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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규 교수, 20세기에 방언이 나타나고 더 중요해진다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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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08  06:2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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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신대 신대원 박용규 교수가 사랑의교회에서 설교하는 모습

박용규 교수의 신학에 대한 세 번째 글이다. 앞으로 몇 차례 더 이어가려고 계획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합동과 총신의 신학의 실상을 함께 확인하고 느끼자는 것이다. 예장 합동의 신앙은 이미 개혁주의가 아니고, 총신의 신학 또한 개혁주의에서 벗어나 현대 복음주의로 기울어졌다. 이 심각한 사실을 절실하게 느끼는 합동과 총신인들이 많지 않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박용규 교수를 개인적으로 미워하고 괴롭히려는 것이 전혀 아니다.  합동과 총신의 실상에 대해 한 사람이라도 더 느끼기를 원한다. 박용규 교수가 자신의 신학을 개혁신학으로 다시 정립할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한다고 하면, 나도 이 글을 내릴 수 있다. 그것이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이다.

총신과 합동의 신학은 처음부터 개혁신학이었다. 이것저것 아무것이나 다 하고, 안 하는 것도 없고 못하는 것도 없는 잡탕신학인 현대 복음주의가 총신의 신학은 아니다. 현대 복음주의는 곧 사탄숭배의 길이다. 사탄이 금식하시는 예수님을 훼방하고 유혹할 때, 시퍼런 칼로 위협하지 않았다. 사탄은 구약 성경의 말씀으로 예수님을 교묘하게 대적했다. 지금도 사탄의 전략을 동일하다. 교회 안에 있는 사탄의 사람들과 하나님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성경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차이점은 성경을 하나님의 의도대로 해석하는가? 하나님의 의도와 다르게 해석하는가? 바로 이것이다.

사탄숭배로 가는 교회들은 언제나 성경을 왜곡하고 하나님의 원래의 의미와 다르게 해석한다. 그러나 개혁신학은 오직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방법으로만 성경을 이해하고 가르치려고 노력한다. 지금 세계교회에서 현대 복음주의와 개혁신학의 세는 90:10 정도이다. 개혁신학이 절대적으로 열세이다.

그러나 숫자가 많다고 하나님께 속해지는 것이 아니고, 시대의 대세라고 하나님의 인정하심을 받는 것은 아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지런히 산당의 하나님을 섬기다가 예루살렘 성전의 참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명하였다. 모든 왕들이 백성들이 좋아하는 산당을 대적하지 않아서 하나님의 책망을 받았고, 오직 히스기야와 요시야 만이 산당을 대적하고 산당의 제사장들을 죽여 하나님의 칭찬을 받았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총신은 한국교회를 멸망으로 이끄는 산당신학, 현대 복음주의 신학의 동산이 되지 않아야 한다. 총신은 오로지 하나님의 참 교회를 세우는 개혁신학, 그것도 현대주의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고전적(역사적) 개혁신학의 동산으로 영원히 남아야 한다. 그래서 박용규 교수를 비롯한 총신 교수들의 신학 노선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교수들이 무엇을 가르치느냐에 따라 총신은 산당의 제사장들을 육성하는 학교로 변질될 수 있고, 그러면 결국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되기를 멈추고 마귀의 산당이 되는 날이 급속히 가까워질 것이다. 

이미 다른 복음주의 교단들 속에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산당화 작업이 깊이 진행되었다. 합동과 총신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대 격변으로 새롭게 하시지 않으면 소망이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총신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박용규 교수가 이전에 어느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했던 성령의 부흥에 대한 강의를 분석해 보자. 현대 복음주의자인 박용규 교수의 신학노선을 통해 개혁신학과 근본적으로 길을 달리하는 산당신학, 즉 현대 복음주의의 심각성을 점검해 보도록 하자. 먼저 박용규 교수의 강의를 녹취한 내용을 읽어보고 그 아래의 실제 영상을 시청하기 바란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방언이라고 하는 특별한 오순절의 사건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이 방언의 존재의 가치, 은사의 가치가 점점 더 중요해지면서 확대되기 시작하고, 또 한편으로는 웨일즈에서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이 소식을 들으면서 (아주사 거짓부흥의 주역) 시무어(세이모어, William Seymour, 1870-1922)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기 시작한 것이예요.

