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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도 운동의 전도사 손기철 장로한국교회에 스며든 신사도 운동(1)
정이철  |  cantoncrc@gma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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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05  06: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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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도운동의 거짓 영성이 한국 교회 속으로 스며드는 데 공헌한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중 평신도로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 온누리교회의 손기철 장로이다. 초창기부터 의문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손기철 장로의 치유 부흥회 사역이 한국과 해외로 빠르게 확산되었던 이유는 고통 당하는 사람들이 갈망하는 “치유”를 내세우기 때문이다. 게다가 손기철 장로는 현직 대학 교수이며, 온누리교회와 하용조 목사의 후원까지 받고 있었다.   

과연 손기철 장로의 치유 영성이 어디에서 어떻게 유래하였을까? 손기철 장로는 몇 권의 저서를 출간하여 자신의 사상을 널리 확산시켰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저서가 <고맙습니다 성령님>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책은 2010년 6월에 출판되었는데, 자그마치 89쇄를 발행했다고 표기되어 있다. 출판사들이 한 번 인쇄할 때 기본적으로 2,000권 정도를 인쇄한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178,000권 정도가 시중에 유통된 셈이다. 그 후로 1년이 넘게 흘렀으니 더 많은 책이 팔렸을 것이다.

   
  헤븐리터치미니스트리 대표, 온누리교회의 장로 손기철

   
 
존 윔버, 헌터 부부, 피터 와그너의 영향

먼저 손기철 장로의 책 <고맙습니다 성령님>에서 드러나는 신사도운동 관련 요소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이 책 한 권에서만 해도 다음과 같은 많은 신사도운동 요소들이 명백하게 나타난다.

손기철 장로의 <고맙습니다 성령님> 속에는 그가 외국의 신사도운동가들에게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그는 자신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 않고 “미국의 저명한 치유사역자의 책”(p.137), “세계적인 성령사역자인 어느 목사님”(p.154), “예언 사역자로 유명한 어느 목사님”(p.155), “어느 목사님이 인도하시는 치유학교”(p.158), “유명한 복음전도자이자 세계적인 치유사역자인 어느 목사님”(p.172), “어느 신령한 목사님 한분”(p.183) 등의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크리스 해리슨(p.69), 헌터 부부(Charles & Frances Hunter, p.138), 도나 조단(Dona Jordan, p.175), 김우현(p.224)이라는 실명도 나타나는데, 이들은 모두 신사도운동과 관련된 인물들이다.

만일 신사도운동이나 다른 비성경적인 사상과 관련이 없는 이름, 책, 집회들이라면 손기철 장로가 그들의 구체적인 이름과 정보를 가릴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필자는 우연히 손기철 장로가 “미국의 저명한 치유사역자의 책”이라고 말하는 책이 누구의 책인지 알게 되었다. <고맙습니다 성령님> 137페이를 보면 손기철 장로는 치유 사역에 헌신하고서 어려움을 느낄 때마다 그 사람의 책을 읽으면서 많은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그 목사는 성도들에게서 치유가 나타나기 위해 힘써 기도했지만 처음 10개월 동안 아무런 치유의 이적이 나타나지 않았고, 오히려 사람들은 그를 정신나간 목사라고 비방하면서 교회를 떠나버렸다. 그러나 낙심치 않고 계속 치유를 위해 기도했다. 드디어 10개월이 지날 무렵 최초의 치유 이적이 나타났고 이후 계속 노력하여 세계적인 치유 사역자가 되었다. 그로 인하여 신학교에 치유 과목이 신설되기도 했다고 한다.

과연 그 외국인 목사는 누구였을까? 손기철 장로는 그의 책에서 무엇을 발견했을까? 이런 의문이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던 중 빈야드 운동의 창시자 존 윔버의 <파워 이벤절리즘>(Power Evangelism)을 읽다가 그 이야기가 바로 존 윔버의 이야기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의 책 13장에서 손기철 장로가 이야기했던 내용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손기철 장로는 신사도운동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그 책을 아주 감명 깊게 읽었던 것이다. 손기철 장로는 그 부분을 스무 번이 넘도록 읽고 또 읽었다고 이야기 한다. 

또한 손기철 장로는 <고맙습니다 성령님>의 138 페이지에서 평신도이면서도 세계적인 성령사역자로 쓰임을 받은 헌터 부부(Charles &Frances Hunter)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도전을 받고 힘과 용기를 얻었다고 고백한다. 헌터 부부에 대해서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신사도운동을 가장 소상하게 연구한 사람인 미국의 행크 해너그라프의 책 <빈야드와 가짜 신사도의 부흥운동>(이선숙 역, 부흥과개혁사, pp. 65-83)에서 우연하게 그 부부에 대한 내용을 발견했던 것이다. 

