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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구 박사, 딤전 2:12-14을 과연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승구  |  wminb@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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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30  23: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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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구 박사(합동신대학대학원 대학교 조직신학)

근자에 목회서신에서 11-12절에 대해서만큼 많이 다루어진 본문이 없을 것이며, 그 모든 논의들의 주장들은 너무 다양해서 과연 이 본문에 대한 역사적으로 바른 읽기가 무엇인지 의심할 정도라고 말하는 마운스는 다른 모든 것을 제쳐 두고 본문을 역사적으로 읽을 때 바울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여성의 사역을 제한시키고 있으며, 그 근거를 창조의 순서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일에 바울이 다른 곳에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여성의 권위 있는 공식적 가르침을 허용한다면 그는 스스로 모순을 범하는 것이거나 우리가 본문인 11-14절을 오해한 것이 된다고 본문에 대한 명확한 역사적 읽기(historical reading of the text)를 제시한다.1)

이 구절과 관련된 중요한 논점은 다음 세 가지일 것이다. 첫째로,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 주관하는 것”(12절)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둘째로, 이 금령은 당시의 문화적 상황에 따른 1세기적 정황에 대한 이야기인가, 아니면 주께서 오실 때까지의 상황 전체를 지배하는 것인가? 셋째로, 이 말씀을 바울의 글로 믿는 지, 아닌 지의 여부. 이 세 가지 논점들을 하나하나 논의해 보기로 하자.
 

1. "가르침“과 ”주관함“의 의미

첫째로,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 주관하는 것”(12절)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먼저 “가르친다”(dida,skein)는 말의 표현 형태는 다른 곳에 사용된 용어들과 비교할 때 가르치는 것은 교회에서의 공식적으로 가르치는 것과 연관된 것이고(딤전 1:3; 3:4; 4:11, 13, 16; 5:17; 6:3; 딤후 2:2, 24; 4:2), 따라서 다른 곳에서 “목사 즉 교사”(엡 4:11)라고 언급된 이들의 사역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이라고 여겨진다. 이런 맥락에서 “가르침”은 성경에 대한 공식적 교리적 가르침을 동반하는 활동이고(딤전 5:17), 가르치는 목사에게 위임된 권세이기 때문이다(엡 4:11).2)

특히 바울이 조금 후에 장로들에 대해서 언급하고(딤전 3:1-17), 그 뒤에는 장로들 가운데서 특히 가르치는 일에 힘쓰는 자들을 언급하고(딤전 5:17) 있는 이 편지 전체의 맥락을 보면 바울이 여기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기독교의 공식적 가르침(formal teaching)인 것이 분명하다.3) 여기서의 가르침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공식적 가르침, 특히 성경을 가르침이다.4)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가르침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행해야 하는 가르침이라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다.5)

그리고 이 본문의 문맥에서는 이 “가르치는”(dida,skein) 것이 가장 앞에서 나와 강조 되고 있으며 (따라서 바울은 여인이 공식적으로 가르치는 것을 강하게 반대하는 것이다), 동시에 “배우는”(manqane,tw) 것과 대조되어 있다.6) 그래서 바울은 여인들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바울이 요구하는 것은 여인들의 지식의 성장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그저 물리적인 침묵만을 요구하던 유대적인 관습과는7) 달리 참으로 “배울”(manqane,tw) 것을 요구하는 기독교적인 정신을 나타내고 있다는 생각도8) 본문의 의미를 깊이 생각한 관찰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바울은 그저 이전의 유대적 관습을 받아들여서 그것을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즉, 바울은 여인들도 자신들의 “기독교적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 배우기 위해서 하나님의 메시지에 집중할 것을 권면하는” 것이다.9) 그래야 그들에게 독특한 방식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여인들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용히”(evn h`suci,a|, in quietness)라고 번역된 말도 물리적인 침묵보다는 “질서 있는 가르침을 받아 변화될만한 태도”(orderly, teachable behavior)를 가질 것을 호소하는 것이 된다.10) 그러므로 “바울은 물리적 침묵을 요구하기 보다는 가르침을 받을 만한 정신을 요구하는 것이다”는 말은11) 이 구절의 의도를 매우 잘 파악하고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은 여인들이 후에 잘 가르치기 위해서 잘 배워야 한다고12) 결코 말하지 않는다.13) 이에 대해서는 “모든 유대인 남자들은 율법을 배우도록 권고 받고 있지만 그 모든 이들이 다 랍비가 되는 것은 안지 않는가?”라는 지적을 하는 더글라스 무의 논의가14) 매우 적절한 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12절의 말씀을 “여인들이 잘 배우기 전까지는 에베소에서 여인들의 가르침을 바울이 금하려고 하였다”는15)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명확히 잘못된 것이다.

