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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익(대전, 엘로힘교회), 예수와 마리아는 성관계없는 부부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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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19  12: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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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전 엘로힘교회의 권오익 목사에 대한 긴급한 질문과 요청이 있었다. 권오익 목사에 대한 자료를 찾다 <종교와 진리>에 실린 권오익 목사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종교와 진리>의 기사 "대전 엘로힘교회 권오익 목사 예수도 둘 구원도 둘 천국도 둘"(12.26.2017)에 의하면 권오익 목사는 예장 백석의 대전노회 소속한 목회자이고, 대전신학교, 백석대학교, 서울 개혁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였다고 한다. 대전 엘로힘 교회의 홈 페이지에서도 권오익 목사를소개하는 동일한 내용을 확인하였다.  

   
 대전 엘로힘 교회 홈페이지 캡쳐(http://www.elohimlove.org/)

 

예수님과 마리아는 부부관계

<종교와 진리>의 기사에 의하면, 권오익 목사는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마 19:12)를 중심으로 다음과 같이 설교하였다.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를 참 사랑했다.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님의 관계는 어떤 관계였을까? 나는 예수님의 애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 그러느냐 하면 예수님이 심문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을 때 그 시체를 만질 수 있는 사람은 유가족뿐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그 십자가 밑에 누가 있었는가? 첫 번째가 막달라 마리아라고 나온다. 마치 유가족의 대표 같다. 예수님의 어머니도 뒤에 있었다. 순서적으로도 그렇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첫 번째 인물이 바로 막달라 마리아가 나오는데, 이는 사복음서에 똑 같이 나온다.

사람은 임종 때 아무나에게 안 보여준다. 이는 누가 보아도 친인척인 것을 알 수 있다. 누가 봐도 막달라 마리아는 아주 가까운 사람으로 나온다. 가족 중에서도 가장 앞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바로 부인이다. 어머니보다도 더 가까운 사람이 바로 부인이다. 예수님이 죽을 때 십자가에 가장 가까이 서 있는 사람이 마리아였다. 로마법에서는 그 자리가 바로 부인의 자리였다. 그래서 다빈치코드가 나온 것이다”(권오익 목사)

권오익 목사가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가 실질적 부부관계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비성경적인 내용이다. 막달라 마리아가 십자가 상에 고난당하는 예수님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이유 등으로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가 실질적 부부였다고 추정하는 것은 언급하거나 반박할 가치도 없는 내용이다. 기독교 신앙을 허무는 이런 악독한 주장은 사탄의 영지주의 거짓 복음서 <유다복음> 등에서 일찍부터 나타났던 허무맹랑한 내용이다.   

“제자들도 누가 봐도 부인같은 느낌으로 성경을 기록했다. 마 27:6을 보면, 안식후 첫 날에도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처음 찾아갔다. 가장 먼저 달려갔다. 예수님이 부활하고 난 후에도 마리아가 옆에 있었다. 그래서 마리아는 예수님의 부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중략) 법적으로 보면 십자가상에 있을 때 가장 앞의 자리가 부인의 자리이다. 예수님이 가 계신 곳에는 항상 막달라 마리아가 옆에 있었다. 그 자리는 부인의 자리였다. 제자들도 전부 다 그렇게 기록했다.”(권오익 목사)

성경 기록자들이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부인이라는 심정을 가지고 성경을 기록했다는 것은 권오익 목사의 망상일 뿐이다. 정상적인 성경이해를 가진 그 어떤 신학자들이 동의할 수 없는 한심한 내용이다. 이런 내용을 공공연하게 설교 중에 언급하는 사람이 계속 목회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스러운 일이다. 

