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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불세례, 방언기도하는 순결한 신부 총신대 김남준 교수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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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28  14: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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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준 교수(총신대, 열린교회 담임)

요즘 합동과 총신이 복잡하고 시끄럽다는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언제 이 복잡한 상황이 정리될지 모르겠으나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무엇을 목적으로 싸워야 할지를 정확하게 보자는 것이다. 다른 목적의 싸움은 결국 아무 의미도 없다. 오직 복음의 진리를 위한 싸움이어야 한다. 누가 더 인간적으로 뛰어나고, 누가 더 흉허물이 많고 ... 이런 것이 이슈가 되는 싸움은 결국 모두를 패배자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그러면 이기는 자는 마귀뿐이다.

모두에게 유익한 결과를 주는 싸움이 되기 위해서는 ‘진리수호’가 주된 이슈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어느 쪽이 이길지라도 교회가 살고, 그리스도의 복음이 살 것이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결국 새로운 장로교단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새로운 교단이 생기는 것이 무조건 좋다고 할 수도 없고, 안 좋다고도 할 수 없다. 더 진리를 고수하고, 개혁신학을 더 강력하게 전파하는 진정한 개혁주의 교단이 탄생한다면, 비록 과정은 아플지라도 한국교회를 다시 되살리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총신에게 교수하시는 분 몇 분에 대해 우연하게 알게된 사실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총신에서 명성을 누리고 있는 몇 사람의 교수들의 신학에 관한 이야기를 본인들의 설교와 강의 영상을 직접 들어보면서 이야기 할 것이다. 총신의 신학이 처음에 표방했던 개혁신학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지금 합동과 총신에서 진행되고 있는 혼란과 갈등이 진리를 수호하는 더욱 의미있는 과정으로 변하기를 바란다.  

오늘은 김남준 교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김남준 교수는 안양에 있는 열린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총신대 교수이다. 김남준 교수는 개혁주의 신학에 대한 투철한 주장과 식견이 있다고 소문이 난 분이다. 외부에서 개혁주의 신학에 대한 세미나를 인도한다는 소식도 자주 들려온다. 그런데 나는 우연히 김남준 교수가 열린교회에서 설교한 다음의 영상을 보고 대단히 실망하게 되었다.

“목사님이 세례를 베푸셨습니다. 물을 머리에 바르시면서 ‘내가 예수를 믿는 자 김남준에게 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할 때, 저는 생전 처음 아주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아주 따뜻하고 포근한 기운이 머리 위로부터 발끝까지 포근하게 감싸왔습니다. 몸과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워졌습니다. 그 경험이 끝나자 눈에서는 빗물처럼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노래 부르면서)이 벌레 같은 나 위해 큰 해 받으셨나’ 예배가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무릎을 꿇고 울었습니다.

그때 저는 이 세상에서 낙심하고 좌절하여 매우 약한 청년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야망도 많고 꿈도 있었지만, 그 세례를 받는 순간만큼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오직 나 같이 더러운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과, 주님이 그렇게 자기를 버려 이 쓸모없는 인간을 당신의 신부로 삼으셨으니, 이제는 내 인생의 날이 얼마가 되든지,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든지 간에 그분의 신실한 아내, 신부가 되어 섬기고 봉사하면 사는 것, 그리고 언제든지 그 분이 부르시면 그 분의 품에 안길 수 있도록 순결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마음속에 가득하였습니다.”(김남준 목사, 열린교회)


포근하게 감싸는 성령

세례를 받는 순간에 아주 따뜻하고 포근한 기운이 머리 위로부터 발끝까지 포근하게 감싸왔고, 몸과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는 체험이 과연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무엇을 근거로 확신하는 것일까? 이런 신비적인 내용을 예배 설교에서 많은 성도들 앞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이 상당히 충격을 준다. 과연 개혁신학을 가르치는 총신의 교수로서 합당한 모습일까?

사실 이와 같은 성령에 대한 체험과 느낌은 성경의 가르침에서 근거를 찾을 수가 없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16장 등에서 성령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보면 성령의 사역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증거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성령에 대한 가르침의 핵심도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예수의 영’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 선명하게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신앙이 성령의 임재하심과 역사하심의 증거이다. 이것이 특히 개혁신학의 성령의 사역에 대한 가르침이다.

