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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믿음 대표 정이철 목사, 그는 누구일까?
고경태  |  ktyhb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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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27  21: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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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미국 앤아버반석장로교회 목사이고 신학신문 <바른믿음> 대표이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예전에 <바른믿음>에서 소개되는 정보에 의하면 전남 여수 출신이고, 1967년생이라고 한다. 필자가 69년생이고 86학번이므로 정이철은 그 보다 조금 빠를 것 같다. 지금도 여수에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에 일 년에 한 번은 한국에 방문하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필자가 어떻게 정이철 목사와 알게 되었는지 궁금해 한다. 사실 나도 그것이 궁금하다. 어떻게 정이철과 연결되었을까? 정이철을 안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정이철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강력하게 전달하기 위해 ‘빨대’, ‘총’ 등 상상하기 어려운 어휘를 구사하면서 사람들에 충격과 패닉을 경험하게 만들었다. 일단 그런 어휘 사용은 독자들을 자기의 목적으로 유도하기 위한 ‘저널니즘’(journalism)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그 정도가 무척 심하다. 아무튼 충격을 주려는 의도는 없었겠지만, 충격은 받았고 기사도 많이 보았을 것이다.

필자와 정이철의 만남의 과정에는 림헌원 목사(기독교진리수호연구협회 대표, 한돌 교회)가 있다. 누가 먼저 했는지, 페이스 북으로 연락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김성로 목사(춘천한마음교회) 사상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연결된 것 같다. 그때는 단순하게 “부활을 강조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훼손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싸움의 최전방에 정이철이 있었다. 정이철 목사, 이창모 목사, 림헌원 목사, 조덕영 박사가 2016년 가을에 ‘기독교 100주년기념관’에서 처음 조우했다.

그리고 김성로 목사의 부활복음 사상에 대해 2017년까지 함께 연구했고, 그해 9월에 합동에서 ‘참여금지’가 결정되었다. 동시에 고신에서도 일단 ‘참여금지’가 발표되면서 동시에 공식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백석, 대신에서도 연구가 시작되었고, 금년 가을 총회에서 공식적인 입장이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일들이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정이철, 림헌원, 이창모 목사를 이단조작자로 몰고 파렴치한 사람들로 매도하는 정체불명의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어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악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필자는 2016년 김세윤 박사의 사상에 대해서 비평했다. 그리고 <현대 칭의론 논쟁>(CLC, 2017)이라는 제목으로 여러 동역자들과 함께 출판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이철은 김성로 목사의 사상 논쟁이 끝난 뒤 박영돈 교수의 신학 사상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 일은 미국 뉴저지 주의 있는 강력한 신사도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벤자민 오 목사가 박영돈 목사의 칭의론 주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자신의 행위구원론을 전파하기 때문에 촉발되었다.

그 무렵에 필자가 2012년에 쓴 논문에 박영돈 교수와 관련된 내용이 있으므로 그 부분만 발췌하여 <바른믿음>에 기고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필자가 정이철과 단짝이라고 알려지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이어서 그 유명한 “빨대”라는 표현이 등장했고, 박영돈 교수님도 무척 노하심을 표현하셨다. 그때 필자가 또 다시 박영돈 교수님의 아쉬운 점을 지적하는 글을 <바른믿음>에 올렸다. 결국 이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정이철과 고경태는 단짝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 총신대학교 사태를 맞아 정이철 목사가 교회갱신협의회(교갱)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시작하였고, 또 다시 두 사람이 단짝이라고 알려지게 되는 요소들이 또 생겨났다. 왜냐하면 서로 전혀 다른 면에서 시작한 일이지만, 포지션이 겹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사람들이 “정이철과 고경태는 단짝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사실 그렇게 수 없이 질타를 당하는 정이철과 친구가 된다는 것이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왜 정이철을 끊어내지 못하고 더 단짝처럼 보이게 될까? 그것은 정이철이 끊임없이 자기의 신학적인 내용을 주장하는 사람이고, 그 주장하는 태도는 과격하지만, 그 내용은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방언 기도’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의 기도’이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정이철 목사가 서울 모 교회에서 방언에 대해서 강의한다고 해서 참석했다. 그때 필자가 보니, 정이철 목사의 프리젠테이션 능력이 탁월했다. 그리고 방언에 대한 그의 주장은 간명했다. 아주사 부흥운동이 가짜이고, 그 가짜에서 발생한 방언도 가짜라는 것이었다. 아주 간단하고 단순했다.

