁신학 관점에서 볼 때 이단으로 규정되어야 마땅한 인물들이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빈번하게 환상을 보거나,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듯한 특별계시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윌리엄 세이모어가 일으킨 아주사 부흥의 현장은 현대의 신사도 운동 집회와 다를 것이 없었다. 세이모어를 비롯하여 아주사 부흥의 현상을 직접 경험하고 글을 남긴 사람들에 의해 다음과 같은 비성경적인 일들이 아주사 부흥에서 일어났을 확인할 수 있다. 


비성적인 방언 찬양

“집회의 가장 놀라운 특징 중 하나는 ‘천상의 합창단’이다. 몇 몇 사람, 혹은 20명 정도가 알지 못할 방언으로 노래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오케스트라가 아니었다. 모든 것이 성령의 지시 하에 이뤄졌다. 참으로 하늘이 지상에 임했다.”(존 G. 레이크, <하나님과의 모험>)

“많은 이들이 성령의 영감으로 말할 뿐만 아니라 찬양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주님은 새로운 목소리를 주시고, 옛 노래를 새 방언으로 바꾸시며, 천사들이 부르는 음악을 주셨다.”(윌리엄 세이모어, <사도적 믿음> 1권 1호)

“그녀는 내 방에 와서 성령 세례를 위해 내게 안수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불의 파도가 그녀의 머리와 얼굴로 지나가는 것을 느낀 후에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지금 하늘의 음조로 노래(방언찬양?)한다.”(윌리엄 세이모어, <사도적 믿음> 2권 13호)


쓰러지는 현상

“누군가 말하는데 갑자기 성령께서 회중 위에 임하셨다. 하나님께서 친히 강단 초청을 하셨다. 사람들은 마치 전투에서 칼에 맞은 것처럼 집안 여기저기에 쓰러지거나 아니면 하나님을 구하기 위해 무더기로 강단을 향해 돌진했다.”(프랭크 바틀맨, <아주사의 거리>)


신부 신비주의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이들은 영혼을 구원한 선교의 영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오순절의 영도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입니다!”(윌리엄 세이모어의 말, 로버츠 리어든, <아주사 부흥>, p.142)

“우리는 지금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결혼했습니다(롬 7:2-4). 그 분이 오실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와 결혼합니다. 성령과 불로 거룩하게 되고 세례를 받았다면 당신은 이미 그 분과 결혼한 것입니다.”(윌리엄 세이모어의 말, 로버츠 리어든, <아주사 부흥>, p.143)


영서 및 방언 찬양

“3월 21일 워싱톤 주 스포케인 - 하나님께 감사하자. 성령의 역사가 이 땅 끝까지 뻗어가고 있다. 30명 이상이 지난 며칠 동안 이곳 스포케인에서 오순절을 받았다. 이들은 방언을 하고, 글을 쓰며(영서?)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을 찬양했다.”(윌리엄 세이모어, <사도적 믿음> 1권 6호>


방언 통역의 예언

“만일 형제, 자매가 영어를 말하지 않고 방언을 말하며 다 함께 방언으로 설교하고 통역이 없다면 그것은 예언보다 못합니다. 그러나 만일 통역을 한다면 그것은 예언과 같습니다.”(윌리엄 세이모어, <사도적 믿음> 1권 5호)

“미지의 방언으로 많은 예언들이 말해지고 있으며 곧 일어날 일들에 관해 하나님께서 많은 환상을 보여주셨다. 이방인들이 먼저 복음을 받아야 한다. 미지의 방언으로 주어진 한 예언은 다음과 같이 해석되었다. ‘시간이 없도다. 그래서 나는 성령의 권능 가운데 온전한 복음을 전하도록 하나님의 영 안에서 많은 사람들을 파송하리라.’”(윌리엄 세이모어 <사도적 믿음> 1권 7호)


아주사 부흥의 실상이 이러했으므로 최소한 총신의 교수들은 웨일즈 부흥이나 아주사 부흥을 성경적인 부흥이라고 미화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총신 신대원의 박용규 교수는 웨일즈 부흥과 아주사 부흥을 성경적인 부흥으로 평가하고 미화하였으므로 <바른믿음> 대표 정이철 목사의 맹렬한 반대에 직면하고 있다. 
 

