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혜토론 > 박영돈
박영돈 교수에 대해 순간적으로 떠오른 내용을 분별해 주십시오.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1.19  11:25:51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바람을 쐬고 싶어 오늘은 집에서 좀 거리가 먼 맥도날드에 가서 몇 시간 동안 한글 성경과 영어 성경, 그리고 밀린 책들을 읽고 왔다. 나는 운전을 하면서 중요한 생각을 깊이하는 편이다. 그러다가 좋은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확신으로 이어지는 아이디어를 밀고 나가서 좋은 결과를 보았던 적이 많다.

나는 하나님이 어떤 사안에 대해 직통으로 주시는 아이디어나 메시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계시에 해당되고, 성경 66권과 함께 하나님의 계시가 종결되었기 때문이다. 진리의 말씀에 바탕을 두고 진행되는 우리의 기도, 사색, 묵상, 연구 활동에 성령의 조명이 이루어짐으로 자연스럽게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확신, 지혜, 소원 등이 형성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삶을 살게되는 것이 신약 시대의 신앙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건전한 은사주의자들은 지금 하나님이 직통으로 자기의 뜻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보여주신다고 한다. 성경의 권위에는 미치지 못하나 개인적이고 상대적인 예언, 즉 일상의 인생사나 목회 등에 관련된 구체적인 아이디어와 메시기를 하나님이 직접 주신다고 한다. 그것이 예언이며, 예언이 환상, 꿈, 방언과 통역 등으로 온다고 한다.

박영돈 교수의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1장에서 비슷한 내용을 보았다. 박 교수는 신약의 예언, 즉 고린도전서 등에서 설명되는 예언의 은사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순간적으로 마음에 떠오르게 하는 내용’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고린도 교회에 있었던 예언은 덕을 세우고 권면하며 위로하기 위해 또는 숨은 죄를 드러내기 위해 성령이 마음에 순간적으로 떠오르게 하신 내용을 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박영돈 교수,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36 페이지)

예언 은사자의 마음에 무엇을 순간적으로 부어주시고, 예언자가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신약의 예언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의 예언이론에 따르자면, 지금 한국 교회에 그런 예언자들이 많다. 그 중의 대표적인 사람은 바로 새물결 플러스의 대표 김요한 목사이다. 그는 태중의 아이의 성별에 궁금증, 이사 문제로 고민할 때 하나님 자신에게 직접 말씀해 주신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예를 들면, 이효재 씨가 봉담이라는 곳으로 이사 할 것을 고민하다가 김요한 목사를 만났는데, 김요한 목사가 “하나님이 봉담은 아니라고 하십니다”라고 했다. 하나님이 김요한의 마음에 순간적으로 그런 메시지를 부어주시니까 김요한은 그것을 해석하여 이효재 씨에게 전했을 것이다.(이효재 씨의 페이스 북, 12월 5일). 김요한의 책 <지렁이의 기도>에도 이런 유형의 예언이 많다고 하여 읽어보았다. 실제로 이런 유형의 예언이 많이 있었다. 114 페이지를 보니, 중학교 여자 동창이 2001년에 김요한을 찾아왔다고 했다. 김요한은 그녀과 대화하다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나님이 이 집사님 남편이 크게 아플 거랍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집을 서울대 부근의 관악산 주변으로 옮기는 게 좋다고 해요. 나중에 남편이 크게 아프면 그곳에서 생활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거랍니다."(김요한, <지렁이의 기도>, 114 페이지)

김요한은 뭔가가 자기 마음에 순간적으로 떠올랐으므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박영돈 교수가 말하는 신약의 예언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박영돈 교수가 현대의 예언 은사자들의 마음에 떠오르는 것과 그것을 말하는 예언자들의 예언이 모두 옳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해석하는 인간이 오류를 범할 수 있으므로 예언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다고 했다. 신약의 예언은 인간의 오류가 개입된 인간의 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바울 사도는 예언을 사모하라고 했다. 자칭 예언자들은 주로 이 말씀에 근거하여 예언의 은사가 중요함을 역설한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에 나타났던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과 동등한 권위를 가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류가 있는 인간의 말이었다.”(박영돈 교수,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36 페이지)

“성령이 떠오르게 하신 인상과 메시지는 인간이 잘못 이해하고 해석하여 잘못 전달 수 있었다. 그렇기에 바울은 철저한 검증과 분별을 명한 것이다.”(박영돈 교수,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36 페이지)

