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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총신에서 교수를 했었나 보다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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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06  12: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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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성수 목사(대구동신교회 담임, 전 총신대신대원 교수)

권성수 목사의 설교 영상 한 편을 골라 현재 중간까지를 듣고 요약했다. 오늘은 초반 5분 분량의 설교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권성수 목사의 설교를 잠시 들으니, 이런 분이 어찌 총신의 교수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무나 총신 교수가 되고, 일단 총신에서 자리를 잡으면 제 멋대로 가르치도 아무런 문제가 안되는 모양이다.

예장 고신에서는 권성수 목사처럼 오순절 성령세례를 가르쳤던 한 교수가 이미 이단판정을 받고 강단을 떠났다. 그때 고신 교수회는 오순절 성령세례 주장을 이단 사상으로 규정하는 신학 문건을 작성하여 지금도 고신의 유효한 신앙 지침이 되고 있다. 그러나 총신에서는 그 보다 훨씬 심각한 권성수 교수에 대해 아무런 제재를 취하지 않았다. 권성수 목사의 설교를 녹취한 내용을 읽어보고, 그 아래의 실제 영상을 들어보기 바란다!   

“예수 믿으면 교회가 되지요. 교회 안으로 들어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령세례는 예수 믿다가 그 후 어느 포인트에, 어느 시점에 받는 것 ... 그것이 성령세례입니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성령세례는 예수 믿고 한참 있다가, 어떤 사람은 예수 믿는 것과 동시에 받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예수 믿다가 어느 순간에 받는 것인데, 여기 사도행전 1장 1-4절에 나온 대로 ‘첫 충만’이예요. 따라해 보세요! ‘첫 충만!’

충만하게 받기 때문에 자기가 압니다. 받았으니까 자기가 압니다. ‘제가 그런 것 받았는데요!’하고 압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저 사람이 성령세례받았구나!’하고 압니다. 첫 충만! 세례이기 때문에, 시작하는 지점이기 때문에 세례를 베푸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성령의 충만을 받았는데, 처음으로 받았다! 처음 ... 계속 받을 수 있지만 처음으로 받았다고 해서 ‘성령세례’라고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자기가 압니다. 자기가 받았다는 것을 압니다. 120명의 제자들이 폭풍 속에서 들었잖아요. 들었지요! 또 불붙은 혀가 자기 위에 내려오는 것을 보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오순절에 모였던 그 많은 사람들이 폭풍 소리를 들었고, 120명이 15개국의 배우지 않은 언어로 말하는 것을 들었지 않습니까? 안다니까요? 알았어요! 자기가 알고 남들이 알아요.

이게 성령세례 ‘첫 충만입니다. 이 첫 충만, 즉 분명히 알 수 있는 의식적 체험 ...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모르겠다!’하는 것이 아니고 알 수 있는 의식적 체험 ... ‘저 받았는데요!’라고 할 수 있는, 방언이 나타나기도 하고 예언이 나타나기도 하고, 또 다른 현상이 있기도 하고, 꼭 방언하는 것이 아니고 꼭 예언하는 것이 아니고 ... 어쨌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의식적인 체험, 이것이 성령세례라고 묘사되어 있어요.

복음서에 나온 성령세례인데, 예수를 믿을 때 받으면 (성령의) 제1 축복인데, 예수 믿고 그 후에 받는 제2의, 두 번째로 받는 축복이라는 말이지요. 예수 믿을 때 받는 성령세례는 제1 축복 예수 믿고 나서 받는 성령세례는 제2 축복인데, 저것은 제2 축복입니다. 성령세례가 제2 축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 성령을 보았을 때, 성령세례가 복음서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고 바울서신에 나와요.”(권성수 목사, 대구 동신교회)


 

권성수 목사의 이 설교를 들으니 순복음 교단 목사와 다를 것이 없는 목사들이 합동에 많은 이유를 이제 알게 되었다. 총신 신대원의 가장 인기 있는 교수였던 권성수 목사가 합동의 신학을 망치는 심각한 요소가 농후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도 이전에 권성수 교수의 시원시원한 목소리의 설교에 많은 호감을 가졌었는데, 역시 사람을 겉으로 보지 말고 깊이 알아보야 한다는 사실을 오늘 다시 발견했다.