   
 웨일즈 부흥의 주역 이반 로버츠


박용규 교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1800년대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 찰스 피니가 일으킨 부흥도 위대한 성령의 부흥으로 미화하였다. 사실 찰스 피니는 심각한 이단이었다. 피니는 아담의 원죄의 효력을 부정했고,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으심도 부정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칭의도 부정했고, 인간의 전적인 타락상도 부정랬고, 인간에게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완전한 자유의지가 있다고 주장하는 등의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정면으로 대적하고 거부하였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거부하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부흥이 일어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성경을 모독하는 이론이다. 적어도 예장 합동의 목회자들은 찰스 피니가 마귀의 쓰임을 받은 강력한 거짓 선지자였다는 사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제라도 찰스 피니의 정체를 바로 알고 설교 중에 신자들에게 오해를 불어일으키는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박용규 교수와 똑 같이 찰스 피니의 부흥을 성령의 부흥으로 높이는 듯한 내용이 최근의 합동의 중요한 행사에서 설교를 맡은 유력한 목회자의 설교에서 짧게 언급되었다. 그 분은 찰스 피니와 무디의 부흥이 매우 건강한 부흥인듯 한 인상을 풍피는 언급을 잠시했다. 합동의 목회자들 사이에 찰스 피니와 무디, 토레이의 성령사상의 위험성이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다. 

무디와 토레이의 성령 신학과 부흥에 대해 합동의 신학자들은 더욱 면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생각된다. 왜냐하면 찰스 피니의 성령 사상이 무디에게 전해졌고, 무디에서 토레이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토레이에 의해 이미 성령을 받아 중생한 신자에게 다시 또 성령이 임하여 봉사의 능력이 형성된다는 비성경적이고 악마적인 성령세례 신학이 정착되었다.

성령세례 사상은 결국 귀신이 교회를 장악하고 접수하는데 가장 요긴하게 이용되는 주장이므로 절대로 가벼이 취급할 수가 없다. 성경 어디에도 구원받는 순간에 임재하시는 평범한 성령과 구원 이후 어느 순간에 뜨겁고 요란하고 난리법석을 떨면서 임재하시는 특별한 성령에 대한 가르침이 없다. 합동의 대표적인 신학자이고, 총신신대원에서 교수도 했던 권성수 목사(교수)도 노골적으로 ‘성령의 통상충만’과 ‘성령의 비상충만’이라면서 토레이로부터 시작된 성령세례 사상을 가르치고 있다.

찰스 피니는 성령신학에 있어서도 완전히 성경에서 벗어난 이단이었다. 피니는 성령이 일하시기에 적합한 조건과 상황을 구비하면 성령이 임하시어 일하신다는 주의였다. 성령으로 중샘한 인간에게 추후에 성령이 또 오신다는 성령세례 신학의 원조가 찰스 피니였다. 이단은 괜히 이단이 아니다. 이와 같이 신앙의 중요한 원리를 변경하기 때문에 이단이다.

찰스 피니로부터 영향받은 사람이 무디이고, 무디의 사상이 토레이를 통해 정교하게 체계화된 성령세례 신학으로 나타났다. 성령에 관한 이들의 사상의 핵심은 인간이 적합한 행위와 정성을 기울여서 준비하면 성령이 임재하신다는 것이다. 이 사상의 원조는 웨슬리-조셉 플레쳐이고, 이 사상의 최악의 열매는 아주사 부흥과 오순절 운동이다.

총신이 이러한 사람들이 발전시킨 성령세례 신학을 인정할 것이가? 하는 문제는 언제가 중요한 이슈이다. 총신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 세계의 교회의 문제이다. 총신의 전통적인 개혁신학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 것과 성령세례를 같은 사건으로 가르친다. 그리고 성령세례는 사람의 노력의 산물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이해한다.

그러나 찰스 피니로부터 시작하여 무디->토레이->윌리엄 세이모어->오순절 운동->신사도 운동으로 흐르고 있는 성령세례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얻음과 성령세례를 절대적으로 일치시키지 않는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 순간에 평범한 성령이 들어오고, 후에 후에 능력과 은사와 권능을 가지고 들어오는 특별한 성령이 야단법썩을 일으키면서 들어온다고 한다.