그리고 최초 방언은 기도가 아니라 전도와 관련되었다는 사실도 밝혔다. 3시간 정도의 강의였는데, 간명하게 “아주사 부흥운동은 가짜였다”라는 사실을 선명하게 드러내 주었다. 장로교회 목사나 신학자 중에서 아주사 부흥운동을 성경적인 부흥이라고 보는 기존의 그릇된 신학에 기초하여 가르치는 사람은 앞으로 정이철에게 무참하게 지적을 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이철은 그 분야만큼은 최고의 전문가적 지식을 갖고 있다. 그것은 자기 실존적으로 경험한 것을 근거하기 때문에 너무나 민감한 지식 체계였다.

   
 <바른믿음> 대표 정이철 목사(미국 앤아버 반석장로교회)

 

둘째, 정이철 목사는 단순한 사람이고, 그가 주장하는 내용도 단순하다. 정이철이 주장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와 가치를 조금이라도 훼손하거나 폄훼하지 말라는 것이다. 김성로 목사가 그것을 범하다가 정이철의 2년여의 투쟁으로 인해 결국 참여금지를 받았다. 필자가 보니, 정이철의 2년 동안의 외침은 “십자가를 훼손하는 것은 부당하다”라는 단순한 내용이었다.

박영돈 교수, 김세윤 박사, 최갑종 박사 등의 칭의론에서 십자가 구속의 은혜의 완전성을 훼손되는 점이 발견되었다. 성화를 설명하면서 십자가의 구원의 완전성을 약화시킨 것이다. 그러자 정이철은 아무 행위가 없었던 십자가의 강도가 천국에 간 것을 설명해 보라고 따졌다. 구원에 있어서 행위의 역할을 강조하면, 정이철은 즉각적으로 십자가의 강도의 구원을 들이대고, 아무 행위를 할 수 없는 병상의 중환자가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음의 은혜를 들이댄다.

정이철의 주장은 단순하고 강력하고 빠르다. 그러나 정교하지 못한 부분도 많다. 그런데 그의 빠름과 강력함이 한국 교회를 흔들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마치 사람들이 맹견에게 물리지 않으려고 피하는 것과 같은 현상일 수도 있다. 맹견을 이기려면 그 이상으로 사나워져야 하는데, 정이철처럼 진리에 대해 사나워질 자신이 없는 것이다. 물론 정이철은 자신에게 공격당하는 유명한 교수들과 목회자들이 자신처럼 미치기를 원할 것이다. 또 그렇게 십자가 은혜에 미쳐서 날뛰는 공격자를 사모할 것이다.

셋째, 정이철은 개혁신학을 사랑한다. 개혁신학이 무엇일까? 그것은 십자가의 은혜이고,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으로만 교회가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이철 목사를 어찌하다보니 알게 되었다. 복음의 선한 일을 위해 두 번 동역했다. 지금은 세 번째 일을 기획하고 있다. 정이철 목사를 일 년에 한 번 만나고 있다.

정이철은 수많은 오해를 몰고 다니는 사나이이다. 왜 그런 행동을 할까? 욕먹는 것이 즐거울까? 이러한 일로 이전이 동역자들이 떠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나는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하는 산골목동이다. 나는 그리스도인이고, 그리스도인을 믿고 지지하고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의 선한 일을 하려고 하는데(방향성), 그 방법이 서툴고 거칠기 때문에 그 선한 일을 악하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분명 과정에서 오해와 충격과 피해가 있을지라도 결과는 선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나도 서툴고 어리석지만, 동역자가 있으니 한걸음 발전하며 앞으로 간다. 필자는 친구 관계에서 먼저 결별을 선언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정이철 목사도 나에 대해서 오해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오해했다. 그러나 오해와 이해를 반복하면서 하나씩 알아가지 않겠는가? 주 하나님께서 나갈 길과 피할 길을 주시리라 믿는다. 주변 친구들에게는 나이가 50이니 60이 되면 좀 순(順)하게 되지 않을까? 라고 말했다. 그럴 것이다. 이제 우리 선배님들께 한분 두분 천국으로 가시고 계신다. 다음 세대에 우리가 들어간다.

