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혜토론 > 박용규
박용규 교수의 신학 정체성이 총신의 신학에 정면 대적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5.03  11:29:52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박용규 교수(총신대 신학대학원 교회사)

정이철 목사에 의해 총신대 신대원 박용규 교수의 신학 정체성에 관한 심각한 논란이 일어났다. 이 일로 그 동안 박용규 교수의 신학 정체성에 대해 말하지 못하고 속을 끓이고만 있었던 사람들이 정이철 목사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 있다. 몇 사람이 박용규 교수의 신학적 정체성에 대해 제보하는 내용의 공통점은 박용규 교수가 찰스 피니(Charles G. Finney, 1792-1875)의 심각한 알미니안 신학을 여과없이 수용한다는 것이었다. 다음은 어떤 분이 카톡으로 박용규 교수에 대해 제보한 내용이다. 

“정이철 목사님, 박용규와의 논쟁에서는 그의 책에서 아주사 부흥을 하나님의 부흥으로 보고 있는 부분을 강하게 비판하면 되요. 그 당시 캄펜 몰간은 사단의 역사라고 했고, 벤자민 월필드도 거짓 부흥이라고 했어요. 이 부분을 드러내면 되요. 그리고 미국의 제 2차 영적 대각성 당시 카인리지 지방에서 물리적 현상(쓰러지는 것, 춤추는 것, 진동)이 일어났을 때, 장로교는 사단의 역사라고 했는데, 이것을 성령의 역사라고 한 사람들이 1810년에 세운 교단이 컴버랜드 장로교회인데, 교회의 역사 최초로 알미니안 장로교회예요. 카인리지 지방을 테크닉으로 발전 시킨자가 찰스 피니인데, 박용규는 찰스 피니를 굉장히 높히 평가하는 자예요.”

뜻밖의 놀라운 제보였다. 한국교회의 마지막 개혁신학의 보루인 총신대 신대원의 교회사 교수가 찰스 피니의 부흥 사상을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왜냐하면 찰스 피니는 다음과 같은 심각한 이단 사상을 가지고 그릇된 부흥의 불을 지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찰스 피니의 이단성을 열거하자면 대략 다음과 같다. 

   
 찰스 피니

1)찰스 피니는 인간이 자유의지의 결정으로 신앙을 택하고, 자신의 신앙적 행위와 노력으로 구원을 완성하고 유지한다고 가르친 행위구원론자였다. 그래서 현재 미국의 저명한 신학자들은 찰스 피니가 미국 복음주의 속으로 펠라기안주의(Pelagiannism)를 도입했다고 평가한다. 

2)찰스 피니는 아담의 원죄의 효력이 아담의 후손들에게도 미친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부정했다. 원죄의 영향이 없으므로 모든 인간은 완전한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3)찰스 피니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받을 자의 죄를 속하기 위한 대속적인 죽음을 당했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철저하게 부정했다. 찰스 피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의 죽으심이 공적인 정의(Public Justice)를 위한 죽으심었다고 가르쳤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주의 도덕적 법칙을 지지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표시였다고 가르쳤다.

4)찰스 피니는 아담의 원죄가 우리에게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믿었으므로, 당연히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부패의 상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완강하게 부정하였다. 찰스 피니는 인간에게는 순전한 자유의지가 있으므로 얼마든지 자유의지의 노력으로 죄를 짖지 않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5)찰스 피니는 성령의 역사하심이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 에 의해 결정된다고 가르쳤다. 성령이 임하시고 역사하실 여건을 인간이 조정하면 성령이 임하시고 일하신다고 가르쳤다.

6)찰스 피니는 회개와 개종이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적인 역사하심의 문제가 아니고 인간의 마음 먹기에 달린 것이라고 가르쳤다. 부흥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은혜를 부어주심이 아니고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유도함으로 인해 나타나는 결과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당시 미국에서 부흥을 일으키는 찰스 피니의 '새로운 인위적인 방식'의 성경적 타당성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게 일어났고, 결국 교단이 분열되는 결과를 야기했다.

