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정이철 목사님, 행위구원론자이고 신사도주의자인 미국 뉴저지의 벤자민 오 목사(사랑과 진리교회)가 왜 고신대의 유명한 개혁주의 신학자 박영돈 교수의 칭의론을 인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홍보하는 영상을 만들었을까요? 믿음과 행위, 이 두 가지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사상이 행위구원론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 사상을 가지고 있는 벤자민 오 목사가 개혁주의 진영의 대표 학자인 박영돈 교수의 칭의론을 자기 교회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칭찬하는 이유가 매우 궁금합니다. 정이철 목사님께서 자세하게 분석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답변>
영상에서 나오는 벤자민 오 목사의 멘트와 인용되는 박영돈 교수님의 주장을 그대로 녹취하여 분석해 보겠습니다. 박영돈 교수님의 말에 아무런 하자가 없음에도 벤자민 오 목사가 자신의 행위구원 사상을 위해 억지로 악용하였는지, 아니면 박영돈 교수님이 행위구원론자가 좋아할 내용의 주장을 정말 하셨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벤자민 오 목사의 멘트 1>
“그렇다면 교회를 다니는 사람, 교회에 다니며 사람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을 가장 많이 지옥으로 보낸 거짓말은 뭘까? 그게 바로 거짓 구원론입니다.”(벤자민 오 목사)

벤자민 오 목사는 현대 교회의 거짓 구원론 때문에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지옥으로 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벤자민 오 목사가 천주교나 이단들의 구원론을 거짓 구원론이라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므로 문제가 심각합니다. 벤자민 오 목사는 그 동안 지속적으로 종교개혁을 통해 교회에 정착된 정착된 '이신칭의' 구원론을 마귀의 거짓 구원론이라고 공격하였습니다. 벤자민 오 목사는 오래전 변승우 목사와 친분을 쌓으면서 신사도운동 사상을 전파할 때부터 강력하게 행위구원론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의 장로교 신학을 대표하는 고려신학교의 대표적인 조직학자 박영돈 박사의 칭의론이 벤자민 오 목사의 이단적 행위구원 사상을 보강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공개적으로 이용되고 있으므로 더욱 더 충격적입니다. 그가 박영돈 교수의 어떤 주장을 이용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인용된 박영돈 교수의 주장 1>
"칼빈은 믿기만 하면 순종하지 않아도, 순종의 열매를 맺지 않아도 구원받는 생각을 단호히 거부하였습니다.”(박영돈 교수)

박영돈 교수가 순종의 열매 때문에 하나님이 구원을 주시는 것처럼, 순종의 열매가 없으면 구원을 못 받거나 다시 구원이 상실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비성경적입니다. 만일 칼빈이 정말 그렇게 가르쳤다면 그를 훌륭한 종교개혁자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구원은 아무 공로나 자격이 없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믿음을 보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하여 주심으로 얻습니다. 인간의 순종과 회개가 구원을 만들거나, 믿음으로 구원이 시작된 후 순종과 행함으로 구원이 유지되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확실한 구원얻는다고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 3:5)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롬 5:9)

순종은 구원의 원인이 아니고 결과입니다. 순종이 먼저 있었으므로 구원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순종이 부족하여 다시 구원에서 탈락되어 지옥에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대체 얼마나 순종해야 구원이 유지되고 떨어지지 않는 것이지 누가 말할 있을까요? 박영돈 교수처럼 말하면 하나님의 복음의 영광이 훼손됩니다. 박영돈 교수의 주장은 믿음으로 구원이 시작되지만, 이후 인간의 합당한 행위(회개, 순종, 성화)에 의해 구원이 완성된다는 행위구원론 또는 신인협력구원론의 내용이 떠오르게 합니다. 
 