우리가 그 위치에 섰을 때, 우리의 후배들이 우리를 욕한다면 그 비판을 겸허히 받으면서 후배들과 함께하면서 복된 개혁신학의 도리를 증진해야 할 것이다. 정이철 목사가 후배들을 맹폭한 적은 없다. 후배들이 개혁신학 사상으로 정이철 목사 혹은 각 선배들을 맹폭해주길 기대한다. 그래서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놀라운 역사가 한국교회에 풍성하게 일어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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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리의 검 2018-03-27 22:17:58

    정이철 목사님이 과격하다는 표현은 저도 1분의 목사님 미국에 유학하시다 교회를 맡아 목회 하시던 목사님이 광주에서 목회를 하시는데 과격하다는 표현을 받고 무언가 잘못 이해를 하시지 않는가 생각했습니다

    저의 사견으로는 과격하다는 표현은 정이철 목사님이 이단 복음이나 이단 복음형태에 대해서 말씀이나 교리에에 분명한 한계를 엄격히 구분하여 기고문을 작성하시기 때문에 복음의 말씀의 기준에 대해 중간자적 입장이거나 갈지자 행태를 보이시는 분들 또는 분명한 이단 색채를 갖고 계신분들이.....(고경태 목사님을 포함하는 것은 아닙니다 )

    당신들의 생각보다 정확하고 명확하게 이단의 기준을 말씀과 교리를 가지고 칼로 무우썰듯 정리하시기 때문에 빚어지는 반사적 표현이라고 판단합니다

    물론 정이철 목사님께서 조금은 강한 문구로 표현을 한점도 가미가 되었지 않다고는 부인하지 않음을 첨언드립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소년77 2018-03-27 23:01:57

      "그리고 최초 방언은 기도가 아니라 전도와 관련되었다는 사실도 밝혔다. 3시간 정도의 강의였는데, 간명하게 “아주사 부흥운동은 가짜였다”라는 사실을 선명하게 드러내 주었다. 장로교회 목사나 신학자 중에서 아주사 부흥운동을 성경적인 부흥이라고 보는 기존의 그릇된 신학에 기초하여 가르치는 사람은 앞으로 정이철에게 무참하게 지적을 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이철은 그 분야만큼은 최고의 전문가적 지식을 갖고 있다. 그것은 자기 실존적으로 경험한 것을 근거하기 때문에 너무나 민감한 지식 체계였다."

      이곳에서의 정의철 목사님의 몇몇 글들을 보며 저도 그분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궁금한 것 몇가지 여쭙습니다. 그분이 아주사 부흥운동이 '가짜다'라고 한 데에는...
      "자기 실존적으로 경험한 것을 근거하기 때문에..." 라고 해주셨는데요...
      그 실존적 경험이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인지 말씀해주실수 있는지요?신고 | 수정 | 삭제

      • 그리스도 안에서 2018-03-28 10:40:00

        정이철 목사님은 행위구원의 문제와 성령의 은사 문제를 주된 두 가지 공격무기로 삼아 지금 종횡무진으로 한국 교회의 여러 사역자들을 비판하고 계시는데, 이 비판 활동의 잣대로 사용하는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자체가 아니라 칼빈주의라는 특정 종파의 교리주의라는 데 그 한계가 뚜렷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아래에 이어서 소개하는 글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칭의와 성화, 행위 구원의 문제와 관련해서 개혁주의자라고 알려져 있는 조나단 에드워즈나 존 맥아더 목사님의 주장을 들어보시면 정 목사님의 주장이 얼마나 성경 그 자체의 진리와는 거리가 먼 교리주의, 특정 교파주의에 치우쳐 있는가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정 목사님이 주장하는 교리주의에 따른다면 이분들의 주장도 여지없이 행위구원론에 해당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 믿고 나면 어떤 죄를 지어도 천국은 간다는 식의 구원파적 신앙이 정말 성경에 있는 가르침인지 더 면밀하게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믿고 나서 죄를 짓는 사람,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불순종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믿지 않은 사람일 뿐이라고 강변한다면 한국교회에 정말로 구원받은 사람들은 너무나 적은 극소수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믿고 난 후에 순종과 행함의 열매를 맺는지 여부로 처음 믿음의 진정성을 판단하려고 하는 것 역시 행위 구원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과 실제적으로는 동일한 태도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칭의와 성화의 문제를 특정 교리주의나 교파주의를 떠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있는 그대로 아주 면밀하고 신중하게 살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나 존 맥아더 목사님 같은 분들이 정이철 목사님보다 신학을 덜 연구해서 이런 주장을 하시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깊이 돌아보셨으면 합니다.