헌터 부부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먼저 로드니 하워드 브라운 목사를 알아야 한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술 취하여 비틀거리는 것처럼 만들어버리는 대표적인 신사도운동의 최면술사였다. 그가 손을 대면 사람들은 주체하지 못하고 낄낄거렸고, 등이 바닥에 접착된 것처럼 누워서 방언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성령 바텐더”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여기 그가 인도하였던 집회를 보여주는 실제 영상이 있다.

헌터 부부는 로드니 하워드 브라운에게서 임파테이션(impartation, 능력의 전이)을 받았다. 그리고 자신들에게서 동일한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외국의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전파하였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손기철 장로는 바로 그 부부를 존경하고 흠모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지금 손기철 장로에게서도 쓰러뜨리는 능력이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손기철 장로의 집회영상을 보면서 나는 그가 늘 “성령님 임하시옵소서!”라는 멘트와 “더!더! 더!”라는 멘트를 반복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과 마주대하면 먼저 꼭 “성령님 임하시옵소서!”라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쓰러지지 않으면 “더! 더! 더!”라고 말하면서 다가간다. 특히 사람들이 쓰러지지 않을 것 같으면 더욱 “더! 더! 더!”라고 말하면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쓰러진다. 

나는 이러한 손기철 장로의 멘트들이 그만의 우연한 습관이고 멘트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멘트나 동작은 그만의 고유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을 쓰러뜨리는 신사도 운동가들 다수가 거의 비슷한 멘트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1979년 어머니 날 밤에 존 윔버의 교회에서 사람들을 쓰러뜨리며 큰 소란을 일으킨 정체불명의 젊은 설교자이다. 그가 설교를 마치고 “성령님! 오시옵소서!”라고 말하자 그때부터 존 윔버의 교회에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이 더욱 많이 나타나게 할 때에 “주여! 더! 더!”라고 하면서 집회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손기철 장로가 “성령님! 임하시옵소서!”, “더! 더! 더!”라고 말하면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것과 너무나도 유사하다. 많은 외국의 신사도 운동가들이 그런 일을 행할 때에 “more! more!, more!”라고 외치는 장면을 많이 보았다. 손기철 장로가 “더! 더! 더!”라고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이런 유사한 점들은 단순한 우연일까?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점치는 것'으로 

이것 외에도 외국의 신사도 운동가들과 손기철 장로 사이에는 유사한 점들이 많다. 손기철 장로의 사상은 많은 부분에서 존 윔버의 사상과 포개져 있는 듯하다. 손기철 장로의 책 <고맙습니다 성령님>의 155페이지 이하를 보면 외국의 어떤 예언사역자가 인도하는 집회에 참석했다는 내용이 있다. 그곳에서 예언사역에 관하여 실습하기 위해 한 조에 편성되었던 한 자매의 얼굴에 “낙태”라는 글씨가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그 자매에게 “성령님께서 저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자매님이 낙태한 것에 대해 더 이상 죄책감을 갖지 말라고 하세요”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전도사인 그녀는 죄책감에서 벗어났고, 그 감격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손기철 장로는 그 책의 157페이지에서 그것이 “지식의 말씀”이라고 정의하였다. 지식의 말씀이 은사라면 바울이 고린도전서 12장 8절에서 언급하신 성령의 은사 중의 하나이다. 손기철 장로는 성령께서 미래에 대해서 말씀하여 주시는 것이 “예언”이고, 그와 같이 과거와 현재를 알려주시는 것을 지식의 말씀(고전 12:8)라고 하였다. 나는 지금까지 그 어떤 신학자도 사도 바울이 언급한 지식의 말씀을 그렇게 남의 비밀을 알아맞히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러한 일은 한국의 점집에서나 벌어지는 현상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존 윔버의 책 <파워 이벤절리즘>(Power Evangelism)>에도 똑같은 현상이 기록되어 있었다. 존 윔버는 비행기를 타고 이동할 때에 비행기 안에서 만난 남자가 아내 몰래 간음을 즐기고 있는 것을 성령이 알게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비행기 안에서 남편에게만 조용히 그 사실을 말하여 남편이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고 한다. 존 윔버는 그런 방법이 새로운 성령의 시대의 전도방법인 “능력전도”(Power Evangelism)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을 성령의 은사 중의 하나인 “지식의 말씀”(knowledge of Word)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존 윔버에게서 큰 영향을 받은 피터 와그너의 책에도 같은 내용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피터 와그너는 82년 11월의 어느 주일에 캘리포니아의 애너하임에 있는 존 윔버의 빈야드교회의 예배에 참석했는데, 존 윔버가 설교를 마친 후에 그곳의 몇 성도가 “지식의 말씀”(words of knowledge)을 전하였다고 한다. 그 지식의 말씀이라는 것의 내용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 자리에 참석한 누군가가 아직 의사에게서 뇌종양이라는 병명을 진단받지는 않았지만, 뇌종양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편두통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음을 먼저 알아내어 말해주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의 은밀한 죄를 투시하여 알아내고, 아직 확인되지 않은 병을 알아내는 현상을 지식의 말씀이라고 한다는 점에서 존 윔버, 피터 와그너, 손기철 장로는 완전하게 일치하고 있다.