또한 바울은 이렇게 조용히 배울 때에 “일절 순종함” 가운데서(evn pa,sh| u`potagh/|, in all submission or in full submission) 종용히 배우라고 말한다(11절). 이 용어(u`potagh/|, submission)는 대개 권위 있는 사람과의 관계 가운데서 요구 되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된 말이다(딛 3:1; 막 12:17; 롬 13:1-7; 벧전 2:13-14; 딛 2:5, 골 3:18, 엡 5:22, 벧전 3:1, 딤전 3:4, 눅 2:51; 딤전 6:1-2, 딛 2:9; 몬 16; 벧전 2:18; 벧전 5:5). 대개는 권위에 복종하거나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것을 말할 때 사용된다.16) 누구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인가? 쉴라이너가 잘 지적하고 있듯이 모든 남자들이 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가르치고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이 맥락에서의 "복종"(u`potagh)은 그저 남자에게 복종하라는 것이 아니고, 가르치는 남자 지도자들(male leaders)과 그들의 가르침에 복종하라는 것이다.17)

그러므로 바울은 여기서 여인들은 잘 배워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여인들이 기독교회 안에서 공식적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없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가르치는 권위 있는 행위, 복음 진리의 선포하고 오류를 반박하는 것은 그 어떤 이든지 배웠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18)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여기서 여인들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공식적으로 가르치는 것을 금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주관하는 것”(auvqentei/n)도 교회 안에서 공식적으로 다스리는 것에 해당하는 말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이라고 여겨진다. 목회서신에서 교회 공동체를 공식적으로 다스리는 행위는 장로들이 행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딤전 3:5; 5:17).19) 물론 여기 사용된 말이 신약성경에서 이곳에서만 나타나는 말이므로20) 그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이 있다.

"아우뗀테오“(αὐθεντέω)라는 이 말이 “주도권을 가지려고 하다”(domineer) 또는 “권위를 찬탈하거나 오용하다”(usurp authority)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이라고 하면서 이 말은 권위를 잘못 사용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려는 분들이 있다.21) 이렇게 보는 분들은 여인들이 정당한 권세를 가지는 것을 이 구절이 금하거나 제한하지 않는다고 논의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이 말을 남자들과 대조하면서 여인들에게 대해서 사용된 그 맥락에서의 의미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용어의 가장 자연스러운 의미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여인들이 남자 위에 공식적으로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다.22)

그런데 어떤 분들은 가르침으로서 남자 위에 있는 지위를 취하는 것이라고 보면서 여인들에게 이런 지위, 즉 ‘가르침으로 위에 있는 지위’를 가지는 것을 금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여 그 앞에 있는 말과 차이가 없는 말로 해석하고 있다.23) 심지어 이 문맥에서 “가르치는” 것과 “주관하는” 것은 중언법(重言法, hendiadys, 즉 한 개념을 전달하기 위해 두 가지 다른 단어를 사용하는 수사법)이라고 주장하면서 여기서 바울은 여인들의 권위 있는 가르침을 금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24)

