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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돈 교수, 방언은 인간의 영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신비한 수단박영돈 책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4장 서평 3번째 글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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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16  12:5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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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돈 교수의 책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4장의 서평 세번째이다. 

박영돈 교수 방언주장 3>
방언은 인간의 영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신비한 수단

박영돈 교수는 현대의 방언기도가 하나님과 인간의 영이 교통하는 신비한 수단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책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에서 주장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는 방언은 고린도전서에 기록된 방언의 유형에 가깝다. 고린도전서 12-14장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는 이 방언의 특성은 특정한 지방의 언어나 외국어가 아니라 우리의 영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일종의 신비한 언어라는 점이다. 통역이 없으면 다른 사람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방언을 하는 자신도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바울은 ‘방언으로만 기도하면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전 14:14)라고 하였다.”(175 페이지)

“하나님이 방언의 은사를 주신 목적은 방언으로 기도함으로 영이 새로워지고 하나님과 영적인 교통함이 깊어지고 풍성해지게 하시기 위함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닮은 거룩하고 진실한 신앙 인격자와, 형제들과 교회를 위해 열심히 간구하는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다.”(182 페이지)

“그렇다면 방언의 유익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이성적인 인식과 이해의 한계를 초월하여 하나님과 영적인 교통을 누린다는 점이다(고전 14:14-18 참조). 그로 인해 우리의 영이 새로워지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된다. 믿음의 확신이 없는 이들이 방언을 체험함으로 자신 안에 성령이 거하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될 수도 있다. 동시에 신앙의 열심이 자극된다. 기도를 잘 안 하던 이들, 5분만 기도해도 기도할 것이 없던 이들이 기도를 자주, 오래 하게 되며 그로 인해 그들의 영이 새로워지기도 한다. 그러니 기도를 10분도 못하는 교인들은 방언이라도 받아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반문이 제기될 만하다. 거기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184 페이지)

박영돈 교수의 방언에 대한 주장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방언 은사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신비한 언어이다.
2)자신도 뜻을 모르며 영으로 좋으나 마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3)방언 기도를 통해 우리의 영이 새로워진다.
4)방언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교제가 더 깊어진다.
5)방언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된다.
6)방언 기도를 통해 성령이 거하시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7)방언 기도를 통해 신앙이 뜨거워진다.
8)기도를 잘 못하는 사람은 방언 기도 은사를 받으면 유익하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고, 예장 고신의 조직신학 교수이고 동시에 조직신학 학과장이신 분이 방언에 대해 이러한 내용을 가르친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그 동안 고신의 다른 교수님들은 동료인 박영돈 교수가 이러한 사상을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몰랐을까? 고신의 동료 교수들 중에서 박영돈 교수의 사이비 행각에 제동을 거는 사람이 한 두 명이라고 있었다면, 박영돈 교수가 이런 사이비 서적을 저술하여 고신교단뿐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를 더럽히는 일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현대의 거짓 방언을 옹호하는 박영돈 교수의 주장을 하나씩 분석해 보도록 하자!

 

1)방언 은사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신비한 언어이다.(박영돈 교수)

성경의 방언이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하게 만드는 신비한 언어, 즉 사람이 알 수 없는 하늘의 비밀언어라는 박영돈 교수는 주장은 참으로 어이없고 비성경적이다. 만일 성경의 방언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시는 직통의 설교가 아니고, 사람이 하나님과 신비하게 교통하게 만드는 하늘의 언어였다면, 방언을 언급하는 다음의 성경의 표현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행 2:4)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행10:46)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심으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행19:6)
“방언을 말하는 자는”(고전 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고전 14:4)
“방언으로 말하고”(고전 14:6)
“방언으로 말하는 자는”(고전 14:13)
“방언을 더 말하므로”(고전 14:18)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고전 14:19)
“다 방언으로 말하면”(고전 14:23)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고전 14:27)
“방언말하기를”(고전 14:39)

방언을 언급하는 모든 성경 구절들은 성경의 방언이 사람을 향하여 말하는 은사라고 기술하고 있다. 박영돈 교수가 주장하는 것처럼,하나님께 기도하는 신비한 언어의 방언이 초대교회에 있었다면 ‘방언으로 기도하고’라고 하였을 것이다. 초대교회에 정말 방언 기도의 은사로 하나님과 신비하게 대화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적어도 한 두 번은 ‘방언으로 기도하고’라고 성경에 나와야 한다. 박영돈 교수는 성경의 사람들 중에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은사를 받았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단 한 명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사도 바울이 방언으로 기도했던 사람이라는 증거가 있는가? 베드로가 방언으로 기도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는가? 제자들이 모여서 방언으로 기도했던 적이 있었던가?

