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초대총리 벤 구리온(1186-1973). 벤 구리온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유대인들의 이스라엘 이주 운동을 위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스라엘의 건국 아버지이다.

진짜 이스라엘은 누군가?

하나님이 선민의 약속을 주신 아브라함의 자손은 누구일까? 세대주의자들은 혈통적 유대인과 국가적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선민으로 보지만, 개혁주의자들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을 선민으로 본다. 국가적 이스라엘은 성경의 구속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 개혁교회의 관점이다.

개혁신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구약의 이스라엘을 현대 이스라엘과 연결시켜 해석하는 세대주의자들은 성경 속의 하나님을 민족주의적 하나님으로 이해하고 성경의 구속사적 의도를 유대 민족주의적으로 편협화시키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이인엽 박사는 기본 인권조차 유린당하는 팔레스타인 현실을 무시하는 극단적 시각의 배경은 구약에 등장하는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 이스라엘 왕국 수립을 인종주의 관점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선민인 유대 민족을 편애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국가 수립을 위해 원주민을 학살하는 하나님으로 왜곡하는 것이라며 이렇게 주장한다.

“성경의 가르침은 오히려 이스라엘의 선민사상과 충돌한다. 결국 인종주의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하나님을 한 민족의 수호신으로 격하하는 신성모독이다. 이런 왜곡된 시각이 만연할 때, 노아의 세 아들 중에 함이 저주받은 이야기로 흑인 차별이나 노예제를 합리화하거나 가나안 정복 이야기를 이용해 아메리카 원주민을 학살한 악행들이 벌어졌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흐름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준식민지 점령 정책, 분리주의 정책을 합리화하는 기독교 시오니즘으로 이어지고 있다.”(이인엽 박사)

출애굽 당시 대제국이었던 이집트가 약소국 이스라엘을 노예화하여 학대하고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했기에 심판받은 것이지, 단지 이방인이라서 심판받은 것이 아니다. 가나안 정복 때도, 그들이 단순히 혈통적 이방인이라서 심판받은 것이 아니라 당시 수간이나 인신 제사와 같은 가나안 주민들이 저지른 죄가 관영했기(레 18:1-23) 때문이었으며, 이스라엘에 땅이 필요해서 가나안 사람들이 죽어도 괜찮다는 근거는 전혀 없다.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처럼, 물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이 아니고 이방인의 수가 찬 후에 이스라엘이 돌아올 것이다(롬 11장). 그런데 여기서 이스라엘이 돌아오는 대상은 메시아이지 세속 국가가 아니다. 이스라엘 건국이나 영토 확장은 마지막 때의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김영한 박사도 현 이스라엘을 구약의 이스라엘과 동일시하는 세대주의자들의 견해는 비성격적이라며 이렇게 설명한다.

“오늘의 예루살렘은 다가오는 참 실재인 종말론적 예루살렘의 그림자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구속사의 종말론적 상징이며 새 예루살렘을 지시하는 예표로서만 우리들에게 의미를 지닌다. 사도 요한은 예루살렘의 진정한 평화란 정치적 협상에서 오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이루실 종말론적인 평화를 예언하고 있다(계시록 21장). 종말론적 예루살렘은 유대인만의 도시가 아니라 모든 열방, 모든 민족, 특히 팔레스타인들도 함께 평화를 누리는 더불어 함께 사는 평화의 도시다.”(김영한 박사)
 

고레스와 벤구리온

세대주의자들은 “순간에 한 나라가 태어났다”는 예언이 1948년 이스라엘이 회복되면서 성취되었다고 해석하지만, 개혁주의자들은 이것이 오래 전에 이미 성취된 일이라고 해석한다.

기원전 537년 마치 하루 사이에 생겨나듯 이스라엘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며 70년간 황폐한 땅이 되어버렸으나 바벨론을 정복한 페르시아의 고레스(키루스) 대왕이 유대인들에게 본국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한 것이다.

고레스는 비록 이방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인정했고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고 순종했다. 그래서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에스라 1:2)라고 선포할 수 있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유대인들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려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다. 이 일은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에 완전히 평화롭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벤 구리온의 자신을 네게브 사막을 보이는 곳에 안치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부인과 함께 안치된 벤 구리온의 무덤을 찾아오고 있다.

반면에 세대주의자들이 하나님의 역사였다고 주장하는 1948년의 이스라엘 건국에서는 땅을 차지하려는 시오니스트의 음모와 술수와 전쟁과 살상이 그치지 않았다. 이 일을 이끌었던 벤구리온이 작성한 선언서에서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대신에 “바위”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유대사의 위대한 순간들>은 선언서의 최종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오후 1시에 국가 평의회가 모였을 때에도 의원들은 건국 선언서의 문구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전통을 고수하는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원했지만 세속주의 유대인들은 그 표현에 반대했다. 결국 절충하여 벤구리온이 ‘하나님’ 대신에 ‘바위’라는 표현을 쓰기로 결정했다.”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가 된 벤구리온을 비롯한 건국 공신들은 정치적 이유로 유대교로 개종한 카자르 민족의 후예들로서 아브라함의 후예인 혈통적 유대인과 구분해서 “현대 유대인”으로 불리운다.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은 하나님이 “한 나라를 태어나게” 하기 위해 친히 일하신 평화적인 사건이 아니라, 시오니스트 현대 유대인들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 성경을 이용해서 전쟁의 명분을 만들고 많은 살상을 통해 이루어낸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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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옥 선교사는 서강대에서 신문방송학, 산호제바이블컬리지에서 신학, 산호제주립대대학원에서 소셜웤을 전공했다. 서울과 산호제에서 다년간 직장을 다녔고 산호제에서는 교회에서 전도사로도 일했다. 현재는 예수님과 성경과 기독교에 대해 세상이 갖는 수많은 오해들에 대해 답변하며 인터넷을 통해 전도하고 있다.
저서 <예수신화?예수실화!>는 성경은 신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안목에서 기록된 역사서며, 예수님은 성인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변증한다. <시대읽기>는 기독교를 왜곡하거나 혼합해서 파괴하려는 반기독교적 세상의 정체와 그것의 반인륜적인 역사를 폭로한다. 이들 내용을 요약하고 추가해서 <예수는 실화다>와 <성경적 시대읽기>를 다시 출간했다. 최근 출간된 <다시살다>에서는 그리스도인이 된 개인 이야기를 간증한다. 번역서로는 <당신은 괜찮습니까?>와 <회복프라소>가 있는데 성경적 회개와 용서와 예수 안에서의 치유와 회복을 주제로 한다. joookkim@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