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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웅 목사의 사상은 예장 합동의 개혁신학이 아니다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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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08  14:5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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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순웅 목사(동탄 주다산교회 담임)

이전의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권순웅 목사의 ‘스파크 셀’이라는 것은 이전에 구역이라고 부르던 것을 이름만 바꾼 형태의 단순 셀 목회가 아니다. 시기적으로 보나 여러 면에서 볼 때, 신자들에게 성령체험을 주는 특별한 셀 목회, 즉 신사도 운동권에서 일어난 성령운동과 결부된 셀 목회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사도직을 주장하는 사상을 가져야만 신사도 운동가라고 보아야 한다고 한다. 그것은 신사도 운동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신사도 운동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은 거짓 성령을 체험시키는 것이다. 신사도 운동권에서 개발된 대부분의 셀 목회 운동이 신자들에게 인위적인 방법으로 성령을 체험시켜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성령의 역사를 유도하기 위해 비성경적인 안수기도를 하는 것도 그들의 특징이다.

권순웅 목사는 스파크 셀 목회와 관련된 '치유축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정직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만일 장차 예장 합동의 총회장 될 사람이 이와 같은 신사도 운동 성향의 목회를 한다는 것은 합동 교단을 위해서도 안될 일이다.

그래서 권순웅 목사가 신학적으로 어떠한 분인지 좀 더 알아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이전에 말했던 것처럼, 주다산교회 홈페이지에서 접한 권순웅 목사의 한 강의의 내용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 영상은 인터넷 유투브 공간에서도 볼 수 있다. 2018년 기독교 방송국 <C채널>에서 방영된 권순웅 목사의 '성장과 부흥의 불꽃이 되라'(44회) 강의 영상에서 문제점이 발견된 부분을 발췌하였다. 


레마의 말씀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 하신 말씀을 하면서) ‘주님의 레마의 음성’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그 말씀을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잘 모르지만 그 말씀을 의지해서 간다는 것입니다 ... 그런데 그 장면이 있기 바로 전에 뭐가 있습니까? 역시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지 못하던 밤이었습니다. 다시 주님이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 이것이 ‘주님의 레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때도 말씀을 의지하여서 그물을 던졌더니 153마리의 고기를 잡았습니다. 153마리, 카운트를 했습니다. 베드로는 성격이 급한 사람인데 카운트를 했다는 것은 ..”(권순웅 목사, 주다신교회)

권순웅 목사는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레마의 말씀’이라고 했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고 하지 않고, 주님의 ‘레마의 음성’이었다고 말하였다. 여기에는 특별한 의미와 위험한 사상이 담겨있다. ‘레마의 말씀’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경의 일반적인 말씀을 ‘로고스의 말씀’이라고 한다. 로고스의 말씀들 중에서 특별히 성령께서 개인에게 주시어 특별하게 깨달아지는 말씀을 '레마의 말씀'이라고 한다.

이런 사상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정확무오한 성경 66권의 모든 말씀의 권위와 가치를 훼손하는 그릇된 신학이다. 그들은 로고스의 말씀은 우리에게 큰 의미가 없고, 레마의 말씀으로 다가와야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 우리의 마음이 변하고 삶이 변한다고 한다. 심지어 레마의 말씀으로 다가오지 않으면 성경의 로고스의 말씀은 그냥 책속에 있는 말씀일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로고스’와 ‘레마’를 꼭 그렇게 달리 이해해아 할 분명한 근거는 없다. 이러한 주장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이 모든 내용이 우리의 신앙의 삶의 절대적, 최종적 규범이고 기준이라는 개혁신학의 핵심을 부정하고 훼손한다. 비록 지금 당장 우리가 그 의미를 다 깨닫지 못할지라도 성경의 모든 말씀은 항상 읽고 배우고 실천하기를 힘써야 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레마의 말씀’ 사상은 우리 합동 교단에서 매우 경계하는 칼 바르트의 신학 사상과 같다. 바르트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하지 않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고 했다. 바르트는 성경 66권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 중의 어느 부분이 개인적으로 특별하게 다가오고 깨달아질 때,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고 했다. 칼 바르트의 사상과 레마의 말씀 사상이 동일하다. 이미 레마 사상은 한국의 여러 교단에서 이단성있는 것으로 규정하여 경계하고 있다.


성령의 불 체험

“베드로가 능력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뭘 통과했습니까? 마가의 다락방을 통과한 것입니다. 성령을 체험하고 성령의 불을 받은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임한 말씀을 달랐습니다. 베드로와 말씀의 관계는 달라졌습니다. 사도행전 2장 14절을 보니까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말씀의 저자는 성령님이십니다. 말씀을 선포하게 하신 분도 성령님이십니다.