그러나 여기서 “가르치다”는 말과 “주관하다”는 말이 다섯 단어나 떨어져 있는데, 대개 중언법(hendiadys)의 경우에는 두 단어가 붙어 있을 때로 그렇게 해석될 수 있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25) 더 나아가서 다른 곳에서 여기 나온 “주관하다”와 비슷한 뜻의 말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공식적으로 다스리는 것에 사용된 것을 살펴보면 이 말의 의미가 분명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말하지만, 이는 다른 곳에서 “장로들”이라고 언급된 이들이 하는 사역을 지칭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렇게 보면 이 말씀은 여자가 교회 안에서 공식적인 가르치는 직무인 목사의 역할을 하는 것과 다스리는 직무인 장로의 역할을 하는 것을 금하는 구절이라고 해석되는 것이다. 바울은 여인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을 “내가 허락하지 아니한다”(ouvk evpitre,pw)고 현재 시제로 강하게 말하고 있다.26) 때로 “내가” 라는 말에서 이를 고린도전서 7:25-26과 연관시키면서 이는 바울의 개인적 의견일 뿐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시사하려고 논의하려는 이들이 있으나 마운스가 잘 논의하고 있듯이 바울은 이런 말을 자주 사용하며 아주 절대적 금령을 말할 때도 이런 표현을 하고 있기에27) 고린도전서 7장과 연관시키려는 논의는 그렇게 강하거나 유익한 논의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허락하지 아니한다”고 말하고 있으므로 이것은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이 따를 수도 있고 따르지 않을 수도 있는 의견 제시일 뿐이지 명령은 아니라고 논의하는 사람들이 있으나,28) 그것은 본문의 자연스러운 해석을 왜곡시키는 현학적인 논의일 뿐이지 전체 맥락 속에서 그렇게 해석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허락한다“는 말은 거의 법적 규정에 가까이 있는 권위적 요구를 표현할 수도 있는 말이고, 이것이 랍비들이 무엇을 금하거나 할 때 사용하던 말이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분들도 있다.29)

또한 "허락한다”는 말이 현재 형으로 사용될 때 이 말이 때때로 구체적인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나30) 그것은 문맥이 그런 해석을 요구하는 것이지 이 말의 본래적 의미에 이것이 상황적이라는 함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 말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는 문맥에 근거해서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문맥상 여기 현재 시제로 쓰여진 말은 보편적 규정을 제시하는 것이다.

 

<각주>
1)Mounce, Pastoral Epistles. 117. 이 구절에 대한 그 동안의 해석사를 잘 정리한 것으로 D. Doriani, "Appendix 2: History of the Interpretation of 1 Timothy 2,' in Women in the Church, eds., A, J. Köstenberger, T. R. Schreiner, and H. S. Baldwin (Grand Rapids: Baker, 1995), 215-69를 보라.

2)Lea and Griffin,
1, 2 Timothy, Titus, 99, 100.

3)이 점을 같이 강조하면서 보충하는 논의들로 다음을 보라: Wayne Grudem, "Prophecy - Yes, But Teaching No: Paul's Consistent Advocacy of Women's Participation without Governing Authority," Journal of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30 (1987): 11-23; C. L. Blomberg, "Not Beyond What Is Written: A Review of Aida Spencer's Beyond the Curse: Women Called to Ministry," Criswell Theological Review 2 (1988): 403-21; Lea and Griffin, 1, 2 Timothy, Titus, 99; 그리고 Mounce, Pastoral Epistles. 119, 123, 126.

그러므로 여인들이 비공식적인 상황에서 가르치는 것도 금한다는 것은 본문의 의도에서 벗어 나는 것이다. Cf. Lea and Griffin, 1, 2 Timothy, Titus, 99, n. 32, 104; Moo, "What Does It Mean Not to Teach or to Have Authority over Men? 1 Timothy 2:11-15," 186. 여인들은 젊은 여자들을 가르치도록 명령받고 있고(딛 2:3-4),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함의되어 있고(딤후 1:5, 3:15), 브리스길라는 그녀의 남편 아길라와 함께 아볼로를 사적으로 가르쳤다(행 18:26). 그러므로 바울이 여인들에게 금하는 것은 말씀을 공식적으로 가르치는 목사직인 것이다.