“아주 따뜻하고 포근한 기운이 머리 위로부터 발끝까지 포근하게 감싸왔습니다. 몸과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워졌습니다. 그 경험이 끝나자 눈에서는 빗물처럼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김남준 교수)

김남준 교수는 설교에서 공개적으로 성령이 임하자 포근한 기운이 자신을 감싸는 느낌이 들었고, 몸과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졌고, 눈물이 빗물처럼 쏟아졌다고 설교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불건전한 은사주의 성령사역자들의 인생의 초기 단계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음은 점하는 영성이 탁월하여 '부채도사'라는 별명을 얻은 온누리 교회 김하중 장로가 세례를 받을 때 경험했다고 자신의 책에서 소개하는 내용이다.

“목사님이 내 머리에 물을 부으면서 손을 대는 순간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며 무언가 뜨거운 것이 내 몸 속으로 확 쏟아져 들어왔다.”(김하중 장로)

다음은 신사도 운동의 대표자 피터 와그너가 존 윔버에게 안수기도받을 때 경험했다고 자신의 책에서 소개하는 내용이다.

“굉장한 느낌의 평화가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완전히 맥이 풀려 이러다가 강의실 바닥에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했다.”(피터 와그너)

다음은 신사도 운동가 손기철 장로가 초기에 어느 외국인 목사에게 안수받을 때 경험했다고 자신의 책에서 소개하는 내용이다.

“목사님은 나를 위해 안수기도도 해 주셨습니다. 한 번은 안수기도를 받다가 갑자기 아지랑이와 같은 것이 온 몸으로 퍼지듯이 내 안으로 쑥 들어오는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손기철 장로)

성령이 임하시면 성경 말씀의 의미를 깨달아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해 드리는 신앙이 시작된다고 성경은 여러 곳에서 말씀한다. 그러나 복음을 해치는 불건전한 사람들은 성령이 임할 때, 육체의 감각으로 느껴지는 특이한 느낌이 있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후 그들에게서 나타나는 모습을 종합해 보면, 그때 그들에게 성령이 임한 것이 아니고 미혹하는 거짓 영이 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접신이었던 것이다. 

불행히도 김남준 교수가 체험한 포근하게 감싸는 느낌의 성령도 접신현상에 가까운 것이지, 진정한 성령의 임재라고 할 분명한 성경적 근거가 없다. 특히 개혁신학이 성령에 대해서 가르치는 내용과는 거리가 멀다. 김남준 교수가 체험한 그런 현상이 바로 신비주의이다. 신비주의란 단지 신비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 아니고 뭔가 특이한 영적인 일이 벌어지기는 하지만, 그것이 기독교 신앙의 원리이고 근거인 성경으로 해석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성경으로 해석되지 않는 영적인 일을 성령이 하신 일이라고 혼자서 우기고 믿는 것은 미신이다. 주관적인 성령체험 이야기는 대부분 사탄의 미혹을 미화하는 내용들이다. 


신부 신비주의 

“그분의 신실한 아내, 신부가 되어 섬기고 봉사하면 사는 것, 그리고 언제든지 그 분이 부르시면 그 분의 품에 안길 수 있도록 순결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마음속에 가득하였습니다.”(김남준 교수, 열린교회)

개혁신학을 가르치는 김남준 교수께서 포근하게 감싸주는 성령체험을 통해 그리스도의 신실한 아내, 신부가 되어 섬기고 봉사하는 순결한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이 가득해졌다고 설교하였다는 매우 부적절하다. 비성경적인 신비주의 영성가들은 자신들에게 특별한 영적 체험이 있은 후 하나님의 신부가 되었다고 말하는 경향이 많다. 요즘 신사도 운동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서 하나님의 신부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 개인이 하나님의 아내가 되고 신부가 된다는 발상은 성경과는 무관한 개인의 주장이다. 구약 시대에는 택하신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의 신부라고 했고, 신약성경에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한다. 한 개인에게 특이한 영적체험이 있은 후 신비주의 신부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은 이단들의 특징이다.