7)찰스 피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어지는 칭의, 즉 그리스도의 의를 신자에게 전가하여 주신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철저하게 부정했다. 찰스 피니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기준에 적합한 삶의 행위를 통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고, 다시 타락하지 않고 유지함으로 구원에 이른다고 가르쳤다.

8)찰스 피니는 하나님이 창세전에 오직 은혜를 따라 아무 조건없이 자기 백성을 예정하셨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부정했다. 대신 찰스 피니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을 때,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기로 결단할 사람들을 이미 아시고, 하나님이 그들의 구원을 예정하셨다고 가르쳤다.

9)결국 찰스 피니는 이런 심각한 이단 사상으로 인해 1835년 자신에게 강도권과 목사 안수를 주었던 장로교 노회로부터 면직되었다.

10)찰스 피니의 이와 같은 이단 사상을 간파한 로이드 존스는 찰스 피니를 심각한 알미니안 주의자라고 단정했고, “피니는 입술로는 성령을 이야기하지만, 실질적으로 성령을 모욕하고 추방하는 사람이었다”라고 평가하였다. 또한 이안 머레이(Iain H. Murray)는 찰스 피니를 펠라기안(Pelagian)이라고 평가하였다.
 

찰스 피니의 인생이 왜 이렇게 불행한 영적인 결말을 맺게 되었을까? 그릇된 신학교육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 당시 미국에는 에드워즈 목사가 신학을 공부한 예일이나 프린스톤과 같은 훌륭한 신학교육 기관이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찰스 피니는 이런 학교로부터 입학을 거절당하였다. 그래서 자신이 출석했던 장로교회의 담임 목사에게서 사사로이 성경을 배웠다.

찰스 피니에게 성경과 신학을 사사로이 가르친 게일이라는 목사는 개혁신학으로 무장된 매우 훌륭한 분이었다. 만일 피니가 게일 목사에게서 성경을 성실하게 배웠다면 저렇게 영적으로 망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찰스 피니는 게일에게서 성경을 배울 때, 개혁신학의 핵심적인 요소들, 즉 원죄,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 ... 등에 대해서는 마음 속으로 강하게 거부하고 부정했다. 앞에서는 배우는 척 했고, 뒤 돌아서서는 게일 목사가 가르치는 개혁신학과 성경의 핵심 교리를 인간이 만든 교리라면서 꼭 따를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그런데 만일 세계의 부흥운동사에 대해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연구를 했다고 평가받고 있는 박용규 교수가 찰스 피니를 통하여 일어난 부흥을 하나님이 일으키신 위대한 성령의 부흥이었다고 극찬하고 있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박용규 교수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부흥에 대한 신학과 강의는 장차 한국교회를 죽이기 위한 마귀의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이는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다. 과연 박용규 교수는 찰스 피니가 일으킨 부흥에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박용규 교수의 글을 보니 결과는 너무도 심각하였다. 박용규 교수는 찰스 피니를 통해 일으난 거짓 기독교 부흥 캠페인을 다음과 같이 극찬하면서 미화하고 있었다.

“피니의 열정적인 설교는 교회 교인들에게 놀라운 반응을 일으켰다. 그는 기회가 닿는 대로 학교나 교회, 혹은 회심한 저명 인사의 집에서 집회를 열었고, 그때마다 참석자들은 모두 은혜를 받았다.

에번스 밀스로부터 21㎞쯤 떨어진 앤트워프 근처 교회가 없는 곳에서 열린 집회에서도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한 번도 예배를 드려본 적이 없던 곳에서 피니가 인도하는 집회에 참석한 회중이 설교를 듣고 앉아 있던 자리에서 밑으로 나동그라지기 시작했다. 참으로 강력한 성령의 역사였다.