권성수 교수가 대구동신교회에 부임하여 엄청난 수적 성장을 일으켰다고 미국에까지 소문이 자자하다. 그러나 이런 사상을 가진 목회자를 통하여 일어난 부흥은 결코 성령의 부흥일 수 없다. 또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의 부흥일 소도 없다. 구약 식으로 말하자면 '산당 부흥'이 대구동신교회에서 일어났을 것으로 여겨진다. 불과 약 5분 동안의 설교를 통해 발견되는 권성수 목사의 성령세례에 관한 그릇된 가르침을 요약해 보자!


예수 믿은 후에 오는 성령세례?

성령세례에 관한 권성수 목사의 잘못된 주장은 성령세례 사건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건을 절대적으로 일치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성령세례는 하나님 백성들에게서 죄가 씻어지고 난후 하나님이 친히 자기 백성들 속으로 임재하시어 구약 예루살렘 돌 성전을 대신하는 새로운 성전을 건축하심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성령세례에 대한 가장 정확한 정의이다.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레 26:12)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실 때부터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 가운데 친히 거하시기를 목표하셨다. 그러나 죄 때문에 당장 그리하실 수 없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황소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나오는 대제사장만 직접 만나주시었다. 하나님은 계획하신 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의 죄를 없이하셨다. 깨끗해진 자기 백성들의 속으로 하나님이 친히 임하시어 구약의 돌 성전을 대신하는 새로운 성전을 지으셨다. 이것이 기독교의 성령세례이다. 성령이 우리 속으로 오심으로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 가운데 친히 거하실 것이라는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고후 6:16)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이 떠난 후에 성령이 오시어 제자들 속에 거하심으로 구약의 핵심적인 목표와 예언이 이루어질 것임을 말씀했다.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7)

성령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씻음받은 하나님 백성에게 하나님이 친히 임재하시어 새로운 성전 이루심이다. 하나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아, 믿음을 선물받고,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에게 성령이 친히 임하심이 곧 “성령으로 세례받는다” 또는 “성령세례”라고 하는 사건이다.  이것과 다르게 말하면 이단으로 간다. 구약시대부터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것을 목표하시었다. 그리스도의 피로 죄 씻음 받을 신자에게 일어날 성령세례가 구약 성경에 다음과 같이 예고되었다.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렘 32:40)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겔 11:19,20)

그러므로 예수 믿고 구원받는 사건과 성령으로 세례받는 사건은 절대적으로 동일한 사건이다. 이와 다른 가르침은 그리스도의 구원의 진리를 혼잡하게 만드는 거짓이다. 그러나 권성수 목사는 다음과 같이 그릇되게 설교했다.

“성령세례는 예수 믿다가 그 후 어느 포인트에, 어느 시점에 받는 것 ... 그것이 성령세례입니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성령세례는 예수 믿고 한참 있다가, 어떤 사람은 예수 믿는 것과 동시에 받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예수 믿다가 어느 순간에 받는 것인데 ...”(권성수 목사)

예수 믿고 난 후 어느 시점에 성령세례를 받는다는 권성수 목사의 가르침은 기독교의 핵심진리를 허물고 거짓 영의 장난이 교회에 유입되는 길을 연다는 면에서 매우 심각한 사상이다. 개혁신학을 가르치는 총신의 교수의 설교에서 이런 내용이 나온다는 것은 정말 큰 일이다. 총신의 유명한 교수였던 사람이 버젓하게 이런 내용을 공개적으로 설교한다는 것은 총신과 합동의 신학이 이미 죽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 권성수 교수는 어디서 이런 사이비 사상을 배웠을까? 총신 신대원을 나오고, 개혁신학의 산실이라고 하는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박사를 받아 총신 교수가 된 사람인데, 어디서 이런 물을 먹었을까? 칼빈과 종교개혁자들, 장로교의 표준무서인 웨스트민트서 신앙고백서, 조나단 에드워즈, 찰스 스펄전, 찰스 핫지, B. B 워필드, J. G 메이첸, 리챠드 개핀, 팔머 로벗슨 ... 등 개혁신학을 가르쳐 준 그 어떤 학자들도 성령세례에 대해 권성수 교수처럼 말하지 않는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리챠드 개핀에서도 신약학을 배웠다고 자랑하는 권성수 목사는 참으로 이상하다. 