박영돈 교수의 방언에 대한 주장은 참 어이없고 한심스럽다. 도대체 뭘 근거로 성경의 방언이 하나님께 비밀스럽게 기도하는 방언이라고 주장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1900년대 초 미국 이단들이 일으킨 아주사 거짓부흥의 줄기를 따라가는 이단적인 방언 은사주의자들은 다음의 성경구절들이 하나님과 신비하게 교통하는 방언 기도 은사의 근거라고 주장한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전 14:2)

이 말씀을 근거로 방언 은사가 하나님께 비밀스럽게 기도하는 은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그런 이상한 주장을 하기 전에 먼저 인간이 하나님께 무슨 '비밀'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인지 설명하기 바란다. 방언으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한다면, 그 전까지는 하나님이 그 '비밀'을 몰랐다는 것인다. 대체 하나님이 모르시는 비밀이 이 우주에 있을까?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비밀’이라는 단어는 다른 성경에서 아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하나님의 구원계시를 뜻하는 말로만 사용되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고전 4:1)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골 2:2)

바울은 항상 비밀이라는 단어를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해주시는 구원의 복음과 관련하여 사용하였다. 사람이 하나님께 알려드리는 비밀이라는 것은 바울의 사상에서는 찾을 수 없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바울의 신학 사상이 아닌 이런 이상한 내용이 마치 바울의 신학인 것처럼 고린도전서 14장에 등장하는 이유는 무었일까?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고후 11:3,4)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고후 11:20)

고린도전서보다 약 5개월 후에 쓰여진 고린도후서를 보면, 고린도교회에서 거짓 방언에 관한 뜨거운 논란이 일어나고 있을 때, 고린도교회는 이미 이단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받은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 이단들이 '다른 복음'을 전하고 '다른 예수'와 '다른 영'을 전하였어도 고린도교회 신자들은 분별하지 않고 그대로 배우고 따랐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신자들에게 이렇게 조롱하듯이 책망했다.

‘(이단들이)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고후 11:20)

하나님이 사람에게 친히 설교하시는 성경의 방언의 은사와는 전혀 다른 이상한 거짓 방언 기도의 은사는 사탄이 고린도 교회에 뿌렸던 이단의 씨앗이었던 것이다. 고린도전서 14장 속에는 방언에 대한 이단들의 사상과 바울의 성경적인 방언에 대한 가르침이 혼재하여 있다. 아마도 바울이 이단들이 전한 방언 사상을 소개하면서 비판하는 형식으로 말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원래 바울의 말투가 비꼬고 조롱하는 말투였고, 그리고 2천년 전의 문서이므로 정확하게 의미를 살려서 번역하기 어려웠으므로 바울이 조롱하고 비판하는 거짓 방언에 대한 내용이 마치 바울의 성경적인 가르침인 것처럼 기술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 때문에 거짓 방언을 분별하는 문제는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를 받은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어려운 문제이다.

   


2) 자신도 뜻을 모르는 기도이고, '영'으로는 좋으나 '마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박영돈 교수)

박영돈 교수는 방언 기도를 인간의 영의 기도하고 주장하였다. 영의 기도이므로 인간의 마음은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박영돈 교수는 영이 하는 기도이므로 마음이 알지 못하는 방언 기도의 은사가 존재하는 근거로서 다음의 말씀을 인용했다.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전 14:14)

앞에서 이미 설명한 내용을 다시 반복하다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은 현재 바울이 방언기도를 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현재 바울은 방언 기도라는 것을 하지 않고 있으므로 이렇게 표현하였다. 방언 기도는 영이 기도하는 것이므로 마음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내용은 평소 바울의 바울의 신학사상이 아니다. 바울은 한 번도 인간의 인격 안에서 '영'과 '마음'이 따로 작동할 수 있다고 가르친 적이 없다. 인간의 인격 안에서 마음과 영이 따로 작동한다는 것은 이방종교의 사상이지 기독교 사상이 아니다.

