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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2장 15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이승구  |  wminb@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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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27  10:3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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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가 바울의 글인가의 여부 

셋째로, 이 말씀을 바울의 글로 믿는지의 여부에 대해서 논의해 보기로 하자. 성경에 대해서 비평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디모데전서를 비롯한 목회서신이 바울에 의해서 쓰여진 것이 아니라 후대의 사람이 바울의 이름으로 자신의 견해를 표명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진짜 바울은 남자와 여자의 모든 면에서의 평등을 주장하는 데, 이 위-바울(the “pseudo-Paul”)은 진짜 바울의 견해와 달리 여성의 사역을 제한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교회가 디모데전서에서 말하는 것을 따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말씀을 바울 자신이 쓴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바른 해석이라고 여긴다. 본문 자체가 사도 바울이(딤전 1:1; 1:13; 2:7) 디모데에게(1:2, 18; 6:20) 구체적인 정황 가운데(딤전 1:3) 있는 그에게 목회의 지침을 주기 위해 기록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1세기 정황에서 사도의 이름을 빌어 바울의 제자격 되는 존재가 이런 편지를 쓰는 것이 오늘날과 같이 위조나 이름 도용으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당대의 관습적인 관례였다는 설명을 받아들이기는 매우 어렵다고 본다.

그러나 백 번 양보해서 혹시 그렇다고 해도 적어도 그 인간 저자가 이 글을 쓰는데 성령께서 영감하셨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겨져야 한다. 그렇다면 위의 논의에 의해서 이는 오늘 우리를 규제하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부분의 인간 저자가 누구이든지 이 말씀에 따라서 우리는 교회에서는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 주관하는 것”(12절)을 허락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을 바울이 쓴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분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그렇게 논의하시는 분들은 과연 만일 이것이 바울이 친히 쓴 것이라면 이 말씀을 따라서 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그런 논의를 하는 것인가? 혹시 이 말씀에 따르고 싶지 않은 마음이 그들을 이 말씀은 바울이 쓴 글이 아니라는 해석에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닌지를 묻고 싶다.
 

IV. 디모데전서 2:15의 의미 

결론에로 나아가기 전에 디모데전서 2:9-15 해석 가운데서 가장 논란거리가 되는 15절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 해산함(teknogoni,a)이라는 말은 신약 성경에서 이 곳에만 나타나는 말이고 다른 문헌에서도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다른 구절에 대해서도 그렇거니와 이 구절에 대한 지나친 문자적 해석은 언제나 문제를 일으킨다.

(1) 때때로 계속해서 믿음 안에 거하면 해산하는 과정에서 안전케 지켜지리라고 물리적으로 번역하고 해석하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신앙 안에 있으면서도 해산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죽고 어려움을 당한 현실 앞에서 이런 해석이 이 구절의 의도라고 주장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여기 “구원을 받을”(swqh,setai) 것이라는 것이 영적인 의미의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 대부분의 해석자들이 생각을 하게 된다.

(2) 여인이 해산하는 것으로 영적인 의미에서 구원을 얻는다고 해석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그 누구도 이 구절을 이렇게 지나치게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크리소스톰(Chrisostom)과 훌덴(Houlden)은 아이 낳지 않은 여인들이 있음을 생각하면서 “해산함으로”(dia. th/j teknogoni,aj)라는 말을을 “아이를 키움(child-nurture)으로”라고 바꾸어 이해하고서는 아이 낳지 않은 여인들도 여성적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일을 하므로 그런 아이 키움으로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해석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해석도 결국 인간의 어떤 행위에 의한 구원을 시사하는 문제가 있으므로 이런 해석은 바른 해석일 수 없다. 왜냐하면, 마운스가 잘 논의하고 있는 것과 같이, “목회서신의 구원 교리는 철저히 바울 것이 것이기” 때문이다. 즉,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지비로 말미암는 것이며 신자들이 믿음으로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행위를 통한 구원일 수 없다. 그러니 해산함을 통한 구원이 아님은 물론이다.”

(3) 마리아가 아이를 낳음으로, 즉 메시야의 탄생으로 구원이 주어졌다고 하는 해석이 있다. 그들은 해산함(teknogoni,aj, childbirth)이라는 말 앞에 정관사(th/j)가 있다는 사실("the childbirth")에 주목하면서 이것은 다른 해산이 아닌 마리아가 예수님을 해산한 그 해산(the birth par excellence)을 지칭한다고 한다.