벤자민 오 목사의 멘트 2>
“구원은 믿음으로만 얻는 것이다. 행함은 구원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 상급에 관계된 것이다. (앞부분의)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맞지요? 행함은 상급에 관계된 것이다. 이것은요? 이것이 왜 그럴듯한 거짓말인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성경은 한 번도 믿음과 행함을 분리한 적이 없다. 둘째, 믿음이 진짜 믿음이면 반드시 행함이 뒤따르게 되어있다. 그런데 이것을 아주 교묘하게 나눈 것입니다.”(벤자민 오 목사)

벤자민 오 목사는 아주 교묘한 방식으로 기독교의 구원의 진리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행함이 구원의 근거가 되거나, 행함이 구원을 유지하는 근거라고 성경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행위를 내세우는 신앙을 다음과 같이 심히 책망하고 경고합니다.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롬 9:32)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 10:3)

벤자민 오 목사의 말처럼, 행함이 따르지 않는 사람이 구원을 주는 믿음을 가졌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믿음이 진짜이면 반드시 행함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벤자민 오 목사는 행함이 구원 이후 상급에만 관련된 것이라는 교회의 가르침이 마귀의 거짓 가르침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 말은 곧 행함이 구원의 근거이고, 또한 행함이 구원을 유지하는 필수적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행위구원론 또는 신인협력구원론입니다. 성경은 행함으로 구원을 유지한다는 사상에 대해 이미 다음과 같이 책망했습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 5:4)

성경 어디에도 행함이 구원을 얻게하거나, 구원을 지켜준다고 말하는 내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9)

성경은 벤자민 오 목사의 주장처럼, 행위로 구원을 얻거나 행위로 구원이 유지(완성)된다는 사상이 하나님이 저주하시는 '다른 복음'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계속해서 벤자민 오 목사가 자신의 비성경적인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박영돈 교수의 어떤 말을 이용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인용된 박영돈 교수의 주장 2>
“행함을 통해서 구원에 이르지는 못하지만, 행함이 없이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행함은 믿음의 진정성을 입증해 줍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검증에서 탈락한 죽은 믿음이지요.”(박영돈 교수)

박영돈 교수의 행함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처음의 말을 맞습니다. 그러나 "행함이 없이도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라는 그 다음의 말은 행위구원론자들이 즐거워하는 거짓된 가르침입니다. 박영돈 교수는 다른 뜻으로 말했을지라도 결국 이단에 의해 크게 이용되고 있으니 이 말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합니다. 해명하거나 사과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왜냐하면 박영돈의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박영돈 교수의 "행함은 믿음의 진정성을 입증해 줍니다"라는 말도 맞는 말이지만,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는가에 따라 의미가 크게 달라지게 됩니다. 얼마든지 믿음으로 구원이 시작되었고, 이후의 행위(회개, 순종)으로 구원이 완성된다는 신인협력 구원사상을 설명하는 표현으로도 이용될 수 있습니다. 

박영돈 교수는 구원받는 자에게 반드시 따라오는 성화에 대해 강조하기 위해 이런 표현을 하신 것 같습니다. 구원받는 자에게 임하시는 성령이 아담에게서 영적으로 유전되는 죄의 오염을 고치시기 시작하니, 구원받은 신자에게서는 반드시 삶이 변화는 성화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성화를 설명하다가 조금만 잘못하면 행위구원론으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아무리 성화를 강조하고 싶어도 다음의 몇 가지 성경의 가르침을 넘어서면 안 됩니다.  

1)성경은 하나님께서 성화를 확인하신 후 구원을 주셨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2)성경은 구원받은 자의 성화가 부족하므로 하나님께서 다시 지옥에 보낸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3)성경은 구원받은 신자가 이 땅에서 완전하게 성화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4)성경은 모든 구원받은 자의 성화가 동일하게 진행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성화됨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공로는 아닙니다. 성화는 구원받을 때 임하신 성령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우리에게 적용시키시므로 나타나는 구원의 열매입니다. 성화를 위해 우리가 마음으로 소원하고 노력해야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근본적으로 성화는 구원받은 자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벤자민 오 목사(미국 뉴저지, 사랑과 진리교회 담임)