   
  ▲ 손기철 장로의 2009년 시드니 뉴잉톤칼리지 집회

   
신사도 운동가들이 흔히 일으키는 방언 현상

손기철 장로는 방언과 방언찬양을 매우 강조한다. 또 실제로 그러한 현상들이 그의 사역에서 자주 나타나고 있다. 1999년 9월 예수전도단(YWAM)의 치유사역자 크리스 해리슨이 온누리교회에서 세미나를 인도할 때 손기철 장로는 크리스 해리슨의 권유로 다른 성도들에게 최초로 안수기도를 시행하였다. 그날 손기철 장로가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안수기도를 시작하자 사람들이 쓰러져서 방언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능력이 나에게서도 나오다니 그것은 너무나도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나는 그 다음 사람에게 가서 다시 그 사람의 이마에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도 동일하게 뒤로 넘어지는 것입니다. 다음 사람, 그 다음 사람에게도 동일한 일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뒤로 넘어진 사람들은 대부분 바닥에 누워서 눈물을 흘리며 방언으로 기도하거나 모두 개인적으로 성령님을 깊이 만나고 있었습니다.” (손기철, <고맙습니다 성령님>, p. 71)

그리고 방언을 강조하는 <하늘의 언어>라는 책을 저술한 김우현 피디가 규장출판사의 여진구 대표를 가르치면서 손기철 장로에게 방언 받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는 내용도 나온다. 만일 방언이 성령의 은사라면 결코 어떤 사람의 기도에 의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옮겨 다닐 수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사람에 의해 조정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성령의 역사하심이 마치 바람의 운행과 같다고 비유하셨다.

“바람이 임으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요 3:8).

바람이 인간에 의해 통제되거나 그 운행의 원리가 다 파악될 수 없는 것처럼, 성령의 역사하심도 결코 인간에 의해서 동원되거나 통제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 누구에게 방언이 나오도록 기도할 때 그 즉시 방언이 나타났다면, 그 방언은 결코 성령과는 무관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손기철 장로가 기도하자마자 규장의 여진구 대표에게서 방언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안수기도를 하자 성령님께서 즉시 임재하셨고 그는 곧 성령세례와 방언을 함께 받았습니다. 나는 내게서 기름부으심이 흘러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감격해하는 그에게 이 말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기름부으심을 꼭 흘려보내십시오.’” (손기철, <고맙습니다 성령님>, p. 71)

이후 더 놀라운 일이 계속 일어났다. 손기철 장로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방언이 터진 여진구 대표를 통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름부음이 흘러들어갔고 더 많은 방언이 나타났다. 여진구 대표는 자신이 회사를 운영하면서 성령님의 역사를 제한하였던 것을 회개하고 기름부으심을 널리 흘려보낼 것임을 공개적으로 선포했다. 그랬더니 규장출판사의 전 직원과 자매회사인 갓피플닷컴(www.Godpeople.com)의 모든 직원들에게도 그를 통하여 기름부음이 전파되어 방언을 받았다. 

참으로 놀라운 방언의 도미노이다. 이런 방식이라면 전 지구에 성령세례와 방언이 가득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사도운동 직전 단계인 빈야드 운동과 그 이전의 근본 뿌리인 '늦은비운동'의 핵심적인 특징이었다. 늦은비운동이 1949년 미국 오순절 교회의 제 23회 총회에서 비성경적인 운동으로 규정되어 거부당했던 이유 중의 하나가 안수나 인위적인 방법으로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전달하는 행위, 즉 임파테이션을 실행하였기 때문이다.