구원받을 때 들어오는 성령에 대해서는 오직 자기 자신만 내적으로 확신할 수 있으나, 야단법썩을 일으키며 추후에 능력을 가지고 들어오는 성령을 추가적으로 받을 때에는 그 자신도 알고 남들도 그것을 확실하게 알게 된다고 한다. 이쪽 신학에서는 구원 이후의 '야단법썩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서 인간의 노력과 정성이 중요하다고 한다. 인간이 정성과 노력으로 성령을 더 받는다고 하니, 여기서 기독교의 성령론에 심각하게 변질이 발생한다. 

특히 그런 야단법썩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 위대한 부흥운동으로 미화되고 있다. 이런 고약한 신학에 의해 난장부리는 귀신들이 거룩한 성령으로 왜곡되고 있다. 박용규 교수의 책에서도 그러나 내용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사람들이 고꾸라지고 쓰러지는 것을 거룩한 성령의 권능으로 말미암는 현상이라고 박용규 교수는 표현하였다.  
 


 

"그래서 조용히 한 가정 집에서 몇 사람을 모아 놓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이 기도하는 가운데 1906년 4월 9일 날 소위 사도행전에서 일어났던 엄청난 오순절의 성령의 역사가,기름부으심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한 거에요. 1906년 4월 9이 날에 일어났던 성령의 역사는 아주사 부흥의 기원일뿐 아니라 소위 현대 오순절 운동의 시발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1906년 4월 9일 날 성령의 역사가 아주 놀라고 강하게 일기 시작했는데, 그 성령의 역사가 어떻게 강했는지에 대해서 ... 생생하게 그 현장에 경험한 사람들 ... The Apostolic Faith라고 하는 ... 성령의 역사가 계속해서 강하게 일어나까 시무어를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이 이 모든 것을 알리기 위해 하나의 신문을 만들었습니다.

그게 <사도적 신앙>(The Apostolic Faith)이라고 하는 신문인데, 일종의 소식지이지요. 여기에 기록된 것을 보면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죄용서, 성화, 성령세례 그리고 신유를 갈구하는 구도자들을 위해 강단이 열리자 마자 곧 사람들이 일어나 강단으로 몰려들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단순히 선포되었고, 성령 안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너무도 강렬하여 사람들이 고꾸라졌다.'

이것은 뭘 보여주고 있냐 하면, 사람들이 그 만큼 은혜를 받기 위해서 사모하고 단이 열리지 마자 집중적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리고 거기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은혜를 받고 그냥 단에 고꾸라지는 역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는 '집회장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고꾸라지고 그리고 전 도시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 그 당시의 아주사의 부흥에 대해 일반 신문들까지도 대서특필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각 변동이 있었던 것처럼,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LA가 요동치기 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박용규 교수)

혹시 박용교 교수가 방송에서 강의할 때에 표현이 생각보다 더 과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박용규 교수가 이 부분에 대해 직접 쓴 글을 찾아보았다.

“1906년 4월 9일, 한 무명의 흑인 시무어 목사가 인도하는 집회에서 시작된 강력한 성령의 임재가 아주사 거리 전역을 뒤덮기 시작했다. 죄용서, 성화, 성령세례, 그리고 신유를 갈구하는 구도자들을 위해 강단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이 단상으로 몰려들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단순히 선포되었고, 성령 안에서 선포되는 말씀의 힘이 너무도 강력하여 사람들이 고꾸라졌다. 이것이 아주사 부흥의 한 모습이었다. 한 목격자의 증언대로 ‘집회장에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고꾸라졌고, 전 도시가 요동쳤다.”(박용규 교수)

성령이 임하여 사람들이 고꾸라지고 미치광이가 된다는 내용은 성경을 바르게 읽는 사람이라면 전혀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다. 예수님의 거룩하시고 지존하신 위엄 앞에서 엎드려 부복했던 로마 병정들의 모습을 성경에서 볼 수는 있으나, 그것과 성령의 권능으로 인해 사람들이 집회 장소에 들어서서 고꾸라졌다는 아주사 거짓 부흥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것이 오순절-빈야드-신사도 성령사상이다. 똑 같은 이야기가 아주사 거짓부흥에서 이미 있었던 것은 아주사 부흥이 오순절-빈야드-신사도의 원조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야단법썩 성령세례는 거짓 성령의 교회공습이 시작될 때, 항상 나타나는 단골메뉴이다.   