벤자민 오 목사의 멘트 3>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다! 아멘! 그러므로 행함은 구원과는 무관한 것이다. 이것이 너무나 그럴듯한 거짓말이었고, 무수히 많은 교인들이 이 거짓말에 속에서, 아마 제가 아직 안 가보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서 억울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여러분들에게 나누는 이야기는 똑 같은 맥락에서 정말 신학적으로 아주 치명적인 구원론의 오류인데, 그게 뭐냐하면 ‘구원은 칭의에만 관계된 것이고 성화는 상급에만 관계된 것이다’라는 거짓말이지요.”(벤지만 오 목사)

‘제가 아직 안가보았지만’...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벤자민 오 목사는 어쩌면 자신이 이후 지옥에 가게 될 것을 예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벤자민 오 목사는 행함이 구원을 좌우하는 요소라고 암시(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칭의’로 구원이 완성된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파괴하고, 반대로 구원 이후에 시작되는 ‘성화’를 구원의 근거(요소)라고 암시(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행위구원론이고 신인협력구원론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이 완전하게 완성된다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완전한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받아 얻는 구원은 이미 완전한 구원입니다. 우리의 의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근거로 얻은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화는 구원 이후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죄의 오염을 치료하시는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삶과 행실이 실질적으로 하나님 백성답게 변해가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은 모든 사람에게 일괄적이지 않고 또한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처럼 완전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성화는 구원의 열매이지 구원의 원인이 아닙니다. 성화가 부족하면 구원에 악영향이 들어간다고 암시하는 벤자민 오 목사의 말은 거짓입니다. 과연 어느 정도 만큼 성화되면 구원에 좋은 영향이 들어가고, 또한 어느 정도 이하로 성화되면 구원에 악영향이 들어간다는 것일까요? 성화가 부족하면 구원이 취소된다는 자신의 주장을 위해 벤자민 오 목사가 인용하는 박영돈 교수의 말을 살펴보겠습니다.


인용된 박영돈 교수의 주장 3> 
“칼빈에 따르면, 그리스도와 연합의 바탕 위에서 믿음과 회개, 칭의와 성화는 긴밀하게 연합되어 그리스도인의 삶 전 과정에 함께 갑니다. 따라서 성화없이 칭의에 근거해서만 구원받지 못하듯이, 행함없이 즉 순종과 회개의 열매없이 믿음으로만 구원받지도 못합니다. 칼빈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에서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은 동시에 거듭나서 하나님의 법을(말씀을) 즐거이 순종하는 삶을 살게된다. 그러므로 우리를 의롭다하는 믿음은 반드시 순종의 열매를 산출하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순종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을 가능케하는 유일한 은혜의 체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하는 교리를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이해하는 것은 큰 착오입니다. 여기서 한국 교회의 만연한 값싼 구원의 복음이 얼마나 종교개혁자 칼빈의 구원론과 거리가 먼지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박영돈 교수)

위 내용 중에서 특히 박영돈 교수의 다음의 말은 큰 논란을 야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화없이 칭의에 근거해서만 구원받지 못하듯이, 행함없이 즉 순종과 회개의 열매없이 믿음으로만 구원받지도 못합니다”(박영돈 교수)

박영돈 교수의 이 말을 문자적으로 풀면 성화가 구원의 중요 근거이고, 또한 그 다음의 말도 순종과 회개가 구원의 필수 요건이라는 것입니다. 박영돈 교수는 자꾸 성화를 비정상적으로 강조하면서 구원의 원리를 훼손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행위구원론자가 크게 기뻐하면서 이용하는 것입니다. 본인이 다른 뜻으로 이렇게 말했을지라도, 이단적인 주장을 펼치는 사람이 이용하고 있으니 스스로 책임을 져야합니다. 교회는 박영돈의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단순하고 명료합니다. 십자가 우편의 구원받은 강도를 보겠습니다. 그 강도는 십자가상에서 그리스도에게 구원을 간청하였습니다. 그 옆 십자가에 달려 대속의 고난을 당하시는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3)