피니의 말을 직접 빌린다면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나동그라지더니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울어댔다. 설사 양손에 검을 가지고 그들을 내리쳤다 해도 그들이 나동그라지는 것만큼 그렇게 빨리 넘어뜨리지 못했을 것이다. 정말 거의 온 회중이 무릎을 꿇거나 엎드려 있었다.’ 사람들이 소리 높여 부르짖는 소리에 피니의 설교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이날 집회는 다음 날 오후까지 계속되었다.”(박용규 교수의 부흥의 현장을 가다(22) - 찰스 피니의 사역 현장)

“부흥의 불길은 곧 뉴욕 동부 전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1830년 피니는 리딩 랭커스터 컬럼비아를 거쳐 다시 뉴욕시로 향했다. 그가 가는 곳마다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임했다. 어번, 뉴욕주의 버펄로, 로드 아일랜드주의 프로비던스, 보스턴, 뉴욕도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부흥의 영향으로 로체스터의 경우 인구는 3배나 증가했으나 범죄율은 3분의 1로 줄었으며 악의 요람이었던 극장이 문을 닫았고 다시 극장이 세워지기까지 7년이 걸렸다. 부흥 운동 시기에 회심했던 이들이 도시의 지도자들이 되었다.”(박용규 교수의 부흥의 현장을 가다(22) - 찰스 피니의 사역 현장)

“9월10일, 나는 가장 부흥의 불길이 가장 강렬히 타올랐던 뉴욕 주 서부에 위치한 ‘불타는 지역’을 찾아 나섰다. 뉴 헤이븐에서 5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 91번 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향하다가 스프링필드에서 다시 90번 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달리다보면 유티카(Utica) 로마(Rome) 오네이다(Oneida)를 만난다. 바로 이곳이 피니의 부흥 불길이 강력하게 타올랐던 진원지였다.

이들 지역은 이전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부흥의 진원지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를 흥분케 했다. 이 역사의 현장에서 2세기를 거슬러올라가 훤칠한 키에 금발의 미남이었던 찰스 피니를 만나고 싶었다. 이들 지역에서 나는 피니가 남긴 영적 각성의 발자취를 피부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대단한 기쁨이었다.”(박용규 교수의 부흥의 현장을 가다(22) - 찰스 피니의 사역 현장)

과연 기독교 신앙의 근본을 부정하고, 성령과 부흥을 말하면서 실질적으로 성령과 부흥을 모욕한 찰스 피니를 통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진정한 영적 부흥을 선물하셨을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의미를 정면으로 파괴하고, 인간의 타락의 실상을 부정하고, 또한 거듭나게하시는 성령의 주권적인 사역과 고귀한 인격성을 부정하였던 찰스 피니를 통해 정말 하나님께서 성령의 부흥을 일으키셨을까?

찰스 피니의 신학을 아무 비판없이 그대로 수용하고 칭송하는 박용규 교수가 총신 신대원의 고참 교수라는 사실은 총신의 신학 정체성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은 반증하고 있다. 결코 박용규 교수가 나의 이 글로 인해 상처 받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박용교 교수는 세계의 부흥운동에 관하여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연구를 했다고 평가받고 있는 교수이다. 박용규 교수의 책과 강의를 통해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기독교 신앙에 대해 혼동에 빠지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는 이 심정을 누가 이해하여 줄까?

 

어제 또 한 분이 박용규 교수의 신학과 관련된 내용이라면서 제보하였다. 총신대 신대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한 교수님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찰스 피니에 대한 내용이었다. 문론 박용규 교수를 의식하고 쓴 글은 아니지만, 찰스 피니의 신학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주는 내용이다.  