“본문에 보면, 태어날 때부터 고자가 있고, 스스로 된 고자가 있고, 천국의 고자가 있다. 아담과 하와의 결합은 육체적인 결합이 아니었다. 예수님과 교회의 예표였다. 일반적인 부부가 아니다. 마 19:3을 보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바리새인들이 사람이 무슨 연고로든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은 일인가? 묻는다. 이들의 속셈은 사람이 부부가 되면 동침을 해야 한다. 그것이 속궁합이다. 속궁합이 맞지 않으면 여자를 버려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예수님이 그 속셈을 아셨던 것이다. 그러니까 속궁합이 맞지 않으면 버려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라는 속셈을 가지고 시험을 한 것이다. "(권오익 목사)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무슨 연고로든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은 일인가?"라는 질문이 "성적인 궁합이 맞지 않다는 이유로 아내를 버리는 것이 가합니까?"라고 물었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도 도무지 언급할 가치가 없는 내용이다. 아담과 하와와 성적인 결합과 무관한 부부였다고 가르치는 내용은 해괴하고 황당하여 더 이상 언급하고나 논의할 가치도 없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을 설교 중에 언급하는 사람이 예장 백석 총회에 속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들이 보기에 예수님의 부인이 막달라 마리아인데, 3년 동안 붙어 있으면서도 아이가 없다. 그래서 정밀조사를 한 것이다. 합방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궁금한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이 남자 구실을 못한 것으로 본 것이다. 남편의 의무를 다 하지 못한 것으로 보았다. 그 의무가 바로 동침이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합방을 하지 않으면 사단이 틈탄다. 그래서 분방하지 말라고 했다. 유대인들은 동침을 하고 나서 결혼을 한다. 속궁합이 맞아야 결혼을 한다. 그것이 중요했다. 바리새인들이 보기에 예수님과 마리아가 3년을 같이 다녔는데도 아이가 없으니 남자 구실을 못 한다고 따지는 것이다.”(권오익 목사)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과 함께 한지 3년이 지났는데도 아이가 없어서 바리새인들이 조사를 하였고 예수님에게 따졌다는 권오익 목사의 주장은 이단성 논쟁의 대상도 되지 못하는 저질스러운 말이다. 권오익 목사의 저질스럽고 추잡스러운 말들에 대해 더 이상 비판할 가치를 느끼지 못함으므로 <종교와 진리> 기자의 녹취 내용을 그대로 소개하고자 한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했는데 연고가 없이 버릴 수 있는가? 연고가 없이 동침하지 않을 수 있는가? 율법적으로 맞지 않다고 퍼부은 것이다. 당신은 남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아담과 하와 얘기를 한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관계는 육체와 관계가 아니라 영적인 부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창세기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따먹기 전에는 영적인 부부였지, 육적인 부부가 아니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왜 동침을 하지 않는지 설명을 해 주신다. 태어날 때부터 고자가 있고, 스스로 된 고자가 있고, 천국의 고자가 있다는 것이다. 시험하는 것인 줄 알았던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의 자리는 영적인 신부의 자리이다. 막달라 마리아를 아내의 자리에 두고도 육체적인 결합은 한 번도 없었다. 의법적으로도 부부관계를 6개월 이상 하지 않으면 이혼감이다. 의무를 다 하지 않으니 바리새인들이 찾아온 것이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예수님은 천국을 위해서 고자가 된 분이다. 만약 예수님이 마리아와 육체적인 관계를 갖게 되면 하나님의 신이 떠나 부활을 할 수 없다. 섞이면 안 된다. 무동침이다. 예수님은 계획적으로 천국을 위한 고자가 되셨다. 마리아의 자리는 제자들도 다 알고 있었다.”

“다말이 씨를 못 얻어서 시아버지의 씨를 훔친다. 이는 예수님의 씨를 갖는 것이다. 육적인 것이 아니다. 구약은 남편과 아내, 신약은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되어 있다. 예수님의 신부인데 막달라 마리아의 자리는 영적인 신부의 자리였다.”

“주님은 천국을 위한 고자이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큰 일을 이루기 위해서 마리아와 그런 육체적인 관계를 갖지 않으신 것이다. 무관계였다.”

“예수님은 이 땅의 신부가 아닌 하늘나라의 신부로 대접했다. 영적인 사랑이었다. 천국에는 결혼이라는 것이 없다.”