4)Mounce, Pastoral Epistles. 119, 126. 또한 다음도 보라: Moo, "What Does It Mean Not to Teach or to Have Authority over Men? 1 Timothy 2:11-15," 185: “목회서신에서 가르침은 언제나 이와 같이 제한된 의미의 권위 있는 교리적 가르침이다(authoritative doctrinal instruction).”

5)Pace Payne, "The Interpretation of 1 Timothy 2:11-15: A Surrejoinder," in "What does the Scripture Teach about the Ordination of Women," the Committee on Ministerial Standing of the Evangelical Free Church of America, 101-4.

6)
같은 의견을 표하면서 이 점을 강조하는 Moo, "What Does It Mean Not to Teach or to Have Authority over Men? 1 Timothy 2:11-15," 193; Mounce, Pastoral Epistles. 123을 보라.
7)
이런 태도를 가장 보여 주는 “토라를 여인에게 가르치느니 그것을 불태워 버리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을 보라(y. Sot. 3. 19a, 3, cited in Mounce, Pastoral Epistles. 119). 그는 m. Sot 3. 4; b Qid. 29b, 34a, b Sanh. 94b도 언급하고 있다.

8)이 점을 잘 표현하는 Lea and Griffin, 1, 2 Timothy, Titus, 98; Moo, "What Does It Mean Not to Teach or to Have Authority over Men? 1 Timothy 2:11-15,"183; 그리고 Mounce, Pastoral Epistles. 119를 보라.

9)Lea and Griffin, 1, 2 Timothy, Titus, 98.

10)Lea and Griffin, 1, 2 Timothy, Titus, 98, n. 27. 여기서 벧전 3:4과 살후 3:12의 같은 어근을 가진 단어가 사용되고 있음을 잘 지적하고 있다.

11)Lea and Griffin, 1, 2 Timothy, Titus, 98: “Paul was not demanding physical silence but a teachable spirit." 또한 같은 책의 100쪽도 보라.

12)이런 주장은 Aida Besançon Spencer, “Eve at Ephesus: Should Women Be Ordained as Pastors According to the First Letter to Timothy 2: 11-15?” Journal of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17 (1974), 215-22, at 221; idem, Beyond the Curse: Women Called to Ministry (Nashville: Nelson, 1985), 74-80에 나타나고 있다. 스펜서는 “어떤 이가 가르침을 받으면 결국 가르치게 된다”고 주장하는데(Beyond the Curse, 85) 이것도 지나친 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3)이점을 명확히 하며 잘 지적하는 Mounce, Pastoral Epistles. 118, 134을 보라. 그는 바울이 그런 의도를 가졌다면 바울은 쉽게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하며, 여기서의 문제가 교육 문제였다면 바울은 교육받지 못한 남자와 여자가 가르치는 것을 모두 금한다고 말하였을 것이라고 잘 논의하고 있다(134).

14)Moo, "What Does It Mean Not to Teach or to Have Authority over Men? 1 Timothy 2:11-15," 184.

15)이 논의는 Spencer, “Eve at Ephesus,” 219; idem, Beyond the Curse, 74, 80, 85에서 주장된 것이다. 당시에 1세기 에베소에서 여인들이 교육을 받지 못했으므로 가르치는 금한 것이라는 다른 논의들로는 다음을 보라: G. Bilezikian, Beyond Sex Roles (Grand Rapids: Baker, 1985), 179; Alan. Padgett, "Wealthy Women at Ephesus: I Timothy 2:8-15 in Social Context," Interpretation 41 (1987): 19-31, at 24; C. S. Keener, Paul, Women, and Wives: Marriage and Ministry in the Letters of Paul (Peabody, MA: Hendrickson, 1992), 107-8, 111-12. 이런 논의들을 잘 반박하는 Mounce, Pastoral Epistles. 122, 134도 보라.

16)이점을 잘 지적하는 Moo, "What Does It Mean Not to Teach or to Have Authority over Men? 1 Timothy 2:11-15," 183; Mounce, Pastoral Epistles. 119를 보라.