“더 극적인 경험을 5년 후에 하게 되었는데, 결혼을 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무엇인가 간절한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아직 직장을 다니던 때였으므로 새벽 시간 말고는 기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동네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였습니다). 그 날은 11월 말이었습니다. 매우 추운 새벽이었습니다. 얼마를 기도했는지 ... 눈을 떠보니까 성도들도 모두 가고 목사님도 가시고, 그리고 차가운 예배당에서 저 혼자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음에 뜨거운 확신이 없고, 왠지 기도가 하나님께 올라가지 않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때 어린 마음에 교회 바닥을 이렇게 보았습니다. ‘내가 이렇게 두꺼운 코트를 입고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안 들어주시나 보다! 저 차가운 바닥에 엎드려 주님이 그래도 불쌍히 여기지 않을까?’ 저 자신도 모르고 바닥에 내려왔고 무릎을 꿇고 손 등을 땅에 대고 얼굴을 그 손바닥에 묻었습니다. 차가운 콘크리트의 한기가 온 몸의 뼈가지 스며들어 차가워졌습니다. 그래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원래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생전경험해 보지 못한 놀라운 일을 경험했습니다. 분명히 엎드려서 눈을 감고 기도하는데, 교회의 모습의 또렷하게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강대 한 복판에서 핸드볼보다 좀 작은 불덩어리가 천천히 천천히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습니다. 기도하면서도 ‘저게 계속오면 나한테 부딪힐 텐데’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정도 시간이 흐른후 드디어 그 불덩어리가 내 머리에 부딪혔고, 온 몸이 이번에는 따뜻해 진게 아니라 불같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억제할 수 없는 커다란 기도 소리가 내 자신의 마음과 정신뿐 아니라 목구멍 속에서도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날 혼자 기도하면서 방언의 은사를 경험했습니다. 얼마를 기도했을까? 이제는 내 마음을 주님 앞에 거의 쏟아 놓았다고 믿었을 때, 세례받을 때처럼 똑 같이 눈에 눈물이 시냇물처럼 솟구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기도의 제목이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노래 부르며) 이 세상 나를 버려도 나 관계없도다 내 한량없는 영광은 십자가 뿐이라.’”(김남준 교수, 열린교회)


성령의 불세례

김남준 교수는 물 세례를 받던 날 신비스러운 성령 체험을 하고 5년 후에 더 우려스러운 현상을 경험했다고 공개적으로 설교했다. 이것을 통해 김남준 교수에게 처음에 일어난 일이 진정한 성령의 역사라기 보다는 접신이었음을 더욱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김남준 교수는 새벽에 교회에서 기도하던 중 강대상으로부터 핸드볼 만한 크기의 성령의 불이 떠오르더니 자신에게로 다가왔다고 설교했다. 그 불이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왔고, 자신의 몸이 불덩어리처럼 뜨거워지는 체험을 했다고 했다.

이것이 미국 이단들이 일으킨 아주사 거짓부흥(1906년)을 통해 본격적으로 가동된 성령의 불세례, 즉 이미 성령으로 중생한 신자에게 능력을 주고자 다시 또 찾아오는 성령의 권능의 임재이다. 개혁신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이러한 사상이 이단에 해당된다는 것을 모르고 그 많은 신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설교했다는 것은 자신뿐 아니라 자신이 교수로 있는 총신에게도 부끄러운 일이다. 

성령이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대신하기 위해 지상에 강림하실 때 불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이야기는 성경에 있다. 그러나 실제로 성령이 불이 되어 신자에게 임재하신다는 이야기를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가? 과연 성령은 우리의 눈에 보이고, 감각으로 느껴지는 실제의 불인가? 그래서 성령이 임하시면 몸이 불덩어리처럼 뜨거워진다는 가르침이나, 실제 사례가 성경에서 발견되기나 하는가?


성령의 불세례와 이단

성령의 불세례 현상은 대부분의 이단들이 공통적으로 자랑하는 내용이다. <지렁이의 기도>라는 책을 써서 자신의 점하는 거짓 영성을 미화하는 새물결 플러스 김요한 대표도 일찌감치 성령의 불세례를 받았다고 자신의 책에서 설명했다.

“그날은 1999년 6월 8일 저녁 9시 무렵이었다. 이 날이 내가 생애 처음으로 ‘불의 밤’을 경험한 날이었다. 그때의 체험이 너무 강렬하고 생생하여 18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지렁이의 기도, 29 페이지)

“1999년 6월 8일은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그날 나는 평상시처럼 저녁 기도를 하기 위해 서재에 들어가 무릎을 꿇자마자 곧장 불을 체험했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어떻게 손을 써볼 도리가 없었다. 다른 때 같으면, 가령 한참 기도를 하는 중에 가슴이 뜨거워지거나 몸이 떨리는 것 같으면 기도를 중단하고 일어나 나와버렸기 때문에 그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는데, 그 날은 워낙 급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어서 달리 어떻게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의 불 체험은 시작되었다.”(지렁이의 기도, 30,31페이지)

