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신 총회의 원로 박영선 목사님이 이전에 두날개를 계획적으로 옹호하였으므로 나는 굉장히 실망했었다. 그런데 오늘 한 폐친이 올린 글 속에서 박영선 목사님의 구원에 관한 탁월한 insight가 담긴 글을 보았다.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는 하나님에 대한 감각 유무에 있다. 불신자가 하나님을 모독하고 외면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악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알아보는 영적 감각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은, 얼마만큼 윤리적인 삶을 사느냐가 아니라 이 감각이 생성됐느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이어야 한다.”(박영선 목사, 구원의 확신)

박영선 목사가 말한 ‘하나님을 알아보는 영적 감각’이 구원을 설명하는 가장 좋은 기준이라고 생각된다. 누가 구원받았는지 못 받았는지를 이야기할 때, 박영선 목사의 말을 넘어서 더 자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 이상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은 반드시 함정에 빠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영광을 파괴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박영선 목사가 말한 것, ‘하나님을 알아보는 영적 감각’ 이상의 그 무엇으로 구원을 이야기하려고 하면 결국 어디까지 가게 될까? 삶과 행동에서 얼마나 성화가 일어나는가를 가지고 구원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회개, 선행이 구원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박영선 목사(남포교회 원로)

누가 이전과 확연하게 다른 삶을 살고 있으면 구원받았다고 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했다고 할 것이다. 이전에 즐기던 죄를 범하는 빈도가 확연하게 줄었으면 구원받았다고 할 것이고, 크게 줄지 않았으면 구원 못 받은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구원에 대한 이런 대화는 성경의 가르침을 파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 보기에 많이 변화된 사람이라고 하나님 보기에도 꼭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의 눈에 드러나는 죄의 빈도수가 줄었다고 해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전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호수에 떠 있는 백조의 발이 수면 아래에서 쉬지 않고 발발거리는 것도 보지 못한다. 백조의 속성도 모르는 인간이 다른 죄악된 인간의 속성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심장과 폐부까지도 꿰뚫어 보신다. 사람이 보기에는 간음과 무관한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지독한 간음죄를 범하고 있을 수 있다.

구원받은 자에게서 일어나는 행위의 변화와 거룩한 삶의 열매를 우습게 보자는 것이 아니다. 구원 이후의 삶의 열매를 말하면서 측량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얻은 구원의 은혜에 티끌만큼이라도 위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뭐니뭐니해도 ‘율법의 마침’(롬 10:4)이 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칭의는 믿는 자에게 완전한 구원을 보장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 5:1)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롬 5:11)

성화가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믿음으로 칭의를 얻은 신자에게 보장된 ‘하나님과의 화평’을 없수이 여기고 흔들고 의심하게 만드는 것도 이단사상이다. 그것은 춘천의 김성로 목사가 부활을 왕창 강조하면서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를 무너뜨리는 것과 같다.

성화를 강조하면 성화가 더 많아지는가? 성화를 덜 강조하면 성화가 줄어드는가? 그리스도의 새 생명을 받은 사람에게서는 반드시 성화가 나타나게 되어있다. 성화는 십자가를 통해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새 생명의 꿈틀거림이다. 지렁지도 죽지 않았으면 꿈지락거린다. 하물려 십자가의 은혜로 얻은 예수 그리스도의 새 생명이 어찌 인생의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까? 성령이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죄성을 치료하신는데, 어찌 삶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사람 속에 그리스도로부터 얻은 새 생명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애꿎게 성화를 타박하는가? 성화는 설명할 문제이지 그런 식으로 강조할 문제가 처음부터 아니었다. 강조한다고 성화가 더 많아지고 강력해진다고 하던가? 성화는 복음의 원리의 중요한 것 하나로서 설명되어야 한다. 성령의 중생의 역사로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성화이다. 성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성령의 중생케하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박영돈 교수는 생각이 여기에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신자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고 성화가 없으면 자신의 구원을 점검하라는 식으로 말하였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상태이므로 성화가 나타나지 않는 사람들에게 "성화가 없는 자신의 구원을 점검하라"는 경고가 무슨 소용일까? 그러면 그들이 구원을 점검하고 성화를 일으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이런 식의 성화 강조는 처음부터 그리스도의 복음의 원리를 파괴하는 발상이었다.