베드로는 성령충만하지 못했고 성령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성령을 경험하고 나서 그의 말씀은 달라졌습니다. 그의 말씀에 얼마나 큰 능력이 있었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성경의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 제사장같이 말씀이 희귀한 원인은 우리가 성령충만하지 못하여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의 달기가 오묘하고 그 말씀에 은혜가 있고 그 말씀을 증거하고자 불붙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성령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똑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이제 성령충만하고 성령의 불을 받고 나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증거하게 된 것입니다.”(권순웅 목사)

권순영 목사의 성령 이해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마가의 다락방은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구속을 지상의 신자들에게 적용하기 위해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처음 강림하신 곳이었다. 성령강림은 지속되지 않는 단회적 사건이므로, 이후 마가의 다락방에서 벌어진 특이한 성령감림 현상은 어디에서도 재현되지 않았다. 권순웅 목사는 다음과 같이 베드로가 성령을 체험하고 성령의 불을 받았다고 했다. 

“성령을 체험하고 성령의 불을 받은 것입니다”(권순웅 목사)

“그런데 베드로가 성령을 경험하고 나서 그의 말씀은 달라졌습니다.”(권순웅 목사)

베드로는 성령의 불을 받은 적이 없다. 베드로가 신약 교회가 세워지도록 쓰임받은 사도였으므로 승천하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을 하나님 백성에게 적용하시려고 성령이 불의 모습으로 지상에 강림하시는 역사적인 현장을 경험하는 큰 복을 누렸을 뿐이다. 동시에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 받은 베드로 자신에게도 구약부터 예언된 말씀들을 따라 성령이 속으로 임재하셨다.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성령을 받으므로 베드로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 이것이 성령세례이다. 성령세례를 받음과 함께 그 이전과 달리 베드로가 능력있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베드로가 오순절 이전에는 성령과 무관했던 것은 아니다. 이전에도 같은 성령이 함께하시어 베드로에게 귀신을 쫓는 능력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 역사하셨던 성령은 그리스도의 구속이 이루어지기 전에 역사하시었던 구약의 성령이다. 구약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와 부활 승천 이후 신자들 속으로 영구하게 임하시는 성령(성령세례)를 예언하셨다.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렘 32:40)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겔 11:19,20)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7)

그러므로 권순웅 목사처럼 성도들에게 ‘성령이 불’이 임하였다고 가르치면 안 된는 것이다. 성령의 불이라는 것은 기독교에 없다. 이렇게 성령을 신비적으로 가르치면, 듣는 신자들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성령에 대해 오해하게 된다. 권순웅 목사는 베드로가 '성령의 불'을 받아 담대해졌다고 했고, “성령을 체험했다”, “성령을 경험했다”고 했다. 그러나 성령을 체험(경험)했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성령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 씻음 받은 베드로에게 영구하게 임하신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더 정확하게는 베드로가 그때 "성령으로 세례 받았다"라고 말해야 한다.

개혁신학에서 성령세례는 신자의 일생에서 단 한번이다. 그러나 오순적 신학, 신사도 운동 신학에서는 성령세례 또는 성령의 기름부음이 여러 번이다. 그래서 오순절 신학, 신사도 운동 신학에서는 ‘성령체험’, ‘성령경험’이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또한 오순절 신학, 신사도 운동 신학에서는 처음 성령이 임하신 후에 다시 오시는 성령이 특별한 능력과 권능을 준다고 하면서 ‘성령의 불’(강력한 기름부음)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신자에게 두 번째로 임하는 ‘성령의 불’이라는 것은 기독교에 없다. 이단들의 집회에서 악한 영들이 장난하여 사람이 떼굴떼굴 구르고, 발작하고, 거짓된 방언 현상 등의 신체적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성령의 불’이라는 말은 그것을 미화하는데 쓰여지는 악날한 말이다.


하늘 문이 열림

“베드로의 기도에 대해 같이 살펴 보겠니다. Prayer! 기도! 베드로는 마가의 다락방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 13절을 보니까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와 안드레와 요한 빌립 ... 베드로! 마가의 다락방에서 주님이 명령하신대로 ‘성령이 네게 임하지면 권능을 받고’ ... 그 성령님을 사모하고 성령을 충만하게 받는 마가의 다락방의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베드로의 기도를 보면 거룩한 습관의 기도입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니까 ‘베드로가 제 9시 기도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새.’ 베드로가 늘 기도하러 가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간에 기도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기도의 습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은 성도이지만, 우리 가운데 죄악의 습관을 인해서 잘못된 습관이 있습니다. 이 습관은 떠나가야 합니다. 다니엘을 보더라도 하루에 세 번 습관적으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습관을 따라서 기도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누가 있었습니까? 미문가에 앉은뱅이가 앉아있었던 것입니다. 앉은뱅이를 보고 베드로가 ‘내게 은과 금은 없지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 그 선포함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하늘이 열리는 기도입니다. 사도행전 10장 9절을 보니까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때 그때 베드로가 기도히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6시더라’ 늘 기도할 때 하나님이 기적을 나타내시고 이방인의 문도 여시고 선교의 문도 여신 것입니다.”(권순웅 목사)