방언 현상은 늦은비운동을 계승한 빈야드운동에서도 수없이 나타났다. 존 윔버의 교회에서 임파테이션 현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계기가 되었던 1979년 어머니날 저녁 예배에서 가장 대표적인 현상이 방언이었다. 다음은 그 날 밤의 상황에 대해 존 윔버가 남긴 글의 일부이다. 

“사람들이 땅바닥에 쓰러졌습니다. 방언을 믿지 않던 사람들이 큰 소리로 방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설교가가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기도를 해 주면 기도를 받은 사람에게 성령이 임해서 즉시 넘어졌습니다.”  (행크 해너그라프, <빈야드와 가짜 신사도의 부흥운동>, p. 359)

그리고 1994년 1월 로드니 하워드 브라운에게서 기름부음을 전수받은 랜디 클락이 토론토공항교회에 부흥강사로 초청받아 집회를 할때도 가장 많이 나타난 현상은 주체하지 못하는 웃음과 방언이었다. 그 교회의 어떤 직원에게는 이후 수일 동안 오직 방언으로만 말하게 되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로드니 하워드 브라운에게서 기름부음을 전수 받은 어떤 여성은 무려 여섯 시간 동안 바닥에 누워서 꼼짝할 수 없었고, 영어도 말하지 못하고 오직 방언만 말하게 되는 괴이한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일은 그 당시 빈야드 운동이 한창 일 때에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신사도운동의 임파테이션에 대한 주장

더욱 놀라운 사실은 손기철 장로가 바로 이러한 빈야드 운동의 기름부음의 임파테이션 사상을 그의 책에 기술하여 사람들에게 전파한다는 것이다.

“기름 부으심은 다른 사람에게 ‘전이’(impartation, 임파테이션)되기까지 합니다. 내가 기름 부으심이 넘치는 목사님에게서 안수기도를 받을 때, 나에게 기름부으심이 흘러 들어왔습니다. 이와 동일하게,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름 부으심을 흘려보내는 기도를 하면 성령님의 능력이 전달되고, 그 기도를 받은 사람도 나와 같은 사역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단 기름 부으심이 무조건 전이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기름 부으심을 흘려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믿음과 마음의 상태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손기철, <고맙습니다 성령님>, p. 186)

“나는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많은 분들에게 흘려보냈습니다. 나로부터 기름 부으심이 전이된 월요치유집회 팀원들도 나와 동일한 치유의 은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집회에 오셔서 임파테이션 기도를 받은 받으신 여러 목사님과 평신도들까지 동일한 능력을 가지고 사역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손기철, <고맙습니다 성령님>, p. 187)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직접적으로 사람의 의도를 따라 성령의 능력과 성령의 은사가 전이되는 현상은 절대로 성경적인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이미 많은 연구자들의 수고를 통하여 이러한 현상이 힌두교의 쿤달리니 현상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쿤달리니 각성을 일찍 경험하여 신통력을 가진 힌두교의 선생인 구루(Guru)들이 다른 수련자들의 이마에 손을 대는 등의 행위를 할 때에 지금 신사도 운동가들이 일으키는 일들이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신사도 운동가들은 그것을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라고 왜곡하였고, 또한 임파테이션이라고 하는 성경에 없는 이론으로 포장하였다.    
 

영의 정체를 정확하게 드러내야 한다?

손기철 장로는 여러 면에서 신사도운동의 대부 피터 와그너의 영향을 깊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피터 와그너는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먼저 영적도해(spiritual mapping) 작업을 충실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한다. 영적도해란 영적인 통찰력을 가지고서 그 도시를 지배하는 영토귀신(territory spirits)의 정체를 분석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지역의 실제 지도위에 분석된 영토귀신들의 성향과 분포도를 표기하여, 마치 군사작전을 수립하듯 기도와 영적전쟁의 전략을 수립하여 사탄을 몰아낼 수 있다고 한다. 피터 와그너는 재래식 전쟁에서 정밀성 없는 포탄을 대량으로 쏘는 것처럼 기도하지 말고 미군의 최첨단 무기와 같은 기도를 해야 한다고 한다. 무작정 기도하지 말고 그 지역을 지배하는 사탄의 정체와 특징을 분석하고서 마치 그것들을 도려내는 정교한 외과수술을 시행하듯이 귀신들의 정체를 정확하게 드러내면서 기도할 때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러한 기도를 '정밀폭격기도(smart bomb pryer)'라고 부른다.