“과거 미국의 한 교회에서 열린 집회에서 강사가 회중 가운데 한 사람의 이름과 그의 사정을정확하게 말하면서 주님이 그를 치유하기 원하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 복음 사역자는 자신도 전혀 예장치 못했던 일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그렇게 특별한 방식으로 일하실 수 있는 가능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박영돈 교수,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34 페이지)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마태복음 28장을 보아라!”라는 메시지로 해석되어야 할 무엇을 예언 은사자의 마음에 부어주셨는데, 그 은사자는 “마태복음 29장을 보아라!”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봉담으로 이사 가지 말아야 한다!”라고 해석되어야 할 무엇을 김요한 목사의 마음에 떠오르게 했는데, 김요한 목사는 “봉담은 살기 좋은 곳이 아니다!”라고 해석하여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은사자의 마음에 떠오르게 한 것을 해석하는 인간이 오류를 범하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 교수는 다음과 같이 신약의 예언을 분별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바울은 한 사람의 말만 듣지 말고 두세 사람이 예언하게 하고, 다른 이들은 그 말을 분별하라고 했다(고전 14:29). 이 말은 예언의 진정성을 검증해 보고 잘 분별하여 참과 거짓을 가려내라는 말이다. 그들의 예언은 사도들의 가르침과 성경의 말씀에 의해 항상 점검받아야 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보다 열등한 권위를 가진 것이었다.”(박영돈 교수,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36 페이지)

 

그런데 나는 고민이 생겼다. 깊이 생각하면서 운전하고 오는데, 갑자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순식간에 마음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박영돈 교수가 고신과 한국 교회의 신앙에 너무 많은 악영향을 미쳤다! 이제 더 이상 고신에서 가르치지 못하도록 여론이 형성될 때까지 계속해서 개혁신학에서 벗어나는 박영돈 교수의 사상을 지적하고 드러내기를 하나님이 원하신다!”

여기에 대해서 많은 분들과 토론하고 싶다. 박영돈 교수님의 가르침대로 신약의 예언을 이해하는 분들이 다음의 질문에 대답해 주기 바란다.

1>
박영돈 교수는 신약의 예언이 ‘성령이 마음에 순간적으로 떠오르게 하신 내용’이라고 가르치셨다. 그러면 운전할 때 내 마음에 떠오른 박 교수에 대한 특이한 내용은 성령이 순간적으로 마음에 떠오르게 하신 것인가? 아닌가? 그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신약시대의 예언인가? 아닌가?

2>
박영돈 교수는 예언에 대해 분별해야 한다고 했다. 은사자들이 하나님이 마음에 부어주신 것을 해석하여 전할 때 그 사람의 오류가 개입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 마음에 떠오른 것을 고신과 한국 교회에 악영향을 많이 미친 박영돈 교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니 계속 가르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는 나의 해석과 적용을 성경 66권에 비추어서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은 분별하여 주기 바란다. 과연 그것은 하나님이 나의 마음에 부어주신 것일까? 하나님이 나에게 부어주신 것을 나는 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했을까?  

[관련기사]

정이철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기사 댓글 3
전체보기
  • STEPHEN 2018-01-19 13:40:22

    구약시대 때에는 하나님말씀을 잘못 전하면 죽음을 면치 못했다 (신18:20-22). 하나님께서 연약한 인간을 사용하셔서, 우리에게 성경을 기록하게(벧후1:20,21) 하셨고, 성경은 무오하며(시19:7) 오류가 불가함은 역사적 개혁주의 신앙의 핵심이다. 성경의 모오함은, 하나님께서 말씀의 저자이시기 때문이며, 인간의 연약함을 뛰어넘는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는 초자연적인 기적인 것이다. 지금도,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특정인을 통해 예언/계시를 하신다면, 성경을 오류없이 기록하신것처럼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오류가 있을수 없을것이다. 신약은 우리 마음가운데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충만하기를 권면한다(골3:16). 그리하면 얻는 유익은, 우리의 양심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연단되어져, 베드로가 권면하는것처럼 "선한 양심"을 가질수있다(벧전3:16). 정목사님의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내용"은, 말씀가운데 거하는 사람들에게, 말씀으로 연단된 양심(의식)에서 나오는, 말씀에 근거한 생각이라고 생각됩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김정희 2018-01-19 14:04:26