자기가(세이모어) 성결교 담임으로 있는 동안에 메시지를 전하면서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셔서 오순절 초대교회의 성령의 역사는 우리 가운데에서도 계속 지속된다’라는 사실을 신자들에게 이야기해 준 거예요. 그런데 처음에는 성결교 안에서 여기에 대한 거부반응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그것은 뭐냐하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면 되었지 사도행전 오순절의 성령의 역사처럼 우리가 성령의 기름부음을 또 갈망할 필요가 뭐가 있느냐?’라는 거부 반응이 생겼어요. 결국은 그 아주사 근처의 성결교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래서 한 가정 집에서 몇 사람을 모아 놓고 그냥 기도하시를 시작한 것이지요. 기도하는 가운데 1906년 4월 9일 날 사도행전에서 일어났던 엄청난 오순절의 성령의 역사가, 기름부으심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한 거예요.

1906년 4월 9일 날 일어났던 성령의 역사는 아주사 부흥의 기원일뿐 아니라 소위 현대 오순절 운동의 시발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1906년 4월 9일 날 성령의 역사가 아주 놀라고 강하게 일기 시작했는데, 그 성령의 역사가 어떻게 강했는지에 대해서 ... 생생하게 그 현장에 경험한 사람들 ... The Apostolic Faith라고 하는 ... 성령의 역사가 계속해서 강하게 일어나자 시무어를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이 이 모든 것을 알리기 위해 하나의 신문을 만들었습니다.

그게 <사도적 신앙>(The Apostolic Faith)이라고 하는 신문인데, 일종의 소식지이지요. 여기에 기록된 것을 보면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죄용서, 성화, 성령세례 그리고 신유를 갈구하는 구도자들을 위해 강단이 열리자 마자 곧 사람들이 일어나 강단으로 몰려들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단순히 선포되었고, 성령 안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너무도 강렬하여 사람들이 고꾸라졌다.”

이것은 뭘 보여주고 있냐 하면, 사람들이 그 만큼 은혜를 받기 위해서 사모하고 단이 열리지 마자 집중적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리고 거기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은혜를 받고 그냥 단에 고꾸라지는 역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는 “집회장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고꾸라지고 그리고 전 도시가 요동치기 시작했다”(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의 아주사의 부흥에 대해 일반 신문들까지도 대서특필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각 변동이 있었던 것처럼,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LA가 요동치기 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박용규 교수, 4분 30초~8분15초)


 

사도행전의 방언이 20세기 들어 다시 나타난다는 신학

오늘은 박용규 교수의 강의 내용 중 다음의 한 문장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방언이라고 하는 특별한 오순절의 사건들이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이 방언의 존재의 가치, 은사의 가치가 점점 더 중요해지면서 확대되기 시작하고”(박용규 교수)
 

개혁신학의 방언

성경을 통해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기독교의 방언에 대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성령으로부터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의 혀를 이용하여 하나님이 직접 교회에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설교하시는 것이 기독교의 방언이었다. 성경의 방언의 형식은 그 당시 이방인들의 다양한 실제 언어였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의 언어로 친히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람들에게 설교 형식으로 설명하시니 믿는 사람들이 더 많이 나타났고,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졌다. 또한 이미 믿는 사람들의 예배에서 통역과 함께 방언이 활용되면 신자들의 믿음이 더 견고해지는 역사가 나타났다.

또한 이방인들의 외국어 방언이 교회의 예배를 통해 사용됨으로 그때까지 멸시받던 이방인들도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성령 받고 하나님의 백성되었음이 증거되었다(고전 14:21,22). 그리고 성경 66권의 완성, 그리고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몸을 이루는 교회가 견고해지면서 초대교회의 방언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이것이 성경의 기독교의 방언에 대한 개혁신학의 가르침이다. 초대교회의 방언에 대해 우리보다 더 자세하게 그 당시의 상황을 알았고 연구했던 이레니우스, 오리겐, 어거스틴 등이 이와 같이 방언에 대해 가르쳤다. 이들은 자신들의 시대에 이미 방언이 존재하지 않고 있음을 자신들의 기록 속에 명시했다. 이후 칼빈과 종교개혁자들, 웨스트민트서 신앙고백서, 조나단 에드워즈, 찰스 스펄전, 찰스 핫지, B. B 워필드, J. G 메이첸, 리챠드 개핀, 팔머 로벗슨 ... 등 우리에게 개혁신학을 가르친 모든 정통신학자들이 동일하게 가르쳤다.
 