그러면 대체 이 구절은 왜 고전 14장에 들어와 있는 것일까? 고린도 교회에 이미 이단들이 강력한 영향을 미쳤고, 교인들이 이단들이 거짓 영의 역사를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거짓 영이 고린도 교회에 들어와서 크게 역사하고 있었다. 고린도 교인들의 심령 속으로 이단의 기운이 이미 깊이 퍼졌으므로 '영'으로 기도하는 것을 '마음'은 모른다는 이단들의 신비주의 사상이 고린도 교회에서 통했던 것이다. 바울은 나중에 그 진상을 파악한 후 그들을 이렇게 조롱하는 투로 책망했다.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고후 11:20)
 

3)방언 기도를 통해 우리의 영이 새로워진다.(박영돈 교수)

단 한 순간도 기독교에 존재하지 않았던 방언 기도의 은사가 우리의 영을 새롭게한다는 박영돈 교수의 주장은 참으로 가관이다.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사역으로만 우리의 영이 새로워진다고 가르치고 또 가르쳐도 부족한 이 혼탁한 시대에 성령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방언 기도로 영이 새로워진다고 말하는 사람은 ‘이단’이거나 ‘이단옹호자’일 것이다.


5)방언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된다.(박영돈 교수)

사람이 일부러 꾸미는 것이 아닌데 계속 이어지는 방언 기도는 소위 말하는 ‘학습방언’이 아니다. 그것은 진짜 '다른 영'의 역사로 나타나는 ‘거짓 방언’(귀신 방언)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귀신으로 말미암아 나오는 방언을 무엇으로 분별할 수 있을까?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방언 기도를 하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된다는 박영돈 교수는 과연 신학자인가? 이렇게 어이없고 기가 막히는 이적행위가 또 있을까?
 

6)방언 기도를 통해 성령이 거하시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박영돈 교수)

같은 말을 또 반복하게 되어 답답하다. 스스로 만드는 방언 기도의 현상은 스스로 안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저절로 이어지면서 계속 그럴싸하게 나오는 방언 기도는 미혹의 영, 즉 '광명의 천사'의 역사가 아니면 설명할 수가 없다. 성경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방언 기도의 은사를 일으키는 영이 귀신이 아니면 무엇일까? 그것이 일으키는 역사를 통해 성령이 거하시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박영돈 교수의 주장은 성 내부에서 같은 편으로 위장하면서 성 밖의 적군이 들어도록 성문의 빗장을 푸는 스파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주장이다.
 

7)방언 기도를 통해 신앙이 뜨거워진다.(박영돈 교수)

방언 기도를 통해 신앙이 뜨거워진다는 박영돈 교수의 말을 맞다. 하루에 몇 시간씩 방언 기도를 하면서 믿음이 뜨거워진다는 사람들이 한 두 명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믿는 예수가 성경의 예수라고 누가 말했는가?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는 성경의 하나님이라고 누가 말했는가? 십일조를 하니 하나님을 믿는 것인가? 이단들이 은혜(?)받으면 집도 팔아서 헌금하는 것을 모르는가? 오직 성경으로만 신앙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에도 없는 방언 기도의 은사를 통해 신앙이 뜨거워지는 사람들은 이단 스타일 가짜 교인들이다. 절대로 참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다.
 

8)기도를 잘 못하는 사람은 방언 기도 은사를 받으면 유익하다.(박영돈 교수)

박영돈 교수는 왜 이리 어리석고 한심한 소리를 골라서 하는 것인가? 예수님도 방언 기도를 하지 않았고, 이사야도 방언 기도를 한 적이 없다. 모세도 방언 기도하지 않았다. 베드로도 방언 기도를 하지 않았다. 제자들이 모여서 방언 기도를 했다는 흔적이 성경에 없다. 칼빈, 루터, 존 오웬, 스펄전, 에드워즈, 죠지 뮬러 ... 신실하고 존경받는 믿음의 사람들 중에서 그 누구에게도 방언 기도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기독교를 심각하게 파괴한 조용기, 최자실, 윌리엄 세이모어, 신디 제이콥스, 존 윔버 ... 이런 사람들은 방언 기도를 잘 했다.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이래도 박영돈 교수는 자신의 책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을 수거하여 속히 폐기하지 않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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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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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창모 2018-02-16 13:30:12

    박 교수의 방언 이해가 유치하기 그지 없군요. 그의 성경 이해 수준이 사실상 평신도(물론 평신도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목사도, 집사도 다 그냥 성도이니까요. 여기서 '평신도'란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을 의미합니다) 수준 정도도 않되는 것 같네요. 그런데도 교수라니.......쯧쯧....

    정목사님! 감사합니다. 별 생각없이 별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박 교수에 대한 제 무지를 깨우쳐 주셔서....
    계속 귀한 연구, 좋은 글...부탁드립니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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