따라서 마리아의 메시야 해산으로 구원이 주어졌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특히 창세기 3:15과 연관시키면서 그곳에서 약속된 “아이가 여인에 의해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구원이 선언된” 것과 이 구절(15절)을 깊이 연관시켜 설명하는 것이다. 비록 하와가 범죄하였고, 그것은 오고 오는 모든 여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여인들은 예수님의 출생으로 그리고 그가 가져 올 구원으로 구언될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여인이 그녀의 역할을 수행하여 메시야를 낳게 되어 바로 “그녀”(h` dgunh., 이는 마리아에게서 성취된다는 것을 시사하면서)가 세상에 구원을 가져 오게 된다는 것이다. 파제트는 특히 여기서 강조된 것은 여인이 “씨를 낳음으로 사단으로부터 구원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바울은 예수님의 죽음이 구원을 주는 것으로 말하지 예수님의 출생이 구원을 주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과 그 “해산함”이라는 말이 마리아가 해산한 한 사건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여인들의 해산하는 행위를 모두 지칭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해석의 더 심각한 문제는 여인이 구원을 가져 오는 것이 아니라 여인이 구원을 받는다고 이 구절이 말하는 것과 모순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더구나 메시야의 오심으로 택자들 모두가 구원된 것이지 여인들만이 구원된 것은 아니므로 이 해석은 결국 이 구절의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도록 하는 해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4) 또 하나의 이상한 해석으로 “여인이 아이를 낳음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구원을 받으리라”고 해석하는 것이 있다. 최초의 죄 때문에 모든 여인들은 심지어 그리스도인들도 아이를 낳는 고통을 감수해야 하지만, 믿는 여인들은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해석은 ‘디아’(dia.)라는 희랍어 전치사에 부자연스러운 의미를 부가하는 해석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또한 하와의 죄 때문에 주어진 저주는 아이 낳는 것이 아니라 아이 낳는 것과 관련된 고난이기 때문에 이는 여러모로 부정확한 해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5) 여인의 역할과 관련하여 아이 낳음을 강조한 이유 중의 또 하나는 혼인하지 말 것을 주장하는 잘못된 가르침(딤전 4:3)과 후에 이를 계승한 영지주의자들 때문이었다는 것도 생각해 볼만하다. 이와 같은 바울의 반대자들, 특히 이단적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혼인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으며 오히려 교회 공동체 안에서 가르치고 주관하는 위치를 차지하려고 해야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했기에 바울이 그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들을 비판하는 것이 15절 말씀이라는 해석이 있다. 그렇기에 이 구절에 이단자들의 경향을 반박하는 상당히 어색한 말이 15절에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15절 배후에 반대자들의 주장이 있고, 그에 반하려는 바울의 의도를 드러내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흥미로우나 본문의 문맥상 이것이 15절의 말씀을 낳게 한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므로 (5) 이 구절을 가장 잘 해석하는 길은 “그 해산함”을 제유법(a synecdoche)로 보는 것이다. 제유법이란 부분으로 전체를 말하고, 전체로 하나를 제시하거나 유(genus)를 말하는데 그에 속하는 한 종(difference)을 사용해서 말하는 일종의 수사법을 말한다. 여기서는 해산함이라는 여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들어서 여인들만이 하도록 되어 있는 일 전체를 언급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구절은 여인들의 해산함이 구원의 원인이나 조건이 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혼인하지 않은 여인들이나 혼인했어도 아이를 낳지 않은 여인들은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 되고 만다. 바울이 그런 식으로 이야기할 리가 없으므로 그 “해산함”이란 여인들이 행하는 여러 가지 일들 모두를 지칭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앞에서는 “구원을 얻으리라”(swqh,setai)고 단수로 말하다가 여기서 “그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eva.n mei,nwsin evn pi,stei kai. avga,ph| kai. a`giasmw/| meta. swfrosu,nhj)이라고 하면서 주어를 복수로 바꾸어 표현하는 의미가 드러난다. 이는 “아내와 남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여인과 그 자녀들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다. 여기 복수로 언급된 사람들은 믿음 가운데 거하는 모든 여자들을 말하는 것이며, 그런 여인들을 하나로 생각하면서(genericaly)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인들이 해야 하는 여러 일 가운데서 오직 여자들만이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일인 “해산함(child birth)”을 언급한 것이다(제유법).

이렇게 여인들이 자신들이 창조 질서 가운데서 해야 할 일을 수행하는데, “만일에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즉 그 모든 일들을 믿음으로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뜻인 것이다. 특히 여인들이 창세기 3:16에 분명히 규정된 역할을 받아들이되 믿음으로 그리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믿음은 여인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계속해서 신뢰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바울이 권면하는 것은 여인들은 모범적인 아내와 어머니가 되어 구원의 실재를 드러내라는 것이다. 여인들은 교회 안에서의 직분을 감당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contenders for ecclesiastical office) 되지 말고 오히려 가정에서의 책임을 다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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