현대 복음주의의 방언

그러나 오순절 운동의 방언 신학을 그대로 수용하는 현대 복음주의는 초대교회 이후 사라졌던 방언이 20세기 들어 갑자기 다시 나타났고,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고 가르친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현상을 회복시키는 오순절 운동과 함께 방언이 다시 본격적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총신에서 교회사를 가르치는 박용규 교수도 바로 그 입장에 서 있으므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방언이라고 하는 특별한 오순절의 사건들이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이 방언의 존재의 가치, 은사의 가치가 점점 더 중요해지면서 확대되기 시작하고”(박용규 교수)

그러나 초대교회 이후 사라졌던 방언이 20세기 들어서 다시 나타났다고 하는 현대 복음주의의 가르침은 하나님으로 둔갑한 사탄을 섬기도록 유도하는 구약의 산당신학의 20세기 버전일 뿐이다. 그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이다.
 

1) 현대 방언은 이단들의 열매

초대교회 이후 방언과 관련된 사람들은 모두 이단들이었다. 가장 최초로 방언을 주장하였던 몬타누스 그룹은 결국 이단으로 치우쳤고, 칼빈의 제네바에서 가르친 교육문서에 의하면 그 시대에도 기도한답시고 옹알거리는 소리현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었으나, 칼빈은 그들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들이라고 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들이라는 표현은 이단이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1800년대 초반 방언을 주장했던 영국의 장로교 목사 어빙도 원죄의 유전을 부정하는 등의 이단성을 가진 신비주의자였다.

가장 직접적으로 현대의 방언을 도입한 1900년대 초반의 미국 사람들은 더욱 더 심각한 이단들이었다. 1901년에 방언을 핵심 징조로 동반하는 성령재세례 사상을 정립했던 감리교 목사 찰스 펄햄은 오순절 운동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1800년 후반의 미국의 감리교회들 중심의 성결운동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이었다. 펄햄은 신자에게 거룩과 성결을 주는 비성경적인 성령재세례 사상으로 무장되었고, ‘불 세례성결교회’(Fire-Baptisted Holyiness Church)를 인도했던 벤자민 어윈(Benjamin Irwin)이라는 이단에게서 그리스도인이 영적인 ‘완전’(perfection)과 권능을 가지기 위해 성령의 불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사상도 배웠던 사람이었다. 

찰스 펄햄은 메인(Maine)주 더햄(Durham)에서 ‘실로’(Shiloh)라는 신앙공동체와 ‘성령과 우리성경학교’(The Holy Ghost and Us Bible School)라는 신학교를 운영하면서 ‘기사와 이적’(sings and wonders)을 통한 종말의 대부흥을 강조했던 프랭크 샌포드(Frank Sanford)라는 이단에게서도 배웠다.

펄햄은 샌포드에게서 또 다른 어이없는 이단 사상을 전수 받았다. 찰스 펄햄은 샌포드로부터 신약의 교회와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의 관계에 대해서 이상한 내용을 주장하는 ‘앵글로-이스라엘주의’(Anglo-Israelism)를 배워서 가르쳤다. 찰스 펄햄은 ‘앵글로-색슨’(Anglo-Saxons)족이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10지파의 후손이라고 가르쳤고, 현재의 영국과 미국이 하나님이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주신 모든 언약과 은혜를 상속받았다는 지극이 자의적이고 허무맹랑한 주장이었다.

나중에 펄햄은 자신이 새로운 사도적 신앙시대를 여는 마지막 시대의 세례 요한이라고 주장하였고, 휴스턴에서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이상한 옷을 입혀 시가행진을 하면서 ‘새로운 사도적 신앙의 혁명’을 선포하는 오순절 군대라고 주장하였다. 최초로 다시 등장하는 방언에 대한 신학을 수립한 찰스 펄햄은 이단의 길로 빠진 사람이었다.

현대의 방언을 교회에 도입한 실질적인 지도자는 흑인 윌리엄 세이모어(William Seymour, 1870-1922)였다. 그는 펄햄이 휴스턴에서 운영했던 성경학교의 학생이 되어 방언과 성령재세례에 대한 그릇된 사상은 배웠다. 그러나 그도 역시 휴스턴에서 찰스 펄햄을 만나기 전에 다양한 이단들의 가르침을 체험한 사람이었다. 신시내티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부흥운동’(Church of God Reformation Movement)을 이끌고 있었던 마틴 냅(Martin Knapps)으로부터 이미 중생한 사람에게도 다시 성령의 추가적인 임재을 경험해야 한다는 사상을 배웠다. 마틴 냅이 운영하는 ‘하나님의 성경학교’(God's Bible School)에 학생으로 등록하여 공부하였고, “어둠 속에서 빛나는 성도들”(Evening Light Saints)이라는 불건전한 신앙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구원 받고 난 후 성화되기 위해 또 다른 성령의 두 번째 임재하심이 필요하다는 비성경적인 사상으로 무장되었다.