        이 문제는 각자의 영원한 구원의 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는 것이어서 자신이 교리적으로 어느 진영에 속하느냐 하는 것은 다 이 세상에서의 생존이나 자기 증명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문제에 속하지 진짜 복음의 진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과는 무관하다고 만큼 영원히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이런 부분에도 지금 비진리라고 믿는 것에 대해 정 목사님이 발휘하시는 과감한 용기와 여러 가지 손해를 각오하면서도 실행해나가시는 정직한 성찰을 성경을 중심으로 스스로에게도 적용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을 자신이 속한 교리주의의 시각에 따라 한 쪽만 보고 다른 한 쪽은 아예 무시하거나 자신의 교리주의적 틀에 꿰맞춰 억지로 해석하면 그 성경의 다른 한 쪽으로 인해 훗날 반드시 탈이 생깁니다. 그러한 편향된 태도에서 비롯된 자기 확신이야말로 이른바 이단들이 흔히들 갖는 태도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타종교인들뿐만 아니라 이단에 속한 이들도 얼마나 진지하게 왜곡되고 편향된 가르침을 열심히 믿고 주장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태도보다는 방향이 더 중요합니다. 그들의 열심의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그 열심의 내용은 훗날 심판의 때에 효력 있는 것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겠지요. 정 목사님이 이 부분에 대해서도 깊이 성찰하신다면 좀더 균형잡힌 비판으로 한국교회를 특정 교파의 교리주의가 아닌 성경 자체가 가르치는 복음적인 진리의 반석 위에 세워나가는 데 더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으시리라 믿습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그리스도 안에서 2018-03-28 10:41:11

          생명에 이르는 좁은 길을 끝까지 달려가지 않으면 영생을 얻지 못한다


          신약성경의 도처에서 그리스도인의 일은 사람들이 힘을 다해 가장 진지하게 감당해야 하는 경주, 씨름, 격투 등과 같은 운동에 비유된다.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선하고 충성된 군사들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사람만이 영생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허공을 치는 것같이 싸우는 사람은 승리의 면류관을 결코 얻지 못한다. 경주하는 모든 사람이 다 끝까지 달리더라도, 오직 한 사람만이 상을 얻는다.

          그리고 경주에서 태만하고 나태한 사람은 상 받고 싶어 하는 자처럼 달리지 않는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진지함과 간절함이 없이는 생명에 이르는 좁은 길을 끝까지 갈 수 없다. 따라서 그 길이 인도하는 영광스러운 생명과 행복의 상태에 도달할 수가 없다. 진지한 노력 없이는 가파르고 높은 시온 산을 올라갈 수 없다. 따라서 시온 산 위에 있는 하늘의 도성에 도달할 수도 없다.

          지속적인 노력 없이는 우리가 헤엄치고 있는 빠른 시냇물을 거슬러 그 상류에 있는 생명수 샘에 도달할 수 없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그 두려운 일들을 피하기 위해, 그리고 인자 앞에 설 자격이 있다고 평가받기 위해 우리는 깨어서 항상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완전한 패배를 피하기 위해, 그리고 마귀의 불화살로 완전히 파멸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굳게 서야 한다.

          우리는 상을 얻기 위해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해 좇아가야 한다. 하나님께 신앙을 고백하는 종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데 게을리 하는 것은 공공연한 반역만큼 저주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게으른 종은 악한 종이며,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 하나님의 공공연한 원수들과 함께 거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마 25:26-28). 게으른 자들은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이 아니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히 6:11-12).

          -조나단 에드워즈, <신앙감정론>(부흥과개혁사)신고 | 수정 | 삭제

          • 그리스도 안에서 2018-03-28 10:45:08

            죄를 떠나 거룩한 삶을 사는 성화 없는 구원은 반쪽짜리 구원이다(1)


            1
            예수님은 주님이시다(고전 12:3). 이것은 기독교의 유일하고, 중심적이며, 근본적이고 구별이 되는 신조이다. 또한 참된 그리스도인 모두가 반드시 고백해야 하는 가장 핵심적인 고백이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

            생활 방식과 가치 체계, 언어, 태도로는 주님이신 그리스도께 굴복하기를 완강히 거부하면서도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은 반박할 가치조차 없다. 이런 생각은, 초대 교회 교부들에서 시작해 개신교 종교개혁 시대를 거쳐 그 후 최소한 3세기 반 동안 나온 신뢰할 만한 기독교 교리서나 경건서에서는 찾아볼 수조차 없다.