“어제 오후 7:30· 사당 수업 마치고 세 번째로 또 제출해야하는 승진 심사 자료 박스 회수하여 무거운 마음으로 양지로 돌아와 노회 사무실에 발송할 등기우편 챙기고 ... 연구실에 잠시 앉아 베일러 대학의 알미니안 로저 올슨이 쓴 <Arminian Theology>를 펼쳤다. 며칠 동안 내 마음을 무겁게 하는 찰스 피니의 신학적 정체성 문제 때문이다. 올슨은 전적타락, 대속론 등을 부정한 피니를 알미니안이 아니라 세미 펠라기우스주의에 더 가깝다고 비판한다. 그를 존경하지만, 그의 신학은 ‘bad theology’란다(Roger Olson, Arminian Theology [IVP ], 26-28, 237).

어쩐다! 알미니안 신학자가 피니를 자신들 보다 더 나간 세미 펠라기안이라는데, 왜 국내에서는 그를 칼빈주의자로 추켜세우는 학자들이 있는걸까? 정말 피니의 조직신학을 들추어 보기라도 한 것일까? 그가 2차 대각성 시 쓰임 받았다는 게 그의 신학의 건전성을 보증하는 게 아닌데 ... 왜 구별을 못하는 걸까? 누가 좀 말려줬으면 좋겠다.”
 

--- 각주 ---

(위 글의 찰스 피니의 신학적인 이단성에 내용은 정이철 목사가 이전에 <바른믿음>에 기고했던 “찰스 피니는 원죄, 대속적 죽음, 의의 전가를 부정했던 이단”(2017.6.30)의 내용 등에서 발췌하였다. 당시 그 기사의 각주는 다음과 같았다.)

1)Edited by Robert Davis Smart, Michael A. G. Haykin, Ian Hugh Clary, Pentecostal outpourings: Revivaland The Reformed Tradition,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6), 19

2)Ibid., 53

3)Ibid., 150

4)Iain H. Murray, Revival&Revivalism,(Carlisle, PA: The Banner of Truth Trust, 2009), 255ff

5)D. M. Lloyd - Johnes, The Puritans: Their Origins and Successors (Carlisle,PA:TheBannerofTruthTrust,2016),18

6)Ibid.

7)Iain H. Murray, Revival&Revivalism, 249

8)Ibid., 229

9)Christian Today, 'CharlesGrandisonFinney:FatherofAmericanRevivalism',

http://www.christianitytoday.com/history/issues/issue-20/charles-grandison-finney-father-of-american-revivalism.html

10)Iain H. Murray, Revival&Revivalism, 256

11)Robert W. Caldwell Ш, Theology of the American Revivalists(Dowers Grove, IL: IVP Academic, 2017), 171ff

[관련기사]

정이철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기사 댓글 7
전체보기
  • 바울처럼 2018-05-03 15:13:51

    "...그리고 미국의 제 2차 영적 대각성 당시, 카인리지 지방에서 물리적 현상 (쓰러지는 것, 춤추는 것, 진동)이 일어났을 때, 장로교는 사단의 역사라고 했는데, 이것을 성령의 역사라고 한 사람들이 1810년에 세운 교단이 컴버랜드 장로교회인데, 교회역사 최초로 알미니안 장로교회이예요..."

    알미니안 장로교회... 별개 다 있군요...ㅋ
    예상했던대로 이단성 조사가 벌어지면 저들의 사쿠라 신앙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됩니다.
    저런 쓰레기를 자랑스럽게 들고 있는 박용규 교수의 사진을 보니 제 속에서 쓴물이 올라오는 느낌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번 기회가 아니면 총신을 살릴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듯 합니다.
    총신을 살릴 천우신조와 같은 이 기회에, 전통 개혁주의 신학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이 힘과 역량을 모아 저들을 몰아내고 총신을 정화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신고 | 삭제

    • 사필귀정 2018-05-04 10:11:26

      박용규 교수에게 드디어 올 일이 터지고 말았네요. 박용규 교수는 신학도 엉망이지만, 그 인품이 매우 지독하고 사납다고 널리 알려진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해로운 일을 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동원하여 사납게 보복하는 성품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압니다. 정이철 목사가 자기를 신학적으로 비판했다고 자기의 신분을 이용하여 정이철 목사를 이단으로 몰고, 심지어 이단교주라고 까지 공식 서류에서 말하고 표현하는 사람이 박용규 입니다. 재론의 여지가 없고, 더 인정을 볼 것도 없다고 생각됩니다. 박용규 교수는 지금이라도 총신을 떠나야 합니다.신고 | 삭제