17)Thomas R. Schreiner, "An Interpretation of 1 Timothy 2:9-15: A Dialogue with Scholarship," in Women in the Church, eds., A, J. Köstenberger, T. R. Schreiner, and H. S. Baldwin (Grand Rapids: Baker, 1995), 105-54, at 124. 비슷한 견해들로 다음을 보라: M. Dibelius and H. Conzelmann, The Pastoral Epistels, Hermenia (Philadelphia: Fortress, 1972), 47; Douglas J. Moo, "I Timothy 2:11-15: Meaning and Significance," Trinity Journal 1 (1980): 62-83, at 64; idem, "What does It Mean," 183; Padgett, "Wealthy Women at Ephesus," 24; P. W. Barnett, "Wives and Women's Ministry," Evangelical Quarterly 61 (1989): 225-38, at 230; 그리고 G. W. Knight, III, The Pastoral Epistles, NIGTC (Granmd Rapids: Eerdmans, 1992), 139.

18)Mounce, Pastoral Epistles. 118.

19)이점을 잘 지적하는 Moo, "What Does It Mean Not to Teach or to Have Authority over Men? 1 Timothy 2:11-15," 187을 보라.

20)또한 세속 희랍어에서도 이 말은 드물게 나타난다고 한다. Mounce, Pastoral Epistles. 126.

21)그 대표적인 예가 Scholer, "1 Timothy 2:9-15 and the Place of Woman in the Church's Ministry," in Women, Authority and the Bible, 203, 205. 또한 이런 해석을 하는 분들은 다음과 같다: C. K. Barrett, The Pastoral Epistles in the New English Bible, New Century Bible (Oxford: Clarendon, 1963), 55; Philip B. Payne, "Libertarian Women in Ephesus: A Response to Douglas Moo's article 'I Timothy 2:11-15: Meaning and Significance,'" Trinity Journal 2 (1981): 169-97, at 175; C. D. Osburn, "AUvQENTEW (1 Timothy 2:12)," Restoration Quarterly 25 (1982): 1-12; Gordon D. Fee, 1-2 Timothy, Titus, Good News Commentary (San Francisco: Harper & Row, 1984), 73; Spencer, Beyond the Curse 86-87; B. Witherington, Women in the Earliest Churche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8), 121-22; P. H. Towner, The Goal of Our Instruction: The Structure of Theology and Ethics in the Pastoral Epistles (Sheffield: Scheffiels Academic, 1989), 215-16; idem, 1-2 Timothy and Titus,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Downers Grove, IL.: IVP, 1994), 77; T. J. Harris, "Why Did Paul Mention Eve's Deception? A Critique of. P. W. Barnett's Interpretation of 1 Timothy 2," Evangelical Quarterly 62 (1990): 335-52; Keener, Paul, Women, and Wives, 108-9(그런데 그는 증거가 아주 분명하지는 않다고 한다); C. Boomsma, Male and Female, One in Christ: New Testament Teaching on Women in Office (Grand Rapids: Baker, 1993), 71f.; R. C. Kroeger and C. C. Kroeger, I Suffer Not a Woman: Rethinking I Timothy 2:11-15 in the Light of Ancient Evidence (Grand Rapids: Baker, 1992), 84-104; S. Motyer, "Expounding 1 Timothy 2:8-15," Vox Evangelica 24 (1994): 95-96; R. M. Groothuis, Good News for Women: A Biblical Picture of Gender Equality (Grand Rapids: Baker, 1997), 215f. 이런 견해들이 제시된 자세한 과정에 그에 대한 반박 논의의 과정은 Mounce, Pastoral Epistles. 126f.에 자세히 논의되고 있다.

22)이에 대한 좋은 논의로 Moo, "What Does It Mean Not to Teach or to Have Authority over Men? 1 Timothy 2:11-15," 186, 187, 497, n. 18; Mounce, Pastoral Epistles. 128을 보라. 이런 견해에 동의하는 주석가들을 Mounce는 자신의 주석 Pastoral Epistles. 126에서 일일이 열거하고 있다: W. Lock, D. Guthrie, J. N. D. Kelly, D. Moo, J. B. Hueley, A. J. Panning, G. W. Knight, III, R. Y. K. Fung, A. Padgett, L. E. Wilshire, P. W. Barnett, S. H. Gritz, H. S. Baldwin, 그리고 T. R. Schreiner.

