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쐬고 싶어 오늘은 집에서 좀 거리가 먼 맥도날드에 가서 몇 시간 동안 한글 성경과 영어 성경, 그리고 밀린 책들을 읽고 왔다. 나는 운전을 하면서 중요한 생각을 깊이하는 편이다. 그러다가 좋은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확신으로 이어지는 아이디어를 밀고 나가서 좋은 결과를 보았던 적이 많다.

나는 하나님이 어떤 사안에 대해 직통으로 주시는 아이디어나 메시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계시에 해당되고, 성경 66권과 함께 하나님의 계시가 종결되었기 때문이다. 진리의 말씀에 바탕을 두고 진행되는 우리의 기도, 사색, 묵상, 연구 활동에 성령의 조명이 이루어짐으로 자연스럽게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확신, 지혜, 소원 등이 형성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삶을 살게되는 것이 신약 시대의 신앙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건전한 은사주의자들은 지금 하나님이 직통으로 자기의 뜻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보여주신다고 한다. 성경의 권위에는 미치지 못하나 개인적이고 상대적인 예언, 즉 일상의 인생사나 목회 등에 관련된 구체적인 아이디어와 메시기를 하나님이 직접 주신다고 한다. 그것이 예언이며, 예언이 환상, 꿈, 방언과 통역 등으로 온다고 한다.

박영돈 교수의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1장에서 비슷한 내용을 보았다. 박 교수는 신약의 예언, 즉 고린도전서 등에서 설명되는 예언의 은사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순간적으로 마음에 떠오르게 하는 내용’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고린도 교회에 있었던 예언은 덕을 세우고 권면하며 위로하기 위해 또는 숨은 죄를 드러내기 위해 성령이 마음에 순간적으로 떠오르게 하신 내용을 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박영돈 교수,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36 페이지)

예언 은사자의 마음에 무엇을 순간적으로 부어주시고, 예언자가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신약의 예언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의 예언이론에 따르자면, 지금 한국 교회에 그런 예언자들이 많다. 그 중의 대표적인 사람은 바로 새물결 플러스의 대표 김요한 목사이다. 그는 태중의 아이의 성별에 궁금증, 이사 문제로 고민할 때 하나님 자신에게 직접 말씀해 주신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예를 들면, 이효재 씨가 봉담이라는 곳으로 이사 할 것을 고민하다가 김요한 목사를 만났는데, 김요한 목사가 “하나님이 봉담은 아니라고 하십니다”라고 했다. 하나님이 김요한의 마음에 순간적으로 그런 메시지를 부어주시니까 김요한은 그것을 해석하여 이효재 씨에게 전했을 것이다.(이효재 씨의 페이스 북, 12월 5일). 김요한의 책 <지렁이의 기도>에도 이런 유형의 예언이 많다고 하여 읽어보았다. 실제로 이런 유형의 예언이 많이 있었다. 114 페이지를 보니, 중학교 여자 동창이 2001년에 김요한을 찾아왔다고 했다. 김요한은 그녀과 대화하다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나님이 이 집사님 남편이 크게 아플 거랍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집을 서울대 부근의 관악산 주변으로 옮기는 게 좋다고 해요. 나중에 남편이 크게 아프면 그곳에서 생활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거랍니다."(김요한, <지렁이의 기도>, 114 페이지)

김요한은 뭔가가 자기 마음에 순간적으로 떠올랐으므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박영돈 교수가 말하는 신약의 예언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박영돈 교수가 현대의 예언 은사자들의 마음에 떠오르는 것과 그것을 말하는 예언자들의 예언이 모두 옳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해석하는 인간이 오류를 범할 수 있으므로 예언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다고 했다. 신약의 예언은 인간의 오류가 개입된 인간의 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바울 사도는 예언을 사모하라고 했다. 자칭 예언자들은 주로 이 말씀에 근거하여 예언의 은사가 중요함을 역설한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에 나타났던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과 동등한 권위를 가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류가 있는 인간의 말이었다.”(박영돈 교수,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36 페이지)

“성령이 떠오르게 하신 인상과 메시지는 인간이 잘못 이해하고 해석하여 잘못 전달 수 있었다. 그렇기에 바울은 철저한 검증과 분별을 명한 것이다.”(박영돈 교수,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36 페이지)

“과거 미국의 한 교회에서 열린 집회에서 강사가 회중 가운데 한 사람의 이름과 그의 사정을정확하게 말하면서 주님이 그를 치유하기 원하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 복음 사역자는 자신도 전혀 예장치 못했던 일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그렇게 특별한 방식으로 일하실 수 있는 가능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박영돈 교수,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34 페이지)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마태복음 28장을 보아라!”라는 메시지로 해석되어야 할 무엇을 예언 은사자의 마음에 부어주셨는데, 그 은사자는 “마태복음 29장을 보아라!”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봉담으로 이사 가지 말아야 한다!”라고 해석되어야 할 무엇을 김요한 목사의 마음에 떠오르게 했는데, 김요한 목사는 “봉담은 살기 좋은 곳이 아니다!”라고 해석하여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은사자의 마음에 떠오르게 한 것을 해석하는 인간이 오류를 범하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 교수는 다음과 같이 신약의 예언을 분별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바울은 한 사람의 말만 듣지 말고 두세 사람이 예언하게 하고, 다른 이들은 그 말을 분별하라고 했다(고전 14:29). 이 말은 예언의 진정성을 검증해 보고 잘 분별하여 참과 거짓을 가려내라는 말이다. 그들의 예언은 사도들의 가르침과 성경의 말씀에 의해 항상 점검받아야 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보다 열등한 권위를 가진 것이었다.”(박영돈 교수,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36 페이지)

 

그런데 나는 고민이 생겼다. 깊이 생각하면서 운전하고 오는데, 갑자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순식간에 마음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박영돈 교수가 고신과 한국 교회의 신앙에 너무 많은 악영향을 미쳤다! 이제 더 이상 고신에서 가르치지 못하도록 여론이 형성될 때까지 계속해서 개혁신학에서 벗어나는 박영돈 교수의 사상을 지적하고 드러내기를 하나님이 원하신다!”

여기에 대해서 많은 분들과 토론하고 싶다. 박영돈 교수님의 가르침대로 신약의 예언을 이해하는 분들이 다음의 질문에 대답해 주기 바란다.

1>
박영돈 교수는 신약의 예언이 ‘성령이 마음에 순간적으로 떠오르게 하신 내용’이라고 가르치셨다. 그러면 운전할 때 내 마음에 떠오른 박 교수에 대한 특이한 내용은 성령이 순간적으로 마음에 떠오르게 하신 것인가? 아닌가? 그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신약시대의 예언인가? 아닌가?

2>
박영돈 교수는 예언에 대해 분별해야 한다고 했다. 은사자들이 하나님이 마음에 부어주신 것을 해석하여 전할 때 그 사람의 오류가 개입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 마음에 떠오른 것을 고신과 한국 교회에 악영향을 많이 미친 박영돈 교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니 계속 가르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는 나의 해석과 적용을 성경 66권에 비추어서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은 분별하여 주기 바란다. 과연 그것은 하나님이 나의 마음에 부어주신 것일까? 하나님이 나에게 부어주신 것을 나는 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했을까?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