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의 최후의 하나님의 심판

김세윤 교수가 왜 이단 시비를 받고 있을까? 특히 개혁주의 교회에서 김세윤 교수가 주장하는 칭의 구원론이 심각하게 거부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세윤 교수가 단지 그리스도를 믿어(세례를 받음으로) 칭의를 얻었을지라도 훗날 다시 하나님의 심판대에 설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일까? 그것은 아니다. 성경에도 구원 받은 성도들이 최후에 다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라고 분명하게 나온다. 성경은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이니 종말의 하나님의 최종 심판대를 피해 갈 것이라고는 말씀하지 않는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마 25:31-33)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 모든 사람들을 심판대 앞으로 소환하여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 참 하나님의 백성과 거짓 백성을 나누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각 사람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시고 상급을 주실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스도를 믿고 칭의를 얻었거나 못 얻었거나, 지상에서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재림주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1:11,12)

사도 요한도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하나님의 최종적 심판의 자리를 미리 보았다. 백보좌 심판이라고 하는 내용이다. 백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의 행위가 기록된 책의 내용을 보시고 각 사람을 심판하신다고 했다. 

세대주의 자들은 예수님이 마태복음 25장에서 말하신 심판은 천년왕국 직전에 천년왕국에 들어갈 자를 가려내는 심판이라고 하고,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 21장에서 설명하는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은 천년왕국 후에 전개될 영원한 하나님 나라 직전의 최종적 심판이라고 한다. 그러나 더 많은 성경학자들은 단 하나의 종말의 심판에 대해 예수님과 사도 요한이 각각 말씀하신 것이라고 본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롬 14:10)

사도 바울도 최종적인 하나님의 심판이 최후의 순간에 다시 있을 것이고, 모든 성도들이 그 앞에 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김세윤 교수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칭의를 얻었을지라도(정확하게 말하자면 김세윤 교수는 천주교의 가르침처럼 '세례를 받음으로' 칭의를 얻는다고 했다) 다시 하나님의 최종 심판대에 서게 될 것임을 강조한 것은 결코 잘못된 내용이 아니다.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과 인간의 행위

김세윤 교수가 하나님의 최후 심판이 우리의 행위를 따라서 이루어진다고 강조한 것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김세윤 교수는 구원받았다고 자부하면서 못된 짓을 일삼는 구원파 이단을 자주 예로 들며 행위가 바르지 못하면 하나님의 최종적 심판에서 칭의를 박탈당할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믿음의 행위가 없이 '헛되이 믿으면' 최종적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이 탈락될 수 있다고 성경에 분명히 나온다고 주장했다.

"한국에서는 구원파를 이단으로 정죄하는 정통파 목사들이 사실상 구원파 복음을 설교하는 거예요. 한국에서는 장로교 개혁신학이 앞도적이거든! 개혁신학을 잘못 배워가지고 예정론의 의도, 바울이 예정론을 펼치는 intent(의도, 목적)를 살피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를 끝까지 신실하게 지켜주신다 라는 위안을 주기 위해서 그래요! 그런데 동시에 바울은 무엇을 경고해요? 헛되이 믿을 수 있다! 고전 15:2절에도 너희들 헛되이 믿을 수 있다! 그리스도 은혜에서 뒷걸음질치면 넘어질 수 있다! 어디서 그랬어요? 고전 10장 10절! 곳곳에 (신자들이 구원에서) 탈락의 위험 가능성을 경고하는데, 이 경고는 듣지 않고 ... 이 구원에서의 탈락의 가능성과 구원의 예정과 성도의 견인, 이 두개를 바울이 함께 펼치고 있는데, 이 두개를 논리적으로 reconcile(조합, 절충)하려고 하지 말고, 논리적으로 reconcile되는 것이 아니예요! "(김세윤 박사)

하나님의 최종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우리의 행위를 따라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김세윤 교수의 말도 성경에 있는 내용이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최후 심판대 앞에 모아 행위를 따라 양과 염소로 나누실 것이라고 했다. 요한계시록 20장에서 사도 요한도 최후의 백보좌 심판이 생명책에 기록된 행위를 따라 진행된다고 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10장에서 믿음이 약한 다른 형제를 시험에 들게 만드는 행동을 조심하라면서 모든 사람이 훗날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라고 했다. 바울도 행위를 따라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질 것임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김세윤 교수가 구원얻은 신자들의 이후의 행위를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최후 심판대 앞에 설 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틀린 내용이 아니다.

그러면 왜 믿음으로(세례를 받음으로) 칭의를 얻었을지라도 행위가 나빠(헛되이 믿어) 최후의 하나님의 심판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고 구원으로부터 탈락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김세윤 교수의 유보적 칭의론이 틀린 것일까? 그의 주장이 특히 개혁교회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세윤 교수의 유보적 칭의론이 아주 중요한 것, 즉 기독교의 핵심되는 내용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개혁교회에서 김세윤 교수의 구원론이 심각하게 거부되는 이유

김세윤 교수의 유보적 칭의론이 특히 개혁주의 교회에서 심각한 여겨지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칭의를 다시 잃을 수 있다는 것은, 대신 죄를 짊어지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그리스도인들에게서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가 완전히 떠났고, 형벌에서 영원히 해방된 재창조된 하나님 백성되었음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2>
처음 믿을 때 얻은 칭의를 다시 잃을 수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 뿌리심을 받은 신자에게 ‘하나님 백성의 인치심’으로 영구하게 임하신 성령의 증거를 무시하는 것이다.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 1:13)

3>
칭의를 잃고 지옥에 갈 수도 있다는 것은 믿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고, 다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새로운 하나님 백성으로 영원하게 간주되었음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4)

4>
칭의를 잃고 다시 심판에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은 새 언약의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최종적 심판대에 서는 성도를 위해 자기의 피로 친히 구원하신 백성임을 하나님 아버지께 증언하여 주신다는 약속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히 9:15)
 

성경 어디를 보아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어도 그 후의 행위 때문에 다시 의롭다하심을 잃고 지옥에 떨어질 수 있다는 분명한 경고는 없다. 그러나 김세윤 교수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손종하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불쌍하게 죽었다는 사실이 행위로 말미암은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모세도 실수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샀고, 결국 그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으니, 모세도 지옥에 떨어진 것인가?