23)이런 해석의 원조의 하나는 켈리(J. N. D. Kelly)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여인이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은 남자 위에서 권위를 휘두르는 것과 같다”(For a woman to teach in church ... is tantamount to her wielding authority over a man, i.e. domineering, or laying down the law to him)고 말한다(Kelly, A Commentary on the Pastoral Epistles, 68, 강조점은 필자가 붙인 것임). 그와 비슷하게 가르침과 주관하는 것을 연결시키는 해석으로 다음을 보라: G. W. Knight, III, "ΆΥΘΕΝΤΕΩ in Reference to Women in 1 Tim 2:12," New Testament Studies 30 (1984): 143-57; Barnett, "Wives and Women's Ministry," 233; and Lea and Griffin, 1, 2 Timothy, Titus, 99, 104.

24)J. B. Hurley, Man and Woman in Biblical Perspective (Grand Rapids: Zondervan, 1981), 201; Motyer, "Expounding 1 Timothy 2:8-15," 96, R. L. Saucy,"Women's Prohibition to Teach Men: An Investigation into Its Meaning and Contemporary Application," Journal of Evangelical Theology 37 (1994): 79-97, at 90; Boomsma, Male and Female, One in Chris, 72-73. Moo에 의하면 Payne도 여러 곳에서 이런 입장을 표했다고 한다(Moo, "What Does It Mean Not to Teach or to Have Authority over Men? 1 Timothy 2:11-15," 497, n. 20).

25)이점을 잘 지적하면서 이를 중언법으로 보려는 시도를 잘 논박하고 있는 Mounce, Pastoral Epistles. 128을 보라. 그는 F. Blass, A. Debrunner, and R. W. Funk, A Greek Grammar of the New Testament, section 442 [16]의 정보도 언급하면서 논의하고 있다.

26)이것이 권위 있는 강한 선언이라는 좋은 논의로 Mounce, Pastoral Epistles. 121f.를 보라.

27)이 점을 잘 지적하는 좋은 논의로 Mounce, Pastoral Epistles. 120f.을 보라.

28)이런 주장의 예로 다음을 보라: J. M. Ford, "Biblical Material relevant to the Ordination of Women," Journal of Ecumenical Studies 10 (1973): 669-94, at 682; W. C. Kaiser, Jr., "Paul, Women and the Church," Worldview Challenge (September 1976): 9-12, at, 10; G. R. Osborne, "Hermeneutics and Women in the Church," Journal of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20 (1977): 337-52, at 347; Payne, "Libertarian Women in Ephesus," 170-73; G. N. Redekop, "Let the Women Learn: 1 Timothy 2:8-15 Reconsidered," Studies in Religion 19 (1990): 235-45.

29)C. Spicq가 목회서신에 대한 그의 불어 주석(4판, 1969) I; 379에서 그리한다고 Mounce, Pastoral Epistles. 121에서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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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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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정보 2018-04-04 20:33:28

    그렇다면 과연 여성의 소그룹 리더 사역은 허용되는가? 그것을 두고 "비공식적 교도"라고 말할 수 있나? 이는 공식적 설교와 동일하다고 본다. 교회에 소그룹 가운데 여자 리더가 남자 소속원을 교육함은 옳지 못하다. 또 구역 모임의 장을 여자로 세우고, 그 안에 남성 교인을 두는 일도 옳지 못하다. 여성에게 지속적으로 남자를 가르치는 직분을 주거나, 여성이 남자에게 지도력을 행사하는 지위를 줌은 옳지 못하다. 여성에게는 발언권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여자를 가르치거나 미성년 남성을 가르침은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내가 수많은 교회를 보면서 절실히 깨달은 진리는 이것이다.

    "여자가 나서면 망한다"

    순종과 배움이 여성의 의무이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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