손기철 장로의 책에도 이러한 사상이 기술되어 있다. 그는 치유사역을 행할 때에 질병을 일으키는 귀신의 정체를 정확하게 드러내면서 기도해야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우울의 영에 붙들려 있을 때는 아무리 ‘예수의 이름으로 슬픔의 영 나와!’ 하고 말해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그것이 우울의 영임을 알려주시면서 ‘예수의 이름으로 우울의 영 나와!’ 하고 선포했을 때, 그 악한 영이 바로 튀어 나가게 됩니다. 그만큼 치유 사역에서 영분별의 은사는 매우 중요합니다.” (손기철, <고맙습니다 성령님>, pp. 165-66)

그러나 기도에 대한 이러한 이론은 전혀 성경적인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기도에 대하여 심각한 오해와 변질을 불러오는 그릇된 주장이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고 우리는 온전케 하시기 위해 내어주신 은혜의 통로이다. 기도 응답의 은총은 우리의 기도의 내용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에 기초한다. 우리가 어떻게 기도를 진행하는지에 관한 기술과 요령이 응답을 좌우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기도를 심히 변질시키려는 일종의 장난이다. 우리가 견지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중언부언하거나, 사람을 의식하는 위선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합당한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를 시작하기 전부터 우리의 모든 상황과 형편을 다 아신다.

“멀리서도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시 139:2).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마 10:30).     

괴롭히는 영의 정체와 성향을 정확하게 꼬집지 못하고 대략 거명하면서 나가라고 명령하면 크게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손기철 장로의 가르침을 성경적인 내용이 아니다. 만일 이러한 일을 실제로 시행하였고, 그렇게 귀신이 나갔다면 그것은 기도에 대한 지금과 비성경적인 사상을 퍼뜨려서 복음을 변질시키려는 사탄의 장난이었을 것이다. 
 

선포하는 기도가 더욱 유익하다?

손기철 장로의 사상은 신사도운동의 대표 신학자 피터 와그너와 많은 유사성을 보인다. 피터 와그너는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도록 구하는 일반적인 간구기도보다 하나님이 뜻하시는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의 권세로서 선포하는 기도가 영적전투에서 더욱 큰 능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피터 와그너의 선포기도 이론은 하나님의 계시의 기관이었던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의 완성으로 인해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음을 선포하고, 하나님 나라의 표적인 “사도적 권능”(고후 12:12)을 행하였던 것에 기초하고 있다. 즉 그러한 일을 했던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동일한 사도들이 지금 다시 등장했다고 믿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그의 선포기도는 단순선포가 아니라 “사도적 선포”(apostolic decree) 이다.

손기철 장로의 책 <고맙습니다 성령님>에도 이러한 선포기도 사상이 기술되어 있다. 그는 성도들이 선포기도를 몰라서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선포기도에 관하여 손기철 장로와 피터 와그너의 차이는 “사도적”(apostolic), 또는 “사도”(apostle)라는 단어의 유무이다. 피터 와그너는 사도적인 선포라고하고, 손기철 장로는 그냥 선포라고 한다. 손기철 장로는 선포기도를 해야 할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면서 우리가 해야 할 선포기도의 구체적인 예를 보여주었다.

“우리가 가는 곳곳마다 하나님나라를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나라가 도래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입술로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입술로 선포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나라가 도래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가 도래해야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나라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나라의 법을 사용할 때(말씀을 선포할 때)그 자국민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나라의 백성인데도 그 나라의 백성된 혜택을 받지 못하고 그냥 힘겹게 살아가야하겠습니까?” (손기철, <고맙습니다 성령님>. p. 128)

손기철 장로의 이와 같은 선포기도 사상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조금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대한민국의 국민이거나 미국의 시민이라 할지라도 나라의 법규와 윤리와 사회의 상식을 준수하는 성숙한 시민이 되지 않으면 아무 복지혜택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다. 혜택은 고사하고 국가로부터 제재를 당하여 감옥에 갇힐 수도 있다.  

하나님나라의 질서와 원리도 동일하다. 입으로 선포한다고 해서 그대로 된다면 믿음이 혀에 달렸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전인격적인 반응의 문제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고향을 떠났고,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아들을 주실 것이라는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기대했고, 100세에 얻은 독자를 말씀대로 죽이려고 칼을 집어 들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아브라함의 전인격적인 반응과 행동을 보시고 그에게 복을 주셨다.

그러나 손기철 장로의 선포기도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 믿음은 혀끝으로 굴리는 장난감과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저 소원하는 내용을 예수의 이름을 빌어 입으로 내뱉으면 그대로 된다는 가르침이다. 선포기도라는 그럴싸한 이론이 우리에게 이와 같은 심각한 진리의 왜곡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다.