“아담과 하와와 예수님과 마리아와 다른 것은 우리 예수님은 마리아는 건들지 않았다. 동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님도 얼마든지 동침할 수 있었으나 시험에 들지 않았다. 어떤 시험에 들지라도 죄를 짓지 않았다.”

“바리새인들은 상식적으로 3년 동안 같이 있었는데도 아이가 없으니 이유를 들어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권오익 목사가 담임하고 있는 대전의 엘로힘 교회 모습

 

세 명의 수호천사가 있다! 사명이 클수록 많다!

<종교와 진리>의 기사에 의하면, 권오익 목사는 요한계시록 8:3을 본문으로 다음과 같이 설교하였다. 

“천사들은 그룹들과 스랍들이 있는데, 하는 일이 다르다. 그룹들은 온 지구에 일어나는 일들을 자세히 본다. 하나님을 지킨다. 스랍은 예배를 주관하는 천사이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는 스랍 천사들이 우리들의 기도를 가지고 하늘로 올라간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늘나라에 올라가는 향이 된다. 그 향은 천사의 손길을 통해 하늘 보좌에 올라간다. 우리가 기도하면 바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천사들이 받아 하늘 보좌로 올라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바로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천사의 손길을 통해 하늘에 올라간다. 그런데 천사들이 받지 않는 기도들이 있다. 그것은 향을 잘못 피웠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향을 받으면 불로 응답을 주신다. 스랍 천사들은 기도를 받아 하나님께 가져간다.”

“기도는 향이 좋아야 한다. 그런데 스랍들이 좋아하는 향이 있다. 그것이 유향이다. 예수님의 보혈을 의미한다.”

“사명이 크면 클수록 수호천사가 많이 붙어 있다. 나는 세 명의 수호 천사가 항상 함께 한다. 사명이 적고 기도를 부족하게 하면 애기 천사가 있다.”

“천사가 뭔지 알면 기도 응답이 빠르다.”

“천사는 굉장한 능력을 갖고 있다. 내 주변의 천사들도 굉장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권오익 목사의 사명이 클 수록 수호천사가 많이 붙어 다니고, 권오익 목사 자신에게 세 명의 수호천사가 따라 다닌다는 말은 전혀 객관적 근거를 찾을 수 없는 몽상적인 주장이다. 기도의 향이 좋아야 하고, 스랍들이 좋아하는 향이 있다는 말 또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다. 

   
권오익 목사가 빈야드 거짓 영성에 심취하여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사진

 

예수도 둘, 구원도 둘, 천국도 둘

<종교와 진리>의 기사에 의하면 권오익 목사는 이사야 40:9-10을 본문으로 다음과 같이 설교하였다. 

“엘리야는 세례요한이다. 그리스도는 예수님이다. 세례를 주는 선지자는 모세이다. 내가 전하는 말씀은 영적인 말씀이다. 놓치면 무슨 소리인지 모른다. 일반 교회에서 못 듣는다. 그래서 변화산 상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을 만나러 내려왔다. 이 세 사람의 사역은 구별되지 않았다. 이 세 사람은 이사야 40장의 예언을 이루어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당시의 사람들은 구분이 안돼 혼돈스러웠다."(권오익 목사)

자신이 전하는 내용은 영적인 말씀이고 다른 교회에서는 들을 수 없는 내용이라는 권오익 목사의 주장은 스스로 자신이 사이비 임을 밝히는 내용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성경의 내용을 일반적인 다수의 사람들은 그 의미를 해석할 수가 없고, 자신과 같은 특별한 사람만이 영적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성경의 대부분의 내용은 성령의 도우심 안에서 보편적 이해력과 상식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이해할 있도록 구성되었다. 자신만이 가르칠 수 있는 영적인 내용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황당하고 허무맹랑한 내용이며, 사이비 성을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하는 말이다. 권오익 목사의 황당한 설교 내용을 더 논평할 가치가 없으므로 <종교와 진리>가 녹취한 그의 설교 내용을 그대로 소개하고 마치고자 한다.   

