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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기의 세계 선교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정양호  |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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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30  11: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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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랄프 윈터 박사

요즘 뉴스에 아프리카 교회의 부흥, 또는 중동 시리아 무슬림 권에 상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역사 일어나고 있다는 최근 뉴스를 접한다. 이런 선교부흥의 뉴스를 들으면서 복음이 세계화되고 있음을 감사한 일이지만 참 그리스도인은 그 부흥이 참된 부흥인지, 그 선교가 바른 선교인지 분별하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이다.

"...영(靈)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靈)들이 하나님께 속(屬)하였나 시험(試驗)하라..."(요일4:1)

세계선교의 거장이라는 랄프 윈터 (Ralph D. Winter, 1924.12.8~2009.5.20)는 상당히 그럴한 논리로 세계 선교의 동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코멘트 하였다. (Mission Frontiers Vol.22, No.2)

“한 그리스도인(이름)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언제쯤인가? 누군가가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언제 말 할 수 있는가?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들의 이름이 아니라,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라고 하셨다. 이것은 또한 교회에 출석하는 어느 누가 참 그리스도이라는 의미도 아니다. 크리스천의 이름을 가진 모두가 다 참 크리스천이 아니요, 교회를 다닌다고 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미묘한 점에도 불구하고 이 엄연한 경고는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성경적이다.

첫째, 단순히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든지, 교인이 된 것으로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무턱대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을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어느 누가 참 그리스도인이냐, 아니냐에 대해 우리가 마음대로 심판할 수 있다 해도 우리가 항상 옳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판단은 대단히 어렵다.

둘째, 단순히 크리스천이라고 이름 붙여지지 않았다고 그들이 참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단정해버리는 것도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장 쉬운 예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나 아직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기를 더 좋아하지 않는 ‘메시아닉 쥬’(Massianic Jew)를 들 수 있다.

한편 자신들이야말로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어떤 그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안식교, 여호와증인, 몰몬교, 카톨릭은 어떠한가? 보통 신앙의 입장에서 이들은 적어도 성경을 넘어섰거나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여기에 우리는 좀 더 넓은 시야(視野)를 필요로 한다. 한 예로 크리스천과 모슬렘이 함께 예배하는 시리아교회의 한 보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코닷)

그는 계속하여 힌두크리스천, 유대교크리스천, 무슬림크리스천을 언급하면서 우리가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다 알 수 없고, 수세기전 종교개혁 전야에 아주 열심이었던 가톨릭 지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다가오고 있는 거대한 또 하나의 파도를 알아차리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우리는 ‘죄인 중의 괴수’를 고백했던 바울과 같은 심정으로 감사 감격하며 그분을 따라 갈 뿐이다. 고넬료와 같은 숨겨진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 중에 있음을 믿고 그의 기쁘신 뜻을 따라 복음을 전할뿐이다. 한마디로 다른 도리가 없다.

세계적인 선교 학자다운 지적에 부분적으로 공감하나 참 그리스도인에 관한 잣대(尺)를 무의미(無意味)하게 거짓 기독교 가톨릭을 비롯한 기독교 이단이나 다른 종교에까지 갖다 대주면서 선교를 빙자하여 자칫 ‘돼지 앞에 진주를 던져’ 혼합시키려는 극히 위험한 발상으로 용납해서는 안 된다.

복음의 연속성 (連續性)의 문제는 기독교와 혼합된 거대한 아프리카 독립교회, 전통 종교에서 보듯 그 옥돌을 가리기 힘들다고 하는 사실의 한계를 부분적으로 인정한 다해도, 성경적인 바른 복음을 비판적으로 평가절하(平價切下)하면서 오히려 다른 이방종교나 성경 진리의 괘도에서 이탈한 이단 신앙운동에 대해서 분별없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 거대한 흐름’ 운운하는 것은 성경적 바른 진리에 무지하여 선교를 약화시키거나 더 나아가 그 진리에 대항하는 비복음적, 혼합주의 선교를 두둔한다면 과연 그 선교가 성경적인 선교인가?