물론 하나님은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임하였음을 선포하게 하셨다. 죽은 자를 살리고, 장님의 눈을 뜨게하고, 앉은뱅이를 고치는 등의 사도적 권능을 행하게 하심으로 하나님나라가 지상에 도래하였음을 능력있게 선포하게 하셨다. 사도 바울도 자신에게 그와 같은 사명이 주어졌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herald)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딤후 1:11).

중요한 사실은 지금 우리는 사도들이 사도적 권능을 행하면서 하나님나라의 임하심을 선포하였던 것처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는 사도들이 행했던 그러한 권능이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하나님나라의 임하심을 선포하는 우리의 방식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전도하여 사람들이 믿고 순종하게 만드는 것이 곧 하나님나라의 확장이며 선포이다.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면서 입으로 “될지어다!”라고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손기철 장로의 선포기도는 세상으로부터 기독교가 조롱받게 만드는 말장난일 뿐이다.

하나님나라를 선포하는 진정한 방법은 우리 각자가 신실하게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어 하나님나라가 우리의 인격과 삶에서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선포이지, 말로 “찌어다!”라고 한다하여 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근사하게 외쳐도 진실로 믿고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아무 응답이 없고, 하나님나라에 속한 자로서 누릴 수 있는 혜택도 없다. 이러한 진리를 바르게 가르치지 않고, 단지 하나님나라의 능력이 우리 각자에게 나타나도록 말로 선포하지 않기 때문에 능력을 경험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복음을 왜곡시키는 나쁜 일이다. 예수의 이름을 빌어서 바라는 내용을 선포하면 응답이 더욱 크게 나타난다는 주장은 기도의 원리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노라! 보혈로 인해 내가 죄 사함을 받았음을 선포하노라! 내가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에게 나쁜 영양을 준 영, 감정, 생각들은 나의 영, 혼, 육에서 완전히 떠나갈지어다! 떠나갈지어다!” (손기철, <고맙습니다 성령님>, p. 121)

손기철 장로는 이렇게 구체적인 선포기도의 방법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일종의 주술이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아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권세와 능력을 나에게 적용시켜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하나님 외에 누가 그리스도의 보혈의 효력을 조정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우리가 우리의 몸과 영혼에 그리스도의 보혈을 덮을 수 있겠는가? 손기철 장로는 선포기도라는 개념을 동원하면서 두 가지 죄를 범하고 있다. 하나는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 노릇하게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를 사이비 종교의 주문으로 변질시키는 것이다. 

우리 자신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 영(evil spirit)과 감정과 생각이 떠나가라고 선포하는 것도 옳지 않다. 왜냐하면 살아서 활동하는 우리 자신들의 인격성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곳은 우리의 인격과 이성이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 자신들이 싸우고 훈련하여 이기기를 구해야 할 일이다. 손기철 장로의 말은 혼탁한 안개가 바람에 밀려왔다 다시 바람에 쓸려 사라지는 것처럼, 오직 귀신이나 다른 것으로 인해 못된 감정과 나쁜 생각이 외부에서 들어왔다가 선포하는 기도에 밀려 사라지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그릇된 가르침이다.

한국 교회의 개혁주의 신학자인 서철원 교수는 손기철 장로의 선포기도에 대한 내용을 읽고 다음과 소감을 메일로 보냈다.   

“손기철 장로의 선포기도는 좀 괴이한 내용입니다. 사도들도 편지 끝에 '은혜와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여러분에게 있을 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도적 특권으로 구약 제사장들이 레위축복을 했던 것처럼 했을 뿐입니다. 그 내용은 있을찌어다! 라고 한 것은 우리말 번역 상 그러하고, 본문대로 번역하면 '은혜와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여러분에게'입니다. 이 사도적 축복은 민수기 6:24-26에 근거하여 그렇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복을 빌면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에 의거해서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예배 마칠 때 사도적 축복이나 레위 제사장의 축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사도들이 했던 것처럼 선포식으로 해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우리의 기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시작하여 그 이름의 권세로 우리의 사정과 간구를 아뢰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했기 때문이지 우리의 기도의 형식 때문에 응답받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사도적 선포의 방식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사정과 간구를 하나님께 아뢰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명령하여 하나님으로 시행하시라고 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을 시종정도로 여기는 기도의 방식이어서 불경건하고 참람한 일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그런 명령적 선포의 형식의 기도로 하나님께 응답을 받는다는 생각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발상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선포식의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겠어요?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는 기도이지요. 우리의 기도는 간구이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어서 선한 역사를 이루어주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나라가 선포하지 않으니 임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생각입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도 몰라서 하는 소리이지요. 하나님의 나라는 주 예수께서 피 흘리셔서 백성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출하여 자기의 백성으로 삼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전파하고 전도하므로 믿는 자들이 생겨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찌어다!' 식으로 선포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생각은 사람의 노력과 능력으로 강제로 하나님의 나라를 끌어오겠다는 발상일 뿐입니다. 한동안 하나님 나라의 연구가 많아져서 풀러 신학교의 조지 래드(George Ladd) 가 하나님의 나라를 통치로 가르쳐서 그것이 널리 퍼져있는데 그런 사고의 연장에서 이런 주장이 나온 것 같습니다. 근자의 연구결과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의 통치라고 치더라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다고 선포하면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을 얼마나 무시하고서 하는 유치한 생각일 뿐입니다.