권순웅 목사는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신약 교회의 정식 멤버로 확정하시려고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주시어 이방인 고넬료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신 특별계시 사건을 오늘 날 우리들의 기도 생활과 연결시켰다. 베드로가 기도하다가 하늘문이 열리고 환상을 보게 된 것처럼, 우리도 기도하면 그와 같이 하늘문이 열리고 계시를 경험하게 되는 것처럼 가르쳤다.

만일 권순웅 목사가 베드로에게 나타난 특별계시 사건이 성경 66권과 함께 완성 종결되었으므로 오늘 우리가 아무리 기도해도 계시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개혁신학의 가르침에 동의하고 있었다면, 이런 강의를 신자들에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일반 신자들이 권순웅 목사의 강의를 들을 때, 무슨 생각을할까? 베드로처럼 열심히 기도하면 베드로가 본 것 같은 환상과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여기지 않겠는가? 그러나 베드로는 특별계시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고, 특별계시를 받으면서 교회를 세우고 성경을 기록한 사도였다. 베드로와 같은 특별한 사람들을 통해 성경 66권이 완성되었고, 이후에는 그 어떤 계시나, 계시가 임하는데 사용되었던 이전의 특별한 하나님의 수단들, 즉 환상, 꿈, 현현, 예언, 방언, 방언통역 등이 이제는 중지되었다. 이 사실을 장로교 신앙의 표준문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여러 시대에 여러 방식들로 자신을 계시(啓示)하시고 그의 교회에게 그의 뜻을 선언하기를 기뻐하셨고, 후에는 그 진리를 더 잘 보존하고 전파하시기 위해, 또 육신의 죄성과 사탄과 세상의 악의(惡意)에 대항하여 교회를 더 굳게 세우시고 위로하시기 위해 그 계시하신 내용을 온전하게 기록되게 하셨다. 이것이 성경을 가장 필요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그의 뜻을 계시하시던 이전의 방식들이 지금 중지되었기 때문이다.”(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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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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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리의검 2018-03-08 19:17:14

    성령체험 기름부음 성경 말씀에도 없는 참 어이도 없는 단어의 생산입니다 저희는 에수님께서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하는 사도들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뽕나무더러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할것이요라고 사도들에게 말씀하심은

    사도들이 믿음이 많고 적게 있다는 말씀의 의도 즉 믿음이 적고 많은 분량(分量)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자세가 문제라는 예수님 말씀의 뜻이며 이는 하나님이 주신 명령을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으시도록 종의 도리만을 행하되 나는 종으로써 자랑할것이 없으며 하나님의 처분에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종의 자세와 조건이 없기 때문에

    믿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심을 상고해볼때 오늘 정이철 목사님의 글 본문에 등장하시는 분들 얼마나 믿음이 없으면 성령님을 체험한다고 성령님의 기름부음을 받는다고 저 난리인지 이해하지 못하겟다

    거룩하신 성령님을 자기들이 오라고 한다고 하여 오게 만들고 이로 인해 축사 병고침 방언기도 에언기도를 내려 붙여주는 능력자로 앞세우는것은 전능자 창조주 하나님을 자기들의 마음먹은대로 우물럭 주물럭 거리는 사단의 제일 더럽고 값싼 대리인들이라는것을 만천하에 알리는것일진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백성들만이 그들을 능력자로 앞세운다 하나님의 진노가 어디로 향할지 독자들은 상상할 수 있으리라!신고 | 삭제

    • 길과진리 2018-03-11 12:45:54

      기사 잘 읽었습니다. 현대주의 신학이 정말 문제가 있긴 하군요.
      그런데 왜 목사님의 글에는 모교총신을 향한 사랑과 기도가 안 보이죠? 하나님을 믿으신다면, 하나님께 이런 총신을 구해달라고 기도하며, 기사를 읽는 성도들에게도 기도부탁을 해야되는 것 아닙니까? 혹시 목사님의 하나님은 신학교 하나 지켜내지 못하실 분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성도를 걱정하게만 만들게 하는 글보다 분별은 하되,사랑과 기도의 글을 쓰시길 당부드립니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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