제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예요. 자꾸 사람들이 제 책을 읽고 ‘김세윤이 그러는데 믿음 생활을 시시하게 하면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다고 한다.’고 하는데, 제가 하는 말입니까? 바울이 그렇게 말한다고 제가 자꾸 바울 서신을 읽어주잖아요. 제가 그렇게 말한다고 그러지 마세요. 바울이 그래요. 바울이 (우리가 잘못하면) 구원에서 탈락한다고 ... ‘너희들 이따위 짓하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이게 김세윤이 한 말입니까? 바울이 한 말입니다. 육신의 열매를 맺고 한다면 어쩐다? ‘하나님 나라 못 받는다!’ ... 제가 한 말입니까? 김세윤이가 성경 썼습니까? 여러분들이 아무리 김세윤을 사랑하고 존경해도 성경 쓴 사람이라고는 하지 마십시오. 바울이 쓴 것을 그냥 제가 대변하는 거예요. 그 엄연한 말씀을 약화시키려고 하지 말라 이겁니다.”(김세윤 교수)

김세윤 교수는 바울이 불의한 일을 행하는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하였으므로 구원받은 사람도 행위로 인해 다시 다시 지옥에 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바울이 정말 그런 뜻으로 한 말일까? 구원받은 후 불의한 일을 한 가지만 해도 지옥에 떨어진다면, 과연 천국에 그리스도인은 몇 명이나 될까? 몇 가지 이하의 불의한 일을 해야 다시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 것일까?

김세윤 교수처럼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사람은 절대로 장로교 신학교의 교수가 되면 안되는 것이었다. 김세윤 교수는 어서 속히 천주교 신부의 길로 들어서거나, 웨슬리안들 중에서 행위구원론을 강하게 믿는 사람들, 또는 알미니안들 속으로 들어가면 차라리 더 좋을 것이다. 그러면 개혁교회 측에서 더 이상 김세윤 교수를 이단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고통스러운 고민과 씨름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최종적 심판에서 중히 여겨지는 행위 

그러면 예수님, 사도 바울, 사도 요한이 공히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대에서 가장 중히 여겨지는 것이  행위라고 말씀한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종말의 최후 심판대에서 각 사람이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사람일지라도 행위에 의해 구원이 다시 평가된다는 뜻일까?

신자들의 변호인이시고,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이미 ‘하나님의 법정’에서 선언되었으니 이후 다시 행위로 심판에 이르게 되는 일은 없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문론 그리스도의 은혜와 무관한 자들은 행위를 따라 더 무거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악을 더욱 많이 도모한 그리스도와 무관한 자들은 행위를 따라 더 심한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맛 볼 것이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최후의 심판대에서 그리스도인들의 행위를 자세히 살펴보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행위를 따라 심판하고 저주하시기 위해서일까? 그런 차원에서 신자들의 행위를 살펴 보시는 것이 아니다. 칭찬하시고 상을 주시기 위해 신자들의 행위를 보시는 것이다. 얼마나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았는지, 복음을 위해 고난 당하는 삶을 얼마나 많이 감내하였는지 ... 등을 보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얻은 자가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하는 복음적인 삶을 살았으면, 하나님은 큰 상을 주신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구원파 같은 교인들의 구원 문제

김세윤 교수에게 심각한 고민을 준 ‘도저히 구원 받을 것 같지 않는 구원파 같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생각해 보고 마치도록 하자! 구원받았다는데 전혀 하나님 백성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뭘까? 그래도 구원받은 사람들일까? 이전에구원을 얻었었지만, 못된 행실 때문에 구원을 잃어버린 사람들인가? 김세윤 교수는 여기에서 크게 혼동하였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복음의 영광을 무너뜨리는 잘못된 행위구원론으로 기울어졌다. 

구원은 인간의 행위, 공로, 자질과 무관하게 얻어진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그리스도를 믿도록 부르심으로 구원이 임한다. 성령으로 역사하여 예수 믿도록 하시고, 그 사람이 예수 믿음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씻으신다. 의로우신 그리스도를 믿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믿는 자에게 전가된다.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받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의로운 하나님 백성으로 여겨진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8,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4)

아무 공로나 자격 없이 오직 은혜로 구원을 얻었으나, 구원을 얻고 난 후부터는 정말 구원받은 사람답게 변하기 시작한다. 구원받은 자에게 임하시는 성령이 그리스도의 피의 효력으로 구원받은 신자의 죄성을 치료하시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성령이 죄성을 다스리고 새 사람을 입게하시니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새 사람이 되기 위해 사람이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노력과 소원이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새 사람을 입게하시는 분은 오직 성령이다. 그래서 구원 받으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을 수는 없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김세윤 교수는 이 부분에서 성경 밖으로 벗어났다. 은혜로 구원받고 성령이 역사하니 새 사람이 되는 것인데, 인간이 자기 힘으로 계속 새 사람이 되어가야 십자가로 얻은 구원이 영구하게 정착되는 것으로 주장하였다. 결국 복음을 파괴하므로 이제 어쩔 수 없이 심판받을 자리로 끌려가고 있는 중이다. 차라리 김세윤 교수가 천주교나 알미니안들, 또는 행위구원을 강하게 믿는 어떤 웨슬리안 진영으로 가면 서로에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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