랄프 윈터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한정국 목사(합신,전 KWMA대표)도 “하나님의 시각과 범기독교적 관점에서 세계교회에 주어진 미전도종족 이른바 전방개척선교지(Mission Frontiers)를 말할 때 개신교를 뛰어넘어 아프리카독립교회, 가톨릭교회, 그리고 정교회를 바라보는 조금 넓은 시각 내지는 약간의 너그러움이 필요하다. 그들이 적어도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 중 상당수가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복음 선교의 우선점을 찾아야 한다”라고 혼합주의 선교를 마치 바람직한 선교인양 떠벌리는 것은 마치 보수개혁주의 신앙을 자처하면서도 분별치 못하고 혼합주의 신학과 선교에 빠져버린 오늘의 한국교회의 모습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참 그리스도인은 여리고 성의 라합이나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 같은 숨겨진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 중에 있음을 믿는다. 선교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도대체 무엇이 넓은 시각이고, 무엇이 하나님의 시각인가? 성경대로 오직 예수, 오직 성경을 얘기하면 편협하고 배타적이어서 좁은시각, 하나님의 시각이 아니고, 개신교를 뛰어넘어 모든 종교를 포용하는 에큐메니칼 시각이어야 너그러운 범우주적 하나님의 시각인가? 그들 중에 상당수가 비성경적, 비복음적, 모조품 예수를 부르짖어도 구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선교할 필요가 없는 양 말하는 그 논리가 참으로 놀랍고 기가차고 매가차고 순사가 칼을 찰 지경이다.

랄프 윈터는 이런 혼합주의 선교 시각에서 이른바 내부자운동(Insider Movement)을 노골적으로 집중 거론하였다.

“초대교회의 헬라그리스도인들, 갈라디아 교인들, 로마교인들은 자신들의 의복, 언어 문화를 그대로 간직한 채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었던 것처럼 (롬 9:32 롬 1:16) 문화와 우주적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유효한 버전이 무엇인지 인지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미국에 전파된 유럽의 기독교는 몰몬교, 여호와의증인 등에서 보듯 아주 성경적이든 그렇지 못한 것들이든, 아주 다른 약 200종을 생산하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성경적인 믿음이 어떤 문화나 언어로 옷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은 흥분되는 일이면서 어지러운 일일 수 있다.

요즘 아프리카나 인도 중국에서는 진짜 예수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독교인으로 보이지 않고 문화적 측면에서 여전히 무슬림이나 힌두교도로 간주되고 있다. 오늘날의 선교필드의 사람들은 서구적인 정서가 있는 기독교의 문화, 신학, 성경을 좋아하지 않는다. 많은 전문가들은 일본교회가 성장하지 않는 원인 중에 아직도 기독교가 문화적 일본풍으로 번역(飜譯)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인도에는 실제로 가정교회에서 매일 성경을 읽고 예배하는 수 백 만의 ‘힌두교 예수신자’들이 있다. 어떤 곳에는 마음과 영혼으로 예수를 따르면서 모스크로 신약성경을 가지고 다니면서도 무슬림으로 간주되는 수천의 예수신자들이 있다. 아프리카에는 결코 그리스도인이라고 여기지 않으면서 몰몬교 신자들보다 더 순수한 5천만 이상의 남아공 아프리카독립교회(Africa Independent Church) 신자들이 있다.”

죤 트라비스(John Travis)는 신자의 정체성을 “C1 to C6 spectrum”의 분류하여 무슬림 선교필드의 맞춤 전략으로 제시한였다. 예컨대 C4(무슬림 권에서 예수신자로 무슬림으로 보지 않음) 단계를 지나 C5 단계는 자신들을 무슬림인데 예수를 믿는 신자이거나 또는 선교사가 전략적으로 전도하기 위해 무슬림이 되는 경우, 내부자운동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F. Decker (목사,United Methodist Church, Christian does not translate)는 “어차피 불완전한 인간사회에 혼합주의(syncretism)란 당연한 것임으로 교회 지도자나 선교사들은 더 이상 혼합주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목청을 높인다.

내부자운동 (Insider Movement)을 주장하면서 과연 그가 가톨릭,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 힌두교, 무슬림에 대해 얼마나 변증 신학을 공부하면서 오직예수, 치열한 변증선교를 하려고 조금이라도 노력을 하면서 이런 소리들을 할까? 아프리카 독립교회가 순수한 기독교라고 단정하는 어처구니가 없는 주장을 하는 윈터 그는 선교 대가가 아니라 분명한 성경적 바른 신학도 없고 성경적 선교 역시 무지함을 온천하에 공개하는 꼴이 되었다.