      • 저 양반에게 교회사 배운 한 인 2018-05-04 10:15:03

        내가 저 양반 밑에서 공부했는데...그때도 저 양반 연구비에 목말라 있었지...돈은 꽤 벌었을꺼야...연구비에 책 수입에 교회 강의비에...학교에서 나오는 수입까지 합하면....웬만한 중소기업 사장보다 나을껄? 그 돈 벌어서 소 사먹을려고 하나?ㅎㅎ신고 | 삭제

        • 이상웅 2018-05-04 19:29:00

          정이철 목사님께
          총신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이상웅교수입니다.
          피차 전혀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학교동창회 홈피에서 검색해 보니 88회 동기라고 뜨더군요. 언젠가 스치고 지나가면서라도 여러 차례 보았을 터인데 서로를 기억할 수가 없네요.

          위에 쓰신 기사를 누가 알려 주어서 읽어 보고 당사자 중 하나가 되어 무척 당혹스럽습니다. 일단 박용규교수님과의 논쟁에 저의 페이스 북 글을 이렇게 무단으로 덧붙여 비록 박용규교수를 겨냥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이라고 단서를 단다고 해도 많은 독자들에게는 이러한 목사님의 기사 편집은 제자이자 후배교수인 제가 박교수님을 비판하는 것으로 읽혀질 수 밖에 없음을 알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4월 30일에 올린 포스팅(인용하신 바)은 전혀 박교수님과 상관없는 일입니다. 복음주의 권 안에서 찰스 피니를 복음주의자를 넘어 칼빈주의신학자로 말하는 몇 몇 신학자들(총신 신학자들 아닙니다)과 그 영향하에 있는 목회자에 대한 안타까움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따라서 비판하는 대상이 전혀 다른데 제 글을 따다 붙이시어 목사님의 논조에 이용하는 것은 전혀 온당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 저에 대한 인용을 삭제하시기를 바라고, 더욱이 초상권 침해랄 수 밖에 없는데 기독신문에서 무단으로 가져온 제 사진도 삭제해 주시기를 정중하게 요청하는 바입니다.

          목사님의 기사에 놀라 일부러 박교수님이 1992년 겨울호 신학지남에 박교수님이 기고하신 바 "찰스 피니와 완전주의"(59권 4호: 131-159)라는 논문을 찾아서 읽어 보았습니다. 157쪽에 보면 박용규 교수님은 다음과 같이 피니가 칼빈주의자가 아니라고 분명히 비판했고, 피니와 오벌린신학교의 완전주의에 대해서도 비판했습니다.

          "찰스 피니는 결코 전통적인 의미의 칼빈주의자는 아니다. 오히려 웨슬리안의 전통속에서 그의 신학의 정체성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그의 후기 신학은 초기보다도 더욱 반칼빈주의, 친알미니안주의적이었다. 피니의 완전주의 역시 웨슬리안 완전주의에서 빌려온 것이다."

