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 강사 이용규 선교사의 거짓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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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강사 이용규 선교사의 거짓영성
  • 정이철
  • 승인 2014.10.03 12:2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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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복음주의의 정체가 궁금하다

코스타의 대표적인 강사 이용규 선교사의 영성을 살펴보자. 영성이라는 말은 결코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사용할 수 있는 좋은 말이 아니다. 성경이 수 없이 말하는 ‘경건’보다는 '영성'이 더 수준이 높은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신앙과 삶을 ‘경건’이라는 말로 표현할 뿐이다. 단 한 번이라도 성도의 신앙을 ‘영성’이라고 표현하는 성경의 말씀이 있다면 누구라도 말해보라! 기독교의 경건이란 오직 십자가를 통해 의롭다 함을 얻고,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성령을 모시고 살며, 성경의 뜻을 배우고 실천하고, 성경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과정이다.

▲ http://www.mlounge.co.kr/woman/view.php?idx=536에서 캡쳐

경건한 사람과 영성있는 사람

경건 외에 성도가 추구해야 또 다른 어떤 비밀스러운 것은 없다. 영성이란 성령을 가장하는 귀신과 교제하면서 영적으로 자라가는 것이다. 사탄의 거짓 세계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증진되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영의 세계에 대한 지식과 노하우가 쌓여지는 것이 영성이다. 영성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경건을 말하지 않고, 별스럽게 영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가르침과 사상을 종합하여 판단하여 나오는 결과이다. 

어떤 사람이 경건한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영성있는 사람일까? 이것을 판단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성경의 가르침을 확실히 붙드는 사람에게는 쉬운 일이다. 어떤 사람이 성경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자세히 보니 성경의 사상과는 무관한 이상한 영적인 세계를 경험하고 있으면, 그 사람은 경건한 사람이 아니고 영성있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긴다고는 스스로 확신하고 자랑하나, 자세히 보니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와는 다른 수상한 예수(고후 11:4)를 따르고 전파하고 있으면 영성있는 사람이지 경건한 사람이 아니다. 다시 요약하자면, 성경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상한 영적세계에 대한 지식과 노하우를 체득하는 사람은 영성있는 사람이다. 결코 경건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용규 선교사의 영성’이라는 말은 이용규 선교사가 영적으로 불건전하다는 것을 전제하는 말이다. 성경이 말하는 영적세계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상한 영적인 세계에 대한 체험과 노하우가 깊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최고의 학력, 많은 베스트 셀러들, 코스타를 대표하는 강사, 유명한 교회들이 부르는 인기 강사 ... 이런 분을 감히 무고하는 것일까? 독자들이 이 글을 끝까지 읽으면서 냉정하게 판단하기 바란다.
 

이상한 사람들과 교제하는 이용규

오래전에 이용규 선교사의 「내려놓음」을 사서 보았다. 이용규 선교사는 자신이 미국 유학시절에 코스타 집회에 참석하였고, 그래서 신앙의 변화를 얻었고, 장래의 비젼을 찾았다고 했다. 그 책을 읽는 동안 저자인 이용규 선교사에게서 특별히 나쁘다 할 내용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괴이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유명한 방언전도사 김우현 씨가 쓴「하늘의 언어」라는 책을 읽다가 이용규 선교사의 신앙을 의심하게 되었다. 괴이한 옹알거림을 방언이라고 미화하는 김우현 씨의 그 책 속에 이용규 선교사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했다.

이용규 선교사의 아내가 몽골 선교지의 힘든 생활로 말미암아 우울증을 겪었던 모양이다. 치유받기 위해 성령의 은사가 풍성하게 나타나는 어떤 목사와 함께 기도하였다고 했다. 그러다가 이용규 선교사의 아내의 턱이 흉측하게 돌아가는 기현상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용규 선교사는 당황하여 성령에 대해 조예가 깊은 그 목사에게 물었다.

“쓰지 않던 턱 근육이 돌아가야만 하나님이 직접 ... 그의 입을 사용하셔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 목사는 이용규 선교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나님이 직접 이용규 선교사의 아내에게 모국어로 말씀을 주시려고 입술과 혀를 돌리고 비틀면서 준비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단순히 방언을 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시려고 턱 근육을 강제로 움직이시며 준비시키셨다는 것이다. 이용규 선교사에게 이렇게 가르친 성령에 대해 조예가 깊은 그 목사는 과연 누구일까?