"기도하는 가운데 1906년 4월 9일 날 소위 사도행전에서 일어났던 엄청난 오순절의 성령의 역사가,기름부으심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한 거에요. 1906년 4월 9이 날에 일어났던 성령의 역사는 아주사 부흥의 기원일뿐 아니라 소위 현대 오순절 운동의 시발로 보고 있습니다."(박용규 교수)

박용규 교수의 성령신학이 개혁신학에서 완전히 빗나가 있음이 박용규 교수의 이 말 속에서도 드러난다. 사도행전 2장 오순절의 역사는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대신하시려고 성령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상에 강림하시는 장면이다.  결코 이후의 역사에서 다시 반복되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단들을 부리는 속이는 마귀는 마치 자신들이 부리는 이단들을 통해 행 2장의 오순절이 반복되고 재현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럴싸하게 모조하는 거짓 역사를 베푼다.  

1906년 4월에 아주사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 그러나 박용규 교수는 그 일을 하나님이 일으키신 진정한 부흥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단들은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에게 성령이 또 임하시는 것을 '기름부으심', 또는 '성령의 기름부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속죄 받은 백성에게 임재하시는 성령을 기름부음이라고 한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고후 1:21)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7)

성경에는 이미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에게 기름부음이 또 임한다는 가르침이 없다. 기름부으심은 일생에 단 1회,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이다. 그런데 박용규 교수는 이미 예수 믿은 사람들이 성령을 더 받는 오순절 운동의 출발인 아주사 부흥을 기름부음의 역사의 시작이라고 말하였다. 이단들의 거짓 성령 사상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기름부음 사상을 수용한다는 것은 곧 신사도 운동의 성령론을 수용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사도 운동의 핵심 중의 하나가 성령(기름부음)받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성령(기름부음)을 더 받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름부음 운동의 시작이었던 1906 아주사에서 일어난 일과 현대의 신사도 운동 집회의 특징은 같을 수 밖에 없다. 한국에서 벌어진 한 신사도 운동가의 집회 장면과 박용규 교수가 홍보하는 1906 아주사의 성령세례(기름부음)의 모습을 비교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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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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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규가 문제야... 2018-05-10 09:29:33

    박용규가 문제입니다. 잘못된 지식과 신학을 가르치니 앞으로 더하면 더하지 고쳐지기는 힘들 것입니다. 소경 손에 지팡이를 쥐어 주어야 하는데 뱀을 주니 결국 물릴 수밖에요...신고 | 삭제

    • 바울처럼 2018-05-10 12:45:30

      "피니는 아담의 원죄의 효력을 부정했고,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으심도 부정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칭의도 부정했고, 인간의 전적인 타락상도 부정했고, 인간에게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완전한 자유의지가 있다고 주장하는 등의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정면으로 대적하고 거부하였다."


      찰스 피니가 위와 같은 주장을 했다면 저것은 아예 기독교가 아니군요.
      아담의 원죄의 효력을 부정한 것은 칼빈주의 5대 교리의 출발이 되는 인간의 전적 타락을 부정한 것이라 그나마 개혁주의적 신학이 아닌 기독교의 다른 신학쯤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대속 자체를 부정했다는 것은 전통적 기독론을 부정했다는 것이며, 기독론의 부정은 결국 그의 구원론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찰스 피니의 기독론이 정말 저렇다면 피니의 종교는 기독교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 기독교가 아닙니다.
      전통적인 기독론을 부정하는 자에 의해 기독교가 부흥된다??
      이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한 것 같습니다.
      이왕 바른믿음에서 피니의 신학에 대해 거론된 이상 좀 더 많은 자료의 수집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만약 찰스 피니가 그리스도의 대속을 부정했다면, 이 문제는 근현대 교회사에 있어서 예상밖으로 매우 심각하고 중요한 이슈가 될 것 같습니다.
      지금 정이철 목사님께서는 박용규 교수의 허접한 신학적인 문제의 다툼보다는 피니의 '그리스도의 대속에 대한 부정'에 대한 더욱 세밀한 내용을 만천하에 알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동으로 박용규 교수 이하 찰스 피니의 거짓부흥에 미혹된 자들을 깨우고 회개케 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신고 | 삭제

      • 신자 2018-05-10 15:11:59

        한국교회 태반이 입으로만 개혁주의 아닌가요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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