또 선포하여 나쁜 생각 악한 감정등을 소리쳐서 물러가라고 하면 물러난다는 것도 어처구니 없는 유치한 생각일 뿐입니다. 그런 것으로는 일시적인 심리적인 효과를 가질 수는 있다고 하겠지요. 우리가 나쁜 생각 악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기도하여 그런 생각들을 주께서 다 제하여 주시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 나쁜 감정들이 물러갈찌어다 하면 물러난다고 하는 것은 참 유치한 생각입니다. 그런 생각을 중단하고 주 예수를 믿는다는 믿음고백을 반복하면 그런 생각에서 놓여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냥 물러나라고 해서 물러나는 일이 어찌 일어나겠어요?” (서철원)

이렇게 비성경적인 내용이 많은 책을 성도들이 안심하고 읽도록 많은 분들이 추천서를 썼다. 그 중에서도 조용기 목사와 이동원 목사도 추천서를 써서 이 책을 미화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조용기 목사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 책을 추천하였다.

“전형적인 과학자로서 이성과 의지로 하나님을 섬겨오던 저자가 성령님께 붙들려 그 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된 과정을 담은 이 책은 성령님의 지혜와 사랑과 능력을 알게 하는 데 매우 고무적입니다. 이 책을 읽는 분마다 성령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동행하는 복된 삶을 체험하며,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증거하는 향기와 빛이 되기를 기원하며 적극 추천합니다.” (조용기)

그리고 이동원 목사께서도 다음과 같이 추천하였다.

“성령론은 세계 교회나 한국 교회가 일치된 견해나 고백을 갖지 못한 영역입니다. 따라서 독자들이 이 책의 내용에 동의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저자를 찾아와 만나주신 성령님의 실재만큼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열린 마음으로 이 책을 여는 분들은 성령님에 대한 흥미진진한 간증을 감동적으로 풀어낸 이야기를 통해 각자가 필요로 하는 성령의 만지심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동원)


<치유와 권능>에도 발견되는 신사도운동의 흔적

손기철 장로의 다른 책 <치유와 권능>에서도 그의 영성과 사상이 형성되는 과정에 신사도운동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나타난다. 한국 교회 속으로 스며든 신사도운동의 위험성을 간파하고 일찍 연구를 시작한 최병규 박사는 그의 논문에서 온누리 교회의 손기철 장로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하였다.

“그 외에도 손 교수는 그의 저서 <치유와 권능>에서 릭 조이너(p. 22, 335), WLI(p.105), 존 윔버로부터 영향 받았던 랜디 클락(Randy Clark)(p. 105), 베니 힌(p.166, 311), 존 아노트(p.208), 존 윔버(p.306), 로드니 하워드 브라운(p.313) 등과 같은 빈야드적이거나 신사도운동적인 사람들의 글을 인용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신사도 운동가들의 술어들 중의 하나인 적그리스도의 영으로서의 '종교의 영' 이야기를 하고 있다.” (최병규)

최병규 박사가 발견한 위의 외국의 신사도 운동가들의 이름은 내가 그간 신사도운동을 연구하면서 자주 듣고 보았던 이름들이다. 이들의 이름과 활동은 신사도운동의 역사가 발전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위에 나오는 이름들이 신사도운동의 역사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어떠한 위치에 있는 이름들인지 간략하게 기술해 보겠다.  