그 강도는 구원의 은혜를 얻고 난 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아무 행함이나 순종없이 십자가 상에서 죽었습니다. 이 땅에서 성화의 과정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그 강도는 부족한 구원을 받은 것입니까? 성화로 구원의 자격을 증명해야만 구원이 유효하다면, 그리스도가 십자가 상에서 구원하신 그 강도의 구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또한 성화가 얼마나 많이 나타나야 구원에 악영향이 없는 것일까요? 성화와 행위가 칭의와 구원에 영향을 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위의 말이 박영돈 교수님의 진심이라면, 박영돈 교수님은 천주교로 가셔야 하고, 고신교단은 박영돈 교수님을 파직하여야 마땅합니다. 행위구원사상을 공식적으로 가르친다고 오해를 받고 있는 감리교에서도 박영돈 교수님 같이 말하면 신학위원회에 불려가서 조사받게 될 것입니다. 제가 이전에 웨슬리 구원론 논쟁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감리교 교수님들 중에도 성화가 칭의와 구원에는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명백하게 가르치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웨슬리의 성령론이 갖는 또 하나의 특징은 성화에 대한 강조이다. 성화는 구원의 여부에 영향을 전혀 미치지 않지만 구원받는 신자가 필연적으로 맺는 열매다”(감신대 임성모 교수, “웨슬리 관점에서 신사도 운동 비판”)

“행위는 결코 칭의에 있어서 아무런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 이처럼 칭의에 있어서의 오직 믿음과 그리스도의 의에 대한 확고한 교리는 종교개혁자들을 이어받은 감리교회의 중요한 유산이다.”(감신대 이후정 교수, 정이철 목사 문제에 대한 답변)

행위구원신학을 가르친다고 오해를 받고 있는 감리교단의 교수님들 중에도 행위와 성화가 구원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이처럼 분명하고 가르치고 있는데, 한국의 대표적인 개혁교단의 조직신학 교수가 행함과 성화없이 구원이 일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는 것은 큰 낭패입니다. 이 말이 박영돈 교수의 본 뜻이 아니었을지라도 자신의 말이니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이단 목회자라고 알려진 사람이 이용하도록 방관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하는 교리를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이해하는 것은 큰 착오입니다.”(박영돈 교수)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이나,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은 결국 같은 위험성을 내포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행함이 구원을 좌우하는 요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고 구원에 이른다고 가르칩니다.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롬 3:26)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 3:28)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롬 4:2)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이 행해야 구원에 이르게 될까요?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에게서 완전한 행함이 나타나야만 구원이 지속된다면, 과연 누가 구원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요? 성령의 새롭게하심으로 구원과 함께 성화가 시작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완전환 성화를 이루게 된다고 성경 어디에도 말하지 않습니다.

야고보서의 말씀처럼, 행함이 아주 없으면 거짓된 믿음이고, 처음부터 구원을 얻지도 못한 믿음이라고 진단하는 것은 옳습니다. 그러나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는 구원받지 못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만일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한다면, 필연적으로 완전한 행함을 하나님께 보여야 한다는 것인데, 과연 누가 완전한 행함을 하나님께 보일 수 있을까요? 

"여기서 한국 교회의 만연한 값싼 구원의 복음이 얼마나 종교개혁자 칼빈의 구원론과 거리가 먼지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박영돈 교수)

그리스도의 피의 복음은 어떠한 경우에도 값싼 복음이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 흠없고 완전히 거룩하고 의롭게 사시다 우리 대신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되므로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의 의가 되어 완전하고 영원한 구원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사함받았고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이 우리의 의가 되었을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죄인의 속성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와 오래 참으심과 성령의 역사로 진정한 하나님 백성이 되도록 이끌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어떠한 경우에도 값싼 복음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단지 사람이 보는 교회 안에 복음과 관련이 없는 거짓 교인들이 있을 뿐입니다.   

(다음에 나머지 부분을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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