​“(그 당시의 일기장의 내용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엎드리자마자 엄청난 진동이 온 몸을 쥐어짜듯 흔들어댐. 지진이 난 것처럼 몸이 요동치며, 손을 내저으며, 감당치 못할 은혜 앞에서 몸 전체가 바닥에 내동이쳐진 상태에서 데굴데굴 구름. 온 몸을 감싸는 불길에 뜨거워서 견디지 못함."(지렁이의 기도, 33 페이지)

성령은 결코 불이 아니고, 성령의 불이라는 성경의 근거를 가지지 못한다. 성령이 처음 지상에 강림하실 때 불의 모습으로 오셨을 뿐이다. 김남준 교수처럼 눈에 보이는 성령의 불을 받은 사람들은 후에 반드시 예언, 거짓 방언, 진동, 환상, 영서, 성령춤, 신부영성 등의 거짓된 영적인 현상들이 따라온다. 하나님의 음성을 밥 먹듯이 들으면서 목회했다고 자랑하는 부산 수영로교회 원로 정필도 목사도 목회초기에 자신이 성령의 불세례를 받았다고 다음과 같이 강의하였다.

“밤이 새도록 기도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어요! 비가 오기를 시작했는데, 그대로 비를 맞으면서 하나님께 성령의 세례(능력)를 달라고 소리를 치면서 기도했어요! 갑자기 하늘에서 불이 저에게 임했어요! 온 몸이 불덩이가 되어 한참 동안 떼굴떼굴 굴렀어요! 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바위에서 떼굴떼굴 굴렀어요! 얼마나 시간이 지나갔는지 몰라요! 정신을 차려보니 하늘에 해가 쨍쨍 떠있는 거예요! 이후 그 일이 일평생의 신앙생활에 중요한 경험이 되었어요!”(정필도 목사)


성령의 불세례와 거짓 방언

성령의 불체험(불세례)을 본격적으로 주장한 사람들은 1800년대 말, 1900년대 초 미국에서 일어난 이단들이다. 그들을 통하여 아주사 거짓부흥이 일어났고, 아주사 거짓부흥의 특징을 그대로 계승하는 오순절 운동, 은사운동, 빈야드 운동, 신사도운동(기름부음)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성령의 불을 이야기하는 부류들은 그 산물로서 거짓 방언, 예언(점), 환상, 진동, 성령충, 방언찬양, 영서, 신부 신비주의 등을 가르친다. 그러면 성령의 불을 받은 김남준 교수에게서는 무엇이 나타났을까?

“그날 혼자 기도하면서 방언의 은사를 경험했습니다.”(김남준 교수)

김남준 교수에게는 성령의 불세례가 임한 후에 현대의 거짓 방언이 나타났다. 김남준 교수가 개혁신학에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하니, 자신의 방언이 어떤 방언이고, 그리고 성경 어디에서 그 방언의 근거를 찾을 수 있는지 설명해 줄 수 있을까? 김남준 교수는 거짓 영과의 접신을 황홀하게 맛 본 것이다. 그 산물인 거짓 방언도 즐거이 얻었다. 얼마나 즐거웠고 자랑스러웠으면 설교를 통해 자세하게 말했을까?