박영돈 교수는 왜 그런 성화의 함정에 빠졌을까? 김세윤 교수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1차 칭의를 받아도 종말의 최종적 2차 칭의를 받지 못하면 지옥에 갈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하자 휘말렸던 것 같다. 김세윤 교수의 ‘유보적 칭의’ 주장은 성경과 종교개혁 사상을 무위로 돌리는 매우 중대한 이단사상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갈팡질팡했다. 왜냐하면 김세윤 교수가 워낙 유명해서 그의 주장이 이단적인 내용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세윤 교수의 유보적 칭의론 바람이 불어 한국 교회가 휘둘릴 때, 박영돈 교수는 평소 스타일대로 중간을 향하여 내질렀다. 김세윤 교수의 이론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도 않았고 전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중간노선을 지향하면서 성화를 특별히 강조했다. 복음의 원리 안에서 적절하게 성화를 설명하는 수준을 넘기 시작했고, 점점 돌이킬 수 없는 말이 많아졌고, 그러다가 유대회복, 신사도, 행위구원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단에게 이용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성화를 중시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성화를 강조한다고 성화되는 것은 아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새 생명을 주고, 예수 그리스도의 새 생명을 얻은 자에게서 일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성화는 절로 나타난다. 네로 황제의 핍박이 다시 일어나고, 일제의 핍박이 다시 도래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새 생명을 가진 사람에게는 성화가 일어나다. 새 생명을 얻은 사람에게 성화를 보이지 말라고 아무리 빌어도 성화를 막을 길은 없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성화를 일으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성경적인 복음선포이다. 성경의 복음이 선포되면 자동적으로 성령이 듣는 사람들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역사하시어 그리스도를 믿게하신다. 그리스도를 믿게하시어 새 생명을 주시고, 또한 성령께서 그 사람의 죄성을 치료하시니 성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온전한 말씀선포와 정상적인 예배와 기도가 있으면 성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빌어도 성화는 반드시 나타난다. 성령의 역사가 있는 사람이 성화를 감추는 유일한 길은 자신의 신앙을 숨기는 연기 뿐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이고 구원의 영광이다. 

그러나 다음의 박영돈 교수의 말을 보면 이러한 복음의 원리가 느껴지지 않는다.

"거룩한 두려움 없이 확신으로만 충만한 사람, 거룩하게 살지 않는데도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확신에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이는 망할 사람입니다. 마귀는 거짓 구원을 받은 사람들의 확신을 전혀 흔들거나 공격하지 않고 더욱 강화시킵니다. 그래서 자기기만에 빠져 확실하게 망하게 합니다. 거룩하게 살지 않으면서 믿었기에 구원받았다고 굳게 확신하는 것은 마귀가 준 거짓 확신입니다.

지금 한국교회에 마귀적으로 왜곡된 구원의 복음을 통해 마귀가 심어준 거짓 구원의 확신에 사로잡혀 있는 교인들이 많습니다. 이런 이들은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며 자신의 구원의 여부를 염려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확고히 하려는 경각심이 없습니다."(박영돈 교수, 값싼 은혜의 복음은 종교개혁의 가르침을 왜곡한 것)

“주님께서도 산상수훈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가 주를 본다고 했습니다. 죄에서 떠나 순결하고 거룩하지 못한 이는 주님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거룩함이 없어도 믿기만 하면 무조건 구원받는다는 생각은 성경말씀에서 완전히 벗어날 뿐 아니라 종교개혁의 가르침을 완전히 왜곡한 것입니다.”(박영돈 교수, 구원파의 거짓 구원론을 반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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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