            현재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주재권 없는 구원 교리가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사실은 현대 복음주의 운동의 천박함과 영적 빈곤을 그대로 드러낸다. 또한 이는 의심할 나위 없이 복음주의 쇠퇴의 주원인 중 하나이다. 복음에서 그리스도의 주재권을 제거하면 반드시 신앙의 핵심이 훼손된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하게 오늘날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2
            현대의 복음 전도 방식이 낳은 가장 유해한 부산물 중 하나는 각 사람의 죄의 실상을 직면하지 못하는 복음이다. 가장 보수적인 교회들조차도 거듭났다고 주장하지만 이방인처럼 사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현대의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의 신앙고백에 절대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도록 길들여져 있다. 수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신뢰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명백하게 다른 삶에 빠져 지낸다. 그럼에도 누구도 감히 그들의 증거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현대 교회는 구원은 단지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일 뿐, 꼭 죄인이 죄의 굴레에서 해방되는 것은 아니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시며 그들을 위해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절반의 진리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며 회개하지 않는 죄인을 영원한 형벌로 벌하신다.

            이런 사실을 언급하지 않거나 감춘다면 완전한 복음 제시라고 할 수 없다. 개인의 죄의 심각성을 설명하고 지적하지 않는 메시지는 문제가 있는 복음이다. 그리고 죄로 물든 삶의 방식을 고치고 죄인의 마음을 변화시키지 않는 '구원'은 어떤 것이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구원이 아니다.

            구원에 관한 한, 죄는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죄가 문제 그 자체이다. 사실상 기독교 메시지의 특징은 죄를 용서하고 정복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다. 복음에 관한 모든 사실 가운데 우리를 사로잡는 죄의 굴레가 깨뜨려졌다는 소식보다 더 놀라운 것은 없다. 이 진리가 기독교 메시지의 심장이요 생명이다. 이것을 배제한 메시지는 예수님이 전한 복음이라고 할 수 없다.

            죄의 극악함을 알아 죄로부터 돌아서기를 갈망하지 않고도 성경의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의 악함을 통감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라고 했다. 바울은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라고 썼다.

            -존 맥아더, <주님 없는 복음>(생명의말씀사)신고 | 수정 | 삭제

            • 그리스도 안에서 2018-03-28 11:09:56

              죄를 떠나 거룩한 삶을 사는 성화 없는 구원은 반쪽짜리 구원이다(2)


              3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전형적인 메시지를 들어보라.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예수님을 당신의 마음에 모셔 들이십시오”, “그리스도를 당신의 삶에 모셔 들이십시오”, “그리스도를 향해 결단하십시오” 등과 같이 죄인들에게 간청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 너무나도 익숙하게 들어온 말이기에 이들 중 어느 하나도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 놀랄 것이다. 이런 것들은 희석된 복음의 산물이다.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이 아니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은 제자도로의 부르심이요 굴복적인 순종으로 그를 따르라는 부르심이었지, 단순히 결신을 하거나 어떤 기도를 하라는 호소가 아니었다. 예수님의 메시지는 사람들을 죄의 속박에서 해방시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위선을 지적하고 정죄했다. 회개하는 죄인에게는 영생과 용서를 제공했지만, 동시에 진정한 의로움 없이 살면서 겉으로만 신앙이 있는 체하는 사람들에게는 꾸지람이었다. 또한 죄인들에게는 죄로부터 돌아서서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하는 경고였다. 어느 모로 보나 기쁜 소식이었지만 결코 ‘쉬운 믿음’(easy-believism)은 아니었다.

              영원한 생명을 전하는 우리 주님의 말씀에는, 구원을 가볍게 여길 유혹에 처한 사람들을 향한 경고가 예외없이 따랐다. 주님은 그를 따르는 데는 치러야 할 대가가 크며, 그 길은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가르치셨다. 또한 그를 주라고 부르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7:13-23 참조).