선교의 상황화(contextualization)를 강조한 나머지 마치 예수 신앙을 문화적 야합(野合)의 한 부류로 몰고 가는 것은 바른 선교 신학이 결코 아니다. 예수 신앙이 그 문화(文化)를 변혁(變革, revolution)하고 주도(主導)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선교가 문화적 혼합(混合), 통합(統合) 내지는 포용(包容)한다는 논리는 분명히 비성경적이다. 그의 주장은 성경이 말하는 절대 예수가 아닌 보편적인 예수, 상대적인 예수, 가짜 예수, 사이비 이단에서 말하는 예수든 상관없이 예수 이름만 들먹거린다면 ‘Insider Movement’라는 하나의 거대한 선교의 불꽃으로 그 정당성을 인정하고 봐주자는 논지(論旨) 일 뿐이다.

국내 전방개척선교단체에서 내놓은 자료에 의하면 ‘내부자운동’이란 ‘다른 종교의 울타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그 내부에 머무른 채 예수께 향하는 운동’이라고 애매하게 정의했다. 일반적으로 내부자 운동이란 자신이 속한 종교, 세계관, 관습, 이방문화를 떠나지 않고도 진실로 예수를 따르는 운동으로 이해한다. 내부자 운동을 지지(김요한, 인사이더스선교회 대표)하는 자들은 기존의 자기 종교적인 표현들을 계속 사용하고 그들의 사원에 나아만처럼 머물러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을 거침없이 말하곤 한다.

‘오직 예수’라는 신앙은 본질적으로 철저히 배타적(排他的)이고 절대적(絶對的)이어서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그리스도인(Christianus)라는 별명은 때때로 죽음의 대명사로 자처해왔다. 복음이 어떤 이질적인 종교를 배경으로 하는 한 문화권에 들어가 토착화 내지는 수용 과정에서 형태(形態)의 변질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마리아상 앞에서 마리아 찬송과 기도를 하고 불상 앞에 절을 하고 모스크에서 함께 절하면서 예수 믿는 신자라고 자처하다면 그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거짓 선교이며 타협(妥協)이다. 개혁자들이 외치던 오직 성경, 오직 예수, 오직 예수 믿음, 오직 은혜 같은 복음의 핵심 요소가 변질된다면 분명히 혼합주의요 영적 간음 행위이다.

오늘날 서구의 기독교가 죽어가고 아주 배타적인 이슬람이 그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바로 혼합주의 때문이 아닌가? 한국에서도 최근에 군 입영 문제에 대해 자신들의 신앙양심 문제로 기꺼이 감옥에 들어가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배타적인 여호와의 증인이 법의 판결에서 승소하는 모습을 보며 정작 기독교인들은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랄프가 말하는 ‘Insider movement’ 같은 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한다면 선교를 함에 있어서 아마 다른 종교와 갈등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며, 선교사가 구태여 예수 앞으로 회개, 개종을 강조할 필요도 없고, 더 나아가 선교를 그렇게 강조할 필요도 없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보편적인 예수, 상대적인 예수, 변질된 에큐메니칼 복음이라는 잡초가 온 세상을 뒤덮어 과연 성경적인 바른 선교를 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따라서 효과적인 선교를 빙자하여 성경에 기초한 기독교의 정체성을 깨뜨리고 성경의 독특한 가르침을 모두 양보하면서 엄청난 선교 운동이 이방인 가운데 진행되고 있는 양 분별없이 떠벌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성경적인 바르고 순수한 선교를 약화, 변질시킬 뿐만 아니라 선교지를 교란시키고 세계복음화를 막으려는 사탄의 계산된 고도의 책략으로 세계선교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차제에 에큐메니칼 운동과 로마 카톨릭은 성경적 선교개념을 거추장스럽게 여기고 그 대신 사회학적, 정치학적, 문화인류학적, 심리학적인 그럴 듯한 옷을 입혔다. 즉 인간화, 교회가 아닌 세상, 하나님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 죄의 회개가 아닌 용서와 화해 등으로 대처하였음을 상기해야 한다. 내부자 운동 같은 ‘교회 없는 기독교’(Churchless Christianity) 운동이 새로운 대안인 것처럼 무분별하게 떠벌리는 것은 선교 전략에 크게 혼란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마침내 세계 선교의 역량을 무력화시키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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