"구원은 세 가지이다. 과거의 구원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요단강 건너갈 때까지 모세를 따라 가는 것이다. 이제 말씀을 따라가는 삶이어야 하는데 이 40년 광야생활이 바로 말씀을 따라 가는 것이다. 너희의 받은 구원을 이루어가라고 했다. 그러려면 모세를 따라 가야 한다.”

“이사야 40장의 세 사람의 사역처럼 엘리야의 사역은 세례 요한이 감당하고 있고,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역은 예수님이, 모세의 사역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감당하고 있다. 이들이 모두 모세의 자리에 앉는다. 그리스도의 역할은 예수님이 확실히 감당하셨다.”

“엘리야의 사역이나 예수님의 사역은 성공했으나 백성들이 무너진 사역은 모세의 사역이다. 모세의 사역에서 대부분 실패했다.”

“예수님만 찾아서는 천국 못 간다.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이제는 모세를 따라 가야 한다. 모세를 잡지 못해 많은 교회들이 무너지고 있다. 예수님과 세례 요한은 잡아도 모세를 잡지 못하면 실패한다.”

“변화산 상에는 예수님만 나타난 것이 아니다. 십자가 산 상에는 분명히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다. 그러면 모세는 요단강까지 인도했다. 하나님 나라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여호수아를 따라 가야 한다. 율법으로 훈련된 알곡, 군사들이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가는 자들은 바로 모세의 율법에서 복음이 무엇인가를 깨달은 자들이 들어간다.”

“천국 문은 두 개다.”

“세례는 두 가지가 있다. 홍해의 세례와 요단강의 세례, 하나님의 나라 가나안 땅은 천국이다. 모세는 홍해의 세례를 받았다. 요단강의 세례를 받고 여호수아를 따라 가야 한다. 여호수아는 복음이다. 여호수아를 따라 가는 사람은 알곡들이다. 율법으로 훈련된 군사들이다. 그를 따라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

“예수도 두 번 나온다. 애굽에서 문설주의 어린 양은 바로 초림예수를 말한다. 예수의 피만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여호수아를 따라 가는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 율법에서 복음을 깨달은 자들이 들어간다.”

“천국 문은 두 개가 있다. 낙원이 있는데 낙원에는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들어가고 천국은 천년왕국 후 들어간다. 그러니까 구원도 두 가지이다.”

“성령도 두 분이다. 이른 비, 늦은 비의 성령이다.”

“늦은 비의 성령은 심판의 성령이다. 첫째 성령은 베드로가 전한 영화로운 성령이다. 부활의 성령이다. 첫째 예수는 애굽의 어린 양이었다. 여호수아의 재림 복음을 알아야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 지금은 베드로가 전한 복음이 아닌 요엘이 전한 심판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2차 복음인 마지막 복음을 전하기 위해 늦은 비의 성령이 오는 것이다. 늦은 비의 성령을 받아야 휴거된다.”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이 예장 백석에 소속한 목회자라는 사실은 매우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 예배드리는 영혼들은 심각한 학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예장 백석 총회는 권오익 목사가 정말 예장 백석에 소속한 목사인지 확인하여, 만일 실제로 권오익 목사가 예장 백석에 속한 목회자가 맞다면 속히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종교와 진리>의 기사에 수록된 사진들을 보면, 권오익 목사는 특히 빈야드 계열의 거짓 영성에 심취하여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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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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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어... 2017-12-21 10:31:54

    살다살다 이제는 별 미친 또라이를 다 보네.신고 | 삭제

  • 신국론 2017-12-28 17:52:15

    참, 이런 자는 뭐 '이단'이란 말도 아깝고 그저 '사이비'정도가 적당하리라 봅니다. 자고로 이단의 맛은 '교묘함'인데 이건 교묘함도 뭐도 없고 그저 어리석음지 않습니까...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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