접신의 영성을 가진 분, 그 산물인 거짓 방언의 은사까지 얻은 분이 현재 총신의 교수이다.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 위치에 서 있는지도 모르고 공개적으로 그 내용을 설교에서 말하까지 한다는 것은 정말 대책이 안서는 일이다. 구약 말기에 온 이스라엘이 바알과 산당숭배로 기울어진 것처럼, 한국교회가 그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겉으로 개혁주의라고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을 다 수용하는 현대 복음주의의 늪에 빠진 총신의 모습이다. 총신의 신학은 산당스타일로 기울어졌고, 총신을 졸업한 많은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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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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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도 안에서 2018-02-28 17:48:21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이 교회에서 전심을 들인 간절한 기도 가운데 은혜를 구할 때 사탄이 나타나 뱀과 전갈을 준다는 주장 또한 성경에 없습니다. 왜 성경에 없는 주장을 하면서 자기 주장은 성경에 다 있는 양 과장을 하시는지요? 오히려 예수님은 그렇게 간절히 진심으로 은혜를 구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지요(눅 11:11-13). 또한 예수님은 열매를 보면 어떤 신자의 참 거짓 여부를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한국교회사에서 성령을 체험하고 능력있는 교회의 부흥과 영혼 구원의 역사를 열매로 보여준 경우가 많습니다. 가까이는 김남준 목사님이나 정필도 목사님이 그러하지요. 물론 은사주의자들 가운데 사탄의 유혹에 넘어져 열매나 끝이 좋지 않은 경우 역시 적지 않지만, 그 또한 성경에 조심해야 할 사항으로 경계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령의 역사 자체를 성경적 근거도 없이, 있다 해도 은사종결론 같은 논란이 많은 교리주의적 성경 해석에 근거해서 마치 자신의 신학적 해석만이 절대적인 잣대라도 되는 양하는 태도로 성령의 역사를 함부로 판단하고 마귀의 역사라고 정죄한다면, 그것은 자칫 예수님의 사역을 바알세불의 역사라고 판단한 바리새인의 성령훼방죄에 해당될 수도 있습니다. 왜 이런 위험성에 대해서는 성경의 기준과 사례에 주의하지 않고 자신의 교리주의적 해석에 대해서만 성경을 기준삼으려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성경을 공평하게 골고루 읽으시고 신중하게 판단하시길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개혁주의자들이 그리 애지중지하는 조나단 에드워즈부터 마틴로이드 존스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한국의 수많은 건전한 신학자와 목회자들까지 단지 성령의 역사와 은사를 지금도 인정한다는 한 가지 혐의만으로 인해 모조리 다 사탄의 종이라고 매도하게 되고, 그리하여 예수께서 경계하신 대로 영원히 사함받지 못할 성령훼방죄를 사람이 만든 특정 교리주의에 의지해 아무런 가책도 못 느낀 채 서슴없이 저지르게 된다는 것을 깊이 돌아보셨으면 합니다. 이 문제는 자신의 영혼의 영원한 운명이 걸린 아주 민감한 문제라는 것, 자신의 판단 잣대 하나만 갖고 누구든지 다 걸면 걸려넘어진다는 생각으로 함부로 대하기에는 신학적으로나 목회 현장 차원에서도 아직 명확하게 다 해결되지 못한 부분이 많은 아주 예민한 사안이라는 것, 그래서 어쩌면 훗날 주님 앞에 섰을 때 자기 생각과는 전혀 다른 판단을 받게 될 수도 있는 극히 신중해야 할 문제라는 데 대해 한 번쯤은 깊이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개혁주의의 이상대로 정말 성경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중시하신다면 마땅히 그러한 자세를 한 번쯤은 돌아보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신고 | 삭제

    • 성령훼방 하지 말자! 2018-02-28 23:02:00

      성령훼방이란 복음전도를 방해하는 것을 뜻합니다.
      거짓 성령의 역사를 성령의 역사로 미화시키는 것이 진정한 성령훼방입니다.
      교회에서 기도하다가 거짓 영을 체험하는 일이 없다고 하셨는데, 모든 이단들이 어디서 능력을 받았는지 알아보십시오. 모두가 교회와 기도원에서 예배하고 기도하다가 성령(?)을 받았고 능력을 받았습니다. 말씀 위에 거지 못한 교회, 예배, 기도는 마귀의 전당입니다.신고 | 삭제

      • 바울처럼 2018-03-01 03:51:41

        경건한 청교도 개혁신학 어쩌구 하던 양반이 자신이 하는 방언에 대해 어떻게 변호를 할지 무척 기대됩니다...ㅋ신고 | 삭제

        • lordmyhelp 2018-03-14 20:12:24

          개혁주의를 표방한 교회와 사역자 가운데 스스로는 바른 믿음을 견지한다고 주장하지만 자기와 다른 믿음을 가진 형제에 대해 판단하지 말자는 분이 많습니다. 옳은 생각 같아 보이지요. 그러나 배교입니다. "난 성경무오를 믿는다. 하지만 그걸 안 믿는 형제를 단죄해선 안 된다."라는 말. 신복음주의입니다. 신복음주의는 교제윤리가 비성경적이지요. 방언문제 역시 신복음주의적 입장으로부터 비롯된 거예요. 그릇된 방언주의자들을 수용하다보면 종국에 방언부정하던 분들도 물들어버립니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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