거짓 성령세례의 출발

예수 믿고 난 후 어느 시점에 성령세례를 처음으로 받거나 새롭게 또 받는다는 주장은 지금으로부터 약 110년 전 미국의 이단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주장되었다. 그 이전에는 그런 주장이 거의 없었고, 있었을지라도 매우 미약했다. 1800년대 말에 성경에 대해 무식한 사이비 부흥사들과 기도원들이 미국에서 많이 생겨났다. 그 중의 다수가 근거없는 종말의 대부흥 이론에 취했고 또한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의 회복을 주장했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강림은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구속을 적용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상에 성령이 강림하시는 사건이었다. 그 일은 역사적으로 단회적인 일이었는데, 그 미국 이단들은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이 시대마다 재현되는 것이 부흥이라고 했다.

그들은 이미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믿는 사람들이었다. 성령세례를 이미 받은 사람들이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체험을 재현해 달라고 열심으로 구하니, 마귀가 꿍짝해주면서 거짓 방언과 거짓 통역, 쓰러짐, 웃음, 영서, 방언찬양, 거짓 예언, 괴상한 불덩어리 체험 등을 던져 주었다. 그 이단들은 그것을 '성령세례', '성령의 불세례'라고 열광했고 이후 권성수 교수가 가르치는 성령세례 사상으로 발전되었다.

그 이단들이 벌였던 일이 '아주사 부흥'(1906년)이라고 각색되었고, 그것의 특징이 오순절 운동(교회) 속으로 계승되었다. 이후의 은사운동, 빈야드 운동, 신사도 운동으로도 계속 이어졌는데, 신사도 운동에서는 성령세례라고 하지 않고 '성령의 기름부음'이라고 바꾸어 말할 뿐이다.

그러나 진정한 기독교의 성령세례의 열매와 흔적은 오직 참된 신앙이다.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변화의 핵심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신앙의 시작이다. 이단들은 이마에 땀이 맺히거나, 등골이 후끈해지는 등의 신체적인 현상이나 신비적인 것들로 성령세례를 이야기하지만, 그런 것들은 거짓이고 매우 위험하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성령세례의 증거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신앙이라고 설명했다.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 15:26)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으니라.”(요 16:14)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자기도 알고 남도 아는 성령세례?

이단들은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이상한 성령세례, 즉 마귀가 임하는 접신을 무지한 영혼들 속으로 유도한다. 거짓 영들이 거짓된 능력을 동반하면서 찾아오는 가증한 현상을 추가적인 성령세례, 또는 '성령의 제2의 축복'이라고 한다. 특히 사단이 거짓 방언, 거짓 예언(점), 괴상한 불덩어리 체험, 쓰러짐, 진동, 발광 등의 신체적 현상 등을 동반하며 사람들을 마음대로 유린하는 가증함을 성령의 더 놀라운 축복이라고 하니, 이런 괴상한 미혹이 또 어디에 있을까? 성령세례가 뜨거운 불로 임하니 자신도 알고 주변의 사람들도 다 알게된다고 한다. 성령의 불을 받아 떼굴떼굴 구르는 '성령의 불세례'라고 속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는다. 놀라운 사실은 이단들이 가르치는 이런 내용들이 권성수 목사의 짧은 설교 영상 속에 다 있다는 것이다.