그러나 어떤 신자가 하나님에 의해 자신의 모국어를 억지로 구사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기계적으로 만들어 내는 방언을 성경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하나님이 정말 그렇게 하신다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그 사람의 모국어로 직접 말씀하여 주신다는 것이다. 이게 지금 가능한 일일까? 이런 신기하고 놀라운 세계가 있다는 말을 그때 처음 들었다. 이런 것이 바로 영성이다. 성경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런 영적인 세계를 경험하는 것은 성경이 수 없이 말하는 경건이 아니고, 성경과는 무관한 다른 영적인 세계를 경험하는 영성이다. 

 

성경의 방언의 특징

경건한 사람들이 이해하고 추구해야 할 성경의 방언은 배운 적이 없는 이방인의 실제 외국어였다. 한 번도 배우지 않았는데, 외국어가 성령에 의해 자유로이 구사되는 현상이 성경의 방언이었다. 성경의 그 방언은 다음의 세 가지 중대한 기능을 수행했다.

1)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았다며 교만했던 불신 유대인들에게 충격을 주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만들었다(행 2:12-13,37-41, 고전 21-22)).
2)이방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자녀로 받으시고 성령을 부어주셨음을 확증하였다. 외국어 방언으로 인해 이방인 선교가 공식화되었고, 유대인과 이방인이 차별없이 신약의 교회를 구성하게 되었다(행 44-47).
3)신약교회의 신앙의 근거이고 원리인 성경이 완성되고, 교회 속에서 자리잡기 전까지 방언은 통역과 함께 임시적이고 보충적인 계시의 기능을 수행하였다(고전 14:27-30).

이와 대조되는 이 시대의 영성있는 사람들이 추구하고 주장하는 방언은 지구상의 그 어떤 나라에서도 사용되지 않는 신비의 언어, 영계의 언어라는 옹알거리는 현상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런 방언은 성경에서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시대의 방언이라는 현상은 영성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성경대로 경건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결코 이러한 방언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여러 기록을 종합하여 볼 때, 초대교회의 방언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비교적 일찍 종결되었다고 보여진다. 초대교회를 이끌었던 신실한 지도자들, 이레네우스, 오리겐, 어거스틴 등이 남긴 기록 속에 방언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 내용은 이전에 유대인 신자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제공했던 이방인들의 실제 외국어 방언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다는 내용이다. 그들의 교회에서 성경의 그 방언이 실제로 나타나고 활용되었다는 내용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그리고 더욱 더 우리를 두렵고 놀라게 만드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이후 교회사에서 성경의 방언과 비슷한 옹알거리는 현상을 가지고 나온 사람들은 모두 이단 계열이었다는 것이다. 최초로 옹알거리는 현상을 들고 나온 몬타누스는 결국 이단으로 정죄되었고, 그 이후 비슷한 현상을 가지고 나온 사람들은 모두 정통교회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현대의 옹알거리는 현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아주사 거짓부흥의 주도자들의 신앙 배경을 조사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그들의 신앙의 배경은 이단이었다.

1900년대 초에 옹알거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찰스 펄햄과 윌리엄 세이모어는 자신들의 거짓 방언현상이 사도행전 2장의 외국어 방언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외국 여행이 많아지면서 그것이 전혀 외국어가 아니라는 사실이 것이 밝혀지자, 다시 그것이 ‘영의 언어’라고 또 다시 둔갑되었다. 지금 도처에 만연한 옹알거림 현상이 이렇게 이상하게 등장하여 교회 속에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용규 선교사는 이상한 방언하면서 아내의 턱이 돌아가는 현상을 방언전도사 김우현 씨에게도 상담하였다. 이용규 선교사의 아내에게서 나타난 현상에 대해서 김우현 씨는 이렇게 말했다. 턱이 돌아가는 현상은 방언을 통해서 경험하게 되는 특별한 ‘경지’라고 했다. 

"그것은 일종의 ‘입 스트레칭’(mouth stretching)이며 그 또한 방언기도를 통해서 들어가게 되는 어떤 경지라고 했다.”(김우현)

김우현 씨의 책을 보니 하나님이 자신에게도 그 와 동일한 현상을 주셨다고 했다. 하나님이 직접 자신의 턱을 벌리고, 오므리고, 입술을 좌우로 돌리고 비틀면서 다음과 같은 한국말을 만들어 내셨다고 한다. 이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주시면서 사랑을 넘치도록 표현하신 하나님이 굳이 더듬거리면서 이렇게 김우현 씨에게 말씀하실 필요가 있었을까?

“우 .. 현 ..아! 내 .. 아 .. 들! 사랑한다!”