          박교수님이 쓰신 세계부흥운동사는 제가 읽어보지 못해서 논급할 순 없지만, 평소에 죽산 박형룡과 개혁신학에 대해 박교수님이 보여주신 분명한 입장을 잘 알고 있고, 수 많은 역사서들을 통해 유익을 얻은 저같은 입장에서 제가 페북에서 다른 대상들을 염두에 둔 글을 허락도 없이 가져오셔서 스승을 비판하는 것처럼 사용하신 것은 박교수님께도 실례이지만 저에게도 무척 충격과 상처를 주는 처사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법적으로도 합당하지 않은 일입니다. 더욱이 정목사님의 모교이기도 한 총신이 학내사태로 긴 시간 진통을 겪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교수들 사이에 신학적인 이견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편집기사를 내시는 것은 합당치 않은 일입니다. 정목사님은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변명하시더라도 수 많은 독자들은 이미 그런 오해를 가지고 저에게까지 문의가 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저 입장에서 볼 때 현재 총신의 문제는 교수들 간의 신학적인 논쟁이나 이견의 문제로 불거진 것이 전혀 아니며, 더욱이 박교수님의 신학에 대해서 어떤 비판이나 반대는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다시 한 번 분명하게 요청하는 바입니다. 기사를 시정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개인적인 이메일을 몰라서 이곳에 글을 올리는 점 양해를 구합니다. 이 문제는 사적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공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문제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합당한 시정을 바라면서 글을 이만 줄입니다.
          평안을 바랍니다.

          2018년 5월 4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학촌로 110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
          이상웅교수 배상신고 | 삭제

          • 후배 2018-05-04 21:18:58

            정이철 목사님, 한가지 권면을드리고자 합니다. 박용규 교수를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마음이 약해지시면 안 됩니다. 문론 정 목사님이 먼저 박 교수를 비판하는 글을 써서 박교수의 심기가 상했겠지만, 그렇다고 정 목사님을 이단으로 모는 보고서를 20여 페이지를 쓴 다는 것은, 그 문서가 합동의 전체 총대들의 손에 들려지게 했다는 것은 인간이 할 일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인간성이 완전히 악마 같은 사람이 교수한다고 저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싸움은 정 목사님과 박 교수 중 하나가 죽음으로 끝을 내야 바람직합니다. 그것이 앞으로 합동의 신학을 위해 좋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현실적으로 박용규 교수 같은 혼합주의자, 은사주의 노선이 합동에서도 우세를 차지하고 있으나, 그것은 성경을 벗어나는 한국교회의 현실일 뿐입니다.

            웨일즈 부흥, 아주사 부흥에 대한 환상을 박용규 교수가 심었는데, 그것을 정 목사님이 바르게 지적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한국과 세계교회를 덮고 있는 사탄의 흑암을 건드린 것입니다. 여기서 절대로 물러나면 안 됩니다. 정 목사님과 박 용규 중 한 사람이 죽어야 끝을 내는 것으로 방향을 잡으셔야 합니다.

            문론 죽을 사람은 정 목사님이 아닙니다. 이미 여론은 박용규 교수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정 목사님을 이단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박용규 교수 외에도 이한수, 김지찬, 이상원, 김성태 ... 이런 교수들도 심각한 사람들입니다. 박용규 교수가 쓴 그 따위 문서에 이름을 올려서 한 사람을 이단으로 몬다는 것은, 특히 신대원 교수라는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신학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총신의 풍토의 문제입니다. 끝을 보시기 바랍니다.신고 | 삭제

            • 개혁파 2018-05-06 22:54:17

              건전한 토론을 하시려면. 아이피 차단해주시기 바랍니다.신고 | 삭제

              • 서병구 2018-05-10 07:35:51

                사랑이없는 비판은 결국 허무주의 와 다를바 없습니다 비판의 목적달성만 생기는 것입니다
                스콜라시대 부터 오늘에 이른 신학전반부 의 사상 속에는 수용할것과 수용하지 못할것이 있는것입니다
                개혁주의 틀에서 서로 다른 주장이 있고 ,알미니안 과 칼빈또한 같은주장 과 다른 주장이 있는 것입니다
                기존의 보편적 양심에 던지는 주장들이 부정적이고 냉소적일때 그것은 결국 자신의 허무주의적 사고로
                돌아갈것입니다.신고 | 삭제

                바른믿음
                최근 3개월 동안의 중요 기사 10
                후원방법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118 Ann Arbor-Saline rd, Ann Arbor, MI 48108(USA)
                대표(발행,편집):정이철(734 678 7133, cantoncrc@gmail.com)  |  편집자문: 정태윤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이철
                Copyright © 2018 바른믿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