“예수를 믿을 때 받으면 (성령의) 제1 축복인데, 예수 믿고 그 후에 받는 제2의, 두 번째로 받는 축복이라는 말이지요. 예수 믿을 때 받는 성령세례는 제1 축복 예수 믿고 나서 받는 성령세례는 제2 축복인데, 저것은 제2 축복입니다. 성령세례가 제2 축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권성수 목사)

“충만하게 받기 때문에 자기가 압니다. 받았으니까 자기가 압니다. ‘제가 그런 것 받았는데요!’하고 압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저 사람이 성령세례 받았구나!’하고 압니다.”(권성수 목사)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자기가 압니다. 자기가 받았다는 것을 압니다. 120명의 제자들이 폭풍 속에서 들었잖아요. 들었지요! 또 불붙은 혀가 자기 위에 내려오는 것을 보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오순절에 모였던 그 많은 사람들이 폭풍 소리를 들었고, 120명이 15개국의 배우지 않은 언어로 말하는 것을 들었지 않습니까? 안다니까요? 알았어요! 자기가 알고 남들이 알아요.”(권성수 목사)

권성수 목사의 성령세례 이론이 참으로 심각한 것은 승천하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을 지상의 신자들에게 적용하기 위해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요 14:26) 보내신 성령강림을 지금 현재의 신자들의 성령세례에 적용한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지상에 그리스도를 대신하도록 보내신 성령의 강림은 역사상 단회적인 사건이다. 단 한번 뿐인 오순절 현상을 현재의 신자들의 신앙여정에 그대로 적용하는 권성수 목사의 설교는 참으로 위험하다. 마치 신사도운동의 중보기도 사상(학교)를 운영하는 오정현, 오정호, 송태근 목사 등의 어리석은 사람들이 특별계시를 수납하였던 선지자이고,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인간 중보자였던 모세의 기도를 지금의 신자들에게 가르치면서 그대로 따라서 중보기도하라고 가르치는 것과 다르지 않는 이단적인 제자양육이라고 할 수 있다. 


오순절, 신사도 성령세례

놀라운 사실은 권성수 목사가 성령세례에 대해 설교할 때 사용하는 용어와 개념이 오순절 운동 신학자들과 신사도 운동 신학자들의 그것과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다. 권성수 목사는 성령의 제1 축복(맨 처음의 성령세례)을 ‘첫 충만’이라고 했다. 이것은 이후의 반복적으로 오는 성령세례를 통해 성령충만이 계속 증가된다는 오순절 신학의 성령론의 개념이다. 개혁신학은 처음 믿을 때 임하신 성령의 인격적인 다스림과 통치하심을 성령충만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오순절 신학에서는 물동이에 물이 더 부어져 서서히 물이 차고 넘치는 것 같은 질량적 개념으로 성령충만을 이야기한다. 권성수 목사가 설교한 내용을 직접 읽어보라!

“첫 충만! 세례이기 때문에, 시작하는 지점이기 때문에 세례를 베푸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성령의 충만을 받았는데, 처음으로 받았다! 처음 ... 계속 받을 수 있지만 처음으로 받았다고 해서 ‘성령세례’라고 합니다.”(권성수 목사)

“이게 성령세례 ‘첫 충만입니다. 이 첫 충만, 즉 분명히 알 수 있는 의식적 체험 ...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모르겠다!’하는 것이 아니고 알 수 있는 의식적 체험 ... ‘저 받았는데요!’라고 할 수 있는.”(권성수 목사)

권성수 교수는 맨 처음의 성령세례를 ‘첫 충만’으로 표현하고, 이후에 이어지는 성령세례를 통해 성령이 더 충만해진다고 가르친다. 이것이 오순절 신학자들와 신사도 신학자들의 성령세례 사상이다. 다음은 성령세례 이론을 실질적으로 수립한 R. A. 토레이가 맨 처음의 성령세례만 성령세례라고 부르고, 그 다음에 이어지는 성령세례를 ‘성령충만’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는 내용이다.