릭 조이너는 <모닝스타저널>(The Morning Star Journal)라는 예언 잡지를 발행하면서 초창기부터 신사도운동을 위해 헌신한 대표적인 신사도운동의 거짓 선지자이고 타드 밴들리 사도 안수식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인물이다. 그는 현재 넘어져 있는 타드 밴틀리를 돕는 멘토이며, 손기철 장로도 그에게서 안수기도(예언기도?)를 받은 적이 있다.

와그너리더십학교(Wagner Leadership Institute, 이하 WLI)는 신사도운동의 핵심이론인 성령의 제 3의 물결 이론을 주창한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신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종의 피터 와그너의 신학연구소이다. 참고로 이 단체의 한국지부인 WLI Korea의 대표는 홍정식 목사이며, WLI Korea의 홈페이지에는 “WLI Korea는 신사도 개혁 운동의 기수로서 새로운 정보와 기름부음의 전수(Impartation)를 통해 한국 교회에 오중 직임과 일터 사역자가 일어나도록 지도자들을 무장시킨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존 윔버는 온 세상이 다 아는 빈야드 운동의 창시자이다. 존 아놋은 “토론토 블레싱”이라고 불리는 빈야드 웃음부흥이 시작된 토론토공항교회의 담임목사였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한국인 2세로서 신사도운동의 사도인 채 안(Che Ahn, 한국명 안재호)에게 기름부음을 전수한 사람이다. 랜디 클락은 1994년에 존 아놋의 토론토공항교회에 부흥강사로 초청되어 웃음부흥운동을 최초로 일으킨 인물이다.

베니 힌은 이전부터 사람들을 쓰러뜨리기를 잘하는 대표적인 사람이고, 존 아놋에게 50여 차례 기도한 적이 있다. 또한 베니 힌은 존  아놋에게 기름부음의 능력을 최초로 선물한 클라우디오 프레이드존에게 기도하여 그에게 거짓 능력을 전수하였다.

로드니 하워드 브라운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쓰러뜨렸고 모든 사람들을 술에 취한 것처럼 만들어 버린 그 시절의 최고의 신사도 운동가였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이상한 영에 취하여 휘청거리게 하자 사람들이 그를 “성령 바텐더”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그가 토론토공항교회의 웃음부흥의 도화선이 된 랜디 클락에게 바로 거짓된 능력의 기름부음을 전수하였다. 

이 모든 내용은 신사도운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다 아는 기본적인 사실들이다. 손기철 장로가 이 모든 인물들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그가 빈야드 거짓 부흥운동의 영성과 사상을 계승한 적자라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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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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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종수 2014-10-06 11:16:23

    와그너,베니힌,윔브,워치만니,슐려,오스틴,조용기,베뢰아 김기동, 이 사람들의 신비적 미혹의 무기는 평신도나 신학하기 전에 체험과 말씀에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사역자 된 자들에게 위협되었고,
    특히 한국의 샤머니즘적 종교성에 적합하여 한국교회 초기부터 줄곧 혼란케 해오지만, 워낙에 감성적인 민족이라 이성적으로 구분지어 가르쳐도 안들어요. 너무 많이 문제가 쌓였으나 힘을 모아 변화를 추구해야 할 줄 믿습니다.http://cafe.daum.net/st888신고 | 삭제

  • 분별 2014-10-07 07:43:55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열거하신 사람들 중, 워치만 니의 어떤 부분이 평신도나 신학을 하기 전의 사람들을 미혹했다는 것인지요?
    예를 들어 말씀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강종수님?신고 | 삭제

  • 강종수 2014-10-07 11:38:55

    신비주의자들이 비슷한 영, 곧 삼분설자들이라는 점이며 워치만 니는 소위 플라톤 철학에 영향을 받은 변조된 신학으로 봅니다. 결국 선험적 종교성에 가장 위험한 감성, 특히 한국인에게는 그런 성향의 가르침에 약하기에 과거 이용도목사의 신비에 도취하던 것처럼 니의 서적을 통해서도 신앙 기초가 잘못된 결과로(강한 경험으로) 바른 신학을 못하게 된다는 점들입니다.신고 | 삭제

  • 분별 2014-10-07 15:29:53

    삼분설을 주장하면 신비주의자라는 논리는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요? 그렇다면 바울이 최초의 신비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워치만 니는 플라톤 철학의 영향을 받아 선험적 종교성을 강조한 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강종수님께서는 그가 주장한 계시에 근거한 체험을 잘못 이해하신 듯 합니다.
    그는 오히려 우리들의 믿음이 감정에 근거하게 될 것을 가장 경계한 사람입니다.
    계시에 근거한 믿음! 이것이야말로 우리 신앙의 기초요, 바른 신학이 아닐까요?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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