      떠오르는 생각의 출처는 1. 성령님, 2. 자기 생각, 3. 미혹의 영이 있다. 그래서 분별이 필요한 것이다. 김요한이나 정이철 마음 속에 떠오른 생각 또한 3가지 중 하나이다. 그런데 만약 김요한에게 떠오른 생각이 성령님이 주셨던 것인데 그것을 정이철이 "그것은 미혹의 영이 준 것이다"라고 말하면 대단히 성령님을 근심시킨 것이 된다. 반대로 정이철 마음 속에 떠오른 생각이 미혹의 영이 준 것인데, 그것을 김요한이 "그것은 성령님이 준 것이다"라고 말하면 그것 또한 대단히 위험한 것이다. 그러니 항상 성령의 예언이나 감동을 받은 것 같아서 사람들에게 그 예언을 전하고자 하는 자들은 자신의 예언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을 믿고 겸손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전해야 하며 자신의 감동이 절대적이라고 말해서는 절대로 안되는 것이다. 말하는 이나 듣는 이나 이런 큰 전제 하에서 자신이 받은 감동을 절대시 하지 말고 그저 참고 정도의 수준에서만 예언을 나누어야 하는 것이지, 구약의 선지자처럼 하나님의 절대적인 계시나 말씀인 것처럼 말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니 신약에서의 예언의 은사는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가질 수 없다. 그것은 항상 자신의 생각이나 미혹의 영의 것이 섞일 수 있다는 가정 하에 겸손과 조심하고 경계하는 마음으로 단지 참고할 정도의 목적으로만 나누어야지, 마치 점쟁이처럼 '이거해라', '저거해라'고 명령하는 것은 위험하다. 또한 예언의 은사가 완전히 사라졌으니 은사 자체를 모조리 무시하고 마귀의 것이라고 정죄하는 자세 또한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자신이 보기에 잘못된 것 같으나 성령님의 감동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김요한에 대해서는 이렇게 충고하면 될 것 같다. "마치 선지자나 점쟁이 처럼 점치듯이 말하는 자세는 위험한 일이오! 그것은 자신을 높이는 것이며 듣는 사람들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놓게하는 것이며, 듣는 사람 마음 속에 계신 성령님이 판단하실 여지를 막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오!" "앞으로 예언적인 감동이 올 때에는 나에게 떠오른 생각은 이러한데 그것이 성령님의 감동일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성도님이 그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감동을 주십니다. 물론 성도님이 기도해보시고 잘 분별해 보시길 바랍니다. 저의 감동이 틀릴 수도 있으니까요.." 이런 자세의 변화가 필요하다. 또한 정이철은 자신에게 떠오는 생각이 자신의 생각이나 미혹이 영이 준 것일 수도 있으니 함부로 그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 전에 먼저 기도해보고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 사랑의 동기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드러내고 남에게 내가 옳다는 것을 인정 받기 위함인지 동기의 분별부터 한 이후에 그래도 그 생각이 성령님이 주신 생각 같거든, "내게 주신 성령님의 생각은 박영돈 교수가 잘못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근거는 내가 받은 생각이 절대적으로 성령님이 주신 예언이기 때문이 아니라, 성경에 비추어 봤을 때 이러이러해서 입니다. 물론 성령론에 관하여 많은 다른 관점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신학의 절대성은 없기에 그분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틀렸다고 볼 수는 없으나 이런 부분은 조심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라고 말하면 된다. 사랑, 겸손, 조심, 성경. 이런 마음의 기준으로 하면 된다.신고 | 수정 | 삭제

      • 바른믿음 2018-01-19 14:39:47

        김정희 님에게
        여러 명의 이름으로 댓글을 다시는 행위는 부당하고 옳지 않습니다.
        앞으로 하나의 이름으로만 댓글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지켜지지 않을 시에는 댓글 쓰는 기능을 차단하겠습니다신고 | 수정 | 삭제

        바른믿음
        최근 3개월 동안의 중요 기사 10
        후원방법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118 Ann Arbor-Saline rd, Ann Arbor, MI 48108(USA)
        대표(발행,편집):정이철(734 678 7133, cantoncrc@gmail.com)  |  편집자문: 정태윤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이철
        Copyright © 2018 바른믿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