▲ '하늘의 언어'의 저자 김우현

이용규 선교사는 김우현 씨와 같은 영성가와 교제하고 있고, 그 자신도 그런 영성의 세계로 이미 상당히 들어갔다고 보여진다. 이용규 선교사가 서울대를 나오고, 하바드에서 유학하여 학위을 얻었으나, 모두 내려놓고 몽골로 갔다기에 나는 정말 대단하게 보았다. 베스트셀러를 줄줄이 써내는 것을 보고서 그의 재능이 부러웠다. 코스타의 대표적인 강사까지 되어 여러 곳으로 강의를 다니자, 매우 대단해 보였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용규 선교사가 이런 물에서 놀고 있었다. 



 

신사도 운동 영성에도 물든 이용규

이용규 선교사는 자신이 운영하는 웹 싸이트 ‘천국노마드’에다 자주 글을 남긴다. 그곳에 있는 이용규 선교사가 남긴 어떤 글을 보게되었다. 이용규 선교사의 딸 서연이가 몽골에서 많이 아팠던 모양이다. 이용규 선교사는 자신의 딸에게 생긴 병이 일본을 지배하는 악한 영과의 싸움으로 말미암아 나타났다고 이해하였다. 그래서 그 영과 싸우는 영적전쟁의 기도를 시작했다. 일본을 지배하는 악한 영이 어떤 일로 심술이 나서 이용규 선교사의 딸에게 질병을 주면서 괴롭힌다고 생각한 것이다.

“기도 중에 서연이의 병이 일본의 영과의 영적 전쟁에서 기인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머리에 스치면서 영적 전쟁을 하는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이용규)

이용규 선교사가 딸에게 생겨난 병의 원인을 이렇게 진단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그 얼마 전에 일본인 목사 다키모또 준이 몽골을 방문하였고, 이용규 선교사의 집에서 머물렀기 때문이다. 이용규 선교사는 다키모또 준으로부터 영적전쟁과 그것을 수행하는 특별한 중보기도에 대해서 듣고 배우고 실습하였던 것 같다. 다음은 이용규 선교사가 남긴 글 속에 있는 말이다. 

“타키모토 준 목사님이 일본의 영적인 세력 배후에 몽골의 영적인 것과의 묶임이 있다는 깨달음 가운데 몽골에 와서, 우리와 같이 중요한 영적 포인트들을 다니면서 기도하기 위해 우리 집에서 묶어 가시는 일이 있었습니다. 서연이의 병은 그 후 며칠 있다가 발병했습니다.”(이용규)

이용규 선교사는 다키모또 준 목사가 몽골로 와서 중보기도로 일본을 지배하는 악한 영을 건드렸기 때문에 딸에게서 그 병이 나타났다고 보았다. 평안하게 있는 사탄을 건드리는 영적전쟁을 벌였기 때문에 사탄이 자신의 딸을 그렇게 공격했다는 것이다. 과연 이런 것이 성경이 말하는 영적전쟁일까? 다키모또 준과 이용규 선교사가 정말 가만있는 마귀를 건드리는 영적전쟁을 일으켰다면, 왜 하나님은 그 귀한 일 한 사람에게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막아주지 않았을까?

영적전쟁이 이렇게 귀신과의 병정놀이 방식으로 전개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지 않는다. 기독교인의 영적전쟁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따르고, 성경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바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퇴마사처럼 행동하면서 영적전쟁을 운운하는 것은 교정되어야 할 사이비 기독교인들의 그릇된 신앙이다. 영적전쟁의 핵심은 죄인이 죄악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사탄의 노예되게 만드는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바른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죄의 권세를 깨뜨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해야만 하니, 영적전쟁을 위해서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얻어야만 가능해진다. 교회에 30년을 다니고, 심지어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어도, 삶에서 이것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영적전쟁이 조금도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용규 선교사가 말하는 저런 영적전쟁이 신사도 운동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신사도 운동이라는 것도 기독교의 옷을 잘 갖추어 입고는 있다. 그러나 그 실상은 무당들의 영적인 세계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신사도 운동에 물든 사람들의 상태를 '영성', '000의 영성'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다키모또 준이라는 일본인 목사가 몽골에 와서 큰 무당들이 하는 영적인 일을 했을 때, 이용규 선교사도 따라다니면서 함께 했었던 모양이다. 이용규 선교사가 남긴 글을 보니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타키모토 준 목사님이 일본의 영적인 세력 배후에 몽골의 영적인 것과의 묶임이 있다는 깨달음 가운데 몽골에 와서 우리와 같이 중요한 영적 포인트들을 다니면서 기도하기 위해 우리 집에서 묶어가시는 일이 있었습니다.”(이용규)