세이모어는 이후 휴스턴으로 이주하여 찰스 펄램이 운영하는 성경학교에 입학했다. 거기서 중생한 신자에게 성령재세례가 임할 때 사도행전의 방언이 다시 재현된다는 이단사상을 추가적으로 더 배웠다. 그리고 켈리포니아의 한 교회의 청빙을 받아서 떠났으나, 자신을 청빙한 교회에서 불과 단 한번 설교하고 이단으로 비판당하면서 추방당했다.

추방당하여 갈 곳이 없었던 세이모어가 인근의 아주사에 있는 자신을 따르는 한 여성도의 집에서 기도회를 시작했다. 바로 그곳에서 괴이한 일들과 함께 방언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의 스승 찰스 펄햄이 나중에 세이모어의 초청을 받아 아주사 현장으로 왔었으나,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고 기가 막혀 “귀신의 굿판을 걷어 치우라!”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세이모어가 반발하여 두 사람은 원수가 되었고, 이후 죽을 때까지 서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대 방언의 실상이 이러하다. 그러나 박용규 교수가 20세기 들어서 다시 방언이 오순절 운동과 함께 등장했고, 그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고 가르친다. 개혁신학에서 벗어난 현대 복음주의 노선에서 신학을 하므로 사탄의 교묘한 역사를 보는 눈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현대 방언을 교회에 도입한 사람들 외 이후 그 방언을 신봉하고 앞장서 전파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단의 길과 무관하지 않다. 사람 좋은 경우는 많이 있으나 영적으로 신학적으로 올바른 방언주의자는 거의 찾을 수가 없다.
 

아무 열매없는 현대의 방언

사도행전에서 방언에 대한 기사는 불과 3회(2, 10, 19장) 등장한다. 그런데 사도행전의 방언은 엄청난 복음의 열매를 산출하였다. 사도행전 2장에서는 방언이 유대인 남자 3천명이 믿고 세례를 받게 만들었다. 사도행전 10장에서는 방언이 이방인 신자의 선두주자 고넬료와 그 가족들과 친구들이 베드로와 다른 유대인 신자들이 받은 동일한 성령을 받았음이 증명되게 만들었다. 이후 이 고넬교 가족의 성령받음과 방언 사건으로 기독교 안에서 이방인 선교가 공식화되었다. 사도행전 19장에서는 방언이 이방인이고 또한 세례 요한의 가르침에 머물고 있었던 에베소의 신앙공동체가 바울의 복음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 전환되었음을 선포하였다.

이와 같이 성경의 참 방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파하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현대의 방언은 어떠한가? 갈수록 그 세력이 증가하고 있으나 복음을 전파하거나 교회를 세우는 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현대 방언은 갈수록 많아지고 있고, 방언이 나오게 만드는 프로그램이나 전문 기술이 더 발전하고 있지만, 현대의 방언 때문에 교회가 더 견고해지고 복음이 불신자들에게 증거된다는 증거는 하나도 나오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 방언은 이단들에 의해서 도입된 거짓 방언이기 때문이다. 성령이 하시는 일이면 성령의 열매가 있을 것이나, 성령이 하시는 일이 아니므로 성령의 열매가 없는 것이다. 현대 방언은 사탄이 벌이는 재미나는 굿판이고, 세계적인 규모로 더 발전되고 있는 사탄의 꽃놀이이다. 이것의 정체를 드러내는 유일한 신학은 오직 개혁신학이다. 박용규 교수 같은 현대 복음주의자들은 오히려 앞장서서 이것을 ‘성령의 부흥’, ‘20세기 들어 다시 중요해지는 방언은사’라고 미화한다.
 

2. 현대 방언 도입자들은 외국어 방언이라고 주장

찰스 펄햄과 윌리엄 세이모어 등 현대 방언 도입자들은 사도행전의 외국어 방언을 다시 재현시켰다고 주장했다. 펄햄은 1901년 1월 자신에게서 배우는 여학생에게 안수기도하여 최초로 사도행전 2장의 성령세례를 재현하였고, 또한 외국어 방언도 나타나게 했다. 펄햄이 아그네즈 오즈만이라는 여학생의 요청을 따라 안수하였을 때, 중국어 소리와 너무도 유사한 방언이 그 여학생에게서 타나났다. 펄햄과 그 현장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정말 중국어 방언이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이후 펄햄은 자신을 통해 사도행전 2장 오순절의 성령세례와 방언이 재현되었으므로, 외국 선교를 위해 힘써서 외국어를 배워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주사 거짓 부흥을 주도하여 현대 방언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한 윌리엄 세이모어도 자신을 통해 나타나는 방언이 뜻 없는 소리라고 여기지 않았다. 영락없이 사도행전 2장의 외국어 방언이라고 믿었고, 사도행전 2장의 방언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전할 수 있는 방언이라고 확신했다. 그렇지 않으면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의 역사가 재현되기 시작한다고 주장할 수도 없었다.