              오늘날의 복음주의는 대체로 그런 경고를 무시해버린다. 구원 얻는 믿음의 조건에 대한 일반적인 관점이 계속 넓어지며 얕아지고 있다. 설교와 증거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설명이 갈수록 불분명해지고 있다. 오늘날의 복음주의는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는 사람은 누구든 한 번 신앙을 고백했으면 그의 현재 행위가 그리스도께 헌신하는 증거를 보이든 말든 기꺼이 받아들인다.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기도문을 따라하거나 결신서에 서명하거나 초청에 응해 줄을 서거나 기타 다른 경험을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배운다. 그뿐 아니라 자신의 구원을 절대 의심하지 않도록 조건화되어 있다.

              나는 여러 전도훈련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거기서는 ‘개종자’가 자신의 구원을 의심할 경우, 구원에 대한 의심은 무엇이든 사탄이 주는 것이므로 떨쳐야 한다고 말하도록 상담자들을 가르쳤다. 이처럼 자신의 구원을 의심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성에 도전하는 행위라는 그릇된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이 얼마나 그릇된 생각인가? 성경은 우리가 믿음 안에 있는가 자신을 시험해보라고 한다(고후 13:5). 베드로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벧후 1:10)고 했다.

              -존 맥아더, <주님 없는 복음>(생명의말씀사)신고 | 수정 | 삭제

              • 그리스도 안에서 2018-03-28 11:59:17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 1:19).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딤전 2:15).

                "젊은 과부는 올리지 말지니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 가고자 함이니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정죄를 받느니라. 또 그들은 게으름을 익혀 집집으로 돌아 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 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이미 사탄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딤전 5:11-15).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히 3:12-19).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히 4:1)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눅 12:4-5).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히 6:5-8).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벧후 2:20-22).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롬 11:20-22).신고 | 수정 | 삭제

                • 그리스도 안에서 2018-03-28 12:11:3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롬 2:4-11).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8-10).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17-20).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35).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유 1:5).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12).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공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곧 그 안에서 죽으리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정의와 공의로 행하여 저당물을 도로 주며 강탈한 물건을 돌려 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지켜 행하여 죄악을 범하지 아니하면 그가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지라. 그가 본래 범한 모든 죄가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반드시 살리라. 이는 정의와 공의를 행하였음이라 하라"(겔 33:13-16).신고 | 수정 | 삭제

                  • lordmyhelp 2018-03-29 00:02:11

                    정이철 목사가 진정 하나님의 사역자라면 아래 셋을 증명해야 합니다.

                    1. 바른 교리를 가르치는가
                    2. 비진리에 대해 타협을 거부하는가
                    3. 성경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 모든 이로부터 버림받았는가.

                    난 정이철 목사에 관해 잘 모릅니다.
                    1번, 2번은 정이철 목사의 "바른믿음" 사역 속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그러면 과연 정 목사가 진짜인가...
                    관문이 하나 더 남았는데, 아직 저는 이 관문을 통과한 목회자를 단 한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즉, 기득권을 버린 목사를 아주 드물게 본 적은 있지만
                    기득권과 이권으로부터 자유로운 목사라도 처자식을 이기는 경우를 단한번도 못 봤습니다.

                    정 목사님과도 교제하길 원합니다. 그가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걸 버리는 사람이길 기대합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lordmyhelp 2018-03-29 00:03:56

                      정이철 목사가 진정 하나님의 사역자라면 아래 셋을 증명해야 합니다.

                      1. 바른 교리를 가르치는가
                      2. 비진리에 대해 타협을 거부하는가
                      3. 성경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 모든 이로부터 버림받았는가.

                      난 정이철 목사에 관해 잘 모릅니다.
                      1번, 2번은 정이철 목사의 "바른믿음" 사역 속에서 이미 증명됐습니다.
                      그러면 과연 정 목사가 진짜인가...
                      관문이 하나 더 남았는데, 아직 저는 이 관문을 통과한 목회자를 단 한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즉, 기득권을 버린 목사를 아주 드물게 본 적은 있지만
                      기득권과 이권으로부터 자유로운 목사라도 처자식을 이기는 경우를 단한번도 못 봤습니다.

                      정 목사님과도 교제하길 원합니다. 그가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걸 버리는 사람이길 기대합니다.신고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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