이것이 신사도 운동가들의 장기인 ‘땅 밟기기도’(player walk)이다.  그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악신을 권세있는 기도로 제압한다는 신사도 운동의 ‘영적전쟁’이다. 영성있는 큰 무당들이 그럴듯하게 기독교의 옷을 입고서 벌이는 푸닥거리이다. 아무데나 다니면서 이러는 것이 아니고, 사탄이 지배력을 행사하는데 활용되는 중요한 영적인 거점들을 골라내어 권세있는 영험한 기도로 찍어 누르듯이 기도한다. 이용규 선교사의 글을 보니 자신이 다키모또 준과 함께 ‘중요한 영적 포인트’를 찾아다니면서 땅을 밟으면서 사탄을 대적하는 중보기도를 했다고 암시되어 있다. 

이런 일을 잘했던 또 다른 사람은 김종필 목사이다. 어떤 사람이 신사도 운동가 김종필 목사를 따라서 중동에 가서 고대의 여리고 유적지를 돌면서 중보기도할 때, 놀라운 영적인 기운이 임하는 것을 느꼈다고 간증하는 것을 읽었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날까? 미혹하는 악신이 자기에게 미혹되는 자기 백성들을 보고서 즐거워서 더 힘껏 장난하기 때문이다. 이후 그 사람에게서 귀신의 미혹의 힘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규 선교를 향해 박수치고, 기도해 주고, 돈까지 주어 선교사로 보냈더니 현지에서 이런 무당의 영성을 연마하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

내 생각에는 이용규 선교사와 그 가족들을 한국으로 불러 다시 가르치고, 교정시키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용규 선교사가 쓴 글 속에 아내가 이미 우울증을 겪고 있고, 이상한 영성가들을 찾아다니면서 이상한 세계를 체험하고 있다고 이용규 선교사도 이미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용규 선교사 주변에 바르게 진단하고 바르게 가르칠 수 있는 바른믿음을 가진 지도자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런 부류들인것 같다.  
 

다키모또 준은 어떤 사람일까?

몽골에 가서 이용규 선교사와 함께 사탄의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사탄의 세력을 제압하는 땅 밟기 기도를 하고, 이용규 선교사의 집에 머물면서 교제를 나눈 일본 사람 다키모또 준 목사는 어떤 사람일까? 그는 이미 상당히 이름이 알려진 신사도 운동가이다. 그가 신사도 운동가라는 것은 그에게 목사라는 타이틀이 있기는 하나, 그를 통해 일하는 영이 성령이 아니고 귀신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자면, 다키모또 준은 거짓된 능력을 행하는 거짓 영성의 사람인 것이다. 그가 수년 전에 한국에 와서 인도했던 부흥회를 촬영한 실제 영상을 인터넷에서 보았다. 그가 하는 행태를 보니, 전형적인 신사도 운동가들의 기름부음 집회의 모습이다. 당시 그는 양재동 온누리교회의 청년부와 함께 전남의 어떤 지역에 선교하러가서 이런 부흥회를 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다키모또 준이 사람들에게 손을 얹어서 넘어뜨리는 것은 신사도 운동가들이 기름부음을 전한다는 행태이다. 사람들에게서 괴이한 옹알거리는 소리가 난무하는 것도 참으로 불건전하고, 특히 신사도 운동가들의 집회에서 흔하게 보이는 모습이다.

다키모또 준 목사와 관련된 또 다른 사실이 기억난다. 방언전도사 김우현이 일본 나고야에 있는 신시로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했었던 적이 있다. 집회 후 벽에 금가루가 붙어있는 것을 보았다고 김우현 씨가 간증한 적이 있었다. 금가루 현상은 이제 많이 수그러들었으나, 신사도 운동이 처음 등장할 때 우매한 사람들을 미혹했던 마귀의 대표적인 수작이었다. 이런 일과 관련된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거짓 영과 함께 일하면서 미혹하는 거짓의 사람들임이 드러났다. 김우현 씨가 금가루를 보았던 일본 나고야의 그 교회가 바로 다키모또 준이 담임하는 신사도 운동교회이다.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김우현 씨는 다음과 같이 간증했다.

“그런데 신시로에서 그것이 처음 열릴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기도가 끝나고 우리는 더 놀라게 되었다. 집회 장소 정면 벽에 금가루가 가득 뿌려져 있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환호와 그것을 만지려는 이들로 강단이 가득 채워졌다. 이것은 아버지의 이벤트였다.”