“혹자는 ‘이렇게 계속적으로 성령충만을 받는 것을 가르쳐 추가적인 성령세례라 부를 수 있는가?’라고 물을지 모르겠다. 이에 대해 나는 ‘세례라는 표현은 두 번째 체험에 대해 결코 사용되지 않는다’라고 대답하겠다. 세례라는 말에는 무엇을 새로 시작한다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경적 표현에 충실하려고 한다면, 두 번째 체험에 대해 세례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첫 번째 체험에 대해서만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 그러나 성령세례라는 표현을 첫 번째 체험에만 국한하여 사용하는 것이 더욱 성경적이기 때문에 성령세례는 한 번이고, 성령충만은 여러 번이라고 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R. A. 토레이)

권성수 목사의 첫 성령세례를 ‘첫 충만’이라는 표현은 성령세례의 반복을 통해 성령충만이 증대된다는 오순절 신학의 개념이다. 
 

   


피터 와그너와 권성수 목사

권성수 교수가 대구 동신교회 신자들에게 설교 한 이 내용과 오순절 운동의 성령론을 그대로 계승한 신사도 운동의 신학자 피터 와그너가 성령세례와 성령충만 개념을 비교해 보자!

“나는 성령으로 충만게되는 일은 한 번이며 마지막인 사건이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전 생애를 통해 자주 반복되도록 기대해야 할 어떤 것이라고 믿는다. 성령세례의 사건은 우리가 거듭 날 때 한 번이며 마지막 경험이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피터 와그너)

“신약성서는 성령의 힘으로 가득 채워지는 그리스도인의 체험을 성령세례(baptism)란 표현보다는 성령으로 충만케 된다(filling)는 표현으로 기록하고 있다. 사실 성서적으로는 오순절 날 신자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것보다는 ‘성령으로 충만케 되었다’(행 2:4)는 것이 훨씬 정확하다.”(피터 와그너)

조금 이해하기 난해한 내용지만, 자세하게 보면 피터 와그너도 첫 번째 성령세례 사건만 성령세례라고 표현하고, 동시에 그 사건을 성령충만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이후의 성령세례를 성령충만이라고 이야기한다. 오순절 성령세례 이론과 같은 내용이다. 그리고 피터 와그너도 권성수 목사과 같이 성령세례를 받을 때 방언이 나오기도 하고 나오지 않기도 한다고 가르쳤다.

“성령세례를 받으신 분들 가운데는 방언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방언은 모든 은사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은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방언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일부 교회에서는 ‘방언을 받지 못하면 성령세례를 못 받은 것이다’라는 말까지 합니다. 방언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방언 받지 못했다고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피터 와그너)

“그러므로 당신은 제 3의 물결 그룹 안에서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의 세례를 받으라고 권한다든지, 다른 은사보다 방언을 중시하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피터 와그너)

다음의 권성수 교수의 설교 내용을 보라!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 운동의 성령론과도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게 성령세례 ‘첫 충만입니다. 이 첫 충만, 즉 분명히 알 수 있는 의식적 체험 ...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모르겠다!’하는 것이 아니고 알 수 있는 의식적 체험 ... ‘저 받았는데요!’라고 할 수 있는, 방언이 나타나기도 하고 예언이 나타나기도 하고, 또 다른 현상이 있기도 하고, 꼭 방언하는 것이 아니고 꼭 예언하는 것이 아니고 ... 어쨌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의식적인 체험, 이것이 성령세례라고 묘사되어 있어요.”(권성수 목사)

권성수 목사의 성령세례 주장은 매우 위험한 내용이다. 총신과 합동이 추구해야 할 개혁주의 신학자들과 선조들의 가르침과는 매우 다르다. 반대로 원래의 개혁주의에서 이단적인 가르침이라고 여겨지는 오순절 신학의 성령론과 신사도 운동의 성령론과는 매우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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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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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른믿음 2018-07-25 10:54:02

    불과 5분의 설교를 통해 다 아시는 것 처름 비판을 하셨는데요...포털에서 목사님 성함을 검색해 보니 대충 어떤 분이신지 알겠습니다. 글을 읽는 독자들이 판단을 하겠지요! 교회의 부흥에 대해서 말씀도 하셨는데...제대로 연구 하시면 좋겠습니다.신고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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