이때는 1900년대 초였으므로 외국에 가서 자신들의 방언을 실험해 볼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좀 더 시간이 지나 방언하는 사람들이 외국에 가서 선교를 위해 자신의 방언을 시험해 보는 일이 가능해졌다. 결과는 참담했다. 분명히 실제 어떤 나라의 외국어와 유사한 소리이지만, 그 누구도 알아듣는 언어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후 오순절 운동가들의 방언 이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도행전의 외국어 방언이 나타난 것이 아니고 고린도전서의 기도하는 하늘의 언어 방언이 나타난 것이라고 이론이 변했다. 그러나 이 주장에도 심각한 모순이 담겨져 있다.

첫째, 이들이 하는 일은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을 개인적으로 재현시키는 운동, 즉 오순절 운동이다. 그래서 이들을 오순절 운동신학자, 오순절 운동 부흥사, 오순절 교회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이들을 통해 반드시 사도행전 2장의 실제 외국인들이 이해하는 방언이 나타나야만 한다. 그래야만 오순절 운동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스스로 외국인들이 이해하는 실제 언어가 아니라고 인정하므로 이미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을 개인적으로 재현시키는 오순절 운동으로서 자격이 파산된 것이다.

둘째, 고린도에서 개인이 하나님께 신비적으로 기도하는 하늘의 언어 방언이 나타났다는 이들의 주장은 매우 자의적이고 비성경적인 내용이다. 고린도에서 기도하는 방언에 대한 논란이 분명히 있었으나, 사도 바울이 그것을 명확하게 지지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본문을 자세하게 살피면, 바울이 기도하는 비밀의 방언을 인정하는 것 같으나 반드시 그 앞뒤 문장 속에 그것을 부정하는 표현이 함께 발견하게 된다.

특히 5개월 정도 후에 기록된 고린도후서는 당시 고린도교회에 이단이 침투하여 거짓된 것들을 가르쳤고, 신자들은 분별하지 못하고 수용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고린도 신자들은 이단들을 물리치기는커녕 오히려 그 이단들을 좋아하고 존경하기까지 했다고 책망받았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고후 11:4)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고후 11:19,20)

오순절 신학을 그대로 용인하는 현대 복음주의자들은 사단이 교회에 도입한 거짓 방언을 전혀 막지 않는다. 막기는커녕 그대로 인정하고 미화시키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가르친다. 지금 박용규 교수가 바로 그 경우이다. 그래서 박용규 교수의 영향을 받으면서 신학을 배운 학생들은 결코 하나님의 참 교회를 세울 목회자가 되기 어렵다. 사탄이 교회를 넘어뜨리기 위해 일으킨 교묘한 역사를 분별하지 않고, 오히려 박용규 교수처럼 두둔하고 용인하고 미화하는 산당신학의 제자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총신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일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또한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깨달아야 한다. 박용규 교수가 이렇게 그릇되게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정말 심각하게 불행한 일이다. 그리고 박용규 교수가 쓴 부흥에 대한 책들을 통해 악영향을 받는 학생들의 실상도 정말 걱정스럽다. 사탄의 거짓 부흥과 성령의 참 부흥을 분간하지 못하는 분이 세계의 부흥과 한국교회의 부흥에 대해 굵직한 책들을 썼다는 것은 참으로 허무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괜히 개혁신학만이 교회를 교회되게 만드는 유일한 신학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 이유가 있다. 박용규 교수 같은 현대 복음주의자들은 오직 신천지, 안상홍, 박윤식 등에 대해서만 이단이라고 하고 있다. 자신들의 현대 복음주의 신학의 구도에서는 절대로 그 이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합동과 총신 인들은 오직 개혁신학만을 추구해야 한다. 그 이유는 현대 복음주의 신학으로는 사탄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귀의 거짓 부흥의 정체를 절대로 알아채지 못한다. 현대 복음주의는 교회를 자연스럽게 잡아서 삶아먹기 위해 사탄이 만들어 낸 신학이다. 이 말을 박용규 교수 같은 분들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길이 너무 좁아집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을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이 간 길을 돌아보아야 한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이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그 길이 광대하여 그 길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으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협소하여 그 길을 찾는 자가 적음이니라.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라.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은 약탈하는 이리들이라.”(마 7: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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