이용규 선교사는 이런 사람들과 교제한다. 금가루를 만드는 괴이한 방언전도사 김우현, 심각한 신사도 운동가이고 금가루까지 나타나는 나고야의 신시로 교회의 목사 다키모또 준, 이용규 선교사의 아내가 괴이한 방언현상을 보이면서 턱이 돌아가게 만들고, 하나님이 한국말 방언으로 직접 말씀 주시기 위해 준비시키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어떤 성령의 은사에 대해 조예가 깊은 목사 ... 이용규 선교사는 이런 사람들과 영적인 코드가 일치한다. 어디 이들 뿐이겠는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괴이한 영적 거장들이 이용규 선교사 주변에 있는지 누가 다 알겠는가?
 

코스타 복음주의의 정체가 궁금하다

이용규 선교사는 서울대를 졸업하였고, 하바드에서 학위를 했다는 대단한 이력으로 인해, 또한 그런 세상의 자랑거리를 아낌없이 내려놓고 선교지로 갔다고 알려진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인정과 존경을 넘치도록 받으면서 불현듯 등장하였다. 글 솜씨가 좋아 쓰기만하면 베스트셀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껌뻑하였다. 젊은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힘이 있고, 특히 교회의 여성 청중들에게 효과적으로 어필하는 재능을 가진 세련된 평신도 지성인의 이미지를 탄탄하게 구축하였다. 그리하여 코스타의 대표적인 인기 강사까지 되었다.

▲ 이용규 선교사의 저서들

그런데 그에게 이런 심각한 불건전성이 넘치고 있다. 이제 한국 교회의 유명한 인물이 된 이용규 선교사에게 존재하는 사이비 성을 그냥 묵인해주어야 하는 것인가? 영적으로는 불건전한 영성가이지만 사람은 선하고 좋으니, 그가 한국 교회의 신앙과 영혼들에 계속 악영향을 미치도록 활동하게 그냥 두어야 하는 것인가? 다른 코스타 유명 강사들처럼, 돈 문제, 여자 문제, 표절문제, 폭력 ... 등의 하자를 만들지 않았으니, 여전히 코스타를 빛내는 대표적인 강사라고 칭찬받도록 두어야 할까? 

그렇다면 코스타는 영혼이 혼미하고, 사이비 복음주의에 빠졌어도 도덕과 윤리에서 문제가 없고, 책을 잘 쓰고 학력이 좋으면 누구나 강사로 성공할 수 있는 곳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한국 교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코스타가 그런 혼미한 복음주의를 추구하는 곳이되어도 우리 모두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일까? 코스타의 강사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대적하는 사탄의 고도난도의 전략을 분쇄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복음의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사탄이 교회를 미혹하고 더럽히는데 쓰여지는 사람을 높여주는 괴상한 복음주의를 추구하는 곳으로 코스타가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용규는 내려놓은 후 무엇을 붙잡았나?

이용규 선교사는 한국 교회에 ‘내려놓음’이라는 유행어를 선물하였다. 그러나 이용규 선교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세상의 자랑거리를 내려놓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충실한 도구되기 위해 세상 것을 내려놓았다면, 그는 영원히 칭찬만을 받아야 할 것이다. 감히 누가 지금 그에게 이런 시비를 걸수 있을까?

세상에는 내려놓은 사람들이 많다. 스님되기 위해 내려놓은 사람, 무당되어야 하는 운명 때문에 울며 내려놓은 사람, 부모의 뜻을 따르기 위해 내려놓은 사람, 애인을 붙잡기 위해 내려놓은 사람, 자기의 꿈을 위해 직장과 연봉을 위해 내려놓은 사람 ... 내려놓으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이용규 선교사의 책 <내려놓음>, <더 내려놓음> 등이 박수갈채를 받았던 것은 서울대를 나오고 하바드에서 박사를 받았으면서도,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내려놓고 몽골로 갔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것 내려놓았던 이용규 선교사가 새로 붙잡은 것이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었을까? (이 글에서 이용규 선교사의 영성의 위험성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꼭 다음에 이어지는 글을 읽기를 바란다.)  

 

정이철 / 앤아버 반석장로교회 목사
          '바른믿음'(good-faith.net)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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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수 2014-10-06 11:28:38
내려놓음, 자기 비움, 겸손의 아이콘같은 미화의 언어가 얼마나 일하시는 하나님 앞에 불교식 무아로 무책임한 철학을 유도하며 얼마나 인간의 책임에 대한 무감각을 부추기며, 그리 살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을 부인하려는지 우리는 조심스럽게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여깁니다. 무소유니 어쩌니 하던 법정스님, 부산에 아는 지인으로부터 들은 바, 돈 많은 첩이 